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집중된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흠과 오염이 없고 유연하고 쓰기 좋으며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게 되자, 그는 번뇌가 다함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이느니라. 그는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아느니라. “이것들은 번뇌다, 이것은 번뇌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번뇌의 소멸이다, 이것은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아느니라.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ṁ khay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ti. So ‘idaṁ dukkhan’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Ime āsav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배경
세 번째 앎도 여덟 성질의 집중된 마음에서 시작하며, 이번에는 번뇌가 다함을 아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입니다. 괴로움·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의 네 항목을 먼저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어 번뇌·일어남·소멸·소멸로 이끄는 길의 두 번째 네 항목도 같은 문법으로 구별합니다. 일어남과 소멸만으로 줄이지 않고 각각의 대상과 길을 함께 보는 구조입니다. 앞의 두 앎이 기억과 존재의 흐름을 보았다면, 이 앎은 직접 해탈로 이어집니다.
묵상
괴로움과 번뇌를 각각 일어남·소멸·길과 함께 본다는 구조는 어떻게 들리나요? 지금의 고통을 즉시 해결해야 한다고 압박하지 말고, 한 상태에도 원인과 끝과 방향이 있을 수 있다는 말만 조용히 살펴봐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