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 쭐라깜마위방가경

맛지마 니까야 MN 135

살생·해침·성냄·질투·보시·존중·질문의 일곱 행동쌍을 수명·건강·용모·영향력·재산·가문·지혜와 연결한다.

인용된 가르침 38구절

이 경을 38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수바가 세존을 찾아와 인사를 나누다 1구절

사왓티 제따 숲에 머무시는 세존께 또데야의 아들인 학생 수바가 찾아와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무셨습니다. 그때 또데야의 아들인 학생 수바가 세존께 다가가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Atha kho subho māṇavo todeyyaput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ṁ sammod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경은 전승 문구와 사왓티 제따 숲이라는 장소를 밝힌 뒤, 또데야의 아들인 학생 수바가 세존을 찾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대목은 두 사람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데서 닫히며, 반갑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와 착석 및 발화 도입은 이어지는 질문 대목에 속합니다. 청자는 출가 수행자가 아니라 “학생”으로 불리는 수바입니다. 이 만남은 일곱 쌍의 질문과 답이 누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지 정하고, 세존은 곧 인간 차이에 관한 짧은 총답과 상세한 분석을 들려줍니다.

묵상

수바가 먼저 인사를 나누고 한쪽에 앉은 다음 어려운 질문을 꺼내는 순서는 어떻게 느껴지나요? 지금 누군가에게 묻고 싶은 일이 있다면, 답을 정하기 전에 질문할 자리가 마련되었는지만 가볍게 살펴볼 수 있을까요?

2 수바가 인간의 차이를 묻고 첫 세 대조를 들다 1구절

수바가 열등함과 뛰어남의 원인과 조건을 물으며 수명·건강·용모의 세 대조를 먼저 열거합니다.

반갑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나눈 뒤 한쪽에 앉아 세존께 여쭈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들 사이에서도 열등함과 뛰어남이 보이는 원인과 조건은 무엇입니까? 고따마 존자여, 수명이 짧은 이와 긴 이가 보이고, 병이 많은 이와 병이 적은 이가 보이며, 용모가 좋지 않은 이와 아름다운 이가 보이고,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subho māṇavo todeyya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Ko nu kho, bho gotama, hetu ko paccayo yena manussānaṁyeva sataṁ manussabhūtānaṁ dissanti hīnappaṇītatā? Dissanti hi, bho gotama, manussā appāyukā, dissanti dīghāyukā; dissanti bavhābādhā, dissanti appābādhā; dissanti dubbaṇṇā, dissanti vaṇṇavanto;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수바는 반갑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나눈 뒤 한쪽에 앉아 세존께 질문합니다. “원인”과 “조건”을 함께 묻고 인간 사이의 열등함과 뛰어남을 일곱 대조로 펼치며, 이 대목에서는 짧고 긴 수명, 많고 적은 병, 좋지 않고 아름다운 용모의 첫 세 쌍을 듭니다. “고따마 존자여”는 질문과 첫 대조에서 두 번 나옵니다. 이 목록은 특정 개인을 판정하는 질문이 아니라 설명을 청하는 문제 설정입니다. 타인의 수명·질병·용모를 보고 과거 행위를 추정하는 근거로 넓혀서는 안 됩니다.

묵상

수바가 여러 차이를 한꺼번에 판단하지 않고 먼저 원인과 조건을 묻는 태도는 어떻게 다가오나요? 수명·건강·용모 가운데 지금 읽기 부담스러운 항목이 있다면 잠시 건너뛰어도 괜찮고, 질문의 형식만 살펴봐도 괜찮을까요?

3 영향력·재산·가문·지혜의 네 대조를 더하다 1구절

수바가 영향력·재산·가문·지혜의 네 대조를 더하여 앞의 수명·건강·용모와 함께 일곱 대조를 완성합니다.

영향력이 작은 이와 큰 이가 보이며, 재산이 적은 이와 많은 이가 보이고, 낮은 가문에서 난 이와 높은 가문에서 난 이가 보이며, 지혜가 부족한 이와 지혜로운 이가 보입니다.

dissanti appesakkhā, dissanti mahesakkhā; dissanti appabhogā, dissanti mahābhogā; dissanti nīcakulīnā, dissanti uccākulīnā; dissanti duppaññā, dissanti paññavanto.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앞의 세 쌍에 이어 수바는 영향력의 작고 큼, 재산의 적고 많음, 가문의 낮고 높음, 지혜의 부족함과 지혜로움이라는 네 쌍을 더합니다. 이로써 전체 목록은 일곱 대조가 됩니다. 이 대목은 열거의 마지막 항목에서 닫히고, 인간들 사이의 열등함과 뛰어남이 보이는 원인과 조건을 다시 묻는 완결 문장은 세존의 짧은 답과 함께 이어집니다. 이 차이들은 경이 해명하려는 항목이지, 오늘의 사회적 불평등이나 타인의 삶을 단일 원인으로 재단하라는 허가가 아닙니다.

묵상

일곱 대조 가운데 쉽게 우열로 읽히는 말이 있나요? 그 말을 곧바로 나나 타인에게 붙이지 않고, 수바가 먼저 원인과 조건을 묻고 있다는 사실만 잠시 천천히 따라가 볼 수 있을까요?

4 수바의 반복 질문에 세존께서 업으로 답하다 1구절

수바가 원인과 조건을 다시 물은 뒤, 세존께서 업의 소유자·상속자·태생·친족·의지처와 열등함·뛰어남의 구분으로 답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열등함과 뛰어남이 보이는 원인과 조건은 무엇입니까?” “학생이여, 존재들은 업의 소유자이고 업의 상속자이며, 업에서 태어나고 업을 친족으로 삼고 업을 의지처로 삼습니다. 업이 존재들을 갈라놓습니다. 곧 열등함과 뛰어남으로 갈라놓습니다.”

Ko nu kho, bho gotama, hetu ko paccayo yena manussānaṁyeva sataṁ manussabhūtānaṁ dissanti hīnappaṇītatā”ti? “Kammassakā, māṇava, sattā kammadāyādā kammayonī kammabandhū kammappaṭisaraṇā. Kammaṁ satte vibhajati yadidaṁ—hīnappaṇītatāy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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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수바가 인간들 사이의 열등함과 뛰어남이 보이는 원인과 조건을 다시 온전히 묻자, 세존의 첫 답이 바로 이어집니다. 존재들은 업의 소유자·상속자이며, 업에서 태어나고 업을 친족과 의지처로 삼는다는 다섯 관계와 업이 존재들을 열등함과 뛰어남으로 가른다는 결론입니다. 호격은 답에서 수바를 가리키는 “학생이여” 한 번입니다. 이 짧은 답은 뒤의 일곱 조건쌍을 압축한 표제입니다. 업을 고정 운명으로 바꾸거나 타인의 현재 처지에서 과거를 단정하고 피해 책임을 돌리는 말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묵상

업의 소유자·상속자·태생·친족·의지처라는 다섯 표현 중 지금 가장 오래 머무는 말은 무엇인가요? 그 말을 운명 판정으로 서둘러 넓히지 않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한 행위와 연결해 볼 여지가 있나요?

5 수바가 상세한 뜻을 청하고 세존께서 답을 시작하다 1구절

간략한 답을 이해하지 못한 수바가 상세한 설명을 청하고, 세존께서 잘 마음에 새겨 들으라 한 뒤 말씀을 시작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 뜻을 자세히 풀지 않고 간략히 말씀하신 것을 저는 자세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 그 뜻을 자세히 가르쳐 주시어 제가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학생이여, 듣고 잘 마음에 새기십시오. 내가 말하겠습니다.” “예, 존자여.” 또데야의 아들인 학생 수바가 세존께 대답했습니다.

“Na kho ahaṁ imassa bhoto gotamassa saṅkhittena bhāsitassa vitthārena atthaṁ avibhattassa vitthārena atthaṁ ājānāmi. Sādhu me bhavaṁ gotamo tathā dhammaṁ desetu yathā ahaṁ imassa bhoto gotamassa saṅkhittena bhāsitassa vitthārena atthaṁ avibhattassa vitthārena atthaṁ ājāneyyan”ti. “Tena hi, māṇava, suṇāhi, sādhukaṁ manasi karohi; bhāsissāmī”ti. “Evaṁ, bho”ti kho subho māṇavo todeyyaputto bhagavato paccasso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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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수바는 세존의 짧은 답을 알아들은 체하지 않고, 자세히 풀지 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두 문장에 걸쳐 밝힌 뒤 상세한 설명을 청합니다. 세존께서는 “학생이여”라고 부르며 듣고 잘 마음에 새기라고 하신 뒤 말하겠다고 답합니다. 수바는 “예, 존자여”라고 응답합니다. 여기서는 질문자와 응답자의 준비 문답이 닫히고, 세존의 본격적인 발화를 여는 서술자 문장은 첫 답과 함께 이어집니다. 상세 설명은 일곱 대조마다 행위·사후 결과·인간 결과·결론의 같은 구조를 따릅니다.

