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느니라. ‘우리는 양심과 신중함을 갖추었고, 몸·말·마음의 행위와 생계가 순수하며, 감각의 문을 지키고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알며 깨어 있음에 전념한다. 이만하면 충분하고 할 일을 다했다. 수행자의 목적에 이르렀고 더 할 일은 없다.’ 그대들은 그만큼으로 만족할지도 모르느니라.
Siyā kho pana, bhikkhave, tumhākaṁ evamassa: ‘hirottappenamha samannāgatā, parisuddho no kāyasamācāro, parisuddho vacīsamācāro, parisuddho manosamācāro, parisuddho ājīvo, indriyesumha guttadvārā, bhojane mattaññuno, jāgariyaṁ anuyuttā; alamettāvatā katamettāvatā, anuppatto no sāmaññattho, natthi no kiñci uttariṁ karaṇīyan’ti, tāvatakeneva tuṭṭhiṁ āpajjeyyātha.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배경
이 누적 목록은 양심과 신중함, 몸·말·마음·생계의 네 청정, 감각의 문 지킴, 음식의 알맞은 양, 깨어 있음의 전념을 차례로 셉니다. 낮과 밤의 배열을 닦았다는 성취 뒤에도 “충분하다·할 일을 다했다·목적에 이르렀다·더 할 일이 없다”는 네 판단을 인용하고, 그만큼으로 만족할 가능성을 밝힙니다. 수행 시간의 규칙성이 최종 목적과 곧바로 같지는 않습니다. 누적된 성취와 성급한 결론을 한 묶음으로 두고, 세존의 선언과 조건문은 이어지는 대목에서 완결합니다.
묵상
낮과 밤의 리듬을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느낄 때 그것을 전체 완성으로 여기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나요? 이미 이룬 리듬을 깎아내리지 않으면서도 다른 일상의 동작까지 알아차림을 넓힐 여지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