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 우빡낄레사경

맛지마 니까야 MN 128

꼬삼비의 다툼과 세 수행자의 화합에서 시작해, 깨닫기 전 빛과 형상을 흐린 열한 마음의 오염을 버리고 삼매와 흔들리지 않는 해탈에 이르는 과정을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59구절

이 경을 59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꼬삼비의 다툼으로 경이 열리다 1구절

세존께서 꼬삼비에 머무실 때 비구들이 말이라는 창으로 서로를 찌르며 다투던 상황을 밝힙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꼬삼비의 고시따 승원에 머무셨다. 그때 꼬삼비의 수행자들은 싸움과 다툼과 논쟁에 빠져, 말이라는 창으로 서로를 찌르며 지냈습니다.

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bhagavā kosambiyaṁ viharati ghositārāme. Tena kho pana samayena kosambiyaṁ bhikkhū bhaṇḍanajātā kalahajātā 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ṁ 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n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경은 장소와 세존의 머무름을 밝힌 뒤 곧바로 공동체의 균열을 제시합니다. bhaṇḍana·kalaha·vivāda는 싸움·다툼·논쟁으로 겹쳐 놓였고, mukhasatti는 입에서 나오는 말을 창에 비유합니다. 실제 무기를 썼다는 뜻이 아니라 상대를 겨냥해 상처 입히는 말이 오갔다는 표현입니다. 이 첫 장면은 뒤에 나오는 세 수행자의 화합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마음의 미세한 오염을 살피기 전에 말과 관계에서 드러나는 거친 혼란을 보여 줍니다.

묵상

최근 대화에서 말이 창처럼 느껴졌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 말의 내용보다 겨냥하는 방식이 더 아팠는지, 또는 내 말이 누군가를 겨냥했는지 조용히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지금 떠오르는 장면이 없다면 이 비유가 주는 감각만 느껴도 괜찮아요.

2 다투는 수행자들을 찾아가 달라고 부처님께 청하다 1구절

한 비구가 다툼을 세존께 알리고 자비로 찾아가 달라고 청하자 세존께서 침묵으로 동의하십니다.

한 수행자가 세존께 다가가 절하고 한쪽에 서서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곳 꼬삼비의 수행자들이 싸움과 다툼과 논쟁에 빠져 말이라는 창으로 서로를 찌르며 지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자비로 그 수행자들에게 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습니다.

Atha kho aññataro bhikkhu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aṭṭhāsi. Ekamantaṁ ṭhito kho s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idha, bhante, kosambiyaṁ bhikkhū bhaṇḍanajātā kalahajātā 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ṁ 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nti. Sādhu, bhante, bhagavā yena te bhikkhū tenupasaṅkamatu anukampaṁ upādāyā”ti. Adhivāsesi bhagavā tuṇhībhāvena.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앞에서 서술된 다툼이 이번에는 한 수행자의 직접 보고로 되풀이됩니다. 그는 세 가지 갈등과 “말이라는 창”을 모두 알린 뒤, anukampa를 근거로 찾아가 달라고 청합니다. 세존의 침묵은 외면이 아니라 요청을 받아들인 표시로 이어지는 이동과 연결됩니다. 경은 문제를 전한 사람의 이름이나 동기를 밝히지 않은 채, 공동체의 갈등이 스스로 풀리지 않아 누군가 중재를 청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갈등 속에서 직접 맞서기보다 믿을 만한 이에게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던 적이 있나요? 그때 무엇을 과장하지 않고 정확히 전하는 일이 가능했는지 떠올려 볼까요? 도움을 청한 경험이 없다면 그런 선택이 어떤 느낌일지만 생각해도 괜찮아요.

3 첫 번째 만류가 거절되다 1구절

세존께서 네 갈등을 멈추라고 하시지만 한 비구가 관여하지 말라며 첫 번째로 거절합니다.

세존께서 그 수행자들에게 가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하라, 수행자들이여. 싸우지 말고, 다투지 말며, 충돌하지 말고, 논쟁하지 말라.” 한 수행자가 말했습니다. “그대로 두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가르침의 주인이십니다. 세존이시여, 관여하지 말고 현세의 행복한 머묾에 전념하십시오. 우리는 이 싸움과 다툼과 충돌과 논쟁으로 알려질 것입니다.”

