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무셨습니다. 그곳에서 사리뿟따 존자가 수행자들을 “벗들이여”라고 불렀습니다. 수행자들은 “벗이여”라고 응답했고, 사리뿟따 존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Tatra kho āyasmā sāriputto bhikkhū āmantesi: “āvuso bhikkhave”ti. “Āvuso”ti kho te bhikkhū āyasmato sāriputtassa paccassosuṁ. Āyasmā sāriputto etadavoca: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배경
경은 세존의 머무는 곳을 밝힌 뒤 설법자를 사리뿟따 존자로 분명히 전환합니다. Tatra kho 뒤의 주어는 āyasmā sāriputto입니다. āvuso bhikkhave는 사리뿟따가 수행자들을 “벗들이여”라고 부른 말이고, 수행자들도 “벗이여”라고 답합니다. 두 āvuso를 모두 옮겨 동료 수행자 사이의 문답임을 보존했습니다. 첫 문장이 세존의 머무는 곳을 밝히지만, 이어지는 설명을 세존의 직접 말씀으로 바꾸거나 동일한 현장에 함께 앉아 계셨다고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발화 관계가 이후 반복되는 질문과 답 전체의 바탕입니다.
묵상
사리뿟따와 수행자들이 서로 “벗”이라 부르는 장면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가르치는 이와 듣는 이를 위아래로만 보지 않을 때 배움의 분위기가 달라지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특별한 느낌이 없다면 호칭의 반복만 들어 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