묵상

수바가 “이해하지 못합니다”라고 밝히고 자세한 설명을 청하는 모습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지금 잘 모르겠다고 말해도 괜찮은 한 주제가 있나요, 없다면 설명을 듣기 전 잠시 마음을 두는 태도만 살펴볼까요?

6 살생이 낳는 두 갈래 결과 1구절

생명을 죽이고 잔인하며 자비 없는 행위가 나쁜 곳의 태어남 또는 인간으로 돌아올 때 짧은 수명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학생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생명을 죽이고 잔인하며, 손에 피를 묻히고 죽이고 때리는 데 몰두하여 생명에게 자비가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그 업을 이처럼 행하고 받아들였으므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나쁜 곳·나쁜 길·파멸처·지옥에 태어납니다.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수명이 짧습니다.

Bhagavā etadavoca: “Idha, māṇava, ekacco itthī vā puriso vā pāṇātipātī hoti luddo lohitapāṇi hatapahate niviṭṭho adayāpanno pāṇabhūtesu. So tena kammena evaṁ samattena evaṁ samādinnen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ati. No c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ati, sace manussattaṁ āgacchati yattha yattha paccājāyati appāyuk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서술자가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발화를 연 뒤, 첫 번째 분석은 살생을 원인으로 둡니다. 잔인함·피 묻은 손·죽이고 때리는 데 몰두함·생명에 자비 없음이 네 특징으로 붙습니다. 결과는 먼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나쁜 곳·나쁜 길·파멸처·지옥에 태어남입니다. 다만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오는 조건 아래서는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수명이 짧다고 합니다. 두 결과를 동시에 일어나는 일처럼 합치지 않았습니다. 이는 지금 수명이 짧은 사람에게 과거 살생의 책임을 추궁할 근거가 아닙니다.

묵상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 잔인함과 자비 없음이 함께 적힌 점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타인의 수명이나 과거를 추측하지 않고, 오늘 내가 해치지 않도록 조심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선택 하나가 떠오르나요?

7 짧은 수명으로 이끄는 살생의 길을 반복하다 1구절

세존께서 짧은 수명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이름 붙이고 살생·잔인함·피 묻은 손·폭력에 몰두함·자비 없음을 다시 온전히 말합니다.

학생이여, 수명이 짧아지게 하는 길은 이것입니다. 곧 생명을 죽이고 잔인하며, 손에 피를 묻히고 죽이고 때리는 데 몰두하여 생명에게 자비가 없는 것입니다.

Appāyukasaṁvattanikā esā, māṇava, paṭipadā yadidaṁ—pāṇātipātī hoti luddo lohitapāṇi hatapahate niviṭṭho adayāpanno pāṇabhūtesu.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앞의 행동과 두 갈래 결과를 말한 뒤, 세존께서는 “학생이여, 짧은 수명으로 이끄는 길은 이것”이라고 결론을 붙입니다. 이어 생명을 죽임·잔인함·손에 피를 묻힘·죽이고 때리는 데 몰두함·생명에게 자비가 없음이라는 처음의 원인을 다시 온전히 반복합니다. 이 반복은 결과만 떼어 읽지 않고 어떤 행위를 경계하는 설명인지 경계를 닫습니다. 생략표 없이 빠알리와 한국어에 같은 항목을 모두 보존했습니다. 현재 수명이 짧은 사람의 보이지 않는 과거를 역으로 추론하거나 피해 책임을 돌리는 용도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묵상

결론에서 살생의 특징을 한 번 더 모두 되풀이하는 점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수명의 과보를 계산하기보다, 잔인함이나 자비 없음이 지금 행동에 스며들지 않았는지만 조심스럽게 살펴볼 수 있을까요?

8 살생을 삼감이 낳는 두 갈래 결과 1구절

살생을 버리고 무기를 내려놓아 모든 생명의 이익을 가엾이 여기는 행위가 좋은 곳 또는 긴 수명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학생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생명을 죽이는 일을 버리고 살생을 삼갑니다. 몽둥이와 무기를 내려놓고 부끄러움을 알며 자비로워, 모든 생명의 이익을 가엾이 여기며 지냅니다. 그 사람은 그 업을 이처럼 행하고 받아들였으므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 세계에 태어납니다.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수명이 깁니다.

Idha pana, māṇava, ekacco itthī vā puriso vā pāṇātipātaṁ pahāy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nihitadaṇḍo nihitasattho, lajjī dayāpanno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viharati. So tena kammena evaṁ samattena evaṁ samādinnen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No c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sace manussattaṁ āgacchati yattha yattha paccājāyati dīghāyuk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첫 조건쌍의 반대편은 살생을 버리고 삼가는 행위입니다. 몽둥이와 무기를 내려놓음, 부끄러움을 앎, 자비로움, 모든 생명의 이익을 가엾이 여김이 함께 놓입니다. 결과는 먼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 세계에 태어남입니다. 다만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오는 조건 아래서는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수명이 길다고 합니다. 두 갈래의 조건과 결과를 각각 보존했습니다. 경의 대칭은 해침을 멈추는 부정에 그치지 않고 생명의 이익을 가엾이 여기는 태도까지 포함합니다.

묵상

몽둥이와 무기를 내려놓는 일과 모든 생명의 이익을 가엾이 여기는 일이 한 문장에 이어지는 점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거창한 약속 없이 오늘 한 생명을 덜 해치는 선택이 가능한지 가볍게 살펴볼까요?

9 긴 수명으로 이끄는 비살생의 길을 반복하다 1구절

세존께서 긴 수명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이름 붙이고 살생을 삼감·무기 내려놓음·부끄러움·자비·연민을 다시 온전히 말합니다.

학생이여, 수명이 길어지게 하는 길은 이것입니다. 곧 생명을 죽이는 일을 버리고 살생을 삼가며, 몽둥이와 무기를 내려놓고 부끄러움을 알고 자비로워 모든 생명의 이익을 가엾이 여기며 지내는 것입니다.

Dīghāyukasaṁvattanikā esā, māṇava, paṭipadā yadidaṁ—pāṇātipātaṁ pahāy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nihitadaṇḍo nihitasattho, lajjī dayāpanno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vihar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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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갈래 결과에 이어 세존께서는 “학생이여, 긴 수명으로 이끄는 길은 이것”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그런 다음 살생을 버리고 삼감, 몽둥이와 무기를 내려놓음, 부끄러움을 앎, 자비로움, 모든 생명의 이익을 가엾이 여기며 지냄을 처음과 같은 순서로 다시 온전히 말합니다. 생략표 없이 빠알리와 한국어의 반복 범위를 맞췄습니다. 이 결론은 미래의 보상을 얻기 위한 계산만이 아니라, 해침을 멈추고 생명에게 연민을 기르는 행위 전체가 앞의 반대 길과 어떻게 대칭을 이루는지 보여 줍니다.

묵상

비살생의 길이 단순히 죽이지 않음에서 끝나지 않고 자비와 모든 생명에 대한 연민까지 반복하는 점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오늘 가능한 비해침의 작은 모습 하나를 부담 없이 떠올려 볼까요?

10 생명을 해치는 버릇과 많은 병의 조건쌍 1구절

손·돌·몽둥이·무기로 생명을 해치는 버릇이 나쁜 곳의 태어남 또는 인간으로 돌아올 때 많은 병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학생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손이나 돌이나 몽둥이나 무기로 생명들을 해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 업을 이처럼 행하고 받아들였으므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나쁜 곳·나쁜 길·파멸처·지옥에 태어납니다.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병이 많습니다. 학생이여, 병이 많아지게 하는 길은 이것입니다. 곧 손이나 돌이나 몽둥이나 무기로 생명들을 해치는 버릇입니다.