Atha kho bhagavā yena te bhikkhū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e bhikkhū etadavoca: “alaṁ, bhikkhave, mā bhaṇḍanaṁ, mā kalahaṁ, mā viggahaṁ, mā vivādan”ti. Evaṁ vutte, aññatar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āgametu, bhante. Bhagavā dhammassāmī; appossukko, bhante, bhagavā diṭṭhadhammasukhavihāraṁ anuyutto viharatu; mayametena bhaṇḍanena kalahena viggahena vivādena paññāyissām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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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세존의 첫 만류에는 mā가 네 차례 놓여 싸움·다툼·충돌·논쟁을 각각 금합니다. 이에 한 수행자는 세존을 “가르침의 주인”이라 부르면서도 appossukka, 곧 관여하지 말라고 요청합니다. 존칭과 거절이 한 발화 안에 함께 있다는 점을 약화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말은 자신들이 이 갈등으로 알려질 것이라고 책임을 떠맡는 형식이지만, 화해하겠다는 약속은 아닙니다. 이 불응은 뒤의 두 차례 반복과 세존의 떠남을 이해하는 첫 고리입니다.

묵상

도움을 주려는 말이 존중의 표현과 함께 거절되는 장면이 낯설게 느껴지나요? 상대가 내 개입을 원하지 않을 때 존중과 책임 사이에서 어떤 긴장이 생기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답을 정하기 어렵다면 그 긴장만 알아차려도 괜찮아요.

4 두 번째 만류도 같은 말로 거절되다 1구절

세존과 한 비구가 두 번째로 같은 만류와 거절을 온전히 주고받습니다.

두 번째로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하라, 수행자들이여. 싸우지 말고, 다투지 말며, 충돌하지 말고, 논쟁하지 말라.” 두 번째로 그 수행자가 말했습니다. “그대로 두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가르침의 주인이십니다. 세존이시여, 관여하지 말고 현세의 행복한 머묾에 전념하십시오. 우리는 이 싸움과 다툼과 충돌과 논쟁으로 알려질 것입니다.”

Dutiyampi kho bhagavā te bhikkhū etadavoca: “alaṁ, bhikkhave, mā bhaṇḍanaṁ, mā kalahaṁ, mā viggahaṁ, mā vivādan”ti. Dutiyampi kho s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āgametu, bhante. Bhagavā dhammassāmī; appossukko, bhante, bhagavā diṭṭhadhammasukhavihāraṁ anuyutto viharatu; mayametena bhaṇḍanena kalahena viggahena vivādena paññāyissāmā”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두 번째 교환은 첫 교환과 같은 문장으로 다시 놓입니다. “두 번째로”라는 표지가 양쪽 발화에 각각 붙고, 세존의 네 가지 금지와 수행자의 거절도 모두 반복됩니다. 이 온전한 반복은 한 번의 오해가 아니라 만류를 듣고도 같은 입장을 유지했다는 경의 리듬을 만듭니다. 말의 내용이 바뀌지 않을수록 갈등이 굳어 있음을 드러내며, 중재자가 같은 요청을 다시 건네는 인내도 함께 보입니다.

묵상

같은 요청과 같은 거절이 되풀이될 때 마음에서는 무엇이 먼저 일어나나요? 조급함, 단념, 다시 설명하고 싶은 마음 가운데 가까운 것이 있는지 가볍게 느껴 볼까요? 비슷한 경험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반복되는 문장의 무게만 들어 보아도 괜찮아요.

5 세 번째 만류 뒤에도 뜻을 굽히지 않다 1구절

세 번째이자 마지막 만류에도 한 비구가 같은 답을 되풀이해 중재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하라, 수행자들이여. 싸우지 말고, 다투지 말며, 충돌하지 말고, 논쟁하지 말라.” 세 번째로 그 수행자가 말했습니다. “그대로 두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가르침의 주인이십니다. 세존이시여, 관여하지 말고 현세의 행복한 머묾에 전념하십시오. 우리는 이 싸움과 다툼과 충돌과 논쟁으로 알려질 것입니다.”

