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싸움터의 코끼리가
활에서 날아온 화살을 견디듯,
거친 말을 견디리라,
몸에 밴 것을 어긴 이가 세상에 많은 까닭이니라.
Ahaṁ nāgova saṅgāme, cāpato patitaṁ saraṁ; Ativākyaṁ titikkhissaṁ, dussīlo hi bahujjano.
법구경 Dhammapada 320 배경
23품은 부처님이 자신을 '나'라고 부르며 시작합니다. 거친 말을 듣는 자리에서 하신 말씀으로 전해집니다. 띠띡키상(titikkhissaṁ)은 '견디리라'는 뜻으로, 이 게송의 중심에 놓인 낱말입니다. 싸움터의 코끼리가 활에서 날아온 화살을 견디듯 견디겠다는 것입니다. 눈여겨볼 것은 되받지 않겠다고도, 용서하겠다고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저 견디겠다고만 합니다. 한역 법구경은 마지막 구를 '계 없는 사람을 건진다'로 바꾸어 견디는 이를 구제하는 이로 세웠습니다. 원문은 구제로 나아가지 않고 견딤 그 자체에 머뭅니다. 이 자리에서 23품 전체가 시작합니다. 이 품의 이름인 코끼리는 힘이 세면서도 그 힘을 쓰지 않는 것의 본보기로 놓여 있습니다.
묵상
거친 말을 들었을 때 곧바로 맞서고 싶어지나요? 맞서지 않고 견디는 것이 지는 것과 어떻게 다를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길든 코끼리를 무리로 이끌어 가고
길든 코끼리에 왕이 올라타나니,
거친 말을 견디는 이가
사람들 가운데 으뜸이니라.
Dantaṁ nayanti samitiṁ, dantaṁ rājābhirūhati; Danto seṭṭho manussesu, yotivākyaṁ titikkhati.
법구경 Dhammapada 321 배경
앞 게송이 부처님 자신의 이야기였다면 이 게송은 그 이야기를 일반화합니다. 단따(danto)는 '길든 자'로, 이 품 전체를 관통하는 낱말입니다. 코끼리를 길들이면 무리를 이끄는 자리에 서고 왕이 올라탑니다. 쓸모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구는 코끼리 이야기를 사람에게로 옮깁니다. 거친 말을 견디는 이가 사람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합니다. 길들여짐의 쓸모가 짐을 나르거나 태우는 데 있지 않고, 참아 내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아띠와꺄(ativākya)는 '지나친 말, 거친 말'로 앞 게송과 같은 낱말입니다. 두 게송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참아 내는 사람이 오히려 강해 보였던 적이 있나요? 그런 사람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길들인 노새도 훌륭하고
혈통 좋은 신두의 준마도 훌륭하다.
코끼리도 큰 코끼리도 훌륭하나
스스로를 다스린 이가 그보다 나으니라.
Varamassatarā dantā, ājānīyā ca sindhavā; Kuñjarā ca mahānāgā, attadanto tato varaṁ.
법구경 Dhammapada 322 배경
이 게송은 좋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하나씩 늘어놓은 뒤, 그보다 나은 것을 마지막에 놓는 짜임입니다. 앗사따라(assatarā)는 노새, 아자니야(ājānīya)는 혈통 좋은 말, 꾼자라(kuñjara)는 코끼리, 마하나가(mahānāga)는 큰 코끼리를 가리킵니다. 모두 값지다고 여겨 길들여 부리는 짐승들입니다. 그런데 앗따단또(attadanto), 곧 스스로를 다스린 이가 그 전부보다 낫다고 합니다. 좋은 혈통이나 큰 몸집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품은 코끼리를 빌려 말하다가 이렇게 슬쩍 사람 쪽으로 저울을 기울입니다.
묵상
타고난 조건과 스스로 다스려 얻은 것 가운데 무엇이 더 오래 남던가요? 지금 다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런 탈것들로는
가 보지 못한 곳에 이를 수 없나니,
스스로를 잘 다스려
다스려진 마음으로 그곳에 이르느니라.
Na hi etehi yānehi, gaccheyya agataṁ disaṁ; Yathāttanā sudantena, danto dantena gacchati.
법구경 Dhammapada 323 배경
주석서는 이 말씀의 배경을 이렇게 전합니다. 한 수행자가 예전에 코끼리 조련사였습니다. 아찌라와띠 강가에서 조련사가 코끼리를 다루지 못해 애먹는 것을 보고 그가 나서서 방법을 일러주어 코끼리를 쉽게 다스리게 했습니다. 이 일을 전해 들은 부처님은 그를 칭찬하지 않고 오히려 나무라셨다고 합니다. 세속의 재주를 자랑스러워한 것을 꾸짖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게송을 말씀하셨습니다. 노새도 준마도 코끼리도 가 보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아가땅 디상(agataṃ disaṃ), 곧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은 여기서 열반을 가리킵니다. 어떤 탈것도 그곳에 데려다주지 못합니다. 스스로 다스려진 마음만이 그 길을 갑니다.
