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 마하앗사뿌라경

맛지마 니까야 MN 39

수행자라는 이름을 참되게 하는 양심·청정·감각 단속·다섯 장애의 버림·네 깊은 집중과 세 앎의 점진적 길을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59구절

이 경을 59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앗사뿌라에서 수행자라는 이름을 묻다 1구절

세존이 앗사뿌라에서 비구들을 부르고, 사람들이 그들을 수행자라 부르며 그들 자신도 그렇게 선언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앙가의 앗사뿌라라는 마을에 머무셨습니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수행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존자시여.” 수행자들이 세존께 대답했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사람들은 그대들을 ‘수행자, 수행자’라고 여깁니다. 또 누가 ‘그대들은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그대들은 ‘우리는 수행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bhagavā aṅgesu viharati assapuraṁ nāma aṅgānaṁ nigamo.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bhikkhavo”ti.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Bhagavā etadavoca: “Samaṇā samaṇāti vo, bhikkhave, jano sañjānāti. Tumhe ca pana ‘ke tumhe’ti puṭṭhā samānā ‘samaṇāmhā’ti paṭijānātha;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전승 문구와 앙가의 앗사뿌라라는 장소 뒤, 세존과 수행자들이 “수행자들이여”와 “존자시여”로 서로 부르고 응답합니다. 발화 도입을 끊지 않고 세존의 첫 두 문장까지 묶었습니다. 사람들은 수행자들을 “수행자”라고 부르고, 누가 정체를 물으면 수행자들도 스스로 수행자라고 선언합니다. 이 이름과 자기 선언의 일치가 경 전체의 문제입니다. 이후의 긴 단계들은 새로운 신분을 얻는 법보다 이미 내세운 이름을 실제 삶으로 참되게 하는 조건을 밝힙니다.

묵상

“그대들은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우리는 수행자입니다”라는 대답 사이에서 어떤 무게가 느껴지나요? 내가 쓰는 이름이나 역할 가운데 실제 행동과 맞는지 조용히 살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바로 답하지 못하거나 지금은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2 이름과 출가가 헛되지 않게 배우다 1구절

수행자와 바라문을 만드는 상태를 실천해 이름과 선언을 참되게 하고, 보시와 출가가 결실을 맺게 하라고 가르칩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런 이름과 선언을 지닌 그대들은 이렇게 배워야 합니다. ‘수행자와 바라문을 만드는 상태를 받아들여 실천하자. 그러면 우리의 이름은 참되고 선언은 사실이 될 것이다. 우리가 가사·탁발 음식·거처·병에 필요한 약과 물품을 제공받아 사용하는 그 보시자들의 행위는 우리를 통해 큰 결실과 이익이 될 것이다. 우리의 출가도 헛되지 않고 열매와 결실이 있을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tesaṁ vo, bhikkhave, evaṁsamaññānaṁ sataṁ evaṁpaṭiññānaṁ sataṁ ‘ye dhammā samaṇakaraṇā ca brāhmaṇakaraṇā ca te dhamme samādāya vattissāma, evaṁ no ayaṁ amhākaṁ samaññā ca saccā bhavissati paṭiññā ca bhūtā. Yesañca mayaṁ cīvarapiṇḍapātasenāsana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aṁ paribhuñjāma, tesaṁ te kārā amhesu mahapphalā bhavissanti mahānisaṁsā, amhākañcevāyaṁ pabbajjā avañjhā bhavissati saphalā saudrayā’ti.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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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세존은 수행자라는 이름과 선언을 지닌 이들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한 문장 안에서 두 결과로 풉니다. 첫째, 수행자와 바라문을 만드는 상태를 받아들여 실천하면 이름은 참되고 선언은 사실이 됩니다. 둘째, 가사·탁발 음식·거처·병에 필요한 약과 물품을 제공한 이들의 행위가 큰 결실과 이익이 되고, 자신의 출가도 헛되지 않고 열매를 맺습니다. 네 가지 필수품과 두 결실을 줄이지 않았습니다. 수행은 개인의 명예만이 아니라 타인의 믿음과 베풂을 헛되게 하지 않는 책임으로 놓입니다.

묵상

가사·음식·거처·약을 제공한 이들의 행위까지 결실을 맺게 한다는 말은 수행의 책임을 어떻게 넓혀 보이나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한 자리에서 그 도움을 헛되지 않게 하는 작은 선택이 떠오르나요?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3 첫 단계로 양심과 신중함을 갖추다 1구절

수행자와 바라문을 만드는 상태를 묻고,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양심과 결과를 삼가는 신중함을 첫 훈련으로 제시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와 바라문을 만드는 상태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양심과 신중함을 갖추자.’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Katame ca, bhikkhave, dhammā samaṇakaraṇā ca brāhmaṇakaraṇā ca? ‘Hirottappena samannāgatā bhavissāmā’ti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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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무엇이 수행자와 바라문을 만드는가?”라는 직접 질문에 첫 답으로 hiri와 ottappa의 결합이 놓입니다. 여기서는 자신을 미워하는 수치심이나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해로운 일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양심과 그 결과를 헤아려 삼가는 신중함으로 옮겼습니다. 세존은 두 성질을 갖추자고 일인칭 복수의 훈련 문장으로 말하게 합니다. 이 둘은 완성의 표지가 아니라 뒤의 몸·말·마음·생계와 감각·음식·깨어 있음·분명한 앎으로 나아가는 첫 바탕입니다.

묵상

양심과 신중함을 나란히 읽을 때 둘이 같은 말처럼 들리나요, 아니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느껴지나요? 최근의 선택을 평가표로 만들지 말고, 행동 전 멈추게 한 느낌과 결과를 헤아린 생각 가운데 하나가 있었는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4 첫 단계에 만족해 멈추지 말라고 밝히다 1구절

양심과 신중함만으로 목적을 다 이루었다고 만족할 가능성을 짚고,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수행자의 목적을 잃지 말라고 두 번 알립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양심과 신중함을 갖추었다. 이만하면 충분하고 할 일을 다했다. 수행자의 목적에 이르렀고 더 할 일은 없다.’ 그대들은 그만큼으로 만족할지도 모릅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립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분명히 밝힙니다. ‘수행자의 목적을 찾는 그대들이여,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그 목적을 잃지 마십시오.’

Siyā kho pana, bhikkhave, tumhākaṁ evamassa: ‘hirottappenamha samannāgatā, alamettāvatā katamettāvatā, anuppatto no sāmaññattho, natthi no kiñci uttariṁ karaṇīyan’ti tāvatakeneva tuṭṭhiṁ āpajjeyyātha. Ārocayāmi vo, bhikkhave, paṭivedayāmi vo, bhikkhave: ‘mā vo sāmaññatthikānaṁ sataṁ sāmaññattho parihāyi, sati uttariṁ karaṇī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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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첫 단계를 제시한 즉시 세존은 거기에 머무는 위험을 말합니다. “충분하다·할 일을 다했다·목적에 이르렀다·더 할 일이 없다”는 네 판단을 인용한 뒤, 그만큼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어 “수행자들이여”를 두 번 부르며 알리고 분명히 밝힌 뒤, 아직 더 할 일이 있다는 조건 아래 수행자의 목적을 잃지 말라고 합니다. 이 후렴은 뒤의 여덟 단계마다 누적 목록과 함께 반복됩니다. 만족 자체를 비난하기보다 부분적 성취를 최종 완성으로 오인하지 않게 하는 인과의 고리입니다.

묵상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이라는 조건이 무한히 자신을 몰아붙이라는 말과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이미 이룬 것을 인정하면서도 끝이라고 단정하지 않는 자리가 지금 한 가지 있다면 무엇인가요? 없다면 이 네 판단의 반복만 느껴보아도 괜찮아요.

5 몸으로 하는 행위를 순수하게 닦다 1구절

몸의 행위를 순수하고 분명히 드러나며 빈틈없고 단속되게 하되, 그 순수함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낮추지 않게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더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몸으로 하는 행위는 순수하고 분명히 드러나며, 빈틈이 없고 단속되어 있을 것이다. 그 순수한 몸의 행위 때문에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낮추지 않을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Kiñca, bhikkhave, uttariṁ karaṇīyaṁ? ‘Parisuddho no kāyasamācāro bhavissati uttāno vivaṭo na ca chiddavā saṁvuto ca. Tāya ca pana parisuddhakāyasamācāratāya nevattānukkaṁsessāma na paraṁ vambhessāmā’ti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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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더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뒤 첫 실천으로 몸의 행위가 나옵니다. 순수함만 말하지 않고 분명히 드러남·빈틈없음·단속됨의 세 성질을 더합니다. 이어 그 순수함을 근거로 자신을 높이지 않고 남을 낮추지 않겠다는 두 부정을 붙입니다. 좋은 행동이 비교와 우월감의 재료가 되면 수행자의 목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위의 내용과 그 행위를 소유하는 태도를 한 단계 안에 함께 두며, 말·마음·생계에서도 같은 구조가 반복됩니다.

묵상

몸으로 한 좋은 행동을 떠올릴 때 그 행동 자체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을 구별할 수 있나요? 스스로를 칭찬하지 말라는 요구로 읽기보다, 그 행동이 누구를 낮추는 근거로 바뀌는 순간이 있는지만 부담 없이 살펴볼 수 있을까요?

6 몸의 순수함에도 멈추지 않다 1구절

양심과 신중함에 몸의 순수함을 더한 뒤에도 충분하다고 만족할 수 있음을 밝히고, 여전히 더 할 일이 있다고 경계합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양심과 신중함을 갖추었고, 몸으로 하는 행위가 순수하다. 이만하면 충분하고 할 일을 다했다. 수행자의 목적에 이르렀고 더 할 일은 없다.’ 그대들은 그만큼으로 만족할지도 모릅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립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분명히 밝힙니다. ‘수행자의 목적을 찾는 그대들이여,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그 목적을 잃지 마십시오.’

Siyā kho pana, bhikkhave, tumhākaṁ evamassa: ‘hirottappenamha samannāgatā, parisuddho no kāyasamācāro; alamettāvatā katamettāvatā, anuppatto no sāmaññattho, natthi no kiñci uttariṁ karaṇīyan’ti tāvatakeneva tuṭṭhiṁ āpajjeyyātha. Ārocayāmi vo, bhikkhave, paṭivedayāmi vo, bhikkhave: ‘mā vo sāmaññatthikānaṁ sataṁ sāmaññattho parihāyi, sati uttariṁ karaṇī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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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첫 후렴의 목록이 이제 양심·신중함과 순수한 몸의 행위로 늘어납니다. 세존은 두 성취를 인정하는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면서도, 그것만으로 충분하고 목적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해 멈출 수 있음을 경계합니다. “수행자들이여”라는 호격과 알림·분명히 밝힘이 각각 두 번 나오고,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목적을 잃지 말라는 조건도 온전히 반복됩니다. 누적 목록은 앞 단계를 버리고 새 단계로 옮긴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닦은 바탕 위에 다음 실천을 더한다는 구조입니다.

묵상

양심과 몸의 행위가 갖추어진 뒤에도 더 할 일이 남는다는 말은 어떻게 들리나요? “충분하지 않다”는 자책보다, 한 영역의 정돈이 삶 전체의 완성과 같지는 않다는 구별로 읽을 때 무엇이 달라지나요? 답을 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7 말로 하는 행위를 순수하게 닦다 1구절

말의 행위를 순수하고 분명히 드러나며 빈틈없고 단속되게 하되, 그 순수함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낮추지 않게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더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말로 하는 행위는 순수하고 분명히 드러나며, 빈틈이 없고 단속되어 있을 것이다. 그 순수한 말의 행위 때문에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낮추지 않을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Kiñca, bhikkhave, uttariṁ karaṇīyaṁ? ‘Parisuddho no vacīsamācāro bhavissati uttāno vivaṭo na ca chiddavā saṁvuto ca. Tāya ca pana parisuddhavacīsamācāratāya nevattānukkaṁsessāma na paraṁ vambhessāmā’ti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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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몸의 행위 다음에는 말의 행위가 같은 문법으로 놓입니다. 순수함·분명히 드러남·빈틈없음·단속됨을 갖추고, 그 순수함 때문에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낮추지 않겠다고 배웁니다. 모든 성질과 두 부정이 다시 나오므로 이 반복을 전부 읽어야 몸·말·마음·생계의 네 청정이 같은 구조로 수행됨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의 수행은 거짓이나 거친 말의 회피만을 암시하는 요약으로 줄이지 않고, 숨기거나 새는 데가 없는 말과 그 말에 붙는 우월감까지 함께 점검하게 합니다.

묵상

내가 한 바른말이 어느 순간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비교로 바뀐 적이 있나요? 그 일을 잘못이라고 확정하지 않고, 말의 내용과 말하는 태도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점만 살펴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떠오르는 장면이 없어도 괜찮아요.

8 몸과 말이 순수해도 계속 나아가다 1구절

양심과 신중함, 몸과 말의 순수함을 누적해 말한 뒤에도 목적을 다 이루었다고 만족하지 말라고 같은 경계를 되풀이합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양심과 신중함을 갖추었고, 몸과 말로 하는 행위가 순수하다. 이만하면 충분하고 할 일을 다했다. 수행자의 목적에 이르렀고 더 할 일은 없다.’ 그대들은 그만큼으로 만족할지도 모릅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립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분명히 밝힙니다. ‘수행자의 목적을 찾는 그대들이여,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그 목적을 잃지 마십시오.’