Tatiyampi kho bhagavā te bhikkhū etadavoca: “alaṁ, bhikkhave, mā bhaṇḍanaṁ, mā kalahaṁ, mā viggahaṁ, mā vivādan”ti. Tatiyampi kho s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āgametu, bhante. Bhagavā dhammassāmī; appossukko, bhante, bhagavā diṭṭhadhammasukhavihāraṁ anuyutto viharatu; mayametena bhaṇḍanena kalahena viggahena vivādena paññāyissām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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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세 번째 교환도 앞의 두 차례와 낱말을 바꾸지 않습니다. 횟수 표지가 세존의 말과 수행자의 답에 모두 있어 세 번의 권고와 세 번의 거절이 정확히 짝을 이룹니다. 경문은 수행자의 심리를 설명하거나 세존이 화를 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더 이상 네 번째 만류가 이어지지 않고 다음 장면에서 세존께서 거처를 정리해 떠나십니다. 따라서 이 반복은 설득의 실패를 과장된 평가 없이 행동의 전환으로 연결합니다.

묵상

세 번이나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더 말하는 것과 물러나는 것 사이에서 어떤 기준을 찾게 되나요? 최근의 작은 상황 하나에서 계속 붙드는 마음과 놓는 마음을 비교해 볼 수 있을까요? 어느 쪽이 옳다고 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6 거처를 정리하고 서서 게송을 시작하다 1구절

세존께서 탁발을 마친 뒤 거처를 정리하고 발우와 가사를 든 채 서서 게송을 읊으십니다.

그 뒤 세존께서는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어 꼬삼비로 탁발하러 들어가셨습니다. 탁발을 마치고 식사 뒤 돌아오신 세존께서는 거처를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발우와 가사를 든 채 서서 다음 게송들을 읊으셨습니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ṁ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kosambiṁ piṇḍāya pāvisi. Kosambiyaṁ piṇḍāya caritvā pacchābhattaṁ piṇḍapātapaṭikkanto senāsanaṁ saṁsāmetvā pattacīvaramādāya ṭhitakova imā gāthā abhās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세 차례의 만류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뒤, 경은 세존의 일상 동작을 차례로 기록합니다. 아침 탁발과 식사를 마치고 senāsana를 정리한 다음 발우와 가사를 듭니다. 게송은 앉아서 한 설법이 아니라 떠날 준비를 마친 채 서서 읊은 말입니다. 이 자세와 순서는 갈등을 정리했다는 선언을 덧붙이지 않고도 다음 이동을 예고합니다. 이어지는 게송은 원한을 품는 방식과 벗을 선택하는 기준을 여러 대조로 풀어냅니다.

묵상

어떤 자리를 떠나기 전에 주변을 정리했던 경험이 있나요? 해결되지 않은 감정과 실제로 해야 할 작은 정돈을 구분하면 마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떠올려 볼까요? 떠남의 경험이 없다면 한 일을 마무리하는 몸의 감각만 생각해도 괜찮아요.

7 갈라지면서도 자신을 어리석다 여기지 않다 1구절

여러 목소리가 뒤엉키고 승가가 갈라지는데도 누구도 자신을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는 모습을 읊습니다.

많은 소리가 한꺼번에 나지만, 어느 어리석은 이도 자신을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승가가 갈라질 때에도 그들은 다른 이를 더 낫게 여기지 않습니다.

“Puthusaddo samajano, na bālo koci maññatha; Saṅghasmiṁ bhijjamānasmiṁ, nāññaṁ bhiyyo amaññaruṁ.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떠나기 전에 읊은 첫 게송은 소리의 많음과 자기 판단의 결핍을 나란히 둡니다. puthusadda는 여러 목소리가 뒤섞인 상태이고, “나는 어리석다”라고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마지막 두 행은 공동체가 실제로 갈라지는 중에도 다른 사람에게서 더 나은 점을 보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논쟁의 승패를 가르기보다 자신을 예외로 두는 태도를 먼저 드러내며, 말이 많아질수록 자기 점검이 사라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여러 사람이 동시에 자기 말만 옳다고 할 때 내 목소리는 어떻게 들리나요? 다른 사람에게서 더 나은 점 하나를 인정하는 일이 어려웠던 순간이 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지금 답이 없다면 많은 소리 속에서 몸이 느끼는 긴장만 살펴도 괜찮아요.

