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어떻게 앎에 통달한 이가 되느냐? 그는 이런 상태를 분명히 알았느니라. 악하고 해로우며, 오염시키고 다시 태어남으로 이끌며, 괴로움을 동반하고 괴로운 결과를 낳아 앞으로 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끄는 상태이니라.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앎에 통달한 이가 되느니라.
Kathañca, bhikkhave, bhikkhu vedagū hoti? Viditāssa honti pāpakā akusalā dhammā, saṅ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ṁ, jātijarāmaraṇiyā. Evaṁ kho, bhikkhave, bhikkhu vedagū hoti.
맛지마 니까야 MN 39 앗사뿌라 긴 경 (Mahāassapurasutta)배경
네 번째 이름은 해로운 상태와 직접 거리를 두는 동작보다 그것을 “분명히 알았다”는 앎을 앞세웁니다. 여섯 성질의 목록은 같이 반복되므로, 앎은 피상적인 정보가 아니라 오염·재생·고통·괴로운 결과·태어남·늙음·죽음으로 이어지는 인과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입니다. 질문의 “어떻게”와 결론의 “이와 같이”도 같은 틀을 유지해, 이름을 타고난 자격이 아니라 앎의 완성으로 풀어냅니다.
묵상
이름이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해로운 상태를 분명히 아는 이를 가리킨다는 풀이는 어떻게 들리나요? 자신의 지식을 평가하지 말고, 어떤 일의 원인과 결과를 이전보다 분명히 본 순간만 떠올려봐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