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의 일어남인 세 갈애

다시 존재하게 하고 즐김과 탐욕을 동반하며 곳곳에서 즐기는 갈애를 감각적 쾌락·존재·비존재의 세 갈애로 풉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입니까? 다시 존재하게 하고 즐김과 탐욕을 동반하며 이곳저곳에서 즐기는 바로 그 갈애입니다. 곧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입니다. 벗들이여, 이것을 괴로움의 일어남이라 합니다.”

Katamo cāvuso, dukkhasamudayo? Yāyaṁ taṇhā ponobbhavikā nandīrāgasahagatā tatratatrābhinandinī, seyyathidaṁ—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ayaṁ vuccatāvuso, dukkhasamudayo.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괴로움의 목록 다음에는 그 일어남을 설명하는 하나의 갈애와 세 갈래가 나옵니다. ponobbhavikā는 다시 존재하게 함, nandīrāgasahagatā는 즐김과 탐욕을 동반함, tatratatrābhinandinī는 이곳저곳에서 즐김이라는 세 성격입니다. 이어 감각적 쾌락·존재·비존재에 대한 갈애가 정확한 순서로 열거됩니다. 좋아하는 것을 더 원함만이 아니라 계속 존재하려는 방향과 존재하지 않으려는 방향도 같은 갈애의 범위에 들어갑니다. 다음 대목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그 갈애”가 남김없이 사라지는 일을 소멸로 정의합니다.

묵상

감각적 쾌락·존재·비존재에 대한 세 갈애 가운데 뜻이 가장 낯선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마음을 위험하다고 진단하거나 당장 버릴 필요는 없어요. 계속되기를 바람과 사라지기를 바람이 모두 붙듦일 수 있는지만 물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