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이와 같이 알고 보자,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풀리고, 마음은 존재의 번뇌에서 풀리며, 마음은 무명의 번뇌에서 풀리느니라. 풀려났을 때 “풀려났다”는 앎이 있느니라. 그는 분명히 아느니라.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은 마쳤고, 이 상태로 다시 태어남은 없다.”
Tassa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배경
알고 보는 것이 마음의 풀림으로 이어집니다.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풀리고, 마음은 존재의 번뇌에서 풀리며, 마음은 무명의 번뇌에서 풀립니다. 세 관계에서 “마음은”을 각각 반복해 어느 하나도 합치지 않았습니다. 풀려났을 때 “풀려났다”는 앎이 있고, 태어남은 다함·청정한 삶은 완성됨·할 일은 마침·이 상태로 다시 태어남은 없음의 네 선언을 분명히 압니다.
묵상
“마음은”이라는 주어가 세 번 반복되며 서로 다른 번뇌에서 풀린다는 대목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완전한 해탈을 자신의 상태라고 여길 필요는 없어요. 풀림이 한 덩어리가 아니라 관계별로 알아진다는 점만 살펴봐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