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이 수행자를 ‘수행자’라고도 하고 ‘바라문’이라고도 하며, ‘씻은 이’·‘앎에 통달한 이’·‘배운 이’·‘성스러운 이’·‘아라한’이라고도 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어떻게 수행자가 되느냐? 그는 이런 상태를 가라앉혔느니라. 악하고 해로우며, 오염시키고 다시 태어남으로 이끌며, 괴로움을 동반하고 괴로운 결과를 낳아 앞으로 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끄는 상태이니라.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수행자가 되느니라.
Ayaṁ vuccati, bhikkhave, bhikkhu ‘samaṇo’ itipi ‘brāhmaṇo’itipi ‘nhātako’itipi ‘vedagū’itipi ‘sottiyo’itipi ‘ariyo’itipi ‘arahaṁ’itipi.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maṇo hoti? Samitāssa honti pāpakā akusalā dhammā, saṅ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ṁ, jātijarāmaraṇiyā. Evaṁ kho, bhikkhave, bhikkhu samaṇ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배경
세 앎의 완성 뒤 한 수행자를 수행자·바라문·씻은 이·앎에 통달한 이·배운 이·성스러운 이·아라한이라는 일곱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어 첫 이름인 수행자를 질문·이유·결론의 세 문장으로 풉니다. 악하고 선하지 않음, 오염시킴, 다시 태어남으로 이끌음, 고통을 동반함, 괴로운 결과를 낳음, 앞으로 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끌음이라는 여섯 성질을 모두 갖춘 상태를 가라앉혔기 때문에 수행자입니다. 빠알리어 samita와 samaṇa 사이의 소리 연결이 첫 말놀이를 이룹니다.
묵상
일곱 이름을 먼저 펼친 뒤 첫 이름인 수행자를 해로운 상태의 “가라앉힘”이라는 동작으로 푸는 방식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자신이 그 이름에 해당하는지 판정하지 말고, 이름과 실제 변화가 연결되는 방식만 살펴봐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