묵상
자신 있는 재주와 정말 필요한 것을 헷갈린 적이 있나요? 지금 자랑스러운 것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다줄 수 있을까요?
다나팔라카라는 이름의 코끼리는
사나워 다스리기 어려우나,
묶인 채 먹이를 먹지 않고
코끼리 숲을 그리워하느니라.
Dhanapālo nāma kuñjaro, Kaṭukabhedano dunnivārayo; Baddho kabaḷaṁ na bhuñjati, Sumarati nāgavanassa kuñjaro.
법구경 Dhammapada 324 배경
주석서는 이 말씀의 배경으로 한 늙은 브라만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는 재산 여덟 냥을 아들 넷에게 두 냥씩 나누어 주었는데, 아들들은 남은 것마저 구슬려 받아 가고는 아버지를 돌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맏아들이 부처님을 공양에 청한 자리에서, 부처님은 부모를 섬기는 일의 가치를 말씀하시며 다나팔라카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다나팔라카는 힘세고 사나워 다스리기 어려운 코끼리인데, 묶인 채로도 먹이를 먹지 않고 코끼리 숲을 그리워합니다. 주석서는 이 그리움을 숲에 남겨 두고 온 부모를 향한 것으로 풀이합니다. 짐승도 부모를 잊지 않는데 사람인 아들들이 아버지를 저버렸다는 대조입니다. 이 자리에서 브라만과 네 아들 내외가 모두 수다원과를 얻었다고 전해집니다.
묵상
묶어 두어도 그리움만은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있나요? 그 그리움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요?
나태하고 많이 먹으며
잠에 빠져 뒤척이며 눕는 이는 어리석나니,
먹이를 탐하는 큰 멧돼지처럼
거듭거듭 태에 드느니라.
Middhī yadā hoti mahagghaso ca, Niddāyitā samparivattasāyī; Mahāvarāhova nivāpapuṭṭho, Punappunaṁ gabbhamupeti mando.
법구경 Dhammapada 325 배경
주석서는 이 말씀의 배경으로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 이야기를 전합니다. 왕은 밥과 반찬을 큰 그릇 가득 먹은 뒤 부처님을 뵈러 왔다가, 앉은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았다고 합니다. 왕이 식사 뒤로 몸이 괴롭다고 아뢰자 부처님은 많이 먹는 이는 늘 이렇게 괴롭다고 답하셨습니다. 미디(middhī)는 나태해 늘어진 상태, 마학가소(mahagghaso)는 많이 먹는 자를 뜻합니다. 마지막 구가 뜻밖입니다. 이런 삶이 거듭거듭 태에 든다고, 곧 되풀이해 태어난다고 합니다. 하루의 노곤함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뒤 왕은 차츰 식사량을 줄였고, 몸이 가벼워지고 활기를 되찾았다고 전해집니다.
묵상
몸이 무겁고 나른한 상태가 하루만이 아니라 오래된 습관은 아닌가요? 조금 덜어 내면 무엇이 가벼워질까요?
이 마음은 예전에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원하는 대로, 좋아하는 곳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이제 나는 이 마음을 올바른 이치로 다스리리니,
갈고리를 든 이가 발정 난 코끼리를 다루듯 하리라.
Idaṁ pure cittamacāri cārikaṁ, Yenicchakaṁ yatthakāmaṁ yathāsukhaṁ; Tadajjahaṁ niggahessāmi yoniso, Hatthippabhinnaṁ viya aṅkusaggaho.
법구경 Dhammapada 326 배경
주석서는 이 말씀의 배경으로 사미 사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누는 경전을 외운 뒤 그 공덕을 어머니와 아버지께 돌리겠다고 소리 내어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 신들과, 전생에 그의 어머니였던 한 존재가 함께 듣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일을 전해 들은 부처님은 사누에게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리라고 이르시며 이 게송을 말씀하셨습니다. 짜리깡(cārikaṃ)은 '돌아다님'입니다. 마음이 예전에는 원하는 대로 헤매고 다녔다고 합니다. 앙꾸사가하(aṅkusaggaha)는 갈고리를 쥔 조련사입니다. 갈고리는 코끼리를 해치는 도구가 아니라 방향을 잡아 주는 도구입니다. 사누는 이 말씀 끝에 아라한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묵상
마음이 원하는 대로 헤매던 때와 방향을 잡고 다스리는 때, 지금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요?
부지런함을 좋아하는 이가 되어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라.