Siyā kho pana, bhikkhave, tumhākaṁ evamassa: ‘hirottappenamha samannāgatā, parisuddho no kāyasamācāro, parisuddho vacīsamācāro; alamettāvatā katamettāvatā, anuppatto no sāmaññattho, natthi no kiñci uttariṁ karaṇīyan’ti tāvatakeneva tuṭṭhiṁ āpajjeyyātha. Ārocayāmi vo, bhikkhave, paṭivedayāmi vo, bhikkhave: ‘mā vo sāmaññatthikānaṁ sataṁ sāmaññattho parihāyi, sati uttariṁ karaṇī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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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번 만족 문장은 앞의 양심·신중함과 몸의 순수함에 말의 순수함을 더해 세 단계의 성취를 셉니다. 나머지 네 판단과 두 번의 호격, 알림과 분명히 밝힘, 더 할 일이 있다는 조건은 바뀌지 않습니다. 같은 말이 다시 나오는 까닭은 이미 닦은 기초 위에 다음 실천을 더한다는 누적 구조를 보이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늘어나는 목록은 성취를 무효로 만들지 않으면서 범위를 확장합니다. 몸만 바르고 말이 흐려질 수 있는 틈을 닫고, 이어 마음의 행위까지 살피게 하는 전환입니다.

묵상

몸과 말이라는 두 영역을 함께 돌아볼 때 한쪽은 비교적 분명하고 다른 쪽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나요? 모두 잘해야 한다고 채점하기보다, 행동과 말 사이에서 방향이 달랐던 한 순간이 있는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9 마음으로 하는 행위를 순수하게 닦다 1구절

마음의 행위를 순수하고 분명히 드러나며 빈틈없고 단속되게 하되, 그 순수함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낮추지 않게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더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으로 하는 행위는 순수하고 분명히 드러나며, 빈틈이 없고 단속되어 있을 것이다. 그 순수한 마음의 행위 때문에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낮추지 않을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Kiñca, bhikkhave, uttariṁ karaṇīyaṁ? ‘Parisuddho no manosamācāro bhavissati uttāno vivaṭo na ca chiddavā saṁvuto ca. Tāya ca pana parisuddhamanosamācāratāya nevattānukkaṁsessāma na paraṁ vambhessāmā’ti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ṁ.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몸과 말에 이어 마음으로 하는 행위가 같은 네 성질과 두 부정으로 제시됩니다. 마음의 행위도 순수하고 분명히 드러나며 빈틈이 없고 단속되어야 하고, 그 상태를 근거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낮추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서 마음은 감정을 억지로 깨끗하게 꾸미라는 명령보다, 행동과 말이 생겨나는 안쪽 방향까지 수행의 범위에 포함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세존은 아직 구체적인 다섯 장애를 열거하지 않고, 먼저 마음의 행위 전반과 그것을 자랑하지 않는 태도를 세웁니다.

묵상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나 말과 마음속 방향이 달랐던 순간이 있나요? 속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몰아붙이지 말고, 두 층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무엇이 조금 더 분명해지는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10 몸·말·마음이 순수해도 멈추지 않다 1구절

양심과 신중함에 몸·말·마음의 순수함을 모두 더한 뒤에도 충분하다고 여기지 말고 남은 목적을 지키게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양심과 신중함을 갖추었고, 몸과 말과 마음으로 하는 행위가 순수하다. 이만하면 충분하고 할 일을 다했다. 수행자의 목적에 이르렀고 더 할 일은 없다.’ 그대들은 그만큼으로 만족할지도 모릅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립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분명히 밝힙니다. ‘수행자의 목적을 찾는 그대들이여,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그 목적을 잃지 마십시오.’

Siyā kho pana, bhikkhave, tumhākaṁ evamassa: ‘hirottappenamha samannāgatā, parisuddho no kāyasamācāro, parisuddho vacīsamācāro, parisuddho manosamācāro; alamettāvatā katamettāvatā, anuppatto no sāmaññattho, natthi no kiñci uttariṁ karaṇīyan’ti tāvatakeneva tuṭṭhiṁ āpajjeyyātha. Ārocayāmi vo, bhikkhave, paṭivedayāmi vo, bhikkhave: ‘mā vo sāmaññatthikānaṁ sataṁ sāmaññattho parihāyi, sati uttariṁ karaṇī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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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누적 목록은 이제 몸·말·마음의 세 행위를 모두 포함합니다. 세존은 이 세 영역이 순수해진 성취를 인용하면서, “더 할 일은 없다”는 결론으로 곧장 건너뛰는 것을 막습니다. 알림과 분명히 밝힘마다 “수행자들이여”를 되풀이하고, 더 할 일이 있을 때 목적을 잃지 말라는 조건도 같은 자리에 둡니다. 수행은 안과 밖 가운데 하나만 고르는 일이 아니라 세 행위를 함께 정돈한 뒤 생계를 살피는 쪽으로 넓어집니다. 반복은 전진의 속도보다 빠뜨리지 않는 범위를 보여 줍니다.

묵상

몸·말·마음의 세 영역이 한 목록에 놓일 때 지금 가장 쉽게 보이는 것과 가장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요? 셋을 똑같이 잘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고, 보이는 범위가 서로 다르다는 점만 인정해도 괜찮아요.

11 생계를 순수하게 닦다 1구절

생계를 순수하고 분명히 드러나며 빈틈없고 단속되게 하되, 그 순수함으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낮추지 않게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더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생계는 순수하고 분명히 드러나며, 빈틈이 없고 단속되어 있을 것이다. 그 순수한 생계 때문에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낮추지 않을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Kiñca, bhikkhave, uttariṁ karaṇīyaṁ? ‘Parisuddho no ājīvo bhavissati uttāno vivaṭo na ca chiddavā saṁvuto ca. Tāya ca pana parisuddhājīvatāya nevattānukkaṁsessāma na paraṁ vambhessāmā’ti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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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세 행위 다음에는 살아가는 수단인 생계가 놓입니다. 세존은 생계도 순수하고 분명히 드러나며 빈틈이 없고 단속되어야 한다고 하고, 그것을 이유로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낮추지 않겠다는 두 부정을 붙입니다. 생계를 특정 직업 목록으로 좁히지 않고, 자신을 지탱하는 방식이 숨길 필요 없이 드러날 수 있는지와 다른 이를 평가하는 재료가 되지 않는지를 함께 봅니다. 몸·말·마음이 개인적 순간의 선택이라면 생계는 그 선택이 반복되는 생활 구조로 이어지는 자리입니다.

묵상

살아가는 방식 가운데 남에게 숨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스스로도 자세히 보지 않았던 부분이 있나요? 직업 전체를 좋고 나쁘다고 단정하지 말고, 조금 더 분명히 드러내어 살피고 싶은 한 관계나 선택만 떠올릴 수 있을까요?

12 네 기초가 순수해도 목적을 잃지 않다 1구절

양심과 신중함, 몸·말·마음의 행위, 생계까지 누적한 뒤에도 최종 목적에 이르렀다고 만족하지 않게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양심과 신중함을 갖추었고, 몸과 말과 마음으로 하는 행위와 생계가 순수하다. 이만하면 충분하고 할 일을 다했다. 수행자의 목적에 이르렀고 더 할 일은 없다.’ 그대들은 그만큼으로 만족할지도 모릅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립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분명히 밝힙니다. ‘수행자의 목적을 찾는 그대들이여,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그 목적을 잃지 마십시오.’

Siyā kho pana, bhikkhave, tumhākaṁ evamassa: ‘hirottappenamha samannāgatā, parisuddho no kāyasamācāro, parisuddho vacīsamācāro, parisuddho manosamācāro, parisuddho ājīvo; alamettāvatā katamettāvatā, anuppatto no sāmaññattho, natthi no kiñci uttariṁ karaṇīyan’ti tāvatakeneva tuṭṭhiṁ āpajjeyyātha. Ārocayāmi vo, bhikkhave, paṭivedayāmi vo, bhikkhave: ‘mā vo sāmaññatthikānaṁ sataṁ sāmaññattho parihāyi, sati uttariṁ karaṇī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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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렴은 양심과 신중함, 순수한 몸·말·마음의 행위, 순수한 생계를 한꺼번에 다시 셉니다. 앞에서 하나씩 닦은 네 기초가 사라지지 않고 모두 누적됩니다. 그럼에도 “충분하다·할 일을 다했다·목적에 이르렀다·더 할 일이 없다”는 결론은 아직 이르다고 밝힙니다. 두 번의 호격과 두 선언 뒤에 같은 조건문이 반복되며, 이어질 감각의 문 지킴이 도덕적 행위와 생계 위에 더해집니다. 이름값은 한 영역의 청정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경의 계단식 논리가 또렷해집니다.

묵상

몸·말·마음·생계가 함께 놓인 네 기초를 읽을 때 완성의 목록보다 서로 지탱하는 관계로 보이나요? 한 영역이 다른 영역에 영향을 준 경험이 있다면 무엇이며, 없다면 지금 가장 낯선 항목 하나만 골라도 괜찮아요.

13 눈의 문에서 표상과 세부를 붙잡지 않다 1구절

눈으로 형상을 보고 표상과 세세한 특징을 붙잡지 않으며, 탐욕과 근심이 밀려들 조건에서 눈을 단속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더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감각의 문을 지킬 것이다. 눈으로 형상을 보고 표상을 붙잡지 않으며 세세한 특징도 붙잡지 않을 것이다. 눈의 감각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낼 때 탐욕과 근심이라는 해롭고 선하지 않은 상태가 밀려들 수 있으므로, 단속을 위해 실천하고 눈의 감각 기능을 지키며 그 단속을 갖출 것이다.

Kiñca, bhikkhave, uttariṁ karaṇīyaṁ? ‘Indriyesu guttadvārā bhavissāma; cakkhunā rūpaṁ disvā na nimittaggāhī nānubyañjanaggāhī. Yatvādhikaraṇamenaṁ cakkhundriyaṁ asaṁvutaṁ viharantaṁ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ṁ, tassa saṁvarāya paṭipajjissāma, rakkhissāma cakkhundriyaṁ, cakkhundriye saṁvaraṁ āpajjissāma.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네 기초 뒤 다섯째로 감각의 문 지킴이 시작됩니다. 눈으로 형상을 보는 일 자체와, 본 뒤 표상과 세세한 특징을 붙잡는 일을 나누고 후자의 두 동작을 부정합니다. 눈을 단속하지 않으면 탐욕과 근심이라는 해롭고 선하지 않은 상태가 밀려들 수 있다는 조건과 결과가 이어집니다. 그래서 단속을 위해 실천하기·눈의 감각 기능 지키기·단속 갖추기의 세 동작을 약속합니다. 감각을 차단하라는 말이 아니라 대상과 붙잡음 사이의 과정을 구별해 지키는 훈련입니다.

묵상

형상을 본 순간과 그 표상이나 세부를 계속 붙드는 순간이 다르게 느껴지나요? 눈을 피하거나 반응을 즉시 멈출 필요는 없어요. 지금 보이는 것 가운데 주의가 오래 머무는 한 부분만 알아차려도 괜찮아요.

14 귀부터 몸까지 생략하고 마음의 문을 지키다 1구절

귀·코·혀·몸의 네 공식 생략을 보존하고, 마음에 나타나는 것의 표상과 세부를 붙잡지 않는 단속을 온전히 밝힙니다.

귀로 소리를 듣고 … 코로 냄새를 맡고 … 혀로 맛을 보고 …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 마음으로 마음에 나타나는 것을 알고 표상을 붙잡지 않으며 세세한 특징도 붙잡지 않을 것이다. 마음의 감각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낼 때 탐욕과 근심이라는 해롭고 선하지 않은 상태가 밀려들 수 있으므로, 단속을 위해 실천하고 마음의 감각 기능을 지키며 그 단속을 갖출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Sotena saddaṁ sutvā …pe… ghānena gandhaṁ ghāyitvā …pe… jivhāya rasaṁ sāyitvā …pe… kāyena phoṭṭhabbaṁ phusitvā …pe… manasā dhammaṁ viññāya na nimittaggāhī nānubyañjanaggāhī. Yatvādhikaraṇamenaṁ manindriyaṁ asaṁvutaṁ viharantaṁ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ṁ, tassa saṁvarāya paṭipajjissāma, rakkhissāma manindriyaṁ, manindriye saṁvaraṁ āpajjissāmā’ti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ṁ.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눈의 온전한 설명 뒤 귀·코·혀·몸은 각각 감각 작용 다음에 공식 반복 생략 표지 “…pe…”를 둡니다. 귀·코·혀·몸의 네 자리에 종류·순서·수량이 같은 표지가 놓여 각 감각에 동일한 구조가 이어짐을 알립니다. 마지막 마음은 다시 온전히 펼쳐, 마음에 나타나는 것을 안 뒤 표상과 세부를 붙잡지 않는 두 부정, 무단속의 조건과 탐욕·근심이 밀려드는 결과, 실천·지킴·단속 갖춤을 눈과 같은 순서로 말합니다. 여섯 감각 가운데 중간 네 갈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같은 구조로 적용됨을 표지가 보여 줍니다.

묵상

소리·냄새·맛·감촉·마음에 나타나는 것 가운데 표상과 세부를 오래 붙드는 경험이 있나요? 어느 감각인지 고르기 어렵다면 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네 반복 표지와 마지막 마음의 온전한 설명이 주는 리듬만 느껴볼 수도 있어요.

