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여, 지혜가 부족하게 하는 길은 이것입니다. 곧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다가가 다음을 묻지 않는 것입니다. ‘존자여,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해롭습니까? 무엇이 허물 있고 무엇이 허물없습니까? 무엇을 가까이해야 하고 무엇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까? 무엇을 행하면 오랫동안 나에게 해로움과 괴로움이 되고, 무엇을 행하면 오랫동안 이로움과 행복이 됩니까?’
Duppaññasaṁvattanikā esā, māṇava, paṭipadā yadidaṁ—samaṇaṁ vā brāhmaṇaṁ vā upasaṅkamitvā na paripucchitā hoti: ‘kiṁ, bhante, kusalaṁ, kiṁ akusalaṁ; kiṁ sāvajjaṁ, kiṁ anavajjaṁ; kiṁ sevitabbaṁ, kiṁ na sevitabbaṁ; kiṁ me karīyamānaṁ dīgharattaṁ ahitāya dukkhāya hoti, kiṁ vā pana me karīyamānaṁ dīgharattaṁ hitāya sukhāya hotī’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배경
결과 뒤 세존께서는 “지혜가 부족하게 하는 길은 이것”이라고 이름 붙이고,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다가가 묻지 않은 내용을 다시 온전히 반복합니다. 이로움/해로움, 허물 있음/없음, 가까이할 것/하지 않을 것, 오래가는 해로움·괴로움/이로움·행복의 네 쌍이며 순서도 처음과 같습니다. 반복을 줄이지 않은 까닭은 지혜와 연결되는 것이 막연한 호기심이 아니라 행위의 질과 긴 결과를 분별하려는 구체적 질문임을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을 비난하기보다 묻고 들을 통로의 중요성을 보여 줍니다.
묵상
같은 네 질문을 다시 온전히 들려주는 반복에서 무엇이 강조된다고 느끼나요? 지금 답을 재촉하지 않고, 오래 이로움과 행복이 되는 일을 누구에게 물어볼 수 있을지만 천천히 생각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