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알맞은 양을 갖추었다고 만족할 수 있다

앞의 다섯 단계에 음식의 알맞은 양을 더한 뒤, 이만하면 충분하고 수행자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만족할 가능성을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느니라. ‘우리는 양심과 신중함을 갖추었고, 몸·말·마음의 행위와 생계가 순수하며, 감각의 문을 지키고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안다. 이만하면 충분하고 할 일을 다했다. 수행자의 목적에 이르렀고 더 할 일은 없다.’ 그대들은 그만큼으로 만족할지도 모르느니라.

Siyā kho pana, bhikkhave, tumhākaṁ evamassa: ‘hirottappenamha samannāgatā, parisuddho no kāyasamācāro, parisuddho vacīsamācāro, parisuddho manosamācāro, parisuddho ājīvo, indriyesumha guttadvārā, bhojane mattaññuno; alamettāvatā katamettāvatā, anuppatto no sāmaññattho, natthi no kiñci uttariṁ karaṇīyan’ti tāvatakeneva tuṭṭhiṁ āpajjeyyātha.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누적 목록은 양심과 신중함, 몸·말·마음·생계의 네 청정, 감각의 문 지킴에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앎까지 더합니다. 이어 “충분하다·할 일을 다했다·수행자의 목적에 이르렀다·더 할 일은 없다”는 네 판단을 직접 인용하고, 그만큼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음식 성찰을 갖추었다는 사실도 곧바로 최종 목적의 완성을 뜻하지 않는다는 전환입니다. 이 생각과 판단을 한 묶음으로 두고, 세존의 두 선언과 남은 일에 대한 경계는 이어지는 대목에 온전히 놓았습니다.

묵상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안다는 한 실천이 수행 전체를 대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떻게 들리나요? 한 가지 습관을 잘 지켰을 때 다른 영역까지 모두 괜찮다고 여기거나, 반대로 하나가 어려워 전체를 실패로 본 적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