15 감각의 문을 지킨 뒤에도 계속 배우다 1구절

앞의 네 기초에 감각의 문 지킴을 더해 누적한 뒤에도 충분하다고 멈추지 말고 남은 목적을 지키게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양심과 신중함을 갖추었고, 몸·말·마음의 행위와 생계가 순수하며, 감각의 문을 지킨다. 이만하면 충분하고 할 일을 다했다. 수행자의 목적에 이르렀고 더 할 일은 없다.’ 그대들은 그만큼으로 만족할지도 모릅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립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분명히 밝힙니다. ‘수행자의 목적을 찾는 그대들이여,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그 목적을 잃지 마십시오.’

Siyā kho pana, bhikkhave, tumhākaṁ evamassa: ‘hirottappenamha samannāgatā, parisuddho no kāyasamācāro, parisuddho vacīsamācāro, parisuddho manosamācāro, parisuddho ājīvo, indriyesumha guttadvārā; alamettāvatā katamettāvatā, anuppatto no sāmaññattho, natthi no kiñci uttariṁ karaṇīyan’ti tāvatakeneva tuṭṭhiṁ āpajjeyyātha. Ārocayāmi vo, bhikkhave, paṭivedayāmi vo, bhikkhave: ‘mā vo sāmaññatthikānaṁ sataṁ sāmaññattho parihāyi, sati uttariṁ karaṇīye’.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이번 누적 목록에는 양심과 신중함, 순수한 몸·말·마음의 행위와 생계에 감각의 문 지킴이 더해집니다. 다섯 단계가 갖추어졌어도 세존은 충분하다고 만족하여 수행자의 목적을 다 이루었다고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앞 후렴과 마찬가지로 네 성급한 판단, 두 번의 “수행자들이여”, 알림과 분명히 밝힘, 더 할 일이 있다는 조건을 빠짐없이 반복합니다. 감각 단속은 계행을 대신하는 새 방법이 아니라 이미 닦은 행위와 생계를 일상의 감각 접촉까지 이어 주는 층입니다.

묵상

감각을 지키는 일이 앞의 몸·말·마음·생계와 따로 떨어진 기술처럼 느껴지나요, 아니면 그 선택들이 시작되는 자리로 보이나요? 최근 한 감각 경험이 말이나 행동으로 이어진 흐름을 부담 없이 돌아볼 수 있을까요?

16 음식에서 알맞은 양과 목적을 살피다 1구절

감각 단속 뒤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알고, 지혜롭게 살펴 먹겠다는 여섯째 훈련을 시작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더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알고, 지혜롭게 살펴 음식을 먹을 것이다.

Kiñca, bhikkhave, uttariṁ karaṇīyaṁ? ‘Bhojane mattaññuno bhavissāma, paṭisaṅkhā yoniso āhāraṁ āharissā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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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더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반복 질문 뒤 여섯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bhojane mattaññū는 단순히 적게 먹는다는 수량 명령보다 음식에서 알맞은 정도를 안다는 뜻이고, paṭisaṅkhā yoniso는 먹기 전에 그 목적을 지혜롭게 살핀다는 틀입니다. 이 두 문장은 이어지는 네 부정·세 목적·두 느낌의 방향·세 결과를 여는 발화이므로 그 긴 내용과 경계를 나누되 같은 안쪽 인용의 시작임을 따옴표로 보존했습니다. 음식의 양과 목적은 몸을 통제하는 성적표가 아니라 청정한 삶을 지탱하는 조건입니다.

묵상

“알맞은 양”과 “목적을 지혜롭게 살핌” 가운데 어느 말이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나요? 먹은 양이나 몸을 평가하지 말고, 한 끼를 시작할 때 몸을 지탱하려는 필요가 느껴진 적이 있는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불편하면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17 음식의 네 목적을 버리고 세 결과를 바라다 1구절

즐김·취함·꾸밈·치장을 부정하고 몸의 유지·해로움의 그침·청정한 삶을 위해 먹으며, 두 느낌과 세 결과를 밝힙니다.

즐기거나 취하거나 꾸미거나 치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 몸을 지탱하고 유지해 해로움을 그치며 청정한 삶을 돕기 위해서다. 이렇게 예전의 괴로운 느낌을 물리치고 새로운 괴로운 느낌을 일으키지 않으리니, 우리에게 살아갈 힘과 허물없음과 편안한 머묾이 있을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neva davāya na madāya na maṇḍanāya na vibhūsanāya yāvadeva imassa kāyassa ṭhitiyā yāpanāya, vihiṁsūparatiyā, brahmacariyānuggahāya, iti purāṇañca vedanaṁ paṭihaṅkhāma navañca vedanaṁ na uppādessāma, yātrā ca no bhavissati, anavajjatā ca, phāsu vihāro cā’ti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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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안쪽 음식 성찰의 본문입니다. 즐김·취함·꾸밈·치장이라는 네 목적을 차례로 부정한 뒤, 몸의 지탱과 유지·해로움의 그침·청정한 삶의 도움이라는 세 방향을 긍정합니다. 이어 예전의 괴로운 느낌을 물리치고 새로운 괴로운 느낌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두 움직임, 살아갈 힘·허물없음·편안한 머묾이라는 세 결과를 셉니다. 이 한 문장이 목록 전체를 이루므로 의미를 끊지 않고, 내부의 의미 경계에서만 줄을 나누었습니다. 목적은 엄격함이나 외모가 아니라 몸과 수행을 무리 없이 지속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즐김·취함·꾸밈·치장이라는 네 말과 살아갈 힘·허물없음·편안한 머묾이라는 세 말 가운데 지금 덜 부담스럽게 읽히는 하나가 있나요? 음식이나 몸을 떠올리기 어렵다면 문장의 수량과 대조만 살펴보아도 괜찮아요.

18 음식의 알맞은 양을 갖추었다고 만족할 수 있다 1구절

앞의 다섯 단계에 음식의 알맞은 양을 더한 뒤, 이만하면 충분하고 수행자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만족할 가능성을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느니라. ‘우리는 양심과 신중함을 갖추었고, 몸·말·마음의 행위와 생계가 순수하며, 감각의 문을 지키고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안다. 이만하면 충분하고 할 일을 다했다. 수행자의 목적에 이르렀고 더 할 일은 없다.’ 그대들은 그만큼으로 만족할지도 모르느니라.

Siyā kho pana, bhikkhave, tumhākaṁ evamassa: ‘hirottappenamha samannāgatā, parisuddho no kāyasamācāro, parisuddho vacīsamācāro, parisuddho manosamācāro, parisuddho ājīvo, indriyesumha guttadvārā, bhojane mattaññuno; alamettāvatā katamettāvatā, anuppatto no sāmaññattho, natthi no kiñci uttariṁ karaṇīyan’ti tāvatakeneva tuṭṭhiṁ āpajjeyyātha.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누적 목록은 양심과 신중함, 몸·말·마음·생계의 네 청정, 감각의 문 지킴에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앎까지 더합니다. 이어 “충분하다·할 일을 다했다·수행자의 목적에 이르렀다·더 할 일은 없다”는 네 판단을 직접 인용하고, 그만큼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음식 성찰을 갖추었다는 사실도 곧바로 최종 목적의 완성을 뜻하지 않는다는 전환입니다. 이 생각과 판단을 한 묶음으로 두고, 세존의 두 선언과 남은 일에 대한 경계는 이어지는 대목에 온전히 놓았습니다.

묵상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안다는 한 실천이 수행 전체를 대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떻게 들리나요? 한 가지 습관을 잘 지켰을 때 다른 영역까지 모두 괜찮다고 여기거나, 반대로 하나가 어려워 전체를 실패로 본 적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19 음식의 절제 뒤에도 목적을 잃지 말라고 밝히다 1구절

세존이 두 번 부르고 알린 뒤,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수행자의 목적을 잃지 말라고 음식 절제 단계의 후렴을 닫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리느니라.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분명히 밝히느니라. ‘수행자의 목적을 찾는 그대들이여,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그 목적을 잃지 말라.’

Ārocayāmi vo, bhikkhave, paṭivedayāmi vo, bhikkhave: ‘mā vo, sāmaññatthikānaṁ sataṁ sāmaññattho parihāyi sati uttariṁ karaṇīye’.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세존은 “수행자들이여”를 두 번 반복하며 먼저 알리고 이어 분명히 밝힙니다. 그 뒤 “수행자의 목적을 찾는 그대들이여”라고 부르고,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이라는 조건 아래 그 목적을 잃지 말라고 합니다.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아는 단계의 경계가 이 두 문장으로 완결됩니다. 앞의 생각과 네 판단을 억지로 한 인용 안에서 끊지 않고, 화자의 직접 선언과 조건문도 함께 보존했습니다. 다음에는 음식의 목적과 느낌을 살피는 태도가 하루의 깨어 있음으로 넓어집니다.

묵상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목적을 잃지 말라는 말은 음식 절제를 완벽하게 하라는 요구와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한 습관의 성취나 어려움에 전체 방향이 가려졌던 경험이 있는지만 부담 없이 살펴볼 수 있을까요?

20 낮과 밤 첫 시각에 마음을 정화하다 1구절

깨어 있음에 전념하여 낮과 밤의 첫 시각에 경행과 좌선으로 장애에서 마음을 정화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더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깨어 있음에 전념할 것이다. 낮에는 경행과 좌선으로 장애에서 마음을 정화할 것이다. 밤의 첫 시각에도 경행과 좌선으로 장애에서 마음을 정화할 것이다.

Kiñca, bhikkhave, uttariṁ karaṇīyaṁ? ‘Jāgariyaṁ anuyuttā bhavissāma, divasaṁ caṅkamena nisajjāya āvaraṇīyehi dhammehi cittaṁ parisodhessāma. Rattiyā paṭhamaṁ yāmaṁ caṅkamena nisajjāya āvaraṇīyehi dhammehi cittaṁ parisodhessā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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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일곱째 단계는 깨어 있음에 전념하는 하루의 배열입니다. 먼저 낮과 밤의 첫 시각에 경행과 좌선을 하며 장애에서 마음을 정화한다는 동일한 동작을 두 번 적습니다. 경행·좌선의 두 자세와 마음 정화의 목적이 각각 보존됩니다. 밤새 자지 말라는 문장이 아니라, 이어지는 가운데 시각에는 분명히 잠을 위한 사자 자세가 놓입니다. 깨어 있음은 수면 박탈보다 활동·휴식·다시 일어남을 알아차림 속에 배치하는 훈련으로 읽힙니다. 첫 두 시간대는 같은 실천이 지속됨을 보여 줍니다.

묵상

낮과 밤의 첫 시각에 같은 두 자세와 마음 정화가 반복되는 장면은 어떤 리듬으로 느껴지나요? 출가자의 일과를 따라 하거나 잠을 줄일 필요는 없어요. 지금 하루에서 비교적 마음이 또렷한 때가 있는지만 가볍게 떠올려도 괜찮아요.

21 가운데 시각에 쉬고 마지막 시각에 일어나다 1구절

밤 가운데 시각에는 알아차리며 사자 자세로 쉬고, 마지막 시각에는 일어나 경행과 좌선으로 마음을 정화합니다.

밤의 가운데 시각에는 오른편으로 사자 자세를 취해 발 위에 발을 포개 눕고,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며 일어날 때를 마음에 둘 것이다. 밤의 마지막 시각에는 일어나 경행과 좌선으로 장애에서 마음을 정화할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Rattiyā majjhimaṁ yāmaṁ dakkhiṇena passena sīhaseyyaṁ kappessāma pāde pādaṁ accādhāya, sato sampajāno uṭṭhānasaññaṁ manasi karitvā. Rattiyā pacchimaṁ yāmaṁ paccuṭṭhāya caṅkamena nisajjāya āvaraṇīyehi dhammehi cittaṁ parisodhessāmā’ti,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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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밤의 가운데 시각과 마지막 시각이 한 쌍으로 이어집니다. 가운데에는 오른편으로 눕기·사자 자세·발 위에 발을 포개기·알아차림·분명한 앎·일어날 때를 마음에 두기라는 여섯 요소가 놓입니다. 마지막 시각에는 실제로 일어나 경행과 좌선으로 장애에서 마음을 정화합니다. 수면은 수행에서 배제되지 않고, 어떻게 눕고 어떤 의도로 일어날지를 아는 시간으로 포함됩니다.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며”라는 두 성질이 휴식과 활동을 이어 주고, 네 시각의 배열을 완성합니다.

묵상

눕는 순간에 “일어날 때를 마음에 둔다”는 말은 긴장과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잠을 잘 자야 한다고 평가하지 말고, 쉬기 전 몸의 자세나 깨어난 뒤 첫 움직임 가운데 자연스럽게 알아차려지는 것이 하나 있나요?

22 깨어 있음까지 갖추었다고 만족할 수 있다 1구절

앞의 여섯 단계에 깨어 있음의 전념을 더한 뒤, 충분하고 할 일을 다했다고 만족할 가능성을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느니라. ‘우리는 양심과 신중함을 갖추었고, 몸·말·마음의 행위와 생계가 순수하며, 감각의 문을 지키고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알며 깨어 있음에 전념한다. 이만하면 충분하고 할 일을 다했다. 수행자의 목적에 이르렀고 더 할 일은 없다.’ 그대들은 그만큼으로 만족할지도 모르느니라.

