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참으로 즐겁게 사노라,
미워하는 이들 사이에서 미움 없이.
미워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미움 없이 지내노라.
Susukhaṁ vata jīvāma, verinesu averino; Verinesu manussesu, viharāma averino.
법구경 Dhammapada 197 배경
여기서부터 네 편이 같은 틀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참으로 즐겁게 사노라'로 시작해 무엇이 없이 사는지를 밝힙니다. 주석서는 이 말씀의 배경으로 물을 두고 다투던 두 집안 사이에 부처님이 들어가신 일을 전합니다. 눈여겨볼 것은 미워하는 이들이 사라졌다고 하지 않는 점입니다. 그들은 그대로 있습니다. 다만 그 사이에서 미움 없이 지낸다고 합니다.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 안에서 다르게 지내는 방식입니다. 아웨리노(averino)는 '원한 없는'으로, 5품의 원한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묵상
껄끄러운 사람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나요? 그 사람이 그대로 있는 채로 내가 편해질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우리는 참으로 즐겁게 사노라,
앓는 이들 사이에서 앓지 않고.
앓는 사람들 가운데서
앓지 않고 지내노라.
Susukhaṁ vata jīvāma, āturesu anāturā; Āturesu manussesu, viharāma anāturā.
법구경 Dhammapada 198 배경
아뚜라(ātura)는 '앓는, 시달리는'이라는 뜻입니다. 몸의 병만이 아니라 마음이 시달리는 상태까지 가리킵니다. 이 게송이 몸이 건강하다는 자랑으로 읽히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앞 게송이 미움을 다루었고 뒤 게송이 불안을 다루니, 여기서도 마음 쪽으로 읽는 편이 맞습니다. 모두가 시달리는 자리에서 함께 시달리지 않는 것입니다. 주위가 온통 들끓을 때 같이 들끓지 않기가 어렵습니다. 이 연작이 되풀이해 말하는 것은 주위와 나를 떼어 놓는 일입니다.
묵상
주위가 모두 힘들어할 때 나도 함께 무너진 적이 있나요? 함께 아파하는 것과 같이 무너지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는 참으로 즐겁게 사노라,
안달하는 이들 사이에서 안달하지 않고.
안달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안달하지 않고 지내노라.
Susukhaṁ vata jīvāma, ussukesu anussukā; Ussukesu manussesu, viharāma anussukā.
법구경 Dhammapada 199 배경
웃수까(ussuka)는 '들떠서 서두르는, 안달하는'이라는 뜻입니다. 무언가를 얻으려고 마음이 앞서 달리는 상태입니다. 남들이 다 서두를 때 혼자 서두르지 않기가 어렵습니다. 뒤처지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 연작의 세 편이 미움과 시달림과 안달을 차례로 들었는데, 셋 다 옮는 것들입니다. 곁에 있으면 저절로 물듭니다. 그러니 이 게송들이 말하는 것은 남들과 다르게 살라는 말이라기보다, 물들지 않는 자리를 지키라는 말에 가깝습니다.
묵상
남들이 다 서두르는 것을 보면 마음이 급해지나요? 그 급함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나요?
우리는 참으로 즐겁게 사노라,
가진 것 하나 없이.
빛나는 신들처럼
희열을 먹고 살리라.
Susukhaṁ vata jīvāma, yesaṁ no natthi kiñcanaṁ; Pītibhakkhā bhavissāma, devā ābhassarā yathā.
법구경 Dhammapada 200 배경
연작의 마지막입니다. 앞의 셋이 남들과 다른 자리를 말했다면 여기서는 가진 것을 말합니다. 낀짜낭(kiñcanaṁ)은 '어떤 것, 소유'입니다. 삐띠박카(pītibhakkhā)는 '기쁨을 먹는 이들'이라는 뜻으로, 실제로 먹을 것이 없는 자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아밧사라(ābhassara)는 빛으로 이루어졌다는 하늘의 이름입니다. 그들은 먹지 않고 기쁨만으로 지낸다고 합니다. 가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결핍이 아니라 가벼움으로 뒤집은 게송입니다. 주석서는 이 말씀의 배경으로 마라가 탁발을 방해해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날의 일을 전합니다.
묵상
가진 것이 적어 오히려 홀가분했던 때가 있었나요? 지금 가진 것 가운데 나를 무겁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김은 원한을 낳고
진 이는 괴로워 누우나,
고요한 이는 편안히 잠드나니
이김과 짐을 모두 놓은 까닭이니라.