Idha, māṇava, ekacco itthī vā puriso vā sattānaṁ viheṭhakajātiko hoti, pāṇinā vā leḍḍunā vā daṇḍena vā satthena vā. So tena kammena evaṁ samattena evaṁ samādinnen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ati. No c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ati, sace manussattaṁ āgacchati yattha yattha paccājāyati bavhābādho hoti. Bavhābādhasaṁvattanikā esā, māṇava, paṭipadā yadidaṁ—sattānaṁ viheṭhakajātiko hoti pāṇinā vā leḍḍunā vā daṇḍena vā satthena v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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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두 번째 분석은 죽임과 구별하여 생명을 해치는 버릇을 다룹니다. 수단은 손·돌·몽둥이·무기의 네 가지이며, 어느 하나도 생략하지 않습니다. 결과 구조는 앞과 같아서 먼저 나쁜 곳·나쁜 길·파멸처·지옥을 말하고,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오는 조건에서 병이 많다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네 수단으로 해치는 버릇을 다시 들어 많은 병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닫습니다. 현대의 질병은 원인이 복합적이므로, 아픈 사람의 과거 행위를 추정하거나 고통의 책임을 돌리는 식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묵상

손·돌·몽둥이·무기라는 네 수단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점은 어떻게 들리나요? 질병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지 않고, 지금 내 몸과 행동에서 해침을 줄일 수 있는 한 부분이 있는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11 생명을 해치지 않음과 적은 병의 조건쌍 1구절

손·돌·몽둥이·무기로 생명을 해치는 버릇이 없음이 좋은 곳의 태어남 또는 인간으로 돌아올 때 적은 병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학생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손이나 돌이나 몽둥이나 무기로 생명들을 해치는 버릇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그 업을 이처럼 행하고 받아들였으므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 세계에 태어납니다.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병이 적습니다. 학생이여, 병이 적어지게 하는 길은 이것입니다. 곧 손이나 돌이나 몽둥이나 무기로 생명들을 해치는 버릇이 없는 것입니다.

Idha pana, māṇava, ekacco itthī vā puriso vā sattānaṁ aviheṭhakajātiko hoti pāṇinā vā leḍḍunā vā daṇḍena vā satthena vā. So tena kammena evaṁ samattena evaṁ samādinnen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No c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sace manussattaṁ āgacchati yattha yattha paccājāyati appābādho hoti. Appābādhasaṁvattanikā esā, māṇava, paṭipadā yadidaṁ—sattānaṁ aviheṭhakajātiko hoti pāṇinā vā leḍḍunā vā daṇḍena vā satthena v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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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조건쌍의 반대편은 손·돌·몽둥이·무기로 생명을 해치는 버릇이 없다는 부정입니다. 네 수단은 앞 대목과 같은 순서로 반복됩니다. 결과는 좋은 곳인 천상 세계, 또는 그곳이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오는 조건에서 병이 적음입니다. 결론도 해치는 버릇이 없다는 문장을 다시 말해 병이 적어지게 하는 길이라고 합니다. 이 대칭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비해침을 비추지만, 현재 건강한 사람의 도덕성을 높이거나 아픈 사람의 도덕성을 낮게 판단하는 척도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묵상

해치지 않는 버릇이라는 말에서 한 번의 행동보다 반복되는 태도가 강조되는 점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건강을 공로나 책임으로 계산하지 않고, 오늘 비해침에 가까운 작은 습관 하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12 쉽게 성냄이 낳는 두 갈래 결과 1구절

조금만 지적받아도 성내고 적대하며 불만을 드러내는 행위가 나쁜 곳 또는 좋지 않은 용모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학생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성을 잘 내고 울분이 많습니다. 조금만 지적받아도 화내고 분노하며 적대하고 완고해져, 노여움과 미움과 불만을 드러냅니다. 그 사람은 그 업을 이처럼 행하고 받아들였으므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나쁜 곳·나쁜 길·파멸처·지옥에 태어납니다.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용모가 좋지 않습니다.

Idha, māṇava, ekacco itthī vā puriso vā kodhano hoti upāyāsabahulo. Appampi vutto samāno abhisajjati kuppati byāpajjati patiṭṭhīyati kopañca dosañca appaccayañca pātukaroti. So tena kammena evaṁ samattena evaṁ samādinnen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ati. No c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ati, sace manussattaṁ āgacchati yattha yattha paccājāyati dubbaṇṇo h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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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세 번째 분석은 성을 잘 내고 울분이 많은 상태를 먼저 말한 뒤, 조금만 지적받아도 일어나는 반응을 펼칩니다. 화냄·분노·적대·완고해짐과 노여움·미움·불만을 드러냄이 모두 포함됩니다. 결과는 먼저 나쁜 곳·나쁜 길·파멸처·지옥의 태어남입니다. 그곳이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오는 조건에서는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용모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두 갈래를 각각 보존했습니다. 이 대목은 타인의 외모를 과거 성냄의 증거로 삼거나 외모에 도덕적 우열을 붙이는 근거가 아닙니다.

묵상

조금만 지적받아도 이어지는 여러 반응 가운데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나요? 용모나 과거의 과보를 판단하지 않고, 지금 한마디를 들을 때 몸에서 먼저 나타나는 반응만 조용히 알아볼 수 있을까요?

13 좋지 않은 용모로 이끄는 성냄의 길을 반복하다 1구절

좋지 않은 용모로 이끄는 길이라고 이름 붙이고 성냄·울분과 지적받을 때 드러나는 일곱 반응을 다시 온전히 말합니다.

학생이여, 용모가 좋지 않게 하는 길은 이것입니다. 곧 성을 잘 내고 울분이 많으며, 조금만 지적받아도 화내고 분노하며 적대하고 완고해져, 노여움과 미움과 불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Dubbaṇṇasaṁvattanikā esā, māṇava, paṭipadā yadidaṁ—kodhano hoti upāyāsabahulo; appampi vutto samāno abhisajjati kuppati byāpajjati patiṭṭhīyati kopañca dosañca appaccayañca pātukaro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두 결과 뒤 세존께서는 “학생이여, 용모가 좋지 않게 하는 길은 이것”이라고 결론을 붙입니다. 이어 성냄과 울분, 조금만 지적받아도 화냄·분노·적대·완고해짐과 노여움·미움·불만을 드러냄을 처음과 같은 순서로 반복합니다. 빠알리와 한국어에서 생략하지 않아 원인 목록의 수와 범위가 같습니다. 반복은 결과만 떼어 사람에게 붙이지 않고 어떤 반응을 경계하는지 되짚습니다. 오늘의 외모를 과거 행위의 증거로 삼거나 외모 차별을 정당화하는 방식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묵상

결론에서 성냄의 여러 반응을 다시 모두 말하는 점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외모나 과보를 계산하지 않고, 화남이 적대나 완고함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지금 알아차릴 수 있는지만 살펴볼까요?

14 성을 내지 않음이 낳는 두 갈래 결과 1구절

많이 지적받아도 화내거나 적대하지 않고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 행위가 좋은 곳 또는 아름다운 용모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학생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성내지 않고 울분도 많지 않습니다. 많이 지적받아도 화내지 않고 분노하지 않으며 적대하지 않고 완고해지지 않으며, 노여움과 미움과 불만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그 업을 이처럼 행하고 받아들였으므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 세계에 태어납니다.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용모가 아름답습니다.

Idha pana, māṇava, ekacco itthī vā puriso vā akkodhano hoti anupāyāsabahulo; bahumpi vutto samāno nābhisajjati na kuppati na byāpajjati na patiṭṭhīyati na kopañca dosañca appaccayañca pātukaroti. So tena kammena evaṁ samattena evaṁ samādinnen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No c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sace manussattaṁ āgacchati yattha yattha paccājāyati pāsādik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반대편에서는 성내지 않고 울분도 많지 않으며, 많이 지적받아도 화내지 않음·분노하지 않음·적대하지 않음·완고해지지 않음과 노여움·미움·불만을 드러내지 않음을 모두 부정형으로 열거합니다. 결과는 먼저 좋은 곳인 천상 세계에 태어남입니다. 그곳이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오는 조건에서는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용모가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 대칭은 반응을 살피는 가르침이지, 외모를 인격의 표시로 만들거나 아름다움을 선업의 증거로 삼아 차별을 정당화하는 설명이 아닙니다.

묵상

많이 지적받아도 즉시 화내거나 적대하지 않는다는 대목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감정을 억누르라는 요구로 읽지 않고, 반응이 행동으로 이어지기 전 잠시 알아차릴 여지가 있는지만 가볍게 살펴볼까요?

15 아름다운 용모로 이끄는 성내지 않음의 길을 반복하다 1구절

아름다운 용모로 이끄는 길이라고 이름 붙이고 성내지 않음과 지적받을 때의 일곱 부정을 다시 온전히 말합니다.