Siyā kho pana, bhikkhave, tumhākaṁ evamassa: ‘hirottappenamha samannāgatā, parisuddho no kāyasamācāro, parisuddho vacīsamācāro, parisuddho manosamācāro, parisuddho ājīvo, indriyesumha guttadvārā, bhojane mattaññuno, jāgariyaṁ anuyuttā; alamettāvatā katamettāvatā, anuppatto no sāmaññattho, natthi no kiñci uttariṁ karaṇīyan’ti, tāvatakeneva tuṭṭhiṁ āpajjeyyā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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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 누적 목록은 양심과 신중함, 몸·말·마음·생계의 네 청정, 감각의 문 지킴, 음식의 알맞은 양, 깨어 있음의 전념을 차례로 셉니다. 낮과 밤의 배열을 닦았다는 성취 뒤에도 “충분하다·할 일을 다했다·목적에 이르렀다·더 할 일이 없다”는 네 판단을 인용하고, 그만큼으로 만족할 가능성을 밝힙니다. 수행 시간의 규칙성이 최종 목적과 곧바로 같지는 않습니다. 누적된 성취와 성급한 결론을 한 묶음으로 두고, 세존의 선언과 조건문은 이어지는 대목에서 완결합니다.

묵상

낮과 밤의 리듬을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느낄 때 그것을 전체 완성으로 여기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나요? 이미 이룬 리듬을 깎아내리지 않으면서도 다른 일상의 동작까지 알아차림을 넓힐 여지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23 깨어 있음 뒤에도 더 할 일이 있다고 밝히다 1구절

세존이 두 번 부르고 알린 뒤, 아직 할 일이 남은 동안 수행자의 목적을 잃지 말라고 깨어 있음 단계의 후렴을 닫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리느니라.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분명히 밝히느니라. ‘수행자의 목적을 찾는 그대들이여,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그 목적을 잃지 말라.’

Ārocayāmi vo, bhikkhave, paṭivedayāmi vo, bhikkhave: ‘mā vo, sāmaññatthikānaṁ sataṁ sāmaññattho parihāyi sati uttariṁ karaṇīye’.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깨어 있음의 전념 뒤에도 세존은 “수행자들이여”를 두 번 부르며 알리고 분명히 밝힙니다. 이어 수행자의 목적을 찾는 이들을 다시 부르고,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그 목적을 잃지 말라는 조건문을 온전히 말합니다. 앞의 누적 목록과 만족의 생각에 대한 응답이 이 두 문장입니다. 깨어 있음은 낮과 밤에 정한 수행 시간을 유지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통해 걷고 먹고 말하고 침묵하는 일상 전체로 퍼집니다.

묵상

깨어 있음이 일정한 시간의 훈련에서 일상의 동작으로 넓어지는 경계에서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집중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재촉하지 말고, 하루 중 자동으로 지나가기 쉬운 한 동작만 알아차려 볼 여지가 있나요?

24 모든 일상 동작에서 분명히 알다 1구절

나아감부터 침묵까지 몸과 생활의 여러 동작에서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갖추어 행동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더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갖출 것이다. 나아가고 돌아오며, 앞과 옆을 보고, 팔다리를 굽히고 펴며, 겉옷·발우·가사를 지닐 때 분명히 알며 행동할 것이다.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며 대소변을 볼 때, 걷고 서고 앉고 자고 깨며 말하고 침묵할 때도 분명히 알며 행동할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Kiñca, bhikkhave, uttariṁ karaṇīyaṁ?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ā bhavissāma,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ti,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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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여덟째 단계는 satisampajañña, 곧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일상의 목록으로 풉니다. 나아감/돌아옴, 앞/옆을 봄, 굽힘/폄, 겉옷·발우·가사를 지님, 먹기·마시기·씹기·맛보기, 대소변, 걷기·서기·앉기·잠듦·깨어남·말하기·침묵하기를 빠짐없이 옮겼습니다. 각 묶음에 “분명히 알며 행동한다”가 적용됩니다. 특별한 명상 자세만이 아니라 이동·시선·몸짓·의식주·배설·말과 침묵까지 수행의 범위가 이어지며, 무엇을 하는지와 그 상황을 놓치지 않는 훈련입니다.

묵상

나아감·바라봄·굽힘·먹기·걷기·말하기·침묵 가운데 지금 가장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동작이 있나요? 모든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채점하지 말고, 이미 자연스럽게 분명했던 한 순간만 떠올려도 괜찮아요.

25 여덟 준비 단계를 모두 갖추었다고 만족할 수 있다 1구절

양심부터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까지 여덟 준비 단계를 모두 누적하고, 목적을 다 이루었다고 만족할 가능성을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느니라. ‘우리는 양심과 신중함을 갖추었고, 몸·말·마음의 행위와 생계가 순수하며, 감각의 문을 지키고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알며 깨어 있음에 전념하고,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갖추었다. 이만하면 충분하고 할 일을 다했다. 수행자의 목적에 이르렀고 더 할 일은 없다.’ 그대들은 그만큼으로 만족할지도 모르느니라.

Siyā kho pana, bhikkhave, tumhākaṁ evamassa: ‘hirottappenamha samannāgatā, parisuddho no kāyasamācāro, parisuddho vacīsamācāro, parisuddho manosamācāro, parisuddho ājīvo, indriyesumha guttadvārā, bhojane mattaññuno, jāgariyaṁ anuyuttā,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ā; alamettāvatā katamettāvatā, anuppatto no sāmaññattho, natthi no kiñci uttariṁ karaṇīyan’ti tāvatakeneva tuṭṭhiṁ āpajjeyyā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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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긴 누적 목록으로 양심과 신중함, 몸·말·마음·생계의 네 청정, 감각의 문 지킴, 음식의 알맞은 양, 깨어 있음,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모두 다시 셉니다. 그 뒤 “충분하다·할 일을 다했다·목적에 이르렀다·더 할 일이 없다”는 네 판단을 직접 인용하고, 이 여덟 준비에 만족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같은 목록을 줄이지 않은 까닭은 앞 단계가 사라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함께 간다는 구조를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긴 생각과 그 결론을 한 묶음으로 두었습니다.

묵상

여덟 항목이 쌓인 긴 목록을 읽을 때 부담이 먼저 오나요, 서로 연결된 길이 보이나요? 모두 갖추었는지 판정하지 말고, 이미 삶에서 조금이라도 작동하는 한 항목과 아직 낯선 한 항목이 무엇인지 가볍게 나눠볼 수 있을까요?

26 여덟 준비 뒤에도 외딴 거처의 수행으로 나아가다 1구절

세존이 두 번 부르고 알린 뒤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목적을 잃지 말라고 하며, 다섯 장애를 버리는 수행으로 전환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리느니라. 수행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분명히 밝히느니라. ‘수행자의 목적을 찾는 그대들이여,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그 목적을 잃지 말라.’

Ārocayāmi vo, bhikkhave, paṭivedayāmi vo, bhikkhave: ‘mā vo, sāmaññatthikānaṁ sataṁ sāmaññattho parihāyi sati uttariṁ karaṇīye’.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세존은 여덟 준비를 모두 갖춘 뒤에도 “수행자들이여”를 두 번 되풀이하며 알리고 분명히 밝힙니다. 수행자의 목적을 찾는 이들을 부르고, 아직 더 할 일이 있는 동안 그 목적을 잃지 말라고 합니다. 반복 질문의 다음 답은 더 긴 생활 목록이 아니라 외딴 거처에서 다섯 장애를 실제로 버리는 수행입니다. 이 두 문장은 가장 긴 누적 목록에 대한 경계를 닫으면서 경의 구조를 준비 단계에서 집중 수행으로 돌립니다. 성취를 무효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마지막이라고 고정하지 않는 전환입니다.

묵상

모든 준비를 갖추었다는 생각 뒤에도 더 깊은 실천으로 옮겨 가는 전환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계속 부족하다는 압박보다, 준비가 실제 수행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라는 관점으로 읽을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27 외딴 거처에서 몸을 곧게 세우다 1구절

아홉 종류의 외딴 거처를 찾고, 탁발과 식사 뒤 가부좌를 하여 몸을 곧게 세우고 알아차림을 확립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더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수행자들이여, 여기 수행자는 광야·나무 아래·산·골짜기·산굴·묘지·숲·빈터·짚더미 같은 외딴 거처를 찾느니라. 탁발을 마치고 식사 뒤 돌아와 가부좌를 하고 몸을 곧게 세운 채 앞에 알아차림을 확립해 앉느니라.

Kiñca, bhikkhave, uttariṁ karaṇīyaṁ? Idha, bhikkhave, bhikkhu vivittaṁ senāsanaṁ bhajati—araññaṁ rukkhamūlaṁ pabbataṁ kandaraṁ giriguhaṁ susānaṁ vanappatthaṁ abbhokāsaṁ palālapuñjaṁ. So pacchābhattaṁ piṇḍapātapaṭikkanto nisīdati pallaṅkaṁ ābhujitvā, ujuṁ kāyaṁ paṇidhāya parimukhaṁ satiṁ upaṭṭhapetvā.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반복되던 “더 해야 할 일”의 답이 구체적인 수행 장면으로 바뀝니다. 광야·나무 아래·산·골짜기·산굴·묘지·숲·빈터·짚더미의 아홉 거처를 열거하고, 탁발과 식사 뒤 돌아와 가부좌를 하고 몸을 곧게 세워 앞에 알아차림을 확립합니다. 장소 목록과 앉는 네 동작을 같은 준비 장면에 두었습니다. 외딴 장소 자체가 목적은 아니며, 감각·음식·깨어 있음·분명한 앎을 갖춘 수행자가 다섯 장애를 직접 버릴 조건을 마련하는 자리입니다. 위험한 곳을 찾아가라는 현대적 처방으로 넓히지 않습니다.

묵상

아홉 장소보다 가부좌·곧은 몸·알아차림이라는 준비가 더 가까이 느껴지나요? 특정 자세나 외딴곳을 따라 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몸이 비교적 안정되고 주의가 모이는 안전한 자리가 있는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28 탐욕과 악의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다 1구절

세상에 대한 탐욕과 악의를 버리고,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두 장애를 씻습니다.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탐욕 없는 마음으로 머물며, 탐욕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느니라. 악의와 적의를 버리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고 가엾이 여기며, 악의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느니라.

So abhijjhaṁ loke pahāya vigatābhijjhena cetasā viharati, abhijjhāya cittaṁ parisodheti; byāpādapadosaṁ pahāya abyāpannacitto viharati,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byāpādapadosā cittaṁ parisodhe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다섯 장애 가운데 처음 두 가지입니다.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탐욕 없는 마음으로 머물며 그 탐욕에서 마음을 깨끗이 합니다. 이어 악의와 적의를 버리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고 가엾이 여기며, 악의에서 마음을 깨끗이 합니다. 두 항목 모두 버림·반대 상태로 머묾·마음 정화의 세 동작을 갖고, 악의에는 모든 생명을 향한 이로움과 연민이 한 요소 더 붙습니다. 단순히 생각을 억누르는 일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 지혜를 약하게 하는 장애를 씻는 수행입니다.

묵상

탐욕 없는 마음과 악의 없는 마음 가운데 지금 더 알아보기 쉬운 쪽이 있나요? 감정을 없애야 한다고 요구하지 말고, 붙잡거나 해치려는 방향이 잠시 약해졌던 순간이 있었다면 몸과 마음이 어떻게 달랐는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29 혼침·들뜸·의심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다 1구절

혼침과 졸음, 들뜸과 후회, 의심을 각각 버리고 빛·내면의 고요·선한 상태에 대한 확신으로 마음을 씻습니다.

혼침과 졸음을 버리고 거기서 벗어나 빛을 인식하며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고, 혼침과 졸음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느니라. 들뜸과 후회를 버리고 들뜨지 않은 채 내면이 고요한 마음으로 머물며, 들뜸과 후회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느니라. 의심을 버리고 의심을 건너 유익한 상태에 망설임 없이 머물며, 의심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느니라.

thinamiddhaṁ pahāya vigatathinamiddho viharati, ālokasaññī sato sampajāno, thinamiddhā cittaṁ parisodheti; uddhaccakukkuccaṁ pahāya anuddhato viharati, ajjhattaṁ vūpasantacitto, uddhaccakukkuccā cittaṁ parisodheti; vicikicchaṁ pahāya tiṇṇavicikiccho viharati, akathaṅkathī kusalesu dhammesu, vicikicchāya cittaṁ parisodhe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나머지 세 장애도 각각 구별됩니다. 혼침과 졸음을 버린 뒤 빛을 인식하고 알아차리며 분명히 압니다. 들뜸과 후회를 버린 뒤 들뜨지 않고 내면이 고요한 마음으로 머뭅니다. 의심을 버린 뒤 의심을 건너 선한 상태에 망설임이 없습니다. 각 문장은 마지막에 해당 장애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고 닫습니다. 피로·흥분·질문 자체를 잘못으로 진단하는 말이 아니라, 지혜를 약하게 하며 머무는 구체적 장애와 그것이 걷힌 마음의 성질을 세 쌍으로 보여 줍니다.

묵상

혼침·들뜸·의심이라는 세 상태는 몸과 마음에서 서로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어느 하나를 당장 버리려 하지 않고, 지금 상태에 가장 가까운 말이 있는지 또는 어느 것도 아닌지만 살펴보아도 괜찮아요.