진흙에 빠진 코끼리가 스스로를 끌어내듯,
고난에서 자신을 끌어내어라.
Appamādaratā hotha, sacittamanurakkhatha; Duggā uddharathattānaṁ, paṅke sannova kuñjaro.
법구경 Dhammapada 327 배경
주석서는 이 말씀의 배경으로 빠웨이야까라는 늙은 코끼리 이야기를 전합니다. 젊어서는 힘이 셌으나 늙고 쇠약해진 이 코끼리가 못에 들어갔다가 진창에 빠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빠세나디 왕이 조련사를 보냈는데, 조련사는 힘으로 끌어내는 대신 싸움터의 군악을 연주하게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코끼리는 마치 전쟁터에 선 듯 기운을 내어 스스로 온 힘을 다해 진창에서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밖에서 끌어당긴 것이 아니라 안에서 낸 힘으로 나온 것입니다. 압빠마다(appamāda)는 이 경전 전체에서 되풀이되는 낱말로, '마음을 놓지 않음'을 뜻합니다. 둑가(duggā)는 고난, 궁지를 가리킵니다. 진흙에 빠진 코끼리가 스스로 힘을 낸 것처럼, 궁지에서 자신을 끌어내는 힘도 결국 스스로에게서 나옵니다.
묵상
궁지에 빠졌을 때 밖에서 끌어 주기를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나요? 지금 낼 수 있는 스스로의 힘은 무엇일까요?
지혜로운 동료를 얻어
함께 다니며 훌륭하게 살아가는 슬기로운 이를 얻는다면,
모든 위험을 이겨 내며
마음을 챙기고 그와 함께함을 기뻐하며 다니라.
Sace labhetha nipakaṁ sahāyaṁ, Saddhiṁ caraṁ sādhuvihāridhīraṁ; Abhibhuyya sabbāni parissayāni, Careyya tenattamano satīmā.
법구경 Dhammapada 328 배경
주석서는 이 말씀의 배경으로 여러 수행자에게 있었던 일을 전합니다. 니빠까(nipaka)는 '사려 깊은, 헤아릴 줄 아는'을 뜻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동료는 그저 곁에 있는 이가 아닙니다. 함께 훌륭하게 살아가며 위험을 같이 이겨 낼 수 있는 이입니다. 그래서 조건이 붙습니다. 그런 이를 얻었다면 함께 가라는 것이 이 게송이고, 얻지 못했다면 어떻게 하라는 것이 다음 게송입니다. 5품 61게송에서 자기보다 낫거나 같은 이를 만나지 못하면 홀로 가라고 했던 셈이 여기서 다시 나옵니다. 함께 갈 이를 고르는 기준을 낮추지 말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묵상
함께 위험을 이겨 낼 수 있다고 믿는 동료가 있나요? 그 믿음은 무엇으로 쌓였나요?
지혜로운 동료를 얻지 못하고
함께 다니며 훌륭하게 살아가는 슬기로운 이를 얻지 못했다면,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듯
마탕가 숲의 코끼리처럼 홀로 다니라.
No ce labhetha nipakaṁ sahāyaṁ, Saddhiṁ caraṁ sādhuvihāridhīraṁ; Rājāva raṭṭhaṁ vijitaṁ pahāya, Eko care mātaṅgaraññeva nāgo.
법구경 Dhammapada 329 배경
앞 게송과 짝을 이룹니다. 동료를 얻었을 때와 얻지 못했을 때를 나란히 놓았습니다.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듯'이라는 비유가 눈에 띕니다. 애써 얻은 것을 스스로 버리는 그림입니다. 나쁜 동료 곁에 머무는 일이 그만큼 무언가를 계속 잃는 일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마탕가란녜(mātaṅgaraññe)는 마탕가라는 코끼리 무리가 사는 숲으로, 앞서 부처님을 시중든 빠릴레이야까 숲의 코끼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홀로 다니는 것이 외로움이 아니라 나쁜 동료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라는 점을 이 비유가 보여 줍니다.
묵상
곁에 있는 것만으로 힘이 빠지는 관계가 있나요? 거기서 한 걸음 물러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혼자 지내는 것이 더 나으니
어리석은 이에게는 동료가 될 이가 없느니라.
홀로 다니며 나쁜 일을 하지 말지니
마탕가 숲의 코끼리처럼 근심 없이 가라.
Ekassa caritaṁ seyyo, Natthi bāle sahāyatā; Eko care na ca pāpāni kayirā, Appossukko mātaṅgaraññeva nāgo.