Jayaṁ veraṁ pasavati, dukkhaṁ seti parājito; Upasanto sukhaṁ seti, hitvā jayaparājayaṁ.
법구경 Dhammapada 201 배경
주석서는 이 말씀의 배경으로 전쟁에서 진 왕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게송의 셈이 뜻밖입니다. 이긴 쪽도 편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기면 원한을 얻기 때문입니다. 진 쪽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싸움에는 편안한 자리가 없습니다. 히뜨와(hitvā)는 '버리고'라는 뜻인데, 진 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김과 짐이라는 셈 자체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결과로 나온 것이 잠자리입니다. 이 책에서 편안한 잠은 거듭 좋은 삶의 표시로 나옵니다.
묵상
이기고 나서 개운하지 않았던 적이 있나요? 그때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나란히 적어 보면 어떨까요?
물듦과 같은 불이 없고
성냄과 같은 재앙이 없으며,
이 몸과 마음의 무더기 같은 괴로움이 없고
고요를 넘어서는 즐거움이 없느니라.
Natthi rāgasamo aggi, Natthi dosasamo kali; Natthi khandhasamā dukkhā, Natthi santiparaṁ sukhaṁ.
법구경 Dhammapada 202 배경
칸다(khandha)는 '무더기'로, 사람을 이루는 다섯 가지를 가리킵니다. 몸과 느낌과 인식과 지어냄과 알아차림입니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 전체입니다. 그것보다 큰 괴로움이 없다고 했습니다. 삶의 어떤 사건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구조 자체를 가리킨 것입니다. 한역 법구경은 이를 몸으로 줄였고, 첫 구의 라가(rāga)도 성적 욕망으로 좁혔습니다. 넷을 나란히 놓은 짜임이 정교합니다. 앞의 셋은 없었으면 하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만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묵상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 불을 끄는 것과 다른 데로 옮기는 것 가운데 지금 하고 있는 쪽은 어느 쪽인가요?
배고픔이 가장 큰 병이요
지어진 것들이 가장 큰 괴로움이니,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알면
열반이 가장 큰 즐거움이니라.
Jighacchāparamā rogā, saṅkhāraparamā dukhā; Etaṁ ñatvā yathābhūtaṁ,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법구경 Dhammapada 203 배경
지갓차(jighacchā)는 배고픔입니다. 병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한 것이 뜻밖인데, 배고픔은 낫는 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먹어도 내일 또 옵니다. 평생 되풀이되는 이 결핍을 병의 본보기로 놓은 것입니다. 주석서는 이 말씀의 배경으로 배고픈 사람에게 먼저 밥을 먹인 뒤에 가르침을 펴신 일을 전합니다. 배가 고프면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다는 대목입니다. 상카라(saṅkhāra)는 '지어진 것들'로, 조건에 기대어 생겨난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묵상
채워도 다시 비는 것이 있나요? 그것을 계속 채우는 일과 그 비는 성질을 아는 일 가운데 무엇을 해 보고 싶나요?
건강이 가장 큰 얻음이요
만족이 가장 큰 재물이며,
믿음이 가장 가까운 사이요
열반이 가장 큰 즐거움이니라.
Ārogyaparamā lābhā, Santuṭṭhiparamaṁ dhanaṁ; Vissāsaparamā ñāti, Nibbānaṁ paramaṁ sukhaṁ.
법구경 Dhammapada 204 배경
네 가지를 뒤집어 놓은 게송입니다. 사람들이 값지다고 여기는 것마다 다른 것을 그 자리에 놓았습니다. 얻음의 자리에 건강을, 재물의 자리에 만족을, 친족의 자리에 믿음을, 즐거움의 자리에 열반을 놓았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위사사(vissāsa)입니다. '서로 믿고 마음을 놓음'이라는 뜻으로, 핏줄보다 믿음이 더 가깝다고 한 것입니다. 산뚜띠(santuṭṭhi)는 '있는 것으로 넉넉함'입니다. 재물의 크기가 아니라 넉넉하다고 느끼는 자리를 재물이라 부른 셈입니다.
묵상
지금 가진 것으로 넉넉하다고 느낀 적이 언제인가요? 그 느낌은 무엇이 늘어서 왔나요, 무엇을 그만두어서 왔나요?
