풀려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듣고 떠나는 왓차곳따

여섯째 직접 앎으로 번뇌 없는 마음과 지혜의 해탈을 밝히고 왓차곳따가 기뻐하며 떠납니다.

“왓차여, 원한다면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바로 이 삶에서 스스로 알고 실현해 머물 수 있다.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이를 직접 실현할 수 있다.” 왓차곳따 존자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받아들인 뒤 자리에서 일어나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떠났습니다.

So tvaṁ, vaccha, yāvadeva ākaṅkhissasi: ‘āsavānaṁ khayā anāsavaṁ cetovimuttiṁ paññāvimutti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issasi, sati satiāyatane”ti. Atha kho āyasmā vacchagott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itvā anumodi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pakkāmi.

맛지마 니까야 MN 73 왓차 긴 경 (Mahāvacchasutta)

배경

여섯 직접 앎의 마지막은 번뇌의 소멸로 이루는 두 해탈입니다.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바로 이 삶에서 sayaṁ abhiññā,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해 머무는 것이며, 여기에도 원할 때와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라는 조건이 붙습니다. 신통에서 시작한 목록은 이 결과로 닫힙니다. 왓차곳따는 말씀을 기뻐하고 받아들인 뒤 절하고 세존을 오른쪽에 두고 돌아 떠납니다. 떠나는 동작은 수행이 끝났다는 판정이 아니라, 다음 장면의 홀로 닦는 시간으로 이어지는 서술입니다.

묵상

여섯 능력의 마지막이 번뇌 없는 마음과 지혜의 해탈이라는 점이 어떻게 들리나요? 앞의 특별한 능력들과 비교해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어요. 목록의 끝에 놓인 결과만 살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