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웃음이며 무슨 기쁨이냐,
늘 불타고 있는데.
어둠에 덮인 그대들은
어찌 등불을 찾지 않느냐.
Ko nu hāso kimānando, niccaṁ pajjalite sati; Andhakārena onaddhā, padīpaṁ na gavesatha.
법구경 Dhammapada 146 배경
주석서는 이 말씀의 배경으로 즐거운 놀이에 빠져 있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자리에서 하신 말씀이라는 점이 이 게송의 결을 정합니다. 웃지 말라는 꾸짖음이 아니라, 웃고 있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보여 준 것입니다. 빳잘리떼(pajjalite)는 '불타고 있는'입니다. 무엇이 타고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는데, 다른 경에서 부처님은 눈과 귀와 마음이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줄이 중요합니다. 불을 끄라고 하지 않고 등불을 찾으라고 합니다. 어둠에 덮여 있다는 것이 먼저 문제라는 뜻입니다.
묵상
웃고 있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개운하지 않을 때가 있나요? 그 개운치 않음이 무엇을 알려 주려는 신호일까요?
곱게 꾸며진 이 모습을 보라,
상처투성이로 얽어 세운 몸을.
병들고 온갖 생각으로 가득하나
오래가는 것은 하나도 없느니라.
Passa cittakataṁ bimbaṁ, arukāyaṁ samussitaṁ; Āturaṁ bahusaṅkappaṁ, yassa natthi dhuvaṁ ṭhiti.
법구경 Dhammapada 147 배경
이 품에는 몸을 낱낱이 뜯어보는 게송이 이어집니다. 몸을 미워하라는 말로 읽히기 쉬워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수행자들이 하던 관찰법으로, 몸을 향한 지나친 집착을 덜어내려고 일부러 반대편을 보는 훈련입니다. 늘 이렇게만 보라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쏠린 눈을 되돌리려는 방편입니다. 짓따까땅 빔방(cittakataṁ bimbaṁ)은 '꾸며진 형상'으로, 꾸미기 전과 후를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마지막 줄이 이 게송의 무게입니다. 오래가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몸이 더럽다는 말과 다릅니다. 머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묵상
거울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나 되나요? 그 시간에 보고 있는 것은 지금의 나인가요, 아니면 지켜 내고 싶은 어떤 모습인가요?
이 몸은 다 낡았고
병의 둥지이며 부서지기 쉬우니,
썩어 가는 이 덩어리는 허물어지고
목숨은 죽음으로 끝나느니라.
Parijiṇṇamidaṁ rūpaṁ, roganīḷaṁ pabhaṅguraṁ; Bhijjati pūtisandeho, maraṇantañhi jīvitaṁ.
법구경 Dhammapada 148 늙음의 품 (Jarāvagga) 배경
로가닐라(roganīḷa)에서 닐라(nīḷa)는 새의 둥지를 뜻합니다. 병이 깃들어 사는 자리라는 그림입니다. 병이 밖에서 침입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여기 산다는 뜻이 됩니다. 주석서는 이 게송의 배경으로 나이 든 여성 수행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남의 몸을 가리켜 한 말이 아니라 자기 몸을 보는 훈련입니다. 마지막 줄은 담담합니다. 목숨은 죽음으로 끝난다고만 합니다. 슬퍼하라거나 두려워하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저 그렇다고 말합니다.
묵상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그때 그 사실을 밀어냈나요, 아니면 인정했나요?
가을에 버려진 조롱박처럼
여기저기 뒹구는
잿빛 뼈들을 보고서
무슨 즐거움이 있겠느냐.
Yānimāni apatthāni, alābūneva sārade; Kāpotakāni aṭṭhīni, tāni disvāna kā rati.