30 빚을 갚고 남은 사람처럼 기뻐하다 1구절

빚을 내어 시작한 일이 잘되어 원금을 갚고 가족을 부양할 몫까지 남은 사람이 느끼는 기쁨에 장애의 버림을 비춥니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빚을 내어 일을 시작했다고 하느니라. 그의 일이 잘 이루어졌느니라. 그는 예전 빚의 원금까지 갚고 가족을 부양할 만큼 남길 수 있었느니라.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니라. ‘나는 전에 빚을 내어 일을 시작했고, 그 일이 잘 이루어졌다. 예전 빚의 원금까지 갚았고 가족을 부양할 만큼 남아 있다.’ 그 일 때문에 기쁨을 얻고 행복에 이를 것이니라.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iṇaṁ ādāya kammante payojeyya. Tassa te kammantā samijjheyyuṁ. So yāni ca porāṇāni iṇamūlāni tāni ca byantī kareyya, siyā cassa uttariṁ avasiṭṭhaṁ dārabharaṇāya. Tassa evamassa: ‘ahaṁ kho pubbe iṇaṁ ādāya kammante payojesiṁ, tassa me te kammantā samijjhiṁsu. Sohaṁ yāni ca porāṇāni iṇamūlāni tāni ca byantī akāsiṁ, atthi ca me uttariṁ avasiṭṭhaṁ dārabharaṇāyā’ti. So tatonidānaṁ labhetha pāmojjaṁ, adhigaccheyya somanassaṁ.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다섯 장애가 있는 상태와 벗어난 상태를 설명하는 첫 비유입니다. 빚을 내어 일을 시작함·일이 잘됨·예전 빚의 원금을 갚음·가족을 부양할 몫이 남음의 네 단계가 먼저 서술되고, 인물은 그 과정을 일인칭으로 다시 회상합니다. 마지막에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기쁨과 행복을 얻습니다. 앞의 다섯 장애 가운데 탐욕만 빚에 대응한다고 단순히 일대일로 고정하기보다, 장애 전체가 남아 있을 때의 부담과 버렸을 때의 해방을 다섯 생활 비유로 차례로 비추는 첫 장면입니다.

묵상

원금을 갚고도 돌볼 이를 위한 몫이 남은 장면에서 안도와 기쁨 가운데 무엇이 먼저 느껴지나요? 실제 빚이나 재정 경험을 떠올리는 일이 불편하다면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짐이 줄어든 뒤 마음에 생기는 여유만 살펴볼 수도 있어요.

31 병에서 회복해 힘을 되찾은 사람처럼 기뻐하다 1구절

몹시 아파 입맛과 힘을 잃었던 사람이 병에서 벗어나 두 가지를 되찾고 기뻐하는 비유로 장애의 버림을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병들고 괴로워 몹시 아픈데, 입맛도 없고 몸에 힘도 없었다고 하느니라. 시간이 지나 그 병에서 벗어나 입맛과 몸의 힘을 되찾았느니라.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니라. ‘나는 전에 병들고 괴로워 몹시 아팠으며 입맛과 몸의 힘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병에서 벗어나 입맛과 몸의 힘을 되찾았다.’ 그 일 때문에 기쁨을 얻고 행복에 이를 것이니라.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ābādhiko assa dukkhito bāḷhagilāno, bhattañcassa nacchādeyya, na cassa kāye balamattā. So aparena samayena tamhā ābādhā mucceyya, bhattañcassa chādeyya, siyā cassa kāye balamattā. Tassa evamassa: ‘ahaṁ kho pubbe ābādhiko ahosiṁ dukkhito bāḷhagilāno, bhattañca me nacchādesi, na ca me āsi kāye balamattā, somhi etarahi tamhā ābādhā mutto, bhattañca me chādeti, atthi ca me kāye balamattā’ti. So tatonidānaṁ labhetha pāmojjaṁ, adhigaccheyya somanassaṁ.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두 번째 비유는 병들고 괴로워 몹시 아픈 상태를 숨기지 않습니다. 입맛 없음과 몸의 힘 없음이라는 두 결과를 말한 뒤, 시간이 지나 병에서 벗어나 입맛과 몸의 힘을 되찾는 반대 과정을 적습니다. 인물은 이전과 현재의 두 상태를 한 문장 안에서 다시 대조하고 그 때문에 기쁨과 행복을 얻습니다. 질병이 장애나 잘못의 결과라는 현대적 판단으로 넓힐 수 없습니다. 이 비유가 빌리는 것은 실제 아픔의 원인이 아니라, 무거운 상태가 걷혀 기능과 힘이 돌아왔음을 분명히 아는 해방의 감각입니다.

묵상

입맛과 몸의 힘이 돌아온다는 두 변화 가운데 회복을 더 분명히 알려 주는 것은 무엇처럼 느껴지나요? 자신의 건강을 수행 성적표로 삼을 필요는 없어요. 질병 경험이 민감하다면 이 질문을 건너뛰고, “되찾았다”는 말만 읽어도 괜찮아요.

32 감옥에서 안전하게 풀려난 사람처럼 기뻐하다 1구절

감옥에 갇혔던 사람이 풀려나 안전과 두려움 없음과 재산의 보전을 확인하며 기뻐하는 비유를 듭니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혔다고 하느니라. 시간이 지나 그는 감옥에서 풀려나 안전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재산도 잃지 않았느니라.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니라. ‘나는 전에 감옥에 갇혔지만 지금은 풀려나 안전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재산도 잃지 않았다.’ 그 일 때문에 기쁨을 얻고 행복에 이를 것이니라.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bandhanāgāre baddho assa. So aparena samayena tamhā bandhanā mucceyya sotthinā abbhayena, na cassa kiñci bhogānaṁ vayo. Tassa evamassa: ‘ahaṁ kho pubbe bandhanāgāre baddho ahosiṁ, somhi etarahi tamhā bandhanā mutto, sotthinā abbhayena, natthi ca me kiñci bhogānaṁ vayo’ti. So tatonidānaṁ labhetha pāmojjaṁ, adhigaccheyya somanassaṁ.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세 번째 비유는 감옥에 갇힘과 풀려남을 대조합니다. 풀려난 뒤에는 안전함·두려움 없음·재산을 잃지 않음이라는 세 조건이 붙습니다. 인물은 과거의 갇힘과 현재의 세 조건을 다시 직접 말하고, 그 사실 때문에 기쁨과 행복을 얻습니다. 단지 문이 열렸다는 공간 변화가 아니라 위험과 손실의 가능성이 사라진 상태까지 포함합니다. 다섯 장애를 버리는 일도 마음의 한 생각을 억누르는 데 그치지 않고, 지혜를 약하게 하던 구속에서 벗어난 사실을 자신이 분명히 알아 기쁨이 생기는 구조입니다.

묵상

풀려남·안전·두려움 없음·재산 보전 가운데 자유를 가장 구체적으로 느끼게 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실제 구금이나 위협을 떠올릴 필요는 없어요. 마음이 갇힌 듯하다가 선택의 여지가 생긴 한 순간만 생각해 보아도 괜찮아요.

33 종살이에서 자유인이 된 사람처럼 기뻐하다 1구절

남에게 매여 원하는 곳에 갈 수 없던 사람이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자유인이 되어 기뻐하는 비유를 듭니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종이 되어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고 남에게 매여 원하는 곳에 갈 수 없었다고 하느니라. 시간이 지나 종살이에서 풀려나 자기 뜻대로 하고 남에게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 되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었느니라.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니라. ‘나는 전에 남에게 매인 종이라 원하는 곳에 갈 수 없었지만, 지금은 풀려나 내 뜻대로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다.’ 그 일 때문에 기쁨을 얻고 행복에 이를 것이니라.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dāso assa anattādhīno parādhīno na yenakāmaṅgamo. So aparena samayena tamhā dāsabyā mucceyya attādhīno aparādhīno bhujisso yenakāmaṅgamo. Tassa evamassa: ‘ahaṁ kho pubbe dāso ahosiṁ anattādhīno parādhīno na yenakāmaṅgamo, somhi etarahi tamhā dāsabyā mutto attādhīno aparādhīno bhujisso yenakāmaṅgamo’ti. So tatonidānaṁ labhetha pāmojjaṁ, adhigaccheyya somanassaṁ.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네 번째 비유는 종의 상태를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함·남에게 매임·원하는 곳에 갈 수 없음의 세 부정으로 풉니다. 풀려난 뒤에는 자기 뜻대로 함·남에게 매이지 않음·자유인이 됨·원하는 곳에 감이라는 네 긍정이 반대 자리에 놓입니다. 인물의 회상에서도 두 목록이 다시 반복되고, 그 때문에 기쁨과 행복을 얻습니다. 역사적 종살이의 고통을 가볍게 심리 비유로 환원하지 않으면서, 경 안에서는 다섯 장애가 선택과 움직임을 제한하는 상태이고 버림은 마음의 자율을 되찾는 일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음”이라는 자유의 표현은 몸의 움직임과 마음의 선택 가운데 어디에 더 가깝게 들리나요? 실제 억압의 경험을 꺼낼 필요는 없어요. 선택할 수 있다는 느낌이 잠시 생겼던 안전한 순간만 떠올려도 괜찮아요.

34 광야를 안전하게 건넌 사람처럼 기뻐하다 1구절

재산을 지닌 채 위험한 광야의 긴 길을 나섰다가 아무 손실 없이 안전하게 건넌 사람이 기뻐하는 비유를 듭니다.

수행자들이여, 재산과 소유가 있는 사람이 광야의 긴 길을 나섰다고 하느니라. 시간이 지나 그는 재산을 잃지 않고 그 광야를 안전하고 두려움 없이 건넜느니라.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니라. ‘나는 전에 재산과 소유를 지닌 채 광야의 긴 길을 나섰다. 지금은 재산을 하나도 잃지 않고 그 광야를 안전하고 두려움 없이 건넜다.’ 그 일 때문에 기쁨을 얻고 행복에 이를 것이니라.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sadhano sabhogo kantāraddhānamaggaṁ paṭipajjeyya. So aparena samayena tamhā kantārā nitthareyya sotthinā abbhayena, na cassa kiñci bhogānaṁ vayo. Tassa evamassa: ‘ahaṁ kho pubbe sadhano sabhogo kantāraddhānamaggaṁ paṭipajjiṁ. Somhi etarahi tamhā kantārā nitthiṇṇo sotthinā abbhayena, natthi ca me kiñci bhogānaṁ vayo’ti. So tatonidānaṁ labhetha pāmojjaṁ, adhigaccheyya somanass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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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다섯째 비유는 재산과 소유를 지닌 사람이 광야의 긴 길에 나서는 장면입니다. 그는 시간이 지나 재산을 하나도 잃지 않고 광야를 안전하고 두려움 없이 건넙니다. 회상에서는 출발과 도착이 두 문장으로 나뉘고, 안전·두려움 없음·손실 없음이 다시 확인된 뒤 기쁨과 행복이 생깁니다. 목적지보다 위험한 구간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사실이 중심입니다. 다섯 장애를 버림도 경험을 피해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지혜를 잃지 않은 채 마음의 험한 구간을 건너 안전한 터전에 이르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광야를 건넌 뒤 안전·두려움 없음·손실 없음 가운데 무엇이 가장 큰 안도로 느껴지나요? 위험한 경험을 떠올릴 필요는 없어요. 불확실한 시간을 지나며 지키고 싶었던 것을 잃지 않았던 작은 경험이 있다면 그것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35 다섯 장애와 다섯 해방을 짝짓다 1구절

버리지 못한 다섯 장애를 빚·병·감옥·종살이·광야에, 버린 상태를 빚 없음·건강·풀려남·자유·안전한 곳에 짝짓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아직 버리지 못한 다섯 장애를 자기 안에서 빚·병·감옥·종살이·광야의 긴 길과 같이 보느니라. 다섯 장애를 버리면 빚 없음·건강·감옥에서 풀려남·자유·안전한 곳에 이름과 같이 보느니라.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yathā iṇaṁ yathā rogaṁ yathā bandhanāgāraṁ yathā dāsabyaṁ yathā kantāraddhānamaggaṁ, ime pañca nīvaraṇe appahīne attani samanupassati. Seyyathāpi, bhikkhave, āṇaṇyaṁ yathā ārogyaṁ yathā bandhanāmokkhaṁ yathā bhujissaṁ yathā khemantabhūmiṁ; evameva bhikkhu ime pañca nīvaraṇe pahīne attani samanupass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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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다섯 생활 비유가 끝난 뒤 그 적용을 두 목록으로 직접 밝힙니다. 장애를 버리지 못한 상태는 빚·병·감옥·종살이·광야의 긴 길에 각각 대응하고, 버린 상태는 빚 없음·건강·감옥에서 풀려남·자유·안전한 곳에 이름에 대응합니다. 두 목록은 각각 다섯 항목이며 같은 순서를 유지합니다. 앞의 이야기들이 단순한 위로나 별개의 사례가 아니라 다섯 장애 전체를 보는 두 관점이었음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장애를 알아보는 일은 비난이 아니라 현재의 구속과 가능한 해방을 구별하는 지혜의 준비입니다.

묵상

빚 없음·건강·풀려남·자유·안전한 곳이라는 다섯 해방 가운데 지금 가장 편안하게 읽히는 하나가 있나요? 장애를 모두 버렸는지 묻지 않고, 한 낱말이 보여 주는 마음의 가벼움만 잠시 느껴보아도 괜찮아요.

36 다섯 장애를 버리고 첫 번째 깊은 집중에 들다 1구절

다섯 장애를 버린 뒤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상태에서 벗어나, 멀어짐에서 난 기쁨과 행복을 온몸에 퍼뜨립니다.

