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알아차림을 잃고 분명히 알지 못하는 채 외딴 숲속 처소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알아차림을 확립했다. 알아차림을 확립한 채 외딴 숲속 처소에 머무는 고귀한 이들 가운데 내가 하나다.’ 바라문이여, 내 안에서 알아차림을 확립함을 보았기에 나는 숲에 머무는 일에 더욱 담담해졌느니라.
Na kho panāhaṁ muṭṭhassati asampajān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 upaṭṭhitassatihamasmi. Ye hi vo ariyā upaṭṭhitassatī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nti tesamahaṁ aññataro’ti. Etamahaṁ, brāhmaṇa, upaṭṭhitassatitaṁ attani sampassamāno bhiyyo pallomamāpādiṁ araññe vihārāya.
맛지마 니까야 MN 4 두려움과 공포경 (Bhayabheravasutta)배경
보살은 자신이 알아차림을 잃고 분명히 알지 못하는 채 외딴 숲속 처소에 머물지 않는다고 먼저 부정하고, “알아차림을 확립했다”라고 반대 상태를 긍정합니다. 이어 알아차림을 확립한 채 숲에 머무는 고귀한 이들 가운데 자신이 하나라고 놓습니다. 마지막에는 내 안에서 알아차림을 확립함을 보았기에 숲 생활에 더욱 담담해졌다고 닫습니다. 부정·긍정·고귀한 이들과의 관계·담담함이라는 네 단계가 모두 남아 있습니다. 앞의 허물 조건과 짝을 이루지만, 두려움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 덕목이 없다고 추정하는 근거는 아닙니다.
묵상
알아차림과 분명히 앎을 잃음, 그리고 알아차림을 확립함의 대조를 읽고 어떤 점이 가장 선명하며, 무엇이 아직 낯선가요? 분명히 앎은 부정형에만 나오고 긍정형은 알아차림 확립만 말하는 차이도 눈에 들어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