법구경 Dhammapada 149 배경
알라부(alābu)는 조롱박입니다. 가을에 속을 파내고 버려진 조롱박이 밭에 뒹구는 모습을 본 사람이면 이 비유가 바로 와닿습니다. 까뽀따까(kāpotaka)는 '비둘기 빛깔의'로, 오래된 뼈의 잿빛을 가리킵니다. 이 게송이 놓인 자리를 보면 뜻이 분명해집니다. 앞 게송에서 몸이 낡는다고 했고 여기서는 그 끝을 보여 줍니다. 무슨 즐거움이 있겠느냐는 물음은 인생이 허무하다는 탄식이 아닙니다. 무엇을 붙들고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붙들고 있는 것이 저렇게 되는 것이라면 붙드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물음입니다.
묵상
지금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이 언젠가 형태를 잃는다면, 지금 지키는 방식이 달라질까요?
뼈로 성을 쌓고
살과 피를 발라 놓았나니,
그 안에 늙음과 죽음이,
교만과 속임이 들어 있느니라.
Aṭṭhīnaṁ nagaraṁ kataṁ, maṁsalohitalepanaṁ; Yattha jarā ca maccu ca, māno makkho ca ohito.
법구경 Dhammapada 150 배경
나가라(nagara)는 성곽 도시입니다. 뼈로 뼈대를 세우고 살과 피로 벽을 발랐다는 그림입니다. 여기까지는 앞 게송들과 같은 결인데, 뒷줄이 다릅니다. 그 성 안에 든 것을 넷 꼽는데 늙음과 죽음만이 아니라 교만과 속임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몸의 이야기에서 마음의 이야기로 건너간 것입니다. 마나(māna)는 스스로를 재는 마음이고 막카(makkha)는 남의 좋은 점을 지우는 마음입니다. 이 둘을 늙음과 죽음 옆에 놓은 것이 흥미롭습니다. 몸이 낡아 가는 동안 그 안에서 자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묵상
나이가 들면서 늘어난 것이 무엇인가요? 지혜가 늘었나요, 아니면 재고 지우는 마음이 늘었나요?
곱게 꾸민 왕의 수레도 낡아 가고
이 몸도 늙음에 이르나,
참된 이들의 가르침은 늙지 않나니
고요한 이들이 서로에게
그렇게 전하느니라.
Jīranti ve rājarathā sucittā, Atho sarīrampi jaraṁ upeti; Satañca dhammo na jaraṁ upeti, Santo have sabbhi pavedayanti.
법구경 Dhammapada 151 배경
이 품에서 방향이 바뀌는 자리입니다. 앞의 다섯 게송이 낡아 가는 것들을 보여 주었다면 여기서 처음으로 낡지 않는 것이 나옵니다. 왕의 수레는 그 시대에 가장 잘 만든 물건이었습니다. 그것도 낡습니다. 몸도 낡습니다. 그런데 참된 이들의 가르침은 늙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석서는 이 말씀의 배경으로 왕비 말리까의 죽음을 전합니다. 눈여겨볼 것은 마지막 줄입니다. 그 늙지 않는 것을 고요한 이들이 서로에게 전한다고 합니다. 사람은 낡아 가지만 전해지는 것은 낡지 않는다는 그림입니다.
묵상
누군가에게서 받아 지금도 나에게 남아 있는 말이 있나요? 그 사람은 떠났어도 그 말은 낡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배움이 적은 사람은
부림 소처럼 늙어 가나니,
살은 자라도
지혜는 자라지 않느니라.
Appassutāyaṁ puriso, balībaddhova jīrati; Maṁsāni tassa vaḍḍhanti, paññā tassa na vaḍḍhati.
법구경 Dhammapada 152 배경
발리밧다(balībaddha)는 짐을 지는 소입니다. 소는 해마다 몸집이 커지지만 아는 것은 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저절로 지혜로워지는 일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압빳수따(appassuta)는 '적게 들은'이라는 뜻으로, 배움이 적음을 가리킵니다. 다만 1품 마지막에서 많이 외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했으니, 여기서 말하는 배움도 지식의 양만은 아닙니다. 앞 게송에서 늙지 않는 것이 가르침이라 했으니,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몸만 늙어 가는 상태를 짚은 셈입니다.