8 지혜로운 체하며 말의 경계를 넘다 1구절

알아차림을 잃은 채 지혜로운 사람처럼 보이려 하고 말하면서도 무엇에 이끌리는지 모른다고 읊습니다.

알아차림을 잃고도 지혜로운 체하며, 말의 경계를 벗어나 떠듭니다. 원하는 대로 입을 벌려 말하면서도, 무엇에 이끌리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Parimuṭṭhā paṇḍitābhāsā, vācāgocarabhāṇino; Yāvicchanti mukhāyāmaṁ, yena nītā na taṁ vidū.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이 게송은 말의 내용보다 말하는 상태를 살핍니다. parimuṭṭha는 알아차림을 놓친 상태이고, paṇḍitābhāsa는 지혜로운 사람처럼 보이는 모습입니다. 입을 원하는 만큼 벌려 말하지만 yena nītā, 곧 자신을 무엇이 끌고 가는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지식이 있는 듯한 말과 자기 마음의 방향을 아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앞의 여러 목소리 장면을 이어, 통제되지 않은 발화가 어떻게 스스로를 보지 못하게 하는지 밝힙니다.

묵상

말이 빨라질수록 내가 무엇에 이끌리는지 놓친 적이 있나요?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이기고 싶은 마음, 이해시키고 싶은 마음 가운데 가까운 것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특별한 기억이 없다면 말하기 직전의 짧은 충동만 상상해도 괜찮아요.

9 당한 일을 품으면 원한이 가라앉지 않다 1구절

욕설·폭행·패배·빼앗김을 되새기며 품는 이들에게 원한이 가라앉지 않는다고 읊습니다.

“그가 나를 욕했고, 나를 때렸으며, 나를 이겼고, 내 것을 빼앗았다.” 이런 생각을 품는 이들에게는 원한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Akkocchi maṁ avadhi maṁ, ajini maṁ ahāsi me; Ye ca taṁ upanayhanti, veraṁ tesaṁ na samma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네 가지 기억이 “나를”이라는 말과 함께 차례로 놓입니다. 욕함·때림·이김·빼앗음은 실제로 당한 일을 지우라는 명령이 아니라, 그 일을 upanayhanti, 계속 묶어 품을 때 원한이 쉬지 않는다는 인과를 말합니다. 피해가 없었다고 부정하거나 책임을 당한 사람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초점은 사건의 사실성보다 기억을 되풀이해 매는 마음이 원한을 지속시키는 방식에 있으며, 바로 다음 게송에서 같은 네 사건을 품지 않는 경우와 대조됩니다.

묵상

상처받은 일을 기억하는 것과 그 기억을 계속 묶어 두는 것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아직 놓기 어려운 일이 있다면 억지로 놓으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만 떠올릴 때 몸과 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조금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10 같은 일을 품지 않으면 원한이 가라앉다 1구절

앞과 같은 네 일을 겪었어도 그것을 묶어 품지 않는 이들에게 원한이 가라앉는다고 대조합니다.

“그가 나를 욕했고, 나를 때렸으며, 나를 이겼고, 내 것을 빼앗았다.” 이런 생각을 품지 않는 이들에게는 원한이 가라앉습니다.

Akkocchi maṁ avadhi maṁ, ajini maṁ ahāsi me; Ye ca taṁ nupanayhanti, veraṁ tesūpasamma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앞 게송의 첫 두 행이 그대로 반복되지만 동사에는 nupanayhanti라는 부정이 붙습니다. 사건 네 가지를 삭제하거나 좋게 해석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원한의 묶음으로 계속 품지 않을 때 결과가 달라집니다. 원한이 “없어야 한다”는 판단이 아니라 sammati, 가라앉는 과정으로 표현된 점도 중요합니다. 두 게송의 차이는 오직 품는다와 품지 않는다는 한 부정에 있어, 마음이 사건 이후 무엇을 되풀이하는지가 인과의 갈림길이 됩니다.

