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의식과 의지적 형성

눈에서 마음까지 여섯 의식을 밝히고 의지적 형성을 의식의 일어남과 소멸의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의식이며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벗들이여, 여섯 의식 무리가 있습니다. 곧 눈·귀·코·혀·몸·마음의 의식입니다. 의지적 형성의 일어남에서 의식의 일어남이 있고, 의지적 형성의 소멸에서 의식의 소멸이 있습니다. 그 길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 곧 바른 견해 … 바른 집중입니다.”

Katamaṁ panāvuso, viññāṇaṁ, katamo viññāṇasamudayo, katamo viññāṇanirodho, katamā viññāṇanirodhagāminī paṭipadā? Chayime, āvuso, viññāṇakāyā—cakkhuviññāṇaṁ, sotaviññāṇaṁ, ghānaviññāṇaṁ, jivhāviññāṇaṁ, kāyaviññāṇaṁ, manoviññāṇaṁ. Saṅkhārasamudayā viññāṇasamudayo, saṅkhāranirodhā viññāṇa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viññāṇ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의식은 여섯 무리라고 수를 밝히고 눈·귀·코·혀·몸·마음의 의식으로 나뉩니다. 하나의 변하지 않는 의식을 세우지 않고 감각 영역에 따라 서로 다른 여섯 의식을 구별합니다. 이어 의지적 형성의 일어남과 소멸이 의식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응합니다. 고귀한 여덟 갈래 길의 공식 생략표 한 곳은 가운데 여섯 항목을 양언어에서 같은 범위로 줄입니다. 의식도 홀로 생기는 주체가 아니라 앞선 의지적 형성에 기대어 일어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연기의 분석이 더 깊어집니다.

묵상

눈·귀·코·혀·몸·마음의 의식이 하나가 아니라 여섯 무리로 나뉜 점이 어떻게 들리나요? 의식의 본질을 정할 필요는 없어요. 보는 앎과 듣는 앎이 각각 다른 조건에서 나타난다는 한 차이만 느껴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