학생이여, 용모가 아름답게 하는 길은 이것입니다. 곧 성내지 않고 울분도 많지 않으며, 많이 지적받아도 화내지 않고 분노하지 않으며 적대하지 않고 완고해지지 않고, 노여움과 미움과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Pāsādikasaṁvattanikā esā, māṇava, paṭipadā yadidaṁ—akkodhano hoti anupāyāsabahulo; bahumpi vutto samāno nābhisajjati na kuppati na byāpajjati na patiṭṭhīyati na kopañca dosañca appaccayañca pātukaro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좋은 곳과 아름다운 용모의 결과 뒤, 세존께서는 “학생이여, 용모를 아름답게 하는 길은 이것”이라고 결론을 붙입니다. 이어 성내지 않고 울분이 많지 않음, 많이 지적받아도 화내지 않음·분노하지 않음·적대하지 않음·완고해지지 않음과 노여움·미움·불만을 드러내지 않음을 다시 모두 말합니다. 생략 없이 양언어 목록을 맞췄습니다. 이 반복은 감정을 억압하라는 뜻보다 반응이 적대와 불만의 표현으로 번지지 않는 행위의 대칭을 보존합니다. 외모를 도덕 평가에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묵상

여러 부정이 한꺼번에 반복될 때 무엇이 가장 실천에 가깝게 느껴지나요? 아름다움이라는 결과에 자신이나 타인을 맞추지 않고, 불만을 바로 드러내지 않는 작은 여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16 남의 존중을 질투함이 낳는 두 갈래 결과 1구절

남이 받는 이득과 여러 존중을 시기·원망하고 질투심을 품는 행위가 나쁜 곳 또는 작은 영향력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학생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질투합니다. 남이 얻는 이득·존경·존중·공경·예경·공양을 시기하고 원망하며 질투심을 품습니다. 그 사람은 그 업을 이처럼 행하고 받아들였으므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나쁜 곳·나쁜 길·파멸처·지옥에 태어납니다.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영향력이 작습니다.

Idha, māṇava, ekacco itthī vā puriso vā issāmanako hoti; paralābhasakkāragarukāramānanavandanapūjanāsu issati upadussati issaṁ bandhati. So tena kammena evaṁ samattena evaṁ samādinnen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ati. No c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ati, sace manussattaṁ āgacchati yattha yattha paccājāyati appesakkh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네 번째 분석은 남이 받는 이득·존경·존중·공경·예경·공양이라는 여섯 대상을 열거하고, 이에 시기함·원망함·질투심을 품음이라는 세 반응을 붙입니다. 결과는 먼저 나쁜 곳·나쁜 길·파멸처·지옥의 태어남이고, 그곳이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오는 조건에서는 영향력이 작음입니다. 두 결과를 합치지 않았습니다. 영향력이라는 사회적 조건에는 수많은 원인이 있으므로, 오늘 영향력이 적은 사람을 탓하거나 권력 있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단정하는 근거로 삼지 않습니다.

묵상

남이 받는 이득과 여러 형태의 존중을 볼 때 생기는 세 반응 중 지금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있나요? 영향력의 크기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비교가 시작되는 순간의 마음만 잠시 살펴볼 수 있을까요?

17 작은 영향력으로 이끄는 질투의 길을 반복하다 1구절

작은 영향력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이름 붙이고 질투와 남의 여섯 대상을 향한 세 반응을 다시 온전히 말합니다.

학생이여, 영향력이 작아지게 하는 길은 이것입니다. 곧 질투하며, 남이 얻는 이득·존경·존중·공경·예경·공양을 시기하고 원망하며 질투심을 품는 것입니다.

Appesakkhasaṁvattanikā esā, māṇava, paṭipadā yadidaṁ—issāmanako hoti; paralābhasakkāragarukāramānanavandanapūjanāsu issati upadussati issaṁ bandha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두 갈래 결과 뒤 세존께서는 “학생이여, 영향력이 작아지게 하는 길은 이것”이라고 결론을 붙입니다. 이어 질투함과 남이 얻는 이득·존경·존중·공경·예경·공양의 여섯 대상을 시기함·원망함·질투심을 품음이라는 세 반응을 다시 온전히 말합니다. 양언어에서 대상과 반응을 생략하지 않았습니다. 이 반복은 권력의 크기를 도덕 점수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의 이득과 존중을 대하는 마음이 어떤 행위의 길이 되는지 분명히 닫습니다. 현실의 권력 격차를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묵상

질투의 대상 여섯과 반응 셋을 다시 들을 때 지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말은 무엇인가요? 영향력의 과보를 계산하지 않고, 시기나 원망이 생기는 순간을 판단 없이 알아볼 수 있을까요?

18 남의 존중을 질투하지 않음이 낳는 두 갈래 결과 1구절

남이 받는 이득과 여러 존중을 시기·원망하지 않고 질투심을 품지 않는 행위가 좋은 곳 또는 큰 영향력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학생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질투하지 않습니다. 남이 얻는 이득·존경·존중·공경·예경·공양을 시기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으며 질투심을 품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그 업을 이처럼 행하고 받아들였으므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 세계에 태어납니다.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영향력이 큽니다.

Idha pana, māṇava, ekacco itthī vā puriso vā anissāmanako hoti; paralābhasakkāragarukāramānanavandanapūjanāsu na issati na upadussati na issaṁ bandhati. So tena kammena evaṁ samattena evaṁ samādinnen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No c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sace manussattaṁ āgacchati yattha yattha paccājāyati mahesakkh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반대편은 남이 얻는 이득·존경·존중·공경·예경·공양의 여섯 대상을 두고 시기하지 않음·원망하지 않음·질투심을 품지 않음이라는 세 부정을 말합니다. 결과는 먼저 좋은 곳인 천상 세계의 태어남이고, 그곳이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오는 조건에서는 영향력이 큼입니다. 조건과 두 결과를 각각 보존했습니다. 이 가르침은 타인의 좋은 일을 대하는 내 반응을 돌아보게 하지만, 현실의 권력이나 명성을 선업의 증명으로 취급하거나 권력 불균형과 특권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묵상

남이 존중받는 모습을 볼 때 시기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는다는 세 부정은 어떻게 들리나요? 완벽하게 기뻐해야 한다고 몰아붙이지 않고, 비교가 조금 느슨해지는 순간이 있는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19 큰 영향력으로 이끄는 질투하지 않음의 길을 반복하다 1구절

큰 영향력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이름 붙이고 질투하지 않음과 남의 여섯 대상을 향한 세 부정을 다시 온전히 말합니다.

학생이여, 영향력이 커지게 하는 길은 이것입니다. 곧 질투하지 않으며, 남이 얻는 이득·존경·존중·공경·예경·공양을 시기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으며 질투심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Mahesakkhasaṁvattanikā esā, māṇava, paṭipadā yadidaṁ—anissāmanako hoti; paralābhasakkāragarukāramānanavandanapūjanāsu na issati na upadussati na issaṁ bandha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두 갈래 결과 뒤 세존께서는 “학생이여, 영향력이 커지게 하는 길은 이것”이라고 결론을 붙입니다. 이어 질투하지 않음과 남이 얻는 이득·존경·존중·공경·예경·공양의 여섯 대상을 시기하지 않음·원망하지 않음·질투심을 품지 않음이라는 세 부정을 모두 반복합니다. 빠알리와 한국어의 대상·부정 수를 그대로 맞췄습니다. 이 결론은 영향력이 큰 사람을 도덕적으로 높이라는 뜻이 아니라, 남의 이득과 존중을 대하는 비질투의 행위를 앞의 반대 길과 정확히 짝짓습니다.

묵상

여섯 대상을 두고 세 부정이 다시 반복될 때 어떤 태도가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지나요? 큰 영향력을 보상처럼 바라기보다, 비교가 잠시 멈추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작은 순간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20 보시하지 않음이 낳는 두 갈래 결과 1구절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열 가지 생활 물품을 주지 않는 행위가 나쁜 곳 또는 인간으로 돌아올 때 적은 재산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학생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음식·마실 것·옷·탈것, 꽃·향·바르는 향료, 침상·거처·등불을 주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그 업을 이처럼 행하고 받아들였으므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나쁜 곳·나쁜 길·파멸처·지옥에 태어납니다.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재산이 적습니다.

