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

물방울이 독을 채우듯 쌓이는 것 - 작은 일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좋은 일에는 서두르고 나쁜 일에서 마음을 막을지니라. 좋은 일을 더디게 하면 마음은 나쁜 일을 즐기게 되느니라.

Abhittharetha kalyāṇe, pāpā cittaṁ nivāraye; Dandhañhi karoto puññaṁ, pāpasmiṁ ramatī mano.

법구경 Dhammapada 116

배경

아빗타레타(abhittharetha)는 '서둘러라'는 명령입니다. 대개 서두르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여기서는 반대입니다. 서두름과 더딤을 맞세운 것이 이 게송의 뼈대입니다. 뒷줄의 셈이 날카롭습니다. 좋은 일을 미루면 그냥 안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음이 나쁜 쪽을 즐기게 된다고 합니다. 자리가 비면 다른 것이 들어차기 때문입니다. 단다(dandha)는 '느린, 굼뜬'입니다. 한역 법구경은 이 자리를 '선을 보고도 따르지 않는다'는 비난으로 바꾸고 팔리에 없는 말을 결말에 붙였습니다. 빠알리는 나무라는 대신 순서를 알려 줍니다.

묵상

좋은 일이라 여기면서 미뤄 둔 것이 있나요? 미루는 동안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와 있었는지 살펴보면 어떨까요?

나쁜 일을 저질렀거든 거듭하지 말지니라.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니, 나쁜 일이 쌓이면 괴로우니라.

Pāpañce puriso kayirā, Na naṁ kayirā punappunaṁ; Na tamhi chandaṁ kayirātha, Dukkho pāpassa uccayo.

법구경 Dhammapada 117

배경

이 게송이 시작하는 자리가 중요합니다. 저질렀다고 가정하고 시작합니다.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한 뒤를 다룹니다. 그러니 이 게송은 자책하는 사람이 아니라 되풀이하는 사람을 겨눕니다. 짠다(chanda)는 '마음이 기울어짐, 하고 싶음'입니다. 여기에 마음을 두지 말라는 것은 그 일을 곱씹지 말라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곱씹으면 다시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웃짜야(uccaya)는 '쌓임'입니다. 한 번의 잘못이 아니라 쌓이는 것을 문제로 놓았습니다. 다음 게송이 그 짝으로 좋은 일 쪽을 말합니다.

묵상

한 번 실수한 뒤 그것을 곱씹다가 오히려 되풀이한 적이 있나요? 곱씹는 일과 고치는 일은 어떻게 다를까요?

좋은 일을 하였거든 거듭할지니라. 거기에 마음을 둘지니, 좋은 일이 쌓이면 즐거우니라.

Puññañce puriso kayirā, kayirā naṁ punappunaṁ; Tamhi chandaṁ kayirātha, sukho puññassa uccayo.

법구경 Dhammapada 118

배경

앞 게송의 짝입니다. 눈여겨볼 것은 좋은 일 쪽에서는 마음을 두라고 한 점입니다. 나쁜 일은 곱씹지 말고 좋은 일은 곱씹으라는 셈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대개 반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권고가 실용적입니다. 우리는 잘못한 일을 밤새 떠올리고 잘한 일은 금세 잊습니다. 짠다를 좋은 쪽에 두라는 것은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에 가깝습니다. 마음이 기울어질 곳을 정해 주면 그쪽으로 자주 가게 되고, 자주 가면 다시 하게 됩니다.

묵상

오늘 잘한 일 하나를 떠올려 마음에 오래 두어 보면 어떨까요? 잘못한 일에 쓴 시간만큼만 써 보아도 됩니다.

나쁜 일이 익기 전까지는 나쁜 이도 좋은 것을 보나니, 나쁜 일이 익으면 그때 나쁜 것을 보느니라.

Pāpopi passati bhadraṁ, Yāva pāpaṁ na paccati; Yadā ca paccati pāpaṁ, Atha pāpo pāpāni passati.

법구경 Dhammapada 119

배경

이 게송이 답하는 것은 오래된 물음입니다. 왜 나쁜 사람이 잘 사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답은 아직 익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빳짜띠(paccati)는 열매가 익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5품에서도 나왔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게송이 위로가 아니라 관찰이라는 점입니다. 나쁜 사람도 언젠가 벌받는다는 약속이 아니라, 지금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석서는 이 게송의 배경으로 큰 부자였다가 가난해진 사람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다음 게송이 짝으로 좋은 쪽을 말하는데, 그쪽 셈도 똑같습니다.

묵상

정직하게 사는데 손해만 본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지금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위로가 되나요, 아니면 답답한가요?

좋은 일이 익기 전까지는 좋은 이도 나쁜 것을 보나니, 좋은 일이 익으면 그때 좋은 것을 보느니라.

Bhadropi passati pāpaṁ, Yāva bhadraṁ na paccati; Yadā ca paccati bhadraṁ, Atha bhadro bhadrāni passati.