그는 마음을 오염시키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이 다섯 장애를 버리느니라.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상태에서 벗어나,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며 멀어짐에서 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첫 번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무느니라. 그는 멀어짐에서 난 희열과 행복을 이 몸에 스며들게 하고 적시고 채우고 가득 퍼뜨리느니라. 온몸에서 그 희열과 행복이 퍼지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느니라.

So ime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ṁ savicāraṁ vivekajaṁ pītisukhaṁ paṭham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mameva kāyaṁ viveka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ṁ ho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다섯 장애는 마음을 오염시키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것으로 한번에 정리됩니다. 그것들을 버린 수행자는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상태에서 벗어나고,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작용과 함께 첫 번째 깊은 집중에 듭니다. 그 상태의 기쁨과 행복은 멀어짐에서 났으며, 수행자는 그것을 몸에 스며들게 하고 적시고 채우고 가득 퍼뜨립니다. 온몸에 퍼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는 전체성이 다음 비유로 이어집니다.

묵상

기쁨과 행복이 온몸에 스며든다는 표현은 감정을 머리로만 아는 것과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특정한 집중 상태를 만들려 하지 말고, 편안함이 몸으로 알아지던 작은 순간만 떠올려도 괜찮아요.

37 목욕 가루 덩어리처럼 기쁨과 행복이 스며들다 1구절

물을 조금씩 뿌려 안팎이 고르게 젖으면서도 흐르지 않는 목욕 가루 덩어리로 첫 깊은 집중의 몸 채움을 비유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솜씨 좋은 목욕 시중꾼이나 그 제자가 놋그릇에 목욕 가루를 붓고 조금씩 물을 뿌려 반죽한다고 하느니라. 그 가루 덩이는 안팎으로 물기가 스며들어 흠뻑 젖지만 물이 흘러내리지는 않느니라. 이와 같이 수행자는 멀어짐에서 난 희열과 행복을 이 몸에 스며들게 하고 적시고 채우고 가득 퍼뜨리느니라. 온몸에서 그 희열과 행복이 퍼지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dakkho nhāpako vā nhāpakantevāsī vā kaṁsathāle nhānīyacuṇṇāni ākiritvā udakena paripphosakaṁ paripphosakaṁ sanneyya. Sāyaṁ nhānīyapiṇḍi snehānugatā snehaparetā santarabāhirā, phuṭā snehena na ca pagghariṇī.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viveka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ṁ ho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첫 번째 깊은 집중의 몸 경험을 목욕 가루 비유가 구체화합니다. 숙련된 목욕 시중꾼이나 그 제자가 놋그릇 안의 가루에 물을 조금씩 뿌려 반죽합니다. 덩어리는 안팎으로 물기가 스며들어 흠뿍 젖지만 물이 밖으로 흐르지는 않습니다. 이 두 성질은 기쁨과 행복이 몸 전체에 빈틈없이 퍼지지만 흐트러지지 않는 상태와 짝을 이룹니다. 비유와 적용에서 “스며들게 함·적심·채움·가득 퍼뜨림”의 네 동작이 다시 나옵니다.

묵상

조금씩 물을 더해 안팎이 젖지만 흐르지 않는 목욕 가루의 균형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내적 경험을 정확히 비유할 필요는 없고, “스며든다”와 “흐르지 않는다” 중 하나만 음미해도 괜찮아요.

38 생각의 작용이 고요한 두 번째 깊은 집중 1구절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일이 고요해져 내면의 맑음과 하나 된 마음, 집중에서 난 기쁨과 행복으로 온몸을 채웁니다.

또한 수행자들이여,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일이 고요해지자, 내면의 맑음과 하나 된 마음이 있고 생각의 작용 없이 집중에서 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두 번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무느니라. 그는 집중에서 난 희열과 행복을 이 몸에 스며들게 하고 적시고 채우고 가득 퍼뜨리느니라. 온몸에서 그 희열과 행복이 퍼지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vitakkavicārānaṁ vūpasamā ajjhattaṁ sampasādanaṁ cetaso ekodibhāvaṁ avitakkaṁ avicāraṁ samādhijaṁ pītisukhaṁ du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mameva kāyaṁ samādhi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samādhijena pītisukhena apphuṭaṁ ho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두 번째 깊은 집중에서는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작용이 고요해집니다. 그 결과 내면의 맑음과 하나 된 마음이 있고, 기쁨과 행복의 근원은 멀어짐에서 집중으로 바뀝니다. 수행자는 이 두 성질을 몸에 스며들게 하고 적시고 채우고 가득 퍼뜨려, 온몸에 퍼지지 않은 곳이 없게 합니다. 첫 단계와 같은 네 동작을 유지하면서도 생각 작용의 유무와 기쁨·행복의 출처를 구별합니다.

묵상

생각을 계속 이어 가지 않아도 마음이 맑고 하나가 된다는 말은 어떻게 들리나요? 생각을 없애려 하지 말고, 말을 더하지 않아도 상황이 분명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아도 괜찮아요. 그때의 고요가 어떤 질감이었는지도 살펴볼 수 있어요.

39 샘물이 솟는 호수처럼 기쁨과 행복이 차오르다 1구절

밖에서 물이 들어오지 않아도 안의 차가운 물줄기가 전체를 적시는 호수로 두 번째 깊은 집중의 몸 채움을 비유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샘물이 솟는 깊은 호수가 있다고 하느니라. 동·서·남·북 어디에도 물이 들어오는 길이 없고 때맞춰 비도 내리지 않지만, 호수 안에서 차가운 물줄기가 솟아 호수 전체를 적시고 채우고 가득 퍼지느니라. 호수에서 차가운 물이 퍼지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느니라. 이와 같이 수행자는 집중에서 난 희열과 행복을 이 몸에 스며들게 하고 적시고 채우고 가득 퍼뜨리느니라. 온몸에서 그 희열과 행복이 퍼지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udakarahado ubbhidodako. Tassa nevassa puratthim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ṁ, na pacchim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ṁ, na uttar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ṁ, na dakkhiṇāya disāya udakassa āyamukhaṁ, devo ca na kālena kālaṁ sammādhāraṁ anuppaveccheyya. Atha kho tamhāva udakarahadā sītā vāridhārā ubbhijjitvā tameva udakarahadaṁ sītena vārinā abhisandeyya parisandeyya paripūreyya paripphareyya, nāssa kiñci sabbāvato udakarahadassa sītena vārinā apphuṭaṁ assa.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samādhi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samādhijena pītisukhena apphuṭaṁ ho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두 번째 비유에는 동·서·남·북 어느 쪽에도 물이 들어오는 길이 없고, 때맞춰 비도 내리지 않는 깊은 호수가 나옵니다. 그러나 호수 안에서 차가운 물줄기가 솟아 전체를 적시고 채우고 가득 퍼뜨립니다. 차가운 물이 퍼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적용에서는 외부에서 더해지는 자극이 아니라 집중 자체에서 난 기쁨과 행복이 몸 전체를 가득 채우는 심상이 정확히 반복됩니다.

묵상

밖에서 비가 오지 않아도 안에서 샘물이 솟아 호수를 채우는 장면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내면의 행복을 지금 느껴야 할 필요는 없고, 외부 조건과 다른 곳에서 힘이 생겼던 기억이 있는지만 살펴보아도 괜찮아요.

40 기쁨이 잦아든 세 번째 깊은 집중 1구절

기쁨이 사라진 뒤 평온하고 알아차리며 분명히 알고 몸으로 행복을 느끼는 세 번째 깊은 집중에 들어, 기쁨 없는 행복을 온몸에 퍼뜨립니다.

또한 수행자들이여, 희열이 사라지자 평정하게 머물며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고 몸으로 행복을 느끼느니라. 고귀한 이들이 “평정하고 알아차리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세 번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무느니라. 그는 희열이 없는 행복을 이 몸에 스며들게 하고 적시고 채우고 가득 퍼뜨리느니라. 온몸에서 그 행복이 퍼지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ṁvedeti, yaṁ taṁ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mameva kāyaṁ nippītikena 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nippītikena sukhena apphuṭaṁ ho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세 번째 깊은 집중은 기쁨이 사라지는 변화로 시작합니다. 수행자는 평온하게 머물며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며, 몸으로 행복을 느낍니다. 고귀한 이들이 “평온하고 알아차리며 행복하게 머물다”고 표현하는 상태임도 밝힙니다. 이어 기쁨이 없는 행복을 몸에 스며들게 하고 적시고 채우고 퍼뜨립니다. 기쁨의 부재는 무감각이 아니라 평온·알아차림·분명한 앎·행복이 함께 있는 다른 구성입니다.

묵상

기쁨은 잦아들지만 평온·알아차림·행복은 남는다는 구성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기쁨을 없애거나 평온을 만들 필요는 없어요. 한 감정이 작아져도 다른 성질은 남았던 순간을 떠올려보아도 괜찮아요.

41 물속 연꽃처럼 기쁨 없는 행복이 젖다 1구절

물속에서 나고 자라 끝에서 뿌리까지 차가운 물에 젖은 청련·홍련·백련으로, 세 번째 깊은 집중의 행복이 온몸에 퍼짐을 비유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청련·홍련·백련이 있는 연못에서 어떤 꽃들은 물속에서 나고 자라 물 위로 나오지 않은 채 잠겨서 자라느니라. 그 꽃들은 끝에서 뿌리까지 차가운 물에 젖고 채워져, 어느 한 곳도 물이 배지 않은 데가 없느니라. 이와 같이 수행자는 희열이 없는 행복을 이 몸에 스며들게 하고 적시고 채우고 가득 퍼뜨리느니라. 온몸에서 그 행복이 퍼지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uppaliniyaṁ vā paduminiyaṁ vā puṇḍarīkiniyaṁ vā appekaccāni 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vā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antonimuggaposīni, tāni yāva caggā yāva ca mūlā sītena vārinā abhisannāni parisannāni paripūrāni paripphuṭāni, nāssa kiñci sabbāvataṁ uppalānaṁ vā padumānaṁ vā puṇḍarīkānaṁ vā sītena vārinā apphuṭaṁ assa.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nippītikena 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nippītikena sukhena apphuṭaṁ ho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세 번째 비유는 청련·홍련·백련의 세 종류를 명시합니다. 어떤 꽃들은 물속에서 나고 자라 물 위로 나오지 않은 채 잠겨 있습니다. 끝에서 뿌리까지 차가운 물에 젖고 채워져, 물이 배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물에 완전히 잠긴 꽃의 안팎성은 기쁨이 없는 행복이 온몸에 스며들고 적시고 채워지는 적용으로 되돌아옵니다. 연꽃은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그 환경 안에서 온전히 자랍니다.

묵상

끝에서 뿌리까지 차가운 물에 젖은 연꽃의 이미지는 어떻게 다가오나요? 그 평온을 재현하려 하지 말고, 내 안에 빈틈없이 스며든 안정감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만 살펴볼 수 있어요. 몸의 어느 부분에서 그 안정이 먼저 느껴졌는지도 떠올려볼 수 있어요.

42 평온과 알아차림이 깨끗한 네 번째 깊은 집중 1구절

행복과 괴로움, 앞서의 기쁨과 슬픔이 사라진 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네 번째 깊은 집중에 들어, 깨끗하고 밝은 마음으로 온몸을 채웁니다.

또한 수행자들이여, 행복과 괴로움을 버리고 앞서 기쁨과 슬픔도 사라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정과 알아차림이 깨끗한 네 번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무느니라. 그는 깨끗하고 밝은 마음을 온몸에 가득 퍼뜨린 채 앉느니라. 온몸에서 그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퍼지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ṁ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ṁ upekkhāsatipārisuddhiṁ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mameva kāyaṁ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pharitvā nisinno ho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apphuṭaṁ ho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네 번째 깊은 집중은 시간 순서와 두 상징을 함께 보존합니다. 현재의 행복과 괴로움을 버리고, 그보다 앞서 기쁨과 슬픔이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 느낌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과 알아차림이 깨끗합니다. 수행자는 이제 기쁨이나 행복이 아니라 깨끗하고 밝은 마음을 온몸에 가득 퍼뜨린 채 앉습니다. 네 단계는 이전 단계를 대충 줄인 목록이 아니라 생각·기쁨·행복·괴로움의 변화를 순차적으로 밝힙니다.

묵상

행복과 괴로움이 둘 다 사라지고 평온과 알아차림이 깨끗해진다는 말은 어떻게 들리나요? 무덤덤해져야 한다고 받아들이지 말고, 평온이 뚜렷한 알아차림과 함께였던 순간이 있었는지만 떠올려봐도 괜찮아요.

43 흰 천이 온몸을 덮듯 밝은 마음을 퍼뜨리다 1구절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천으로 덮인 사람처럼, 네 번째 깊은 집중의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온몸에 퍼짐을 비유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천을 두르고 앉아 있어 온몸에서 흰 천으로 덮이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수행자는 깨끗하고 밝은 마음을 온몸에 가득 퍼뜨린 채 앉느니라. 온몸에서 그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퍼지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odātena vatthena sasīsaṁ pārupetvā nisinno assa,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odātena vatthena apphuṭaṁ assa.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ṁ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pharitvā nisinno hoti,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parisuddhena cetasā pariyodātena apphuṭaṁ ho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네 번째 비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천을 둘러쓴 사람의 정적인 장면입니다. 온몸에서 흰 천으로 덮이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대로 수행자는 깨끗하고 밝은 마음을 온몸에 가득 퍼뜨린 채 앉고, 그 마음이 퍼지 않은 곳을 남기지 않습니다. 앞의 가루·호수·연꽃은 안쪽으로 스며드는 물기를 보였다면, 흰 천은 온몸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덮는 깨끗함과 밝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천으로 덮인 정적인 장면에서 어떤 느낌이 먼저 오나요? 특별한 상태에 들어야 한다고 여기지 말고, 몸 전체가 편안한 하나의 감각으로 느껴진 적이 있는지만 살펴봐도 괜찮아요.

