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그와 같이 나는
과거의 바르게 깨달은 이들이 걸어간
옛길, 옛 도로를 보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과거의 바르게 깨달은 이들이 걸어간
그 옛길, 옛 도로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이니,
곧 바른 견해와 … 바른 집중이니라.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과거의 바르게 깨달은 이들이 걸어간
옛길, 옛 도로이니라.
나는 그 길을 따라갔느니라.
Evameva khvāhaṁ, bhikkhave, addasaṁ purāṇaṁ maggaṁ purāṇañjasaṁ pubbakehi sammāsambuddhehi anuyātaṁ. Katamo ca so, bhikkhave, purāṇamaggo purāṇañjaso pubbakehi sammāsambuddhehi anuyāt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Ayaṁ kho so, bhikkhave, purāṇamaggo purāṇañjaso pubbakehi sammāsambuddhehi anuyāto, tamanugacchiṁ;
상윳따 니까야 SN 12.65 나가라경 (Nagarasutta) 배경
부처님은 자신이 한 일을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숲을 걷다가 옛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만나고, 그 길을 따라가 보니 잊혀진 옛 도시가 나왔다는 비유입니다. 그가 한 일은 새 길을 낸 것이 아니라 묻혀 있던 길을 찾아 다시 걸어간 것이고, 그 길의 이름이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입니다. 이 관점이 불교의 특징을 만듭니다. 진리는 한 사람이 만들어 낸 소유물이 아니라 누구든 조건이 맞으면 다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종교는 창시자의 독점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길은 부처님보다 오래되었고, 부처님이 사라진 뒤에도 남습니다.
묵상
당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미 지나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어떤 위안이 되나요? 새 길을 혼자 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이미 난 길을 찾아본 적 있나요?
“수행자들이여, 바로 그 삼십일 번째 겁에 웻사부 세존, 아라한,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이가 세상에 출현하였느니라.
수행자들이여, 바로 이 행운의 겁에 까꾸산다 세존, 아라한,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이가 세상에 출현하였느니라.
수행자들이여, 바로 이 행운의 겁에 꼬나가마나 세존, 아라한,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이가 세상에 출현하였느니라.”
Tasmiññeva kho, bhikkhave, ekatiṁse kappe vessabhū bhagavā arahaṁ sammāsambuddho loke udapādi.
Imasmiññeva kho, bhikkhave, bhaddakappe kakusandho bhagavā arahaṁ sammāsambuddho loke udapādi.
Imasmiññeva kho, bhikkhave, bhaddakappe koṇāgamano bhagavā arahaṁ sammāsambuddho loke udapādi.
디가 니까야 DN 14 대전기경 (Mahāpadānasutta) 배경
시키의 삼십일 겁이라는 연대 다음에 웻사부도 “바로 그 삼십일 번째 겁”에 출현했다고 이어집니다. 이어 지시어가 “그”에서 “이”로 바뀌고, 까꾸산다와 꼬나가마나는 바로 이 행운의 겁에 놓입니다. 세 문장에는 호격과 깨달은 이의 세 자격, 세상에 출현했다는 서술이 각각 빠짐없이 반복됩니다. 같은 시간 범주를 공유하는 인물들을 묶되 각 문장을 보존하면, 이전 시대에서 현재 겁으로 넘어오는 비교의 경계가 선명해집니다.
묵상
같은 시대에 속했다는 말을 들으면 서로 다른 인물의 삶까지 하나로 뭉뚱그리게 되나요? 공통된 시간 배경을 인정하면서도 각 이름과 삶을 따로 볼 수 있는지 세 문장을 천천히 읽어볼까요?
수행자들이여, 사람들의 수명이 8만 년이 될 때
멧떼야라는 이름의 세존, 아라한,
바르게 깨달은 이가 세상에 출현하리니,
지혜와 실천을 갖춘 이, 잘 가신 이,
세상을 아는 이, 사람을 이끄는 위없는 분,
신과 인간의 스승, 깨달은 이, 세존이니라.
지금 내가 세상에 출현한 것과 같으니라. …
그는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가르침을 펴고,
뜻과 표현을 갖추어
온전하고 청정한 청정한 삶을 밝히리니,
지금 내가 가르침을 펴는 것과 같으니라.
Asītivassasahassāyukesu, bhikkhave, manussesu metteyyo nāma bhagavā loke uppajjissati arahaṁ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ṁ buddho bhagavā. Seyyathāpāhametarahi loke uppanno arahaṁ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ṁ buddho bhagavā … So dhammaṁ desessati ādikalyāṇaṁ majjhekalyāṇaṁ pariyosānakalyāṇaṁ sātthaṁ sabyañjanaṁ kevalaparipuṇṇaṁ parisuddhaṁ brahmacariyaṁ pakāsessati; seyyathāpāhametarahi dhammaṁ desemi ādikalyāṇaṁ majjhekalyāṇaṁ pariyosānakalyāṇaṁ sātthaṁ sabyañjanaṁ kevalaparipuṇṇaṁ parisuddhaṁ brahmacariyaṁ pakāsemi.
디가 니까야 DN 26 전륜성왕경 (Cakkavattisīhanādasutta) 배경
미래에 관한 이 예고는 종말의 예언이 아닙니다. 이 경전은 사회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먼저 말합니다. 가난한 이에게 나누지 않자 도둑질이 생기고, 도둑질을 벌하자 폭력이 생기고, 그렇게 수명과 도덕이 함께 줄어듭니다. 그러다 바닥에서 사람들이 다시 선함을 회복하면 수명과 번영도 되돌아오고, 그 시대에 새 부처님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문장마다 붙는 후렴이 이 대목의 핵심입니다. "지금 내가 그런 것과 같으니라." 미래의 부처는 다른 진리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다시 밝힙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기다리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이 길이 그때에도 유효하다는 말입니다.
묵상
언젠가 누군가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어본 적 있나요? 그 사람이 와서 할 말이 이미 지금 알려져 있다면, 당신이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모든 악을 짓지 않고,
선을 갖추어 행하며,
자기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
이것이 모든 부처님들의 가르침이니라.
Sabbapāpassa akaraṇaṁ, kusalassa upasampadā; Sacittapariyodapanaṁ, etaṁ buddhāna sāsanaṁ.
법구경 Dhammapada 183 부처 품 (Buddhavagga) 배경
과거의 부처님들과 미래의 부처님이 공통으로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네 줄로 요약한 게송입니다. 여기에는 신비한 비법도, 특정한 소속도 없습니다.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 좋은 일을 갖추어 하는 것, 그리고 자기 마음을 맑히는 것. 앞의 둘은 어느 시대 어느 문화에서나 통하는 상식이고, 세 번째가 불교가 더한 부분입니다. 행동만 관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행동이 나오는 마음까지 다루라는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들의 가르침"이라는 마지막 구절은 이 셋이 시대와 사람을 넘어 되풀이되는 핵심임을 말합니다.
묵상
이 세 줄 가운데 당신이 가장 소홀히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지 않기와 하기는 애쓰면서, 그 모든 것이 나오는 마음을 돌보는 일은 뒤로 미루고 있지는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