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풀리고 해야 할 일을 마치다

마음이 세 가지 번뇌에서 각각 풀리고 풀림을 알며, 태어남이 다하고 청정한 삶과 해야 할 일이 완성되었다고 밝힙니다.

이와 같이 알고 보자,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풀리고, 마음은 존재의 번뇌에서 풀리며, 마음은 무명의 번뇌에서 풀렸느니라. 풀려났을 때 “풀려났다”는 앎이 있었느니라. 나는 분명히 알았느니라.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은 마쳤고, 이 상태로 다시 태어남은 없다.’

Tassa me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ittha,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ittha,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ittha.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ahos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abbhaññāsiṁ.

맛지마 니까야 MN 4 두려움과 공포경 (Bhayabheravasutta)

배경

이와 같이 알고 보자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존재의 번뇌·무명의 번뇌에서 각각 풀립니다. 빠알리의 “마음이 풀렸다”가 세 관계마다 반복되므로 한국어도 “마음은 … 풀리고/풀리며/풀렸습니다”로 세 번 직접 보존했습니다. 이어 풀려났을 때 풀려났다는 앎이 있고, 태어남이 다함·청정한 삶의 완성·해야 할 일의 완수·이 상태로 다시 태어남이 없음의 네 선언을 분명히 압니다. 이는 깨닫기 전 회고 안에서 깨달음이 성취되는 지점이며, 이후 말은 깨달은 뒤의 관점입니다.

묵상

세 번의 풀림과 “풀려났다”는 앎, 네 완성 선언이 이어진 장면 가운데 지금 마음에 닿는 부분과 걸리는 부분이 각각 있나요? 변화 자체와 그 변화를 분명히 아는 일이 함께 놓인 점은 어떻게 다가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