법구경 Dhammapada 330 배경
코끼리 연작의 결론에 해당하는 게송입니다. 압뽀숙꼬(appossukko)는 '애쓰지 않는, 근심 없는'을 뜻합니다. 앞 게송이 나쁜 동료를 버리고 떠나라고 했다면 이 게송은 그 떠난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말합니다. 쫓기듯 도망치는 자리가 아니라 근심 없는 자리입니다. 마탕가 숲의 코끼리, 곧 빠릴레이야까가 부처님을 시중들며 지낸 숲이 그 자리의 본보기입니다. '나쁜 일을 하지 말라'는 구절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홀로 다니는 자유가 무엇을 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이 구절이 못박습니다.
묵상
혼자 있는 시간이 쫓기는 시간인가요, 근심 없는 시간인가요? 둘을 가르는 것은 무엇일까요?
필요할 때 생기는 동료는 행복이요
있는 것으로 만족함이 행복이니,
생이 다할 때 지닌 좋은 일이 행복이요
모든 괴로움을 버림이 행복이니라.
Atthamhi jātamhi sukhā sahāyā, Tuṭṭhī sukhā yā itarītarena; Puññaṁ sukhaṁ jīvitasaṅkhayamhi, Sabbassa dukkhassa sukhaṁ pahānaṁ.
법구경 Dhammapada 331 배경
주석서는 이 말씀의 배경으로 마라가 부처님께 왕이 되기를 권한 일을 전합니다. 히말라야 기슭에 계실 때 부처님은 못된 왕들에게 시달리는 백성들을 보시고, 그들을 억누르는 이 없이 다스릴 길이 있을지 헤아리셨습니다. 그 생각을 알아챈 마라가 다가와 왕위에 오르시라 권했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이를 물리치셨습니다. 이 게송은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참된 행복 네 가지를 늘어놓습니다. '필요할 때 생기는' 동료가 첫째입니다. 왕위나 권력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순간에 곁에 있는 동료가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한역 법구경은 마지막 구 '모든 괴로움을 버림이 행복'을 '뭇 악을 범하지 않음이 편안하다'로 바꾸었습니다. 원문은 앞의 세 행복을 넘어서는 것을 마지막에 놓았는데, 한역은 그것을 하나 더 늘어놓은 항목으로 바꾸었습니다.
묵상
정말 필요한 순간에 곁에 있어 준 이가 있었나요? 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 무엇이 보이나요?
이 세상에서 어머니를 섬김이 행복이요
아버지를 섬김도 행복이니,
이 세상에서 애쓰는 이의 삶이 행복이요
거룩한 삶도 행복이니라.
Sukhā matteyyatā loke, atho petteyyatā sukhā; Sukhā sāmaññatā loke, atho brahmaññatā sukhā.
법구경 Dhammapada 332 배경
앞 게송이 행복을 큰 테두리에서 말했다면 이 게송은 구체적인 자리를 짚습니다. 맛떼이야따(matteyyatā)는 어머니를 섬기는 도리, 뻬떼이야따(petteyyatā)는 아버지를 섬기는 도리입니다. 324게송에서 부모를 돌보지 않던 아들들과 다나팔라카 이야기가 이미 이 자리를 예비했습니다. 사마냐따(sāmaññatā)는 사마나, 곧 애쓰는 이의 삶을 뜻하고 브라흐마냐따(brahmaññatā)는 거룩한 삶을 뜻합니다. 집에 매인 삶과 집을 나선 삶을 나란히 놓아, 둘 다 행복의 자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어느 한쪽만 옳다고 하지 않는 짜임입니다.
묵상
곁을 지키는 삶과 홀로 애쓰는 삶, 둘 다 나름의 행복이 있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늙음에 이르도록 지닌 됨됨이가 행복이요
굳게 선 믿음이 행복이니,
지혜를 얻음이 행복이요
악행을 짓지 않음이 행복이니라.
Sukhaṁ yāva jarā sīlaṁ, sukhā saddhā patiṭṭhitā; Sukho paññāya paṭilābho, pāpānaṁ akaraṇaṁ sukhaṁ.
법구경 Dhammapada 333 배경
품의 마지막 게송입니다. '늙음에 이르도록'이라는 말이 앞세워집니다. 하루 이틀 지킨 됨됨이가 아니라 오래도록 지녀 온 됨됨이를 말합니다. 삿다(saddhā)는 믿음인데, 여기서는 굳게 선(patiṭṭhitā) 믿음이라 하여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강조합니다. 지혜를 얻음과 악행을 짓지 않음이 뒤를 잇습니다. 됨됨이, 믿음, 지혜, 그침이라는 네 가지가 나란히 놓였습니다. 이 품은 싸움터의 코끼리로 시작해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여러 장면을 지나, 오래도록 몸에 지녀 온 것들로 마무리됩니다. 다스림이 한순간의 결심이 아니라 늙음에 이르도록 지속되는 일임을 마지막 게송이 보여 줍니다.
묵상
오래도록 지켜 온 것이 있나요? 그것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지탱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