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과 몸·말·마음으로 지어내는 것을 알아 괴로움을 끝내다

몸·말·마음의 의지적 형성과 무명이라는 조건을 아는 일이 생략 없이 제시된 해방의 정형으로 이어집니다.

벗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처럼 의지적 형성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면,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치며 ‘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습니다.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켜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벗들이여, 이만큼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곧으며,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여 참된 가르침에 이릅니다.

Yato kho, āvuso, ariyasāvako evaṁ saṅkhāre pajānāti, evaṁ saṅkhārasamudayaṁ pajānāti, evaṁ saṅkhāranirodhaṁ pajānāti, evaṁ saṅkhāranirodhagāminiṁ paṭipadaṁ pajānāti, so sabbaso rāgānusayaṁ pahāya, paṭighānusayaṁ paṭivinodetvā, ‘asmī’ti diṭṭhimānānusayaṁ samūhanitvā, avijjaṁ pahāya vijjaṁ uppādetvā, diṭṭheva dhamme dukkhassantakaro hoti—ettāvatāpi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ṁ saddhamman”t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몸·말·마음의 세 의지적 형성을 구별하고 무명을 그 일어남과 소멸의 조건으로 밝힌 뒤, 이 네 측면을 아는 결과가 온전히 반복됩니다. 탐욕의 잠재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반감의 잠재 성향을 물리치며, “‘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의 잠재 성향을 뿌리 뽑는 세 동작이 모두 직접 나옵니다. 이어 무명을 버리고 참된 앎을 일으켜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낸다는 결과와 바른 견해의 네 기준도 생략 없이 이어집니다. 이 완전한 반복은 앞의 공식 생략 범위를 다시 확인해 줍니다.

묵상

몸·말·마음의 의지적 형성이 무명에 기대어 일어난다는 설명에서, 의도와 모름의 관계는 어떻게 느껴지나요? 자신을 탓하거나 숨은 동기를 찾아낼 필요는 없어요. 어떤 반응에는 미처 보지 못한 조건이 있을 수 있다는 정도로 남겨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