묵상
올해 나에게서 자란 것은 무엇인가요? 몸무게나 나이 말고, 보는 눈이 넓어진 대목이 있었나요?
수많은 생을 떠돌며
집 짓는 이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였나니,
거듭 태어남은 괴로웠느니라.
집 짓는 이여, 이제 너를 보았노라.
너는 다시 집을 짓지 못하리라.
서까래는 모두 부서졌고
마룻대는 무너졌나니,
지어냄을 벗어난 이 마음은
갈애가 다한 곳에 이르렀느니라.
Anekajātisaṁsāraṁ, sandhāvissaṁ anibbisaṁ; Gahakāraṁ gavesanto, dukkhā jāti punappunaṁ. Gahakāraka diṭṭhosi, puna gehaṁ na kāhasi; Sabbā te phāsukā bhaggā, gahakūṭaṁ visaṅkhataṁ; Visaṅkhāragataṁ cittaṁ, taṇhānaṁ khayamajjhagā.
법구경 Dhammapada 153-154 배경
전승에 따르면 부처님이 깨달으신 바로 그 순간에 읊으신 게송입니다. 법구경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두 게송이 한 이야기라 함께 읽어야 합니다. 가하까라까(gahakāraka)는 '집 짓는 이'로, 이 몸이라는 집을 거듭 짓게 하는 힘, 곧 목마름을 가리킵니다. 오래 찾던 범인을 마침내 마주 본 순간의 말입니다. 서까래가 부서지고 마룻대가 무너졌다는 것은 다시 지을 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한역 법구경에는 집도 서까래도 마룻대도 없습니다. 비유가 통째로 사라지고 일반적인 수행 서술만 남았습니다.
묵상
내 삶을 거듭 같은 모양으로 짓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을 마주 본 적이 있나요?
젊어서 맑은 삶을 살지도 않고
재물도 얻지 못한 이들은,
물고기 없는 못가에 선
늙은 왜가리처럼 시들어 가느니라.
Acaritvā brahmacariyaṁ, aladdhā yobbane dhanaṁ; Jiṇṇakoñcāva jhāyanti, khīṇamaccheva pallale.
법구경 Dhammapada 155 배경
이 게송이 나이 든 사람을 탓하는 말로 읽히기 쉬워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원문이 겨눈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앞의 시간입니다. 젊은 시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말하려고 노년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 품 앞에서 이미 말했듯 늙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가르침은 늦게 만나도 늙지 않습니다. 8품에서 백 년보다 하루가 낫다고 한 대목과 함께 읽으면 이 게송이 문을 닫는 말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왜가리 비유는 서글프지만, 못이 마르기 전에 무엇을 할지를 묻는 그림입니다.
묵상
지나온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나요? 아직 마르지 않은 못이 남아 있다면, 오늘 그 못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젊어서 맑은 삶을 살지도 않고
재물도 얻지 못한 이들은,
다 쏘아 버린 화살처럼 누워
지난 일을 탄식하느니라.
Acaritvā brahmacariyaṁ, aladdhā yobbane dhanaṁ; Senti cāpātikhīṇāva, purāṇāni anutthunaṁ.
법구경 Dhammapada 156 배경
품의 마지막 게송이자 앞 게송의 짝입니다. 앞머리가 똑같고 비유만 바뀝니다. 짜빠띠키나(cāpātikhīṇā)는 '활에서 다 쏘아진'이라는 뜻입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눗투낭(anutthunaṁ)은 '탄식하며'입니다. 지난 일을 되뇌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품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뜻깊습니다. 늙음을 다룬 열한 편이 결국 시간에 관한 이야기였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몸이 낡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무엇을 하며 낡느냐는 남습니다. 그리고 탄식은 지난 일을 바꾸지 못합니다.
묵상
지난 일을 되뇌는 데 하루 몇 분을 쓰고 있나요? 그 시간을 오늘 할 수 있는 일 하나에 쓴다면 무엇을 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