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의 네 진리를 모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무명을 괴로움의 네 진리를 모르는 것으로 정의하고 번뇌의 일어남·소멸 및 고귀한 길과 연결합니다.

“벗들이여, 무엇이 무명이며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은 무엇입니까? 벗들이여, 괴로움·괴로움의 일어남·괴로움의 소멸·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벗들이여, 이것을 무명이라 합니다. 번뇌의 일어남에서 무명의 일어남이 있고, 번뇌의 소멸에서 무명의 소멸이 있습니다. 그 길은 고귀한 여덟 갈래 길, 곧 바른 견해 … 바른 집중입니다.”

Katamā panāvuso, avijjā, katamo avijjāsamudayo, katamo avijjānirodho, katamā avijjānirodhagāminī paṭipadā? Yaṁ kho, āvuso, dukkhe aññāṇaṁ, dukkhasamudaye aññāṇaṁ, dukkhanirodhe aññāṇaṁ, dukkhanirodhagāminiyā paṭipadāya aññāṇaṁ—ayaṁ vuccatāvuso, avijjā. Āsavasamudayā avijjāsamudayo, āsavanirodhā avijjā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avijjā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맛지마 니까야 MN 9 바른 견해경 (Sammādiṭṭhisutta)

배경

무명은 추상적인 어리석음이 아니라 괴로움·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네 진리를 각각 알지 못하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네 번의 aññāṇa를 하나의 막연한 “모름”으로 줄이지 않았습니다. 이어 번뇌의 일어남과 소멸이 무명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응합니다. 고귀한 여덟 갈래 길의 공식 생략표 한 곳은 가운데 여섯 항목을 양언어에서 같은 범위로 줄입니다. 이로써 역으로 거슬러 온 연기는 무명에 이르지만, 경은 다시 무명도 번뇌라는 조건에 기대어 있음을 밝힙니다.

묵상

괴로움의 네 진리를 각각 모르는 것이 무명이라는 정의에서 어느 항목이 가장 구체적으로 들리나요? 자신이 무명한지 판정할 필요는 없어요.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구별하는 일이 막연한 자책과 어떻게 다른지만 느껴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