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과 죽음을 네 측면으로 알아 해방으로 향하다

태어남에 기대어 일어나는 늙음과 죽음을 네 측면으로 아는 일이 해방의 정형과 괴로움의 끝으로 이어집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늙음과 죽음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jarāmaraṇaṁ pajānāti, evaṁ jarāmaraṇasamudayaṁ pajānāti, evaṁ jarāmaraṇanirodhaṁ pajānāti, evaṁ jarāmaraṇanirodhagāminiṁ paṭipad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e… dukkhassantakaro ho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늙음과 죽음을 각각 정의하고 태어남을 그 조건으로 밝힌 뒤, 사리뿟따는 이 네 측면을 아는 성스러운 제자의 결과를 말합니다. 직접 남은 문구는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림과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냄입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그 사이의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침, “‘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음,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킴을 줄입니다. 한국어와 빠알리는 같은 범위를 생략하고 마지막 바른 견해의 네 기준은 온전히 보존합니다.

묵상

늙음과 죽음을 아는 일이 단순한 사실 인정이 아니라 일어남·소멸·길을 함께 보는 일로 제시됩니다. 이 대목이 무겁다면 멈추거나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는다면 네 측면 중 지금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만 남겨 두어도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