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의 네 측면을 다시 묻다

공식 생략된 반복 질문에 사리뿟따가 접촉·일어남·소멸·소멸의 길을 아는 것으로 답합니다.

“좋습니다, 벗이여.” 비구들은 … 다시 물었습니다. “벗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지니는 또 다른 방법도 …” “있습니다, 벗들이여.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접촉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Sādhāvuso”ti kho …pe… apucchuṁ—siyā panāvuso …pe… “siyā, āvuso.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phassañca pajānāti, phassasamudayañca pajānāti, phassanirodhañca pajānāti, phassanirodhagāminiṁ paṭipadañca pajānā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ṁ.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느낌의 결론 다음에 비구들은 다시 묻고, 사리뿟따는 접촉과 그 일어남·소멸·길을 아는 것이 같은 바른 견해에 이르는 방식이라고 답합니다. 질문의 공식 생략표 두 곳은 비구들의 기쁨과 동의, 그리고 바른 견해의 네 기준을 앞 문답과 똑같은 범위로 줄입니다. “있습니다”라는 답과 접촉의 네 측면은 직접 나옵니다. 이어 눈·귀·코·혀·몸·마음의 여섯 접촉이 열거되고, 여섯 감각 영역의 일어남과 소멸이 접촉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응합니다.

묵상

접촉을 단순히 몸이 닿는 일로 한정하지 않고 눈·귀·코·혀·몸·마음의 만남으로 펼치는 구성이 어떻게 들리나요? 감각을 막을 필요는 없어요. 접촉이 일어나려면 감각 영역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관계만 생각해 보아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