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혹되지 않는 이의 출현을 두 번 밝히다

세존이 많은 사람과 신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미혹될 성질이 없는 존재가 나타났다는 말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반복합니다.

바라문이여, 어떤 이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미혹될 성질이 없는 존재가 세상에 나타났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가엾이 여기며, 신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다.’ 그것은 바로 나를 두고 바르게 하는 말이니라. ‘미혹될 성질이 없는 존재가 세상에 나타났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가엾이 여기며, 신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다.’

Yaṁ kho taṁ, brāhmaṇa, sammā vadamāno vadeyya: ‘asammohadhammo satto loke uppanno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mameva taṁ sammā vadamāno vadeyya: ‘asammohadhammo satto loke uppanno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맛지마 니까야 MN 4 두려움과 공포경 (Bhayabheravasutta)

배경

세존은 “어떤 이를 두고 바르게 말한다면”이라는 도입 뒤 긴 선언을 제시합니다. 미혹될 성질이 없는 존재가 세상에 나타났고, 목적은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 세상에 대한 연민, 신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이어 그것이 자신을 두고 하는 바른 말이라고 한 뒤 같은 선언을 다시 온전히 반복합니다. 첫 선언은 조건문의 인용이고 둘째는 적용된 결론이므로 두 번 모두 보존했습니다. 이 대목부터 화자는 깨닫기 전 경험을 넘어 깨달은 세존의 현재적 의미를 함께 밝힙니다.

묵상

같은 긴 선언을 조건과 결론에서 두 번 들려준 장면을 읽고 어떤 점이 가장 선명하며, 무엇이 아직 낯선가요? 개인의 평온이 많은 존재의 이익과 행복이라는 방향과 함께 놓인 점은 어떻게 다가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