Idha, māṇava, ekacco itthī vā puriso vā na dātā hoti samaṇassa vā brāhmaṇassa vā annaṁ pānaṁ vatthaṁ yānaṁ mālāgandhavilepanaṁ seyyāvasathapadīpeyyaṁ. So tena kammena evaṁ samattena evaṁ samādinnen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ati. No c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ati, sace manussattaṁ āgacchati yattha yattha paccājāyati appabhog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다섯 번째 분석은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주지 않는 물품을 음식·마실 것·옷·탈것, 꽃·향·바르는 향료, 침상·거처·등불의 열 가지로 열거합니다. 결과는 먼저 나쁜 곳·나쁜 길·파멸처·지옥에 태어남입니다. 그곳이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오는 조건에서는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재산이 적다고 합니다. 두 갈래를 따로 보존했습니다. 오늘 가난한 사람의 과거를 추정하거나 빈곤을 개인의 도덕적 실패로 돌리고, 사회적·역사적 조건과 공동 책임을 지우는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묵상

음식부터 등불까지 열 가지 생활 물품을 구체적으로 든 점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지금 나눔이 가능한지 또는 지금은 어려운지를 부담 없이 살펴볼 수 있을까요?

21 적은 재산으로 이끄는 보시하지 않음의 길을 반복하다 1구절

적은 재산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이름 붙이고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주지 않은 열 가지 생활 물품을 다시 온전히 말합니다.

학생이여, 재산이 적어지게 하는 길은 이것입니다. 곧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음식·마실 것·옷·탈것, 꽃·향·바르는 향료, 침상·거처·등불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Appabhogasaṁvattanikā esā, māṇava, paṭipadā yadidaṁ—na dātā hoti samaṇassa vā brāhmaṇassa vā annaṁ pānaṁ vatthaṁ yānaṁ mālāgandhavilepanaṁ seyyāvasathapadīpeyyaṁ.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두 결과 뒤 세존께서는 “학생이여, 재산이 적어지게 하는 길은 이것”이라고 결론을 붙입니다. 이어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주지 않는 음식·마실 것·옷·탈것, 꽃·향·바르는 향료, 침상·거처·등불의 열 항목을 다시 같은 순서로 말합니다. 빠알리와 한국어에서 생략 없이 수량을 맞췄습니다. 반복의 초점은 재산이 적은 사람을 책망하는 데 있지 않고, 구체적인 생활 물품을 나누지 않는 행위가 앞 결과 설명에서 어떤 원인으로 제시되었는지 분명히 닫는 데 있습니다.

묵상

열 가지 물품이 결론에서 다시 반복될 때 나눔이라는 말이 더 구체적으로 느껴지나요? 빈곤의 책임을 누구에게 돌리지 않고, 내 형편에서 가능한 것과 지금 어려운 것을 정직하게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22 보시함이 낳는 두 갈래 결과 1구절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열 가지 생활 물품을 주는 행위가 좋은 곳 또는 인간으로 돌아올 때 많은 재산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학생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음식·마실 것·옷·탈것, 꽃·향·바르는 향료, 침상·거처·등불을 줍니다. 그 사람은 그 업을 이처럼 행하고 받아들였으므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 세계에 태어납니다.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재산이 많습니다.

Idha pana, māṇava, ekacco itthī vā puriso vā dātā hoti samaṇassa vā brāhmaṇassa vā annaṁ pānaṁ vatthaṁ yānaṁ mālāgandhavilepanaṁ seyyāvasathapadīpeyyaṁ. So tena kammena evaṁ samattena evaṁ samādinnen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No c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sace manussattaṁ āgacchati yattha yattha paccājāyati mahābhog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반대편은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음식·마실 것·옷·탈것, 꽃·향·바르는 향료, 침상·거처·등불의 열 가지를 주는 행위입니다. 결과는 먼저 좋은 곳인 천상 세계에 태어남입니다. 그곳이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오는 조건에서는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재산이 많다고 합니다. 두 결과의 조건을 따로 보존했습니다. 보시는 결과를 사기 위한 거래라기보다 경 안에서 움켜쥐지 않고 나누는 행위로 제시됩니다. 현실의 부유함을 선함의 증거로 삼거나 경제적 불평등을 업 하나로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묵상

열 가지 가운데 지금 나눔이라는 말과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있나요? 큰 보상을 기대하거나 형편을 무시하지 않고, 가능하다면 부담 없는 작은 나눔 하나를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23 많은 재산으로 이끄는 보시의 길을 반복하다 1구절

많은 재산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이름 붙이고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주는 열 가지 생활 물품을 다시 온전히 말합니다.

학생이여, 재산이 많아지게 하는 길은 이것입니다. 곧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음식·마실 것·옷·탈것, 꽃·향·바르는 향료, 침상·거처·등불을 주는 것입니다.

Mahābhogasaṁvattanikā esā, māṇava, paṭipadā yadidaṁ—dātā hoti samaṇassa vā brāhmaṇassa vā annaṁ pānaṁ vatthaṁ yānaṁ mālāgandhavilepanaṁ seyyāvasathapadīpeyyaṁ.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두 결과 뒤 세존께서는 “학생이여, 재산이 많아지게 하는 길은 이것”이라고 결론을 붙입니다. 이어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음식·마실 것·옷·탈것, 꽃·향·바르는 향료, 침상·거처·등불을 주는 열 항목을 처음과 같은 순서로 반복합니다. 빠알리와 한국어의 목록을 줄이지 않았습니다. 이 결론은 부를 선함의 증표로 만들기보다, 구체적인 나눔 행위를 앞의 주지 않는 길과 대칭으로 닫습니다. 현재 부유함의 원인을 단정하거나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묵상

보시의 열 항목이 다시 온전히 이어질 때 어떤 물품이 가장 일상적으로 느껴지나요? 재산의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지금 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또는 받는 도움이 필요한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24 완고함과 거만함이 여덟 예를 갖추다 1구절

완고하고 거만한 사람이 절·맞이·자리·길·존중·공경·존경·공양을 받아야 할 이를 그렇게 대하지 않는 여덟 행동을 열거합니다.

학생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완고하고 거만합니다. 절해야 할 이에게 절하지 않고, 일어나 맞이해야 할 이를 맞이하지 않으며, 자리를 드려야 할 이에게 자리를 드리지 않고, 길을 비켜야 할 이에게 길을 비키지 않으며, 존중·공경·존경·공양해야 할 이를 그렇게 대하지 않습니다.

Idha, māṇava, ekacco itthī vā puriso vā thaddho hoti atimānī—abhivādetabbaṁ na abhivādeti, paccuṭṭhātabbaṁ na paccuṭṭheti, āsanārahassa na āsanaṁ deti, maggārahassa na maggaṁ deti, sakkātabbaṁ na sakkaroti, garukātabbaṁ na garukaroti, mānetabbaṁ na māneti, pūjetabbaṁ na pūje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여섯 번째 분석의 원인 부분입니다. 완고함과 거만함을 먼저 말한 뒤, 마땅한 상대에게 하지 않는 행동을 여덟 갈래로 풉니다. 절하지 않음, 일어나 맞지 않음, 자리를 드리지 않음, 길을 비키지 않음, 존중하지 않음, 공경하지 않음, 존경하지 않음, 공양하지 않음입니다. 각 목적어와 부정 서술어가 짝을 이루므로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로 뭉뚱그리지 않았습니다. 이 목록은 사람의 고정된 신분을 맹목적으로 높이라는 현대 명령이 아니라, 경 안에서 거만함이 관계에 드러나는 방식을 분석합니다.

묵상

여덟 행동 가운데 거만함이 가장 쉽게 드러난다고 느끼는 장면이 있나요? 누구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정하지 않고, 내가 상대를 사람으로 존중하지 못했던 작은 몸짓이 있었는지만 가볍게 살펴볼까요?

25 존중하지 않음과 낮은 가문의 조건쌍 1구절

앞의 완고함과 여덟 부정을 되짚어 나쁜 곳 또는 인간으로 돌아올 때 낮은 가문에서 태어나는 결과를 설명합니다.