법구경 Dhammapada 120

배경

앞 게송의 짝입니다. 두 게송을 함께 읽어야 이 셈이 공평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쁜 사람이 잘 사는 기간이 있듯 좋은 사람이 힘든 기간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익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 동안은 눈에 보이는 것과 실제가 어긋납니다. 이 어긋남을 견디지 못할 때 사람은 방향을 바꿉니다. 정직하게 살아도 손해만 보니 그만두자는 결론에 이릅니다. 두 게송이 나란히 놓인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것을 근거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묵상

좋은 쪽을 택했는데 결과가 나쁘게 나온 적이 있나요? 그때 방향을 바꾸었나요, 아니면 견뎠나요?

나쁜 일을 가벼이 여겨 ‘나에게는 오지 않으리라’ 하지 말지니라.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져 물독을 채우듯, 어리석은 이는 나쁜 일을 조금씩 쌓아 채우느니라.

Māvamaññetha pāpassa, na mantaṁ āgamissati; Udabindunipātena, udakumbhopi pūrati; Bālo pūrati pāpassa, thokaṁ thokampi ācinaṁ.

법구경 Dhammapada 121

배경

마와만녜타(māvamaññetha)는 '얕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게송이 겨눈 것은 큰 잘못이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물독은 한 번에 차지 않습니다. 한 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그 한 방울은 티도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토깡 토깡(thokaṁ thokaṁ)은 '조금씩 조금씩'입니다. 아찌나(ācina)는 '쌓아 모으는'이라는 뜻으로, 스스로 하는 일임을 가리킵니다. 물방울이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한 방울씩 붓고 있다는 그림입니다.

묵상

'이 정도는 괜찮다'고 여기며 하는 일이 있나요? 그것을 한 해 동안 몇 번이나 했는지 세어 본다면 어떨까요?

좋은 일을 가벼이 여겨 ‘나에게는 오지 않으리라’ 하지 말지니라.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져 물독을 채우듯, 지혜로운 이는 좋은 일을 조금씩 쌓아 채우느니라.

Māvamaññetha puññassa, na mandaṁ āgamissati; Udabindunipātena, udakumbhopi pūrati; Dhīro pūrati puññassa, thokaṁ thokampi ācinaṁ.

법구경 Dhammapada 122

배경

앞 게송의 짝으로, 같은 물독 비유가 좋은 쪽에 쓰입니다. 이 짝이 주는 위로가 있습니다. 큰일을 해야 한다고 여기면 시작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물독은 한 방울로도 차오릅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아주 작아도 그것이 채워진다는 말입니다. 티가 나지 않는다는 점은 나쁜 쪽과 같습니다. 좋은 일도 한 번 해서는 아무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만두기 쉽습니다. 이 짝을 나란히 읽으면 결론이 하나로 모입니다. 티가 나지 않는 동안에도 차오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묵상

너무 작아서 의미 없어 보이는 좋은 일이 있나요? 그것을 백 번 하면 어떤 물독이 찰지 그려 보면 어떨까요?

재물을 많이 지닌 상인이 일행 없이 위험한 길을 피하듯, 살고자 하는 이가 독을 피하듯, 나쁜 일들을 피할지니라.

Vāṇijova bhayaṁ maggaṁ, appasattho mahaddhano; Visaṁ jīvitukāmova, pāpāni parivajjaye.

법구경 Dhammapada 123

배경

비유 둘이 겹칩니다. 하나는 상인입니다. 압빠삿토(appasattho)는 '함께 가는 이가 적은'이라는 뜻으로, 호위 없이 값진 짐을 지고 가는 상황입니다. 잃을 것이 많고 지킬 힘은 적을 때 사람은 위험한 길을 피합니다. 다른 하나는 독입니다. 살고 싶은 사람은 독을 마실까 말까 고민하지 않습니다. 두 비유의 공통점은 망설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쁜 일을 피하라는 권고를 도덕이 아니라 이해관계로 말한 셈입니다. 값진 것을 지닌 사람이 위험을 피하듯 하라는 것이니, 자기에게 값진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만 이 비유를 쓸 수 있습니다.

묵상

나에게 잃으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을 또렷이 알고 있다면 피해야 할 길도 또렷해질까요?

손에 상처가 없으면 손으로 독을 쥐어도 되나니, 상처 없는 곳에는 독이 스미지 않느니라. 나쁜 일을 짓지 않는 이에게는 나쁜 일이 따르지 않느니라.

Pāṇimhi ce vaṇo nāssa, hareyya pāṇinā visaṁ; Nābbaṇaṁ visamanveti, natthi pāpaṁ akubbato.

법구경 Dhammapada 124

배경

이 게송은 조건문입니다. 상처가 없으면 독을 쥐어도 된다는 것이 앞머리입니다. 위험한 것 곁에 있어도 안전한 경우를 말하는 셈입니다. 한역 법구경은 이 조건을 지우고 '악은 반드시 해친다'는 경고로 뒤집었습니다. 그러면 뜻이 정반대가 됩니다. 빠알리는 안전한 쪽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독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상처가 없으면 스미지 않습니다. 여기서 상처는 마음에 난 틈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힙니다. 같은 상황에 놓여도 어떤 사람은 물들고 어떤 사람은 물들지 않는 까닭입니다.