44 과거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이다 1구절

깨끗하고 밝으며 유연하고 흔들리지 않는 집중된 마음을 과거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기울여, 여러 과거 삶을 모습과 세부까지 기억합니다.

그렇게 집중된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이 없고 유연하고 쓰기 좋으며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게 되자, 그는 과거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이느니라. 그는 한 삶, 두 삶 … 이와 같이 여러 과거 삶을 그 모습과 세부까지 기억하느니라.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ti. So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seyyathidaṁ—ekampi jātiṁ, dvepi jātiyo …pe…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네 번째 깊은 집중 뒤 마음의 여덟 성질을 먼저 적습니다. 마음은 집중되고,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이 없고, 유연하고 쓰기 좋으며,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마음을 과거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기울입니다. 다음 문장은 한 삶·두 삶 뒤의 긴 정형구를 원문의 “…pe…”로 줄이지만, 결론인 여러 과거 삶과 그 모습·세부까지 기억함은 직접 남습니다.

묵상

마음을 특정한 앎으로 “기울인다”는 표현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과거 삶에 대한 확신을 만들 필요는 없어요. 그 대신 지금 마음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지만 살펴봐도 괜찮아요.

45 세 마을 비유로 여러 과거 삶의 기억을 밝히다 1구절

세 마을을 오간 사람이 장소와 행동을 순서대로 기억하는 비유를 들고, 여러 과거 삶을 그 모습과 세부까지 기억하는 앎에 적용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자기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갔다가 다시 또 다른 마을로 가고, 거기서 자기 마을로 돌아왔다고 하느니라. 그는 생각하느니라. ‘나는 자기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갔다. 거기서는 이렇게 서고 앉고 말하고 침묵했다. 그 마을에서 또 다른 마을로 가서도 이렇게 서고 앉고 말하고 침묵했다. 그리고 거기서 자기 마을로 돌아왔다.’ 이와 같이 수행자는 한 삶, 두 삶 … 여러 과거 삶을 그 모습과 세부까지 기억하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sakamhā gāmā aññaṁ gāmaṁ gaccheyya, tamhāpi gāmā aññaṁ gāmaṁ gaccheyya, so tamhā gāmā sakaṁyeva gāmaṁ paccāgaccheyya. Tassa evamassa: ‘ahaṁ kho sakamhā gāmā amuṁ gāmaṁ agacchiṁ, tatrapi evaṁ aṭṭhāsiṁ evaṁ nisīdiṁ evaṁ abhāsiṁ evaṁ tuṇhī ahosiṁ; tamhāpi gāmā amuṁ gāmaṁ agacchiṁ, tatrapi evaṁ aṭṭhāsiṁ evaṁ nisīdiṁ evaṁ abhāsiṁ evaṁ tuṇhī ahosiṁ; somhi tamhā gāmā sakaṁyeva gāmaṁ paccāgato’ti.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seyyathidaṁ—ekampi jātiṁ dvepi jātiyo …pe…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과거 삶을 기억함은 세 마을 사이를 오간 사람의 일상적인 기억으로 비유됩니다. 자기 마을에서 두 번째 마을로, 거기서 세 번째 마을로, 다시 자기 마을로 돌아오는 세 이동이 순서대로 나옵니다. 그는 두 마을에서 어떻게 서고 앉고 말하고 침묵했는지 각각 기억합니다. 적용에서 수행자는 한 삶·두 삶 뒤의 긴 수를 원문의 “…pe…”로 건너뛰지만, 여러 과거 삶을 그 모습과 세부까지 기억한다는 결론을 다시 직접 말합니다. 장소·순서·세부 행동을 기억하는 비유가 막연한 인상이 아닌 구체적인 앎을 뒷받침합니다.

묵상

세 마을의 장소와 행동을 기억하는 비유가 여러 과거 삶의 모습과 세부를 아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방식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과거 삶에 대한 결론을 재촉하지 말고, 기억에서 장소·순서·행동이 함께 나타난다는 점만 살펴봐도 괜찮아요.

46 존재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아는 앎으로 기울이다 1구절

집중된 마음을 존재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아는 앎으로 기울여, 맑은 신성한 눈으로 높고 낮음·아름다움과 추함·좋은 곳과 나쁜 곳을 보고 행위에 따른 가는 길을 압니다.

그렇게 집중된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이 없고 유연하고 쓰기 좋으며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게 되자, 그는 존재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이느니라. 그는 인간을 뛰어넘는 맑은 신성한 눈으로 존재들이 죽고 태어나며 낮고 높고 아름답고 추하고 좋은 곳과 나쁜 곳에 이르는 것을 보느니라. 존재들이 행위에 따라 가는 것을 아느니라. …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ṁ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ti.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pe…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두 번째 앎은 앞과 같은 여덟 성질의 집중된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그 마음을 존재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아는 앎으로 기울입니다. 인간을 뛰어넘는 맑은 신성한 눈으로 죽고 태어나는 존재들을 보며, 낮음/높음·아름다움/추함·좋은 곳/나쁜 곳의 세 대조와 죽음/태어남의 한 대조를 구별합니다. 또 존재들이 행위에 따라 가는 것을 압니다. 뒤의 긴 선악 결과 예시는 원문의 “…pe…”로 생략되어 있으며, 같은 인과 구조가 이어짐을 이 표시가 알립니다.

묵상

죽음·태어남과 낮음·높음을 둘러싼 긴 목록은 삶을 평가하라는 명령보다 인과를 본다는 설명으로 읽을 수 있어요. 타인의 처지를 그 사람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자신의 한 행동과 그 방향만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요?

47 두 집 사이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다 1구절

문이 있는 두 집 사이에 서서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오며 거니는 모습을 보는 이처럼, 수행자가 존재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보고 행위에 따른 길을 앎을 비유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문이 있는 두 집 사이에 눈 밝은 사람이 서서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고 나오며 이리저리 거니는 것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수행자는 인간을 뛰어넘는 맑은 신성한 눈으로 존재들이 죽고 태어나며 낮고 높고 아름답고 추하고 좋은 곳과 나쁜 곳에 이르는 것을 보느니라. 존재들이 행위에 따라 가는 것을 아느니라. …

seyyathāpi, bhikkhave, dve agārā sadvārā. Tattha cakkhumā puriso majjhe ṭhito passeyya manusse gehaṁ pavisantepi nikkhamantepi, anucaṅkamantepi anuvicarantepi.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pe….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두 번째 앎은 문이 있는 두 집 사이의 눈 밝은 사람으로 비유됩니다. 그 사람은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가고, 나오고, 이리저리 거니는 세 움직임을 구별해 봅니다. 적용에서는 이 시선이 존재들의 죽음과 태어남, 낮고 높음, 아름답고 추함, 좋은 곳과 나쁜 곳, 행위에 따른 가는 길을 아는 앎으로 되돌아옵니다. 적용 끝의 “…pe…”는 이 대목 자체가 이미 긴 선악 결과의 예시를 생략한 표시이며, 앞의 같은 자리와 호응합니다.

묵상

두 집 사이에 머물며 들어가고 나오고 거니는 사람들을 본다는 간단한 비유에서 무엇이 먼저 느껴지나요? 다른 이의 운명을 판단하지 말고, 어떤 일의 들어옴과 나감을 차분히 보았던 경험만 떠올려봐도 괜찮아요.

48 괴로움과 마음에 흘러들어 괴롭히는 것들이 끝나는 길을 알다 1구절

집중된 마음을 번뇌가 다함을 아는 앎으로 기울여, 괴로움과 그 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 번뇌와 그 일어남·소멸·길의 두 네 항목을 있는 그대로 압니다.

그렇게 집중된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이 없고 유연하고 쓰기 좋으며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게 되자, 그는 번뇌가 다함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이느니라. 그는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아느니라. “이것들은 번뇌다, 이것은 번뇌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번뇌의 소멸이다, 이것은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아느니라.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ṁ khay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ti. So ‘idaṁ dukkhan’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Ime āsav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세 번째 앎도 여덟 성질의 집중된 마음에서 시작하며, 이번에는 번뇌가 다함을 아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입니다. 괴로움·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의 네 항목을 먼저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어 번뇌·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의 두 번째 네 항목도 같은 문법으로 구별합니다. 일어남과 소멸만으로 줄이지 않고 각각의 대상과 길을 함께 보는 구조입니다. 앞의 두 앎이 기억과 존재의 흐름을 보았다면, 이 앎은 직접 해탈로 이어집니다.

묵상

괴로움과 번뇌를 각각 일어남·소멸·길과 함께 본다는 구조는 어떻게 들리나요? 지금의 고통을 즉시 해결해야 한다고 압박하지 말고, 한 상태에도 원인과 끝과 방향이 있을 수 있다는 말만 조용히 살펴봐도 괜찮아요.

49 감각의 즐거움을 향한 욕망·존재하려는 욕망·모름에서 풀려났음을 알다 1구절

마음이 감각적 욕망·존재·무명의 세 번뇌에서 각각 풀리고, 풀려났음을 알며 태어남의 다함부터 다시 태어나지 않음까지 네 선언으로 닫습니다.

그가 이와 같이 알고 보자,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풀리고, 마음은 존재의 번뇌에서 풀리며, 마음은 무명의 번뇌에서 풀리느니라. 풀려났을 때 “풀려났다”는 앎이 있느니라. 그는 분명히 아느니라.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은 마쳤고, 이 상태로 다시 태어남은 없다.”

Tassa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알고 보는 것이 마음의 풀림으로 이어집니다.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풀리고, 마음은 존재의 번뇌에서 풀리며, 마음은 무명의 번뇌에서 풀립니다. 세 관계에서 “마음은”을 각각 반복해 어느 하나도 합치지 않았습니다. 풀려났을 때 “풀려났다”는 앎이 있고, 태어남은 다함·청정한 삶은 완성됨·할 일은 마침·이 상태로 다시 태어남은 없음의 네 선언을 분명히 압니다.

묵상

“마음은”이라는 주어가 세 번 반복되며 서로 다른 번뇌에서 풀린다는 대목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완전한 해탈을 자신의 상태라고 여길 필요는 없어요. 풀림이 한 덩어리가 아니라 관계별로 알아진다는 점만 살펴봐도 괜찮아요.

50 맑은 호수 속 물건과 물고기를 분명히 보다 1구절

흐리지 않은 맑은 호수에서 조개·고둥·자갈·돌과 헤엄치거나 가만히 있는 물고기 떼를 보는 눈 밝은 사람으로, 번뇌가 다함을 아는 앎을 비유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산골짜기에 맑고 깨끗하며 흐리지 않은 호수가 있다고 하느니라. 눈 밝은 사람이 물가에 서서 조개와 고둥, 자갈과 돌, 헤엄치거나 가만히 있는 물고기 떼를 보느니라.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니라. ‘이 호수는 맑고 깨끗하며 흐리지 않다. 여기 조개와 고둥, 자갈과 돌, 헤엄치거나 가만히 있는 물고기 떼가 있다.’

Seyyathāpi, bhikkhave, pabbatasaṅkhepe udakarahado accho vippasanno anāvilo. Tattha cakkhumā puriso tīre ṭhito passeyya sippisambukampi sakkharakathalampi macchagumbampi, carantampi tiṭṭhantampi. Tassa evamassa: ‘ayaṁ kho udakarahado accho vippasanno anāvilo. Tatrime sippisambukāpi sakkharakathalāpi macchagumbāpi carantipi tiṭṭhantipī’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세 번째 앎은 산골짜기의 맑고 깨끗하며 흐리지 않은 호수로 비유됩니다. 눈 밝은 사람은 물가에 서서 호수 안의 조개와 고둥, 자갈과 돌, 헤엄치는 물고기와 가만히 있는 물고기를 모두 봅니다. 이어 호수의 세 성질과 그 안의 세 묶음을 일인칭 생각으로 다시 확인합니다. 맑음은 내용을 비워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대상과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구별하게 하는 투명함으로 그려집니다.

묵상

맑은 물 속에서 조개·돌·움직이는 물고기·멈춘 물고기가 모두 구별되는 장면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서로 다른 것이 분명히 구별되던 순간을 떠올려봐도 괜찮아요.

51 맑은 호수를 보듯 괴로움의 끝과 풀려남을 알다 1구절

맑은 호수의 비유를 번뇌가 다함을 아는 앎에 적용하여, 원문의 정형 생략 뒤에도 다시 태어나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결론을 남깁니다.

이와 같이 수행자는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 “이 상태로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고 분명히 아느니라.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daṁ dukkhan’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pe…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맑은 호수 비유가 세 번째 앎에 적용됩니다. 수행자는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그 뒤의 괴로움·번뇌·해탈에 대한 긴 정형구는 원문의 “…pe…”로 생략됩니다. 다만 선언의 마지막인 “이 상태로 다시 태어남은 없다”는 다시 직접 적어, 앎이 닿는 결론을 분명히 합니다. 이 생략 표시는 앞에서 온전히 밝힌 괴로움·번뇌·해탈의 범위가 이어짐을 가리키며, 이 대목으로 세 앎과 그 비유들이 마무리됩니다.