그 사람은 그 업을 이처럼 행하고 받아들였으므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나쁜 곳·나쁜 길·파멸처·지옥에 태어납니다.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낮은 가문에서 태어납니다. 학생이여, 낮은 가문에서 태어나게 하는 길은 이것입니다. 곧 완고하고 거만하며, 절·맞이·자리·길·존중·공경·존경·공양을 받아야 할 이에게 각각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So tena kammena evaṁ samattena evaṁ samādinnen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ati. No c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ati, sace manussattaṁ āgacchati yattha yattha paccājāyati nīcakulīno hoti. Nīcakulīnasaṁvattanikā esā, māṇava, paṭipadā yadidaṁ—thaddho hoti atimānī; abhivādetabbaṁ na abhivādeti, paccuṭṭhātabbaṁ na paccuṭṭheti, āsanārahassa na āsanaṁ deti, maggārahassa na maggaṁ deti, sakkātabbaṁ na sakkaroti, garukātabbaṁ na garukaroti, mānetabbaṁ na māneti, pūjetabbaṁ na pūje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앞서 밝힌 원인에 결과와 결론이 이어집니다. 그 업의 결과는 먼저 나쁜 곳·나쁜 길·파멸처·지옥의 태어남이며, 그곳이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오는 조건에서는 낮은 가문의 태어남입니다. 마지막에는 완고함과 거만함, 절·맞이·자리·길·존중·공경·존경·공양의 여덟 부정을 다시 모두 적어 원인 경계를 보존했습니다. “가문”은 경에 나오는 고대 사회적 결과 항목입니다. 오늘의 출생 배경이나 계층을 개인의 과거 잘못으로 돌리거나 차별을 정당화하는 기준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묵상

결과보다 앞에서 반복된 여덟 관계 행동 가운데 지금 살펴보고 싶은 하나가 있나요? 사람의 출생 배경을 평가하지 않고, 내가 타인을 대할 때 존중을 놓친 순간만 부담 없이 돌아볼 수 있을까요?

26 완고하지 않음과 여덟 존중의 행동 1구절

완고하거나 거만하지 않은 사람이 절·맞이·자리·길·존중·공경·존경·공양을 받을 이를 각각 그렇게 대합니다.

그러나 학생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완고하지 않고 거만하지 않습니다. 절해야 할 이에게 절하고, 일어나 맞이해야 할 이를 맞이하며, 자리를 드려야 할 이에게 자리를 드리고, 길을 비켜야 할 이에게 길을 비키며, 존중·공경·존경·공양해야 할 이를 각각 그렇게 대합니다.

Idha pana, māṇava, ekacco itthī vā puriso vā atthaddho hoti anatimānī; abhivādetabbaṁ abhivādeti, paccuṭṭhātabbaṁ paccuṭṭheti, āsanārahassa āsanaṁ deti, maggārahassa maggaṁ deti, sakkātabbaṁ sakkaroti, garukātabbaṁ garukaroti, mānetabbaṁ māneti, pūjetabbaṁ pūje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여섯 번째 조건쌍의 반대 원인입니다. 완고하지 않음과 거만하지 않음을 먼저 말하고, 마땅한 상대에게 절함·일어나 맞음·자리를 드림·길을 비킴·존중함·공경함·존경함·공양함의 여덟 행동을 같은 순서로 긍정합니다. 앞 대목의 여덟 부정과 정확한 대칭입니다. 행위의 초점은 자신의 우월함을 내세우지 않고 관계 속에서 합당한 존중을 표현하는 데 있습니다. 현대 적용에서는 위계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이나 부당한 요구 수용으로 넓히지 않고, 타인의 존엄을 대하는 태도로 한정합니다.

묵상

여덟 긍정 가운데 오늘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는 존중의 몸짓이 하나 있나요? 부당한 위계에 따르라는 뜻으로 읽지 않고, 상대의 존엄을 인정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가볍게 살펴볼 수 있을까요?

27 존중함과 높은 가문의 조건쌍 1구절

앞의 겸손과 여덟 긍정을 되짚어 좋은 곳 또는 인간으로 돌아올 때 높은 가문에서 태어나는 결과를 설명합니다.

그 사람은 그 업을 이처럼 행하고 받아들였으므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 세계에 태어납니다.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높은 가문에서 태어납니다. 학생이여, 높은 가문에서 태어나게 하는 길은 이것입니다. 곧 완고하지 않고 거만하지 않으며, 절·맞이·자리·길·존중·공경·존경·공양을 받아야 할 이에게 각각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So tena kammena evaṁ samattena evaṁ samādinnen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No c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sace manussattaṁ āgacchati yattha yattha paccājāyati uccākulīno hoti. Uccākulīnasaṁvattanikā esā, māṇava, paṭipadā yadidaṁ—atthaddho hoti anatimānī; abhivādetabbaṁ abhivādeti, paccuṭṭhātabbaṁ paccuṭṭheti, āsanārahassa āsanaṁ deti, maggārahassa maggaṁ deti, sakkātabbaṁ sakkaroti, garukātabbaṁ garukaroti, mānetabbaṁ māneti, pūjetabbaṁ pūje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겸손과 여덟 존중 행동 뒤에 결과가 이어집니다. 먼저 좋은 곳인 천상 세계에 태어나고, 그곳이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오는 조건에서는 높은 가문에서 태어난다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완고하지 않음과 거만하지 않음, 절·맞이·자리·길·존중·공경·존경·공양의 여덟 긍정을 다시 모두 적어 결과가 어떤 원인과 연결되는지 닫습니다. 경의 고대 가문 대조를 오늘 사람의 가치 등급으로 바꾸지 않습니다. 출생 배경이 높은 사람을 선하다고 추정하거나 낮은 배경의 사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묵상

높은 가문이라는 결과보다 그 앞에 반복된 겸손과 여덟 존중 행동 중 무엇이 더 눈에 들어오나요? 출생이나 지위를 도덕 점수로 바꾸지 않고, 지금 가능한 존중 하나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28 이롭고 해로운 것을 묻지 않다 1구절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이로움·허물·가까이할 것·오래가는 해로움과 행복의 네 질문쌍을 묻지 않는 행위를 설명합니다.

학생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다가가 다음을 묻지 않습니다. ‘존자여,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해롭습니까? 무엇이 허물 있고 무엇이 허물없습니까? 무엇을 가까이해야 하고 무엇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까? 무엇을 행하면 오랫동안 나에게 해로움과 괴로움이 되고, 무엇을 행하면 오랫동안 이로움과 행복이 됩니까?’

Idha, māṇava, ekacco itthī vā puriso vā samaṇaṁ vā brāhmaṇaṁ vā upasaṅkamitvā na paripucchitā hoti: ‘kiṁ, bhante, kusalaṁ, kiṁ akusalaṁ; kiṁ sāvajjaṁ, kiṁ anavajjaṁ; kiṁ sevitabbaṁ, kiṁ na sevitabbaṁ; kiṁ me karīyamānaṁ dīgharattaṁ ahitāya dukkhāya hoti, kiṁ vā pana me karīyamānaṁ dīgharattaṁ hitāya sukhāya hotī’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일곱 번째 분석은 지혜와 연결되는 질문 행위를 다룹니다.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다가가지 않는다고만 하지 않고, 다가가 네 질문쌍을 묻지 않는다고 합니다. 무엇이 이롭고 해로운지, 허물 있고 허물없는지, 가까이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을 행하면 오래 해로움·괴로움 또는 이로움·행복이 되는지를 순서대로 묻습니다. 각 질문의 긍정과 부정, 마지막의 두 결과가 모두 있어야 목록이 완성됩니다. 지혜 부족을 타고난 결함으로 낙인찍기보다 배움을 청하지 않는 행위와 연결해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네 질문쌍 중 지금 실제로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나요? 정답을 이미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무엇이 이롭고 해로운가”라고 물을 여지가 있는지만 살펴볼까요?

29 묻지 않은 업의 두 갈래 결과 1구절

묻지 않는 행위의 결과로 나쁜 곳에 태어나거나, 그곳이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오면 지혜가 부족하다고 설명합니다.

그 사람은 그 업을 이처럼 행하고 받아들였으므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나쁜 곳·나쁜 길·파멸처·지옥에 태어납니다.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지혜가 부족합니다.

So tena kammena evaṁ samattena evaṁ samādinnen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ati. No c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ati, sace manussattaṁ āgacchati yattha yattha paccājāyati duppaññ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앞의 네 질문쌍을 묻지 않는 행위에 두 갈래 결과가 이어집니다. 첫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나쁜 곳·나쁜 길·파멸처·지옥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라는 부정과 “인간으로 돌아온다면”이라는 조건 아래,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지혜가 부족하다는 결과입니다. 두 결과를 동시에 일어나는 일처럼 합치지 않고 조건 분기를 보존했습니다. 이 문장은 현재 학습 기회가 적거나 지혜가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탓하는 근거가 아니며, 배움을 가로막는 사회적 조건도 지우지 않습니다.

묵상

두 결과 사이에 “그곳이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온다면”이라는 조건이 놓인 점은 어떻게 들리나요? 타인의 지혜를 평가하지 않고, 내가 질문을 미뤘던 한 순간만 판단 없이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30 지혜 부족으로 이끄는 네 질문쌍의 반복 1구절

지혜가 부족하게 하는 길이라는 결론에서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묻지 않은 네 질문쌍을 같은 순서로 다시 온전히 열거합니다.

