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문이여, 그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느니라. ‘수행자 고따마는 오늘날에도 탐욕과 성냄과 미혹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외딴 숲속 처소에 머무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바라문이여,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되느니라. 바라문이여, 나는 두 가지 이로움을 보기 때문에 외딴 숲속 처소에 머무느니라. 현생에서 스스로 행복하게 머무는 일과 미래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는 일이니라.”
Siyā kho pana te, brāhmaṇa, evamassa: ‘ajjāpi nūna samaṇo gotamo avītarāgo avītadoso avītamoho, tasmā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atī’ti. Na kho panetaṁ, brāhmaṇa, evaṁ daṭṭhabbaṁ. Dve kho ahaṁ, brāhmaṇa, atthavase sampassamāno araññavanapatthāni pantāni senāsanāni paṭisevāmi—attano ca diṭṭhadhammasukhavihāraṁ sampassamāno, pacchimañca janataṁ anukampamāno”ti.
맛지마 니까야 MN 4 두려움과 공포경 (Bhayabheravasutta)배경
세존은 자누쏘니가 “오늘날에도 탐욕·성냄·미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숲에 머무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음을 먼저 제시합니다. 곧바로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부정하고, 깨달은 뒤에도 외딴 숲속 처소에 머무는 두 이유를 셉니다. 하나는 현생에서 스스로 행복하게 머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는 일입니다. 깨닫기 전에는 공포를 만나고 세 밝은 앎을 얻는 수행의 장소였지만, 깨달은 뒤의 숲 생활은 결핍 때문이 아니라 행복과 연민이라는 시제 차이를 보존했습니다.
묵상
깨달은 뒤 숲에 머무는 이유를 현생의 행복과 미래 사람에 대한 연민으로 나눈 대목을 경의 흐름 안에서 볼 때 무엇이 달라 보이나요? 자신의 평온과 뒤에 올 사람을 향한 배려가 함께 가능한 관계로 놓인 점은 어떻게 다가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