묵상

같은 기억이 떠올라도 어떤 날에는 오래 붙들리고 어떤 날에는 조금 흘러간 적이 있나요? 그 차이에 몸의 피로, 안전감, 함께 있던 사람 같은 조건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놓이지 않는 날이 있어도 그것을 잘못으로 여기지 않아도 괜찮아요.

11 원한은 원한 없음으로 가라앉다 1구절

원한은 원한으로 끝나지 않고 원한 없음으로 가라앉는다는 오래된 법칙을 밝힙니다.

이 세상에서 원한은 결코 원한으로 가라앉지 않습니다. 원한 없음으로 가라앉으니, 이것은 오래된 법칙입니다.

Na hi verena verāni, sammantīdha kudācanaṁ; Averena ca sammanti, esa dhammo sanantano.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두 앞 게송의 대조를 일반 원리로 묶습니다. 첫 문장에는 na와 kudācanaṁ이 함께 있어 “결코”라는 부정을 분명히 하고, 원한이 원한으로 진정되는 경우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avera는 단순한 기분 좋은 상태라기보다 원한을 되돌려 주지 않는 상태입니다. sanantana는 이 원리가 오래 이어져 왔음을 가리킵니다. 갈등을 힘으로 눌러 잠시 조용하게 만드는 것과 원한 자체가 가라앉는 일을 구별하게 하는 결론입니다.

묵상

원한에 원한으로 답했을 때 잠시 통쾌해도 마음이 더 오래 묶였던 적이 있나요? 반대로 되갚지 않은 선택이 약함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힘으로 느껴진 순간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어느 경험도 없다면 문장의 단호한 부정만 느껴도 괜찮아요.

12 절제를 아는 이에게서 다툼이 멎다 1구절

다른 이들은 스스로 절제해야 함을 모르지만 이를 아는 이들로부터 다툼이 가라앉는다고 읊습니다.

다른 이들은 “우리가 여기서 절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를 아는 이들이 있으니, 그로부터 다툼이 가라앉습니다.

Pare ca na vijānanti, mayamettha yamāmase; Ye ca tattha vijānanti, tato sammanti medhagā.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이 게송의 중심은 상대를 억제하는 일이 아니라 mayam, “우리”가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는 앎입니다. yamāmase는 함께 자신을 다스리자는 뜻이고, 이를 모르는 이들과 아는 이들이 대조됩니다. 다툼은 모든 사람이 동시에 깨달아야만 멎는다고 하지 않고, 그 사실을 아는 이들로부터 가라앉는다고 말합니다. 앞의 원한 없음이 관계 속에서 어떤 행동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 주며, 책임의 시선을 상대에게만 두지 않도록 방향을 바꿉니다.

묵상

갈등에서 상대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과 내가 절제할 수 있는 한 가지를 보는 생각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말의 속도나 목소리 크기처럼 작은 부분 하나를 떠올려 볼까요? 당장 바꾸고 싶지 않다면 그 선택지도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요.

13 나라를 약탈한 이들도 다시 모이다 1구절

뼈를 부수고 목숨과 재산을 빼앗은 이들도 함께 모이는데 왜 그대들은 못하느냐고 묻습니다.

뼈를 부수고 목숨을 빼앗으며, 소와 말과 재물을 훔치고 나라를 약탈하는 이들도 서로 함께 모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대들은 함께하지 못하겠습니까?

Aṭṭhicchinnā pāṇaharā, gavassadhanahārino; Raṭṭhaṁ vilumpamānānaṁ, tesampi hoti saṅgati; Kasmā tumhākaṁ no siyā.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게송은 매우 거친 범죄의 목록을 든 뒤 반문합니다. 뼈를 부숨·목숨을 빼앗음·소와 말과 재물을 훔침·나라를 약탈함이 차례로 나오지만, 그런 이들에게도 saṅgati, 다시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그 행위를 용납하거나 미화하려는 말이 아니라, 수행 공동체가 화합하지 못하는 모순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비교입니다. “그대들은 왜 못하는가”라는 마지막 질문은 다툼을 특별하고 불가피한 것으로 정당화할 여지를 줄입니다.