학생이여, 지혜가 부족하게 하는 길은 이것입니다. 곧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다가가 다음을 묻지 않는 것입니다. ‘존자여,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해롭습니까? 무엇이 허물 있고 무엇이 허물없습니까? 무엇을 가까이해야 하고 무엇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까? 무엇을 행하면 오랫동안 나에게 해로움과 괴로움이 되고, 무엇을 행하면 오랫동안 이로움과 행복이 됩니까?’

Duppaññasaṁvattanikā esā, māṇava, paṭipadā yadidaṁ—samaṇaṁ vā brāhmaṇaṁ vā upasaṅkamitvā na paripucchitā hoti: ‘kiṁ, bhante, kusalaṁ, kiṁ akusalaṁ; kiṁ sāvajjaṁ, kiṁ anavajjaṁ; kiṁ sevitabbaṁ, kiṁ na sevitabbaṁ; kiṁ me karīyamānaṁ dīgharattaṁ ahitāya dukkhāya hoti, kiṁ vā pana me karīyamānaṁ dīgharattaṁ hitāya sukhāya hotī’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결과 뒤 세존께서는 “지혜가 부족하게 하는 길은 이것”이라고 이름 붙이고,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다가가 묻지 않은 내용을 다시 온전히 반복합니다. 이로움/해로움, 허물 있음/없음, 가까이할 것/하지 않을 것, 오래가는 해로움·괴로움/이로움·행복의 네 쌍이며 순서도 처음과 같습니다. 반복을 줄이지 않은 까닭은 지혜와 연결되는 것이 막연한 호기심이 아니라 행위의 질과 긴 결과를 분별하려는 구체적 질문임을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을 비난하기보다 묻고 들을 통로의 중요성을 보여 줍니다.

묵상

같은 네 질문을 다시 온전히 들려주는 반복에서 무엇이 강조된다고 느끼나요? 지금 답을 재촉하지 않고, 오래 이로움과 행복이 되는 일을 누구에게 물어볼 수 있을지만 천천히 생각해 볼까요?

31 이롭고 해로운 것을 묻다 1구절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다가가 이로움·허물·가까이할 것·오래가는 해로움과 행복의 네 질문쌍을 묻는 행위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학생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다가가 다음을 묻습니다. ‘존자여,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해롭습니까? 무엇이 허물 있고 무엇이 허물없습니까? 무엇을 가까이해야 하고 무엇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까? 무엇을 행하면 오랫동안 나에게 해로움과 괴로움이 되고, 무엇을 행하면 오랫동안 이로움과 행복이 됩니까?’

Idha pana, māṇava, ekacco itthī vā puriso vā samaṇaṁ vā brāhmaṇaṁ vā upasaṅkamitvā paripucchitā hoti: ‘kiṁ, bhante, kusalaṁ, kiṁ akusalaṁ; kiṁ sāvajjaṁ, kiṁ anavajjaṁ; kiṁ sevitabbaṁ, kiṁ na sevitabbaṁ; kiṁ me karīyamānaṁ dīgharattaṁ ahitāya dukkhāya hoti, kiṁ vā pana me karīyamānaṁ dīgharattaṁ hitāya sukhāya hotī’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마지막 조건쌍의 반대편은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다가가 실제로 묻는 행위입니다. 질문은 앞 대목과 정확히 같은 네 쌍입니다. 이롭고 해로운 것, 허물 있고 허물없는 것, 가까이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오래 해로움·괴로움이 되는 행위와 이로움·행복이 되는 행위입니다. 긍정형에서는 이 질문들이 배움을 향한 실천으로 드러납니다. 아무 권위자에게 맹목적으로 따르라는 뜻이 아니라, 행위와 결과를 분별하기 위해 적절한 가르침을 청하고 검토하는 태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묵상

네 질문쌍 가운데 믿을 만한 사람과 나누어 보고 싶은 질문이 있나요? 답을 그대로 믿거나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정하지 않고, 묻고 들은 뒤 차분히 살피는 첫 단계만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32 묻는 업의 두 갈래 결과 1구절

질문하는 행위의 결과로 좋은 곳에 태어나거나, 그곳이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오면 지혜가 크다고 설명합니다.

그 사람은 그 업을 이처럼 행하고 받아들였으므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 세계에 태어납니다.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지혜가 큽니다.

So tena kammena evaṁ samattena evaṁ samādinnena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No c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sace manussattaṁ āgacchati yattha yattha paccājāyati mahāpaññ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네 질문쌍을 묻는 행위에도 두 갈래 결과가 이어집니다. 첫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 세계에 태어남입니다. 둘째는 그곳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오는 조건 아래,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지혜가 크다는 결과입니다. 앞서 나온 묻지 않음의 나쁜 결과와 대칭이며, 조건문을 지워 두 결과를 한꺼번에 보장하는 말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지혜나 교육 수준을 과거 행위의 점수로 사용하지 않고, 지금 묻고 배우는 행위가 분별을 기르는 방향이라는 경 안의 연결에 초점을 둡니다.

묵상

묻는 행위와 지혜의 연결에서 지금 실감 나는 부분이 있나요? 이미 아는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부담을 잠시 내려놓고, 작은 질문 하나를 말해도 괜찮은 사람이나 자리만 떠올려 볼까요?

33 큰 지혜로 이끄는 네 질문쌍의 반복 1구절

지혜가 커지게 하는 길이라는 결론에서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묻는 네 질문쌍을 같은 순서로 다시 온전히 열거합니다.

학생이여, 지혜가 커지게 하는 길은 이것입니다. 곧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다가가 다음을 묻는 것입니다. ‘존자여,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해롭습니까? 무엇이 허물 있고 무엇이 허물없습니까? 무엇을 가까이해야 하고 무엇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까? 무엇을 행하면 오랫동안 나에게 해로움과 괴로움이 되고, 무엇을 행하면 오랫동안 이로움과 행복이 됩니까?’

Mahāpaññasaṁvattanikā esā, māṇava, paṭipadā yadidaṁ—samaṇaṁ vā brāhmaṇaṁ vā upasaṅkamitvā paripucchitā hoti: ‘kiṁ, bhante, kusalaṁ, kiṁ akusalaṁ; kiṁ sāvajjaṁ, kiṁ anavajjaṁ; kiṁ sevitabbaṁ, kiṁ na sevitabbaṁ; kiṁ me karīyamānaṁ dīgharattaṁ ahitāya dukkhāya hoti, kiṁ vā pana me karīyamānaṁ dīgharattaṁ hitāya sukhāya hotī’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세존께서는 “지혜가 커지게 하는 길은 이것”이라고 결론짓고,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다가가 묻는 네 질문쌍을 다시 그대로 열거합니다. 이로움/해로움, 허물 있음/없음, 가까이할 것/하지 않을 것, 오래가는 해로움·괴로움/이로움·행복의 순서입니다. 앞의 부정형과 단어 하나하나 대칭을 이루되 “묻지 않음”이 “묻음”으로 바뀝니다. 지혜를 정보의 양이나 타고난 우월성으로 설명하지 않고, 선악과 긴 결과를 구체적으로 질문하는 반복 행위와 연결하는 것이 이 마지막 분석의 핵심입니다.

묵상

큰 지혜로 이끄는 길이 네 질문을 반복해서 묻는 일로 제시되는 점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완벽한 질문을 만들려 하지 않고, 지금 삶의 이로움과 해로움에 관한 짧은 물음 하나를 품어 볼 수 있을까요?

34 수명·건강·용모의 여섯 결과를 총괄하다 1구절

수명·건강·용모의 첫 세 대조를 각각 불리한 길과 유리한 길, 그에 대응하는 여섯 결과로 다시 짝지어 요약합니다.

그러므로 학생이여, 수명이 짧아지게 하는 길은 짧은 수명으로 이끌고, 수명이 길어지게 하는 길은 긴 수명으로 이끕니다. 병이 많아지게 하는 길은 많은 병으로 이끌고, 병이 적어지게 하는 길은 적은 병으로 이끕니다. 용모가 좋지 않게 하는 길은 좋지 않은 용모로 이끌고, 용모가 아름답게 하는 길은 아름다운 용모로 이끕니다.

