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집중된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이 없고 유연하고 쓰기 좋으며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게 되자, 그는 존재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이느니라. 그는 인간을 뛰어넘는 맑은 신성한 눈으로 존재들이 죽고 태어나며 낮고 높고 아름답고 추하고 좋은 곳과 나쁜 곳에 이르는 것을 보느니라. 존재들이 행위에 따라 가는 것을 아느니라. …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ṁ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ti.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pe…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배경
두 번째 앎은 앞과 같은 여덟 성질의 집중된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그 마음을 존재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아는 앎으로 기울입니다. 인간을 뛰어넘는 맑은 신성한 눈으로 죽고 태어나는 존재들을 보며, 낮음/높음·아름다움/추함·좋은 곳/나쁜 곳의 세 대조와 죽음/태어남의 한 대조를 구별합니다. 또 존재들이 행위에 따라 가는 것을 압니다. 뒤의 긴 선악 결과 예시는 원문의 “…pe…”로 생략되어 있으며, 같은 인과 구조가 이어짐을 이 표시가 알립니다.
묵상
죽음·태어남과 낮음·높음을 둘러싼 긴 목록은 삶을 평가하라는 명령보다 인과를 본다는 설명으로 읽을 수 있어요. 타인의 처지를 그 사람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자신의 한 행동과 그 방향만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