묵상

함께할 이유가 충분한데도 작은 다툼이 더 크게 느껴졌던 모임이 있었나요? 그때 공동의 목적보다 앞섰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불편한 관계가 떠오르면 세부 장면을 파고들지 않고 질문을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14 좋은 벗을 얻으면 함께 걷다 1구절

분별 있고 현명하며 함께 잘 지낼 수 있는 벗을 얻으면 어려움을 이기고 함께 걸으라고 읊습니다.

분별 있고 함께 걸으며 잘 지내는 현명한 벗을 얻는다면,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내고 기뻐하며 알아차린 채 그와 함께 걸어야 합니다.

Sace labhetha nipakaṁ sahāyaṁ, Saddhiṁ caraṁ sādhuvihāri dhīraṁ; Abhibhuyya sabbāni parissayāni, Careyya tenattamano satīmā.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앞의 화합하지 못하는 무리를 떠난 뒤, 게송은 함께 걸을 벗의 조건을 제시합니다. nipaka는 분별 있음, dhīra는 굳고 현명함을 뜻하며, 단지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동행을 권하지 않습니다. 그런 벗을 얻는다는 조건이 먼저이고, 그다음 함께 어려움을 넘어 기쁨과 알아차림을 잃지 않고 걷는 결과가 따릅니다. 곧이어 그런 벗을 얻지 못한 경우가 나오므로, 동행 자체보다 어떤 관계가 수행을 돕는지가 기준입니다.

묵상

함께 있을 때 기쁨과 알아차림을 잃지 않게 해 주는 사람이 있나요? 그 관계에서 특별한 충고보다 어떤 태도가 힘이 되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벗이었던 순간이 있었는지 생각해도 괜찮아요.

15 좋은 벗이 없으면 홀로 걷다 1구절

그런 벗을 얻지 못하면 정복한 나라를 버린 왕이나 숲의 큰 코끼리처럼 홀로 걸으라고 읊습니다.

분별 있고 함께 걸으며 잘 지내는 현명한 벗을 얻지 못한다면, 정복한 나라를 버린 왕처럼, 숲속의 큰 코끼리처럼 홀로 걸어야 합니다.

No ce labhetha nipakaṁ sahāyaṁ, Saddhiṁ caraṁ sādhuvihāri dhīraṁ; Rājāva raṭṭhaṁ vijitaṁ pahāya, Eko care mātaṅgaraññeva nāgo.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앞 게송과 첫 두 행이 같지만 labhetha 앞에 no ce가 붙어 조건이 반대로 바뀝니다. 좋은 동행을 얻지 못한 경우에는 관계를 아무렇게나 유지하라고 하지 않고 홀로 걷는 길을 제시합니다. 나라를 버린 왕과 숲속의 큰 코끼리는 지위나 무리에 매달리지 않는 이동을 그립니다. 이 말은 고립을 무조건 권하는 선언이 아니라, 분별 있고 평안한 벗이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때 해로운 동행보다 홀로 있음이 낫다는 대안입니다.

묵상

외로움을 피하려고 오히려 마음을 흐리는 관계에 머문 적이 있나요? 함께 있음과 홀로 있음 가운데 지금 더 안전하고 맑게 느껴지는 쪽이 무엇인지 가볍게 물어볼 수 있을까요? 어느 쪽도 편하지 않다면 그 불편함을 그대로 인정해도 괜찮아요.

16 어리석은 벗보다 홀로 걷는 편이 낫다 1구절

어리석은 이와 벗됨은 없으니 악을 짓지 않고 숲의 큰 코끼리처럼 한가로이 홀로 걸으라고 맺습니다.

홀로 걷는 편이 더 낫습니다. 어리석은 이와는 벗됨이 없습니다. 숲속의 큰 코끼리처럼 한가로이 홀로 걸으며, 악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Ekassa caritaṁ seyyo, Natthi bāle sahāyatā; Eko care na ca pāpāni kayirā, Appossukko mātaṅgaraññeva nāgo”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동행과 홀로 걷기의 대조를 마지막 네 행이 결론짓습니다. “홀로가 더 낫다”는 말은 바로 다음의 “어리석은 이와는 벗됨이 없다”는 범위 안에서 읽어야 합니다. 홀로 걸을 때에도 기준은 단순한