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학생이여, 수명이 짧아지게 하는 길은 짧은 수명으로 이끌고, 수명이 길어지게 하는 길은 긴 수명으로 이끕니다. 병이 많아지게 하는 길은 많은 병으로 이끌고, 병이 적어지게 하는 길은 적은 병으로 이끕니다. 용모가 좋지 않게 하는 길은 좋지 않은 용모로 이끌고, 용모가 아름답게 하는 길은 아름다운 용모로 이끕니다.
Iti kho, māṇava, appāyukasaṁvattanikā paṭipadā appāyukattaṁ upaneti, dīghāyukasaṁvattanikā paṭipadā dīghāyukattaṁ upaneti; bavhābādhasaṁvattanikā paṭipadā bavhābādhattaṁ upaneti, appābādhasaṁvattanikā paṭipadā appābādhattaṁ upaneti; dubbaṇṇasaṁvattanikā paṭipadā dubbaṇṇattaṁ upaneti, pāsādikasaṁvattanikā paṭipadā pāsādikattaṁ upaneti;
맛지마 니까야 MN 135 소업분별경 (Cūḷakammavibhaṅgasutta)배경
상세한 열네 행동 설명을 마친 뒤 세존께서는 처음 수바가 물은 일곱 대조를 같은 순서로 총괄합니다. 이 대목은 그중 수명·건강·용모의 첫 세 쌍입니다. 짧고 긴 수명, 많고 적은 병, 좋지 않고 아름다운 용모마다 불리한 길과 유리한 길을 해당 결과와 짝지으므로 모두 세 쌍·여섯 결과입니다. 사후의 두 갈래는 다시 펼치지 않고 “그렇게 되게 하는 길이 그렇게 이끈다”는 대응만 남깁니다. 현실의 수명·질병·외모를 개인의 과거 탓으로 재단하거나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표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묵상
첫 세 대조가 질문과 같은 순서로 돌아오는 구조는 어떻게 느껴지나요? 여섯 결과를 사람에게 붙이는 대신, 그 앞에서 반복된 살생을 삼감과 해치지 않음 중 한 행위만 떠올려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