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용모로 이끄는 성내지 않음의 길을 반복하다

아름다운 용모로 이끄는 길이라고 이름 붙이고 성내지 않음과 지적받을 때의 일곱 부정을 다시 온전히 말합니다.

학생이여, 용모가 아름답게 하는 길은 이것입니다. 곧 성내지 않고 울분도 많지 않으며, 많이 지적받아도 화내지 않고 분노하지 않으며 적대하지 않고 완고해지지 않고, 노여움과 미움과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Pāsādikasaṁvattanikā esā, māṇava, paṭipadā yadidaṁ—akkodhano hoti anupāyāsabahulo; bahumpi vutto samāno nābhisajjati na kuppati na byāpajjati na patiṭṭhīyati na kopañca dosañca appaccayañca pātukaro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좋은 곳과 아름다운 용모의 결과 뒤, 세존께서는 “학생이여, 용모를 아름답게 하는 길은 이것”이라고 결론을 붙입니다. 이어 성내지 않고 울분이 많지 않음, 많이 지적받아도 화내지 않음·분노하지 않음·적대하지 않음·완고해지지 않음과 노여움·미움·불만을 드러내지 않음을 다시 모두 말합니다. 생략 없이 양언어 목록을 맞췄습니다. 이 반복은 감정을 억압하라는 뜻보다 반응이 적대와 불만의 표현으로 번지지 않는 행위의 대칭을 보존합니다. 외모를 도덕 평가에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묵상

여러 부정이 한꺼번에 반복될 때 무엇이 가장 실천에 가깝게 느껴지나요? 아름다움이라는 결과에 자신이나 타인을 맞추지 않고, 불만을 바로 드러내지 않는 작은 여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