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를 아는 이에게서 다툼이 멎다

다른 이들은 스스로 절제해야 함을 모르지만 이를 아는 이들로부터 다툼이 가라앉는다고 읊습니다.

다른 이들은 “우리가 여기서 절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를 아는 이들이 있으니, 그로부터 다툼이 가라앉습니다.

Pare ca na vijānanti, mayamettha yamāmase; Ye ca tattha vijānanti, tato sammanti medhagā.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이 게송의 중심은 상대를 억제하는 일이 아니라 mayam, “우리”가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는 앎입니다. yamāmase는 함께 자신을 다스리자는 뜻이고, 이를 모르는 이들과 아는 이들이 대조됩니다. 다툼은 모든 사람이 동시에 깨달아야만 멎는다고 하지 않고, 그 사실을 아는 이들로부터 가라앉는다고 말합니다. 앞의 원한 없음이 관계 속에서 어떤 행동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 주며, 책임의 시선을 상대에게만 두지 않도록 방향을 바꿉니다.

묵상

갈등에서 상대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과 내가 절제할 수 있는 한 가지를 보는 생각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말의 속도나 목소리 크기처럼 작은 부분 하나를 떠올려 볼까요? 당장 바꾸고 싶지 않다면 그 선택지도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