홀로 있음의 맛을 보고
가라앉음의 맛을 본 이는,
두려움 없고 허물 없어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느니라.
Pavivekarasaṁ pitvā, rasaṁ upasamassa ca; Niddaro hoti nippāpo, dhammapītirasaṁ pivaṁ.
법구경 Dhammapada 205 배경
라사(rasa)는 '맛'입니다. 이 게송에서 세 번 나옵니다. 홀로 있음의 맛, 가라앉음의 맛, 가르침의 기쁨이라는 맛입니다. 마신다는 표현을 쓴 것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머리로 아는 일이 아니라 혀로 아는 일처럼 그린 것입니다. 5품에서 국자와 혀를 견주었던 대목과 이어집니다. 빠위웨까(paviveka)는 '홀로 떨어져 있음'입니다. 외로움과 다릅니다. 외로움은 누군가 없어서 괴로운 것이고 이것은 혼자 있는 것 자체가 맛이 되는 상태입니다.
묵상
혼자 있는 시간이 맛있게 느껴진 적이 있나요? 그런 시간이 하루에 얼마나 있는지 헤아려 보면 어떨까요?
성인을 뵙는 것은 좋은 일이요
함께 지냄은 늘 즐거우니라.
어리석은 이를 보지 않으면
언제나 즐거우니라.
Sāhu dassanamariyānaṁ, sannivāso sadā sukho; Adassanena bālānaṁ, niccameva sukhī siyā.
법구경 Dhammapada 206 배경
주석서는 이 말씀의 배경으로 부처님이 편찮으실 때 신들의 왕이 찾아와 시중을 든 일을 전합니다. 뒷줄이 다소 매정하게 들릴 수 있어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이를 미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책에서 어리석음은 태생이나 머리가 아니라 자기를 보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 상태는 옮습니다. 앞의 연작에서 미움과 안달이 옮는다고 했던 것과 같은 셈입니다. 다음 게송이 그 까닭을 자세히 풉니다.
묵상
만나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람이 있나요? 그 무거움이 어디서 오는지 살펴본 적 있나요?
어리석은 이와 어울려 다니면
오래도록 괴로우니,
어리석은 이와 함께 지냄은
늘 원수와 함께 있는 것과 같고,
지혜로운 이와 함께 지냄은
가족을 만나는 것처럼 즐거우니라.
Bālasaṅgatacārī hi, dīghamaddhāna socati; Dukkho bālehi saṁvāso, amitteneva sabbadā; Dhīro ca sukhasaṁvāso, ñātīnaṁva samāgamo.
법구경 Dhammapada 207 배경
디감앗다나(dīghamaddhāna)는 '오랜 세월 동안'입니다. 잠깐이 아니라 오래간다고 한 점이 이 게송의 무게입니다. 함께 지내는 사람은 하루의 기분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비유가 둘 나옵니다. 하나는 원수와 함께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을 만나는 것입니다. 나띠(ñāti)는 친족을 뜻하는데, 앞의 204게송에서 믿음이 가장 가까운 사이라 했던 것과 함께 읽으면 핏줄이 아니라 마음이 통하는 사이로 읽힙니다.
묵상
함께 있으면 편안해지는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과 보내는 시간을 늘릴 방법이 있을까요?
그러므로 지혜롭고 많이 배운 이,
됨됨이를 몸에 지니고
다짐을 지키는 성인,
그런 참되고 슬기로운 이를
가까이할지니라.
달이 별들의 길을 따라가듯 하라.
Tasmā hi— Dhīrañca paññañca bahussutañca, Dhorayhasīlaṁ vatavantamariyaṁ; Taṁ tādisaṁ sappurisaṁ sumedhaṁ, Bhajetha nakkhattapathaṁva candimā.
법구경 Dhammapada 208 배경
품의 마지막 게송이자 앞 게송들의 결론입니다. 도라이하실라(dhorayhasīla)에서 도라이하(dhorayha)는 짐수레를 끄는 소를 뜻합니다. 됨됨이를 짐수레 끄는 소처럼 묵묵히 지고 간다는 그림입니다. 마지막 비유가 아름답습니다. 달이 별들의 길을 따라간다고 했습니다. 달은 별보다 크고 밝지만 그 길을 따라 움직입니다. 앞서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을 가까이한다는 것이 그를 우러르는 일이 아니라 같은 길을 가는 일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묵상
닮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을 우러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같은 길로 한 걸음 옮기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