묵상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누구는 휩쓸리고 누구는 그러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그 차이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을 해치고 맑고 흠 없는 이를 해치면, 그 나쁜 일은 어리석은 그에게 돌아오나니, 바람을 거슬러 뿌린 고운 먼지가 도로 날아오듯 하느니라.

Yo appaduṭṭhassa narassa dussati, Suddhassa posassa anaṅgaṇassa; Tameva bālaṁ pacceti pāpaṁ, Sukhumo rajo paṭivātaṁva khitto.

법구경 Dhammapada 125

배경

비유가 정확합니다. 바람을 마주하고 먼지를 뿌리면 그 먼지는 뿌린 사람에게 돌아옵니다. 상대에게 닿지도 않습니다. 수쿠모 라조(sukhumo rajo)는 '아주 고운 먼지'입니다. 굵은 것이라면 떨어지겠지만 고운 것이라 얼굴에 그대로 붙습니다. 4품에서 됨됨이의 향기가 바람을 거슬러 간다고 했던 대목과 짝을 이룹니다. 좋은 것은 바람을 거슬러 퍼지고 나쁜 것은 바람을 거슬러 되돌아옵니다. 압빠둣타(appaduṭṭha)는 '해를 끼치지 않은'이라는 뜻으로, 아무 잘못이 없는 상대를 가리킵니다.

묵상

화가 나서 누군가에게 던진 말이 나에게 돌아온 적이 있나요? 그 말은 상대에게 닿기는 했을까요?

어떤 이는 다시 태어나고 나쁜 일을 지은 이는 괴로운 곳에 나며, 바르게 산 이는 좋은 곳에 나고 번뇌가 다한 이는 불이 꺼지느니라.

Gabbhameke uppajjanti, nirayaṁ pāpakammino; Saggaṁ sugatino yanti, parinibbanti anāsavā.

법구경 Dhammapada 126

배경

네 갈래를 한 줄에 늘어놓았습니다. 다시 사람으로 나는 이, 괴로운 곳에 나는 이, 좋은 곳에 나는 이, 그리고 불이 꺼지는 이입니다. 앞의 셋은 다시 어딘가에 나는 일이고 마지막 하나만 다릅니다. 빠리닙반띠(parinibbanti)는 '완전히 꺼진다'는 뜻입니다. 좋은 곳에 나는 것조차 끝이 아니라는 점이 이 배열의 핵심입니다. 좋은 데 태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셈법과 그것마저 넘어서는 셈법을 나란히 보여 준 셈입니다. 6품에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둘 다 넘어선 자리를 말한 것과 이어집니다.

묵상

좋은 결과를 바라며 애쓰고 있나요? 그 결과마저 지나가는 것이라면, 무엇이 남을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하늘에도 바다 한가운데도, 산틈에 들어간다 해도, 지은 나쁜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느니라.

Na antalikkhe na samuddamajjhe, Na pabbatānaṁ vivaraṁ pavissa; Na vijjatī so jagatippadeso, Yatthaṭṭhito mucceyya pāpakammā.

법구경 Dhammapada 127

배경

숨을 곳 세 군데를 든 뒤 모두 없다고 합니다. 하늘과 바다와 산속은 사람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들입니다. 이 게송이 말하는 것은 감시하는 존재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도망칠 곳이 없는 까닭은 지은 일이 자기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1품에서 자기가 한 일을 자기가 보는 데서 괴로움이 온다고 했던 것과 이어집니다. 어디로 가든 자기를 데리고 가니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음 게송이 같은 틀로 죽음을 말하는데, 두 게송을 함께 읽으면 도망칠 수 없는 것이 둘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묵상

장소를 바꾸면 달라질 것이라 여긴 적이 있나요? 옮겨 간 자리에서도 그대로였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하늘에도 바다 한가운데도, 산틈에 들어간다 해도, 죽음이 덮치지 못하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느니라.

Na antalikkhe na samuddamajjhe, Na pabbatānaṁ vivaraṁ pavissa; Na vijjatī so jagatippadeso, Yatthaṭṭhitaṁ nappasaheyya maccu.

법구경 Dhammapada 128

배경

품의 마지막 게송이자 앞 게송의 짝입니다. 마지막 낱말만 바뀌었습니다. 나쁜 일이 죽음으로 바뀌었을 뿐 나머지는 똑같습니다. 두 게송을 나란히 놓은 뜻은 분명합니다. 도망칠 수 없는 것이 둘 있는데, 하나는 자기가 지은 일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 배치에는 다른 결이 있습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이미 아는 사실입니다. 그것과 같은 자리에 지은 일을 놓음으로써, 지은 일도 그만큼 확실하다고 말한 셈입니다. 이 품이 여기서 끝나는 것은 무겁지만 정직합니다.

묵상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에 무엇을 쌓아 두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