묵상

긴 설명이 원문의 생략 표시로 줄어든 뒤에도 마지막 선언이 직접 남는 구조는 어떻게 들리나요? 그 선언을 자신에게 요구하지 말고, 문장이 어디에 무게를 두는지만 살펴봐도 괜찮아요.

52 일곱 이름을 열고 수행자의 뜻을 풀다 1구절

해탈한 비구의 일곱 이름을 모두 열거한 뒤, 첫 이름인 수행자를 해로운 상태를 가라앉힌 이라고 질문·이유·결론으로 풉니다.

수행자들이여, 이 수행자를 ‘수행자’라고도 하고 ‘바라문’이라고도 하며, ‘씻은 이’·‘앎에 통달한 이’·‘배운 이’·‘성스러운 이’·‘아라한’이라고도 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어떻게 수행자가 되느냐? 그는 이런 상태를 가라앉혔느니라. 악하고 해로우며, 오염시키고 다시 태어남으로 이끌며, 괴로움을 동반하고 괴로운 결과를 낳아 앞으로 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끄는 상태이니라.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수행자가 되느니라.

Ayaṁ vuccati, bhikkhave, bhikkhu ‘samaṇo’ itipi ‘brāhmaṇo’itipi ‘nhātako’itipi ‘vedagū’itipi ‘sottiyo’itipi ‘ariyo’itipi ‘arahaṁ’itipi.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maṇo hoti? Samitāssa honti pāpakā akusalā dhammā, saṅ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ṁ, jātijarāmaraṇiyā. Evaṁ kho, bhikkhave, bhikkhu samaṇ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세 앎의 완성 뒤 한 수행자를 수행자·바라문·씻은 이·앎에 통달한 이·배운 이·성스러운 이·아라한이라는 일곱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어 첫 이름인 수행자를 질문·이유·결론의 세 문장으로 풉니다. 악하고 선하지 않음, 오염시킴, 다시 태어남으로 이끌음, 고통을 동반함, 괴로운 결과를 낳음, 앞으로 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끌음이라는 여섯 성질을 모두 갖춘 상태를 가라앉혔기 때문에 수행자입니다. 빠알리어 samita와 samaṇa 사이의 소리 연결이 첫 말놀이를 이룹니다.

묵상

일곱 이름을 먼저 펼친 뒤 첫 이름인 수행자를 해로운 상태의 “가라앉힘”이라는 동작으로 푸는 방식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자신이 그 이름에 해당하는지 판정하지 말고, 이름과 실제 변화가 연결되는 방식만 살펴봐도 괜찮아요.

53 해로움을 몰아낸 수행자를 브라흐마나라 부르는 까닭 1구절

오염과 재생과 고통으로 이끄는 악하고 선하지 않은 상태를 몰아냈으므로 그 비구를 바라문이라고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어떻게 바라문이 되느냐? 그는 이런 상태를 몰아냈느니라. 악하고 해로우며, 오염시키고 다시 태어남으로 이끌며, 괴로움을 동반하고 괴로운 결과를 낳아 앞으로 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끄는 상태이니라.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바라문이 되느니라.

Kathañca, bhikkhave, bhikkhu brāhmaṇo hoti? Bāhitāssa honti pāpakā akusalā dhammā, saṅ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ṁ, jātijarāmaraṇiyā. Evaṁ kho, bhikkhave, bhikkhu brāhmaṇ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두 번째 단락은 같은 여섯 성질의 전체 목록을 다시 적고 핵심 동사만 바꿉니다. 바라문은 악하고 선하지 않은 상태를 “몰아낸” 이입니다. 앞의 수행자가 가라앉힘으로 풀렸다면, 여기서는 해로운 상태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밀어냈다는 움직임이 드러납니다. 질문과 결론에서도 “수행자들이여”를 각각 반복하여 세존의 화자와 청자를 유지했습니다. 이 풀이는 출생 신분이 아니라 해로운 상태와의 관계로 이름의 뜻을 새로 정의합니다.

묵상

바라문을 출생보다 “해로운 상태를 몰아낸 이”로 풀이하는 대목은 어떻게 들리나요? 이 호칭을 자신에게 붙이거나 다른 이를 판단하지 말고, 이름의 기준이 행위와 마음의 방향으로 옮겨진다는 점만 살펴봐도 괜찮아요.

54 해로운 상태를 씻어냈으므로 씻은 이다 1구절

오염시키고 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끄는 악하고 선하지 않은 상태를 씻어냈으므로 그 비구를 씻은 이라고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어떻게 씻은 이가 되느냐? 그는 이런 상태를 씻어냈느니라. 악하고 해로우며, 오염시키고 다시 태어남으로 이끌며, 괴로움을 동반하고 괴로운 결과를 낳아 앞으로 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끄는 상태이니라.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씻은 이가 되느니라.

Kathañca, bhikkhave, bhikkhu nhātako hoti? Nhātāssa honti pāpakā akusalā dhammā, saṅ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ṁ, jātijarāmaraṇiyā. Evaṁ kho, bhikkhave, bhikkhu nhātak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세 번째 이름은 풀이의 동사와 명칭이 가장 직접 맞닿습니다. 이전과 같은 여섯 성질을 갖춘 해로운 상태를 “씻어내었다”는 말에서 그를 씻은 이라고 부릅니다. 오염시키는 상태와 씻어내는 동작이 한 문장 안에 서로 응답합니다. 이는 몸을 씻는 의례를 나쁜 것으로 단정하는 비판이 아니라, 무엇이 실제로 오염을 제거하는지를 행위로 다시 정의하는 말놀이입니다. 열거를 “악한 상태”로 줄이지 않고 전부 반복했습니다.

묵상

“씻은 이”라는 이름이 외형이나 의식보다 해로운 상태를 씻어낸 행위에서 온다는 풀이는 어떻게 다가오나요? 자신을 깨끗하다거나 오염됐다고 판정하지 말고, 이 말놀이의 방향만 살펴봐도 괜찮아요.

55 해로운 상태를 분명히 알았으므로 앎에 통달했다 1구절

재생과 고통을 동반해 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끄는 해로운 상태를 분명히 알았으므로 그 비구를 앎에 통달한 이라고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어떻게 앎에 통달한 이가 되느냐? 그는 이런 상태를 분명히 알았느니라. 악하고 해로우며, 오염시키고 다시 태어남으로 이끌며, 괴로움을 동반하고 괴로운 결과를 낳아 앞으로 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끄는 상태이니라.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앎에 통달한 이가 되느니라.

Kathañca, bhikkhave, bhikkhu vedagū hoti? Viditāssa honti pāpakā akusalā dhammā, saṅ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ṁ, jātijarāmaraṇiyā. Evaṁ kho, bhikkhave, bhikkhu vedagū ho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네 번째 이름은 해로운 상태와 직접 거리를 두는 동작보다 그것을 “분명히 알았다”는 앎을 앞세웁니다. 여섯 성질의 목록은 같이 반복되므로, 앎은 피상적인 정보가 아니라 오염·재생·고통·괴로운 결과·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어지는 인과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입니다. 질문의 “어떻게”와 결론의 “이와 같이”도 같은 틀을 유지해, 이름을 타고난 자격이 아니라 앎의 완성으로 풀어냅니다.

묵상

이름이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해로운 상태를 분명히 아는 이를 가리킨다는 풀이는 어떻게 들리나요? 자신의 지식을 평가하지 말고, 어떤 일의 원인과 결과를 이전보다 분명히 본 순간만 떠올려봐도 괜찮아요.

56 해로운 상태를 씻어 흘려보냈으므로 배운 이다 1구절

오염시키고 다시 태어남으로 이끄는 해로운 상태를 씻어 흘려보냈으므로 그 비구를 배운 이라고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어떻게 배운 이가 되느냐? 그는 이런 상태를 씻어 흘려보냈느니라. 악하고 해로우며, 오염시키고 다시 태어남으로 이끌며, 괴로움을 동반하고 괴로운 결과를 낳아 앞으로 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끄는 상태이니라.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배운 이가 되느니라.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ottiyo hoti? Nissutāssa honti pāpakā akusalā dhammā, saṅ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ṁ, jātijarāmaraṇiyā. Evaṁ kho, bhikkhave, bhikkhu sottiy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다섯 번째 이름은 배움을 지식의 취득으로만 풀지 않습니다. 같은 여섯 성질의 해로운 상태를 “씻어 흘려보냈다”는 행동으로 그를 배운 이라고 합니다. 빠알리어 표현 sottiyo와 nissutāssa는 배운 이와 씻겨 나감을 소리로 연결하는 말놀이를 이룹니다. 이 동사는 앞의 씻은 이에서 쓴 “씻어냈다”와 유사하지만, 흘러가도록 털어내어 자리를 남기지 않는 움직임을 더합니다. 전체 목록을 다시 적어 배움의 대상이 무엇인지도 분명히 했습니다.

묵상

배움을 무엇을 더 머릿속에 넣는 일보다 해로운 상태를 씻어 흘려보내는 일로 풀이하는 방식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지식을 줄이거나 버리려 하지 말고, 배움이 행동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점만 살펴봐도 괜찮아요.

57 해로운 상태가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성스럽다 1구절

오염과 재생과 고통으로 이끄는 악하고 선하지 않은 상태들이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그 비구를 성스러운 이라고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어떻게 성스러운 이가 되느냐? 그에게는 이런 상태들이 멀리 떨어져 있느니라. 악하고 해로우며, 오염시키고 다시 태어남으로 이끌며, 괴로움을 동반하고 괴로운 결과를 낳아 앞으로 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끄는 상태들이니라.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성스러운 이가 되느니라.

Kathañca, bhikkhave, bhikkhu ariyo hoti? Ārakāssa honti pāpakā akusalā dhammā, saṅ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ṁ, jātijarāmaraṇiyā. Evaṁ kho, bhikkhave, bhikkhu ariy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여섯 번째 이름의 핵심은 해로운 상태들이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관계입니다. 빠알리어는 ariyo라는 명칭 뒤에 “ārakāssa honti”를 두어 두 표현을 소리로 연결하는 말놀이를 만듭니다. 핵심은 단순히 어떤 상태에서 멀다는 말이 아니라, 그 상태들이 수행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관계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아라한 풀이에도 같은 설명문이 글자 그대로 반복되므로 두 이름에 서로 다른 조건을 임의로 덧붙일 수 없습니다.

묵상

“성스러운 이”를 특별한 신분보다 해로운 상태가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풀이하는 대목은 어떻게 들리나요? 거리를 억지로 만들려 하지 말고, 스스로 멀리하고 싶은 방향이 있는지만 살펴봐도 괜찮아요.

58 해로운 상태가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아라한이다 1구절

오염시키고 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끄는 해로운 상태들이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그 비구를 아라한이라고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어떻게 아라한이 되느냐? 그에게는 이런 상태들이 멀리 떨어져 있느니라. 악하고 해로우며, 오염시키고 다시 태어남으로 이끌며, 괴로움을 동반하고 괴로운 결과를 낳아 앞으로 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끄는 상태들이니라.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아라한이 되느니라.

Kathañca, bhikkhave, bhikkhu arahaṁ hoti? Ārakāssa honti pāpakā akusalā dhammā, saṅ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ṁ, jātijarāmaraṇiyā. Evaṁ kho, bhikkhave, bhikkhu arahaṁ hotī”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일곱 번째 이름인 아라한에도 직전의 성스러운 이와 똑같은 빠알리어 설명문이 반복됩니다. 악하고 선하지 않으며, 오염시키고, 다시 태어남으로 이끌며, 고통을 동반하고, 괴로운 결과를 낳으며, 앞으로 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끄는 상태들이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ariyo와 arahaṁ에 대해 동일한 “ārakāssa honti”가 쓰이므로 두 이름은 다르지만 그 조건문은 같습니다. 다른 풀이를 덧붙이지 않고 이 경이 되풀이한 관계 그대로 읽습니다.

묵상

성스러운 이와 아라한에게 같은 설명을 주는 경의 마무리는 어떻게 느껴지나요? 두 이름의 차이를 억지로 만들지 말고, 해로운 상태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한 조건이 두 이름을 받친다는 점만 음미해봐도 괜찮아요.

59 앗사뿌라의 수행자들이 가르침을 기쁘게 받다 1구절

세존이 일곱 이름의 마지막 풀이까지 말하자, 비구들이 기뻐하며 그 말씀을 받아들인 것으로 설법이 끝납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은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Idamavoca bhagavā.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un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마지막 설명문의 인용부호가 닫힌 뒤 서술자의 종료 문장 두 개가 따로 나옵니다. 먼저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화자의 설법이 종료되었음을 알립니다. 이어 수행자들이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아들였다고 적습니다. 이 두 문장은 설법 내용과 청자들의 반응을 차례로 닫으며, 그 뒤의 제목 표시는 본문 밖에 있습니다. 첫머리에서 세존이 수행자들을 부르고 그들이 응답한 뒤 시작한 설법은, 같은 청자들의 기쁨과 받아들임으로 닫힙니다.

묵상

긴 설법이 화려한 결론보다 “기뻐하며 받아들였다”는 짧은 반응으로 닫히는 것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모든 내용에 동의해야 한다고 여기지 말고, 오늘 한 문장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만 살펴봐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