Iti kho, māṇava, appāyukasaṁvattanikā paṭipadā appāyukattaṁ upaneti, dīghāyukasaṁvattanikā paṭipadā dīghāyukattaṁ upaneti; bavhābādhasaṁvattanikā paṭipadā bavhābādhattaṁ upaneti, appābādhasaṁvattanikā paṭipadā appābādhattaṁ upaneti; dubbaṇṇasaṁvattanikā paṭipadā dubbaṇṇattaṁ upaneti, pāsādikasaṁvattanikā paṭipadā pāsādikattaṁ upane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상세한 열네 행동 설명을 마친 뒤 세존께서는 처음 수바가 물은 일곱 대조를 같은 순서로 총괄합니다. 이 대목은 그중 수명·건강·용모의 첫 세 쌍입니다. 짧고 긴 수명, 많고 적은 병, 좋지 않고 아름다운 용모마다 불리한 길과 유리한 길을 해당 결과와 짝지으므로 모두 세 쌍·여섯 결과입니다. 사후의 두 갈래는 다시 펼치지 않고 “그렇게 되게 하는 길이 그렇게 이끈다”는 대응만 남깁니다. 현실의 수명·질병·외모를 개인의 과거 탓으로 재단하거나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표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묵상

첫 세 대조가 질문과 같은 순서로 돌아오는 구조는 어떻게 느껴지나요? 여섯 결과를 사람에게 붙이는 대신, 그 앞에서 반복된 살생을 삼감과 해치지 않음 중 한 행위만 떠올려 볼까요?

35 영향력·재산·가문·지혜의 여덟 결과를 총괄하다 1구절

영향력·재산·가문·지혜의 나머지 네 대조를 각각 불리한 길과 유리한 길, 그에 대응하는 여덟 결과로 요약합니다.

영향력이 작아지게 하는 길은 작은 영향력으로 이끌고, 영향력이 커지게 하는 길은 큰 영향력으로 이끕니다. 재산이 적어지게 하는 길은 적은 재산으로 이끌고, 재산이 많아지게 하는 길은 많은 재산으로 이끕니다. 낮은 가문에서 태어나게 하는 길은 낮은 가문으로 이끌고, 높은 가문에서 태어나게 하는 길은 높은 가문으로 이끕니다. 지혜가 부족하게 하는 길은 부족한 지혜로 이끌고, 지혜가 커지게 하는 길은 큰 지혜로 이끕니다.

appesakkhasaṁvattanikā paṭipadā appesakkhattaṁ upaneti, mahesakkhasaṁvattanikā paṭipadā mahesakkhattaṁ upaneti; appabhogasaṁvattanikā paṭipadā appabhogattaṁ upaneti, mahābhogasaṁvattanikā paṭipadā mahābhogattaṁ upaneti; nīcakulīnasaṁvattanikā paṭipadā nīcakulīnattaṁ upaneti, uccākulīnasaṁvattanikā paṭipadā uccākulīnattaṁ upaneti; duppaññasaṁvattanikā paṭipadā duppaññattaṁ upaneti, mahāpaññasaṁvattanikā paṭipadā mahāpaññattaṁ upane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총괄의 뒷부분은 영향력·재산·가문·지혜의 네 쌍을 처음 질문의 순서대로 잇습니다. 작고 큰 영향력, 적고 많은 재산, 낮고 높은 가문, 부족하고 큰 지혜마다 두 길을 두 결과와 각각 짝지으므로 네 쌍·여덟 결과입니다. 앞서 총괄한 세 쌍과 합하면 경 전체의 일곱 쌍·열네 결과가 완성됩니다. 이 요약은 질투·보시·존중·질문이라는 앞의 행위 분석을 되짚는 경 내부의 결론입니다. 오늘의 권력·빈부·출생·교육 격차를 개인의 업 하나로 설명하거나 구조적 조건과 공동 책임을 지우는 근거가 아닙니다.

묵상

나머지 네 대조가 길과 결과로 다시 짝지어질 때 어떤 행위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사람의 지위나 재산을 도덕 점수로 바꾸지 않고, 나눔·존중·질문 중 지금 살필 한 가지만 골라 볼까요?

36 업의 다섯 관계와 결론을 다시 밝히다 1구절

상세 설명을 마치며 존재와 업의 다섯 관계, 업이 열등함과 뛰어남을 가른다는 처음의 짧은 답을 그대로 반복합니다.

학생이여, 존재들은 업의 소유자이고 업의 상속자이며, 업에서 태어나고 업을 친족으로 삼고 업을 의지처로 삼습니다. 업이 존재들을 갈라놓습니다. 곧 열등함과 뛰어남으로 갈라놓습니다.”

Kammassakā, māṇava, sattā kammadāyādā kammayonī kammabandhū kammappaṭisaraṇā. Kammaṁ satte vibhajati yadidaṁ—hīnappaṇītatāyā”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일곱 조건쌍의 총괄 뒤, 세존은 처음의 짧은 답을 다시 온전히 반복합니다. 존재들은 업의 소유자·상속자이며, 업에서 태어나고 업을 친족과 의지처로 삼는다는 다섯 관계가 같은 순서로 나오고, 업이 존재들을 열등함과 뛰어남으로 가른다는 결론이 뒤따릅니다. 처음에는 수바가 상세한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 이 문장은 열네 행동–결과 설명을 거친 요약이 됩니다. 업을 고정 운명이나 타인 비난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행위가 결과와 관계된다는 책임의 언어로 한정해 읽어야 합니다.

묵상

상세한 설명 뒤 같은 짧은 답을 다시 들을 때 처음과 다르게 느껴지는 말이 있나요? 타인의 처지를 판정하지 않고, “업의 소유자”라는 표현을 오늘 내 한 선택에만 조심스럽게 비추어 볼 수 있을까요?

37 수바가 두 번 훌륭하다고 찬탄하다 1구절

세존의 상세한 설명이 끝나자 수바가 다시 화자가 되어 고따마 존자께 두 번 같은 말로 훌륭하다고 찬탄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또데야의 아들인 학생 수바가 세존께 말씀드렸습니다.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여!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여!

Evaṁ vutte, subho māṇavo todeyya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abhikkantaṁ, bho gotama, abhikkantaṁ, bho gotama.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세존께서 처음의 짧은 답을 반복해 설명을 닫자, 서술자는 또데야의 아들인 학생 수바가 세존께 말한다고 화자를 바꿉니다. 수바는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여”를 같은 호격과 함께 두 번 온전히 말합니다. 이 반복은 바로 앞의 일곱 조건쌍과 총괄을 들은 질문자의 첫 반응이며, 이어지는 네 비유와 삼보 귀의의 문을 엽니다. 세존의 결론이나 서술자의 평가를 수바의 말과 섞지 않았습니다. 수바는 여기서 타인의 삶을 심판하지 않고 자신이 들은 가르침을 찬탄합니다.

묵상

수바가 같은 찬탄을 두 번 반복하는 장면은 어떻게 들리나요? 그 강도에 맞추거나 같은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도 괜찮아요. 설명을 들은 뒤 마음에 남은 반응 하나만 알아볼 수 있을까요?

38 네 비유로 찬탄하고 삼보에 귀의하다 1구절

수바가 네 비유로 가르침이 밝혀졌음을 찬탄하고 세존·가르침·비구 승가에 귀의하여 평생 재가 신자로 기억해 달라고 청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마치 엎어진 것을 바로 세우고, 가려진 것을 드러내고,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리키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눈 있는 이가 형상을 보게 하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방법으로 가르침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고따마 존자와 가르침과 수행자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한 재가 신자로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Seyyathāpi, bho gotama, nikkujjitaṁ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ṁ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ṁ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ṁ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ṁ bhotā gotam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Esāhaṁ bhavantaṁ gotamaṁ saraṇaṁ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Upāsakaṁ maṁ bhavaṁ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ṁ saraṇaṁ gatan”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

배경

두 번의 찬탄에 이어 수바는 네 비유로 가르침이 밝혀졌다고 말합니다. 엎어진 것을 바로 세움, 가려진 것을 드러냄,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리킴, 어둠에 등불을 들어 눈 있는 이가 형상을 보게 함의 순서입니다. 이어 귀의 대상은 고따마 존자·가르침·수행자 승가의 셋이며, 시간 범위는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입니다. 수바는 자신을 재가 신자로 기억해 달라고 청합니다. 이는 타인을 과보로 판정하겠다는 결론이 아니라 질문자 자신이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응답으로 경을 맺습니다.

묵상

엎어진 것을 세우는 일부터 어둠 속 등불까지 네 비유 중 지금 가장 선명한 장면은 무엇인가요? 수바의 귀의를 따라 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도 괜찮아요. 한 비유가 주는 느낌만 잠시 머물러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