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계에 만족해 멈추지 말라고 밝히다

양심과 신중함만으로 목적을 다 이루었다고 만족할 가능성을 짚고,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수행자의 목적을 잃지 말라고 두 번 알립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양심과 신중함을 갖추었다. 이만하면 충분하고 할 일을 다했다. 수행자의 목적에 이르렀고 더 할 일은 없다.’ 그대들은 그만큼으로 만족할지도 모릅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립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분명히 밝힙니다. ‘수행자의 목적을 찾는 그대들이여,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그 목적을 잃지 마십시오.’

Siyā kho pana, bhikkhave, tumhākaṁ evamassa: ‘hirottappenamha samannāgatā, alamettāvatā katamettāvatā, anuppatto no sāmaññattho, natthi no kiñci uttariṁ karaṇīyan’ti tāvatakeneva tuṭṭhiṁ āpajjeyyātha. Ārocayāmi vo, bhikkhave, paṭivedayāmi vo, bhikkhave: ‘mā vo sāmaññatthikānaṁ sataṁ sāmaññattho parihāyi, sati uttariṁ karaṇīye’.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첫 단계를 제시한 즉시 세존은 거기에 머무는 위험을 말합니다. “충분하다·할 일을 다했다·목적에 이르렀다·더 할 일이 없다”는 네 판단을 인용한 뒤, 그만큼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어 “수행자들이여”를 두 번 부르며 알리고 분명히 밝힌 뒤, 아직 더 할 일이 있다는 조건 아래 수행자의 목적을 잃지 말라고 합니다. 이 후렴은 뒤의 여덟 단계마다 누적 목록과 함께 반복됩니다. 만족 자체를 비난하기보다 부분적 성취를 최종 완성으로 오인하지 않게 하는 인과의 고리입니다.

묵상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이라는 조건이 무한히 자신을 몰아붙이라는 말과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이미 이룬 것을 인정하면서도 끝이라고 단정하지 않는 자리가 지금 한 가지 있다면 무엇인가요? 없다면 이 네 판단의 반복만 느껴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