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움을 몰아낸 수행자를 브라흐마나라 부르는 까닭

오염과 재생과 고통으로 이끄는 악하고 선하지 않은 상태를 몰아냈으므로 그 비구를 바라문이라고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어떻게 바라문이 되느냐? 그는 이런 상태를 몰아냈느니라. 악하고 해로우며, 오염시키고 다시 태어남으로 이끌며, 괴로움을 동반하고 괴로운 결과를 낳아 앞으로 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끄는 상태이니라.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바라문이 되느니라.

Kathañca, bhikkhave, bhikkhu brāhmaṇo hoti? Bāhitāssa honti pāpakā akusalā dhammā, saṅ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ṁ, jātijarāmaraṇiyā. Evaṁ kho, bhikkhave, bhikkhu brāhmaṇo ho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

배경

두 번째 단락은 같은 여섯 성질의 전체 목록을 다시 적고 핵심 동사만 바꿉니다. 바라문은 악하고 선하지 않은 상태를 “몰아낸” 이입니다. 앞의 수행자가 가라앉힘으로 풀렸다면, 여기서는 해로운 상태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밀어냈다는 움직임이 드러납니다. 질문과 결론에서도 “수행자들이여”를 각각 반복하여 세존의 화자와 청자를 유지했습니다. 이 풀이는 출생 신분이 아니라 해로운 상태와의 관계로 이름의 뜻을 새로 정의합니다.

묵상

바라문을 출생보다 “해로운 상태를 몰아낸 이”로 풀이하는 대목은 어떻게 들리나요? 이 호칭을 자신에게 붙이거나 다른 이를 판단하지 말고, 이름의 기준이 행위와 마음의 방향으로 옮겨진다는 점만 살펴봐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