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종이 되어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고 남에게 매여 원하는 곳에 갈 수 없었다고 하느니라. 시간이 지나 종살이에서 풀려나 자기 뜻대로 하고 남에게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 되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었느니라.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니라. ‘나는 전에 남에게 매인 종이라 원하는 곳에 갈 수 없었지만, 지금은 풀려나 내 뜻대로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다.’ 그 일 때문에 기쁨을 얻고 행복에 이를 것이니라.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dāso assa anattādhīno parādhīno na yenakāmaṅgamo. So aparena samayena tamhā dāsabyā mucceyya attādhīno aparādhīno bhujisso yenakāmaṅgamo. Tassa evamassa: ‘ahaṁ kho pubbe dāso ahosiṁ anattādhīno parādhīno na yenakāmaṅgamo, somhi etarahi tamhā dāsabyā mutto attādhīno aparādhīno bhujisso yenakāmaṅgamo’ti. So tatonidānaṁ labhetha pāmojjaṁ, adhigaccheyya somanassaṁ.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배경
네 번째 비유는 종의 상태를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함·남에게 매임·원하는 곳에 갈 수 없음의 세 부정으로 풉니다. 풀려난 뒤에는 자기 뜻대로 함·남에게 매이지 않음·자유인이 됨·원하는 곳에 감이라는 네 긍정이 반대 자리에 놓입니다. 인물의 회상에서도 두 목록이 다시 반복되고, 그 때문에 기쁨과 행복을 얻습니다. 역사적 종살이의 고통을 가볍게 심리 비유로 환원하지 않으면서, 경 안에서는 다섯 장애가 선택과 움직임을 제한하는 상태이고 버림은 마음의 자율을 되찾는 일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음”이라는 자유의 표현은 몸의 움직임과 마음의 선택 가운데 어디에 더 가깝게 들리나요? 실제 억압의 경험을 꺼낼 필요는 없어요. 선택할 수 있다는 느낌이 잠시 생겼던 안전한 순간만 떠올려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