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과 마음에 흘러들어 괴롭히는 것들은 어떻게 생기고 끝나는가

괴로움과 번뇌 각각에 대해 그것·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의 네 항목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나는 “이것은 괴로움”이라고 그대로 알았느니라.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라고 그대로 알았느니라.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그대로 알았느니라.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고 그대로 알았느니라. 나는 “이것들은 번뇌”라고 그대로 알았느니라. “이것은 번뇌의 일어남”이라고 그대로 알았느니라. “이것은 번뇌의 소멸”이라고 그대로 알았느니라. “이것은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고 그대로 알았느니라.

So ‘idaṁ dukkhan’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Ime āsavā’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ayaṁ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abbhaññāsiṁ.

맛지마 니까야 MN 4 두려움과 공포경 (Bhayabheravasutta)

배경

세존은 먼저 괴로움·괴로움의 일어남·괴로움의 소멸·그 소멸로 이끄는 길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이어 번뇌·번뇌의 일어남·번뇌의 소멸·그 소멸로 이끄는 길을 같은 구조로 압니다. 두 묶음은 각각 네 항목이며, 매 항목마다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았다”는 동사가 반복됩니다. 한국어도 두 목록을 일반 생략 없이 직접 옮겼습니다. 괴로움의 네 항목과 번뇌의 네 항목을 하나로 섞지 않고, 세 번째 밝은 앎에서 무엇을 알고 보았는지 여덟 관계로 보존했습니다.

묵상

이 대목의 괴로움과 번뇌를 각각 네 항목으로 있는 그대로 안다는 구조는 어떻게 들리며, 어떤 낱말이 오래 남나요? 소멸만 바라기보다 무엇이고 어떻게 일어나며 어떤 길이 이끄는지 함께 보는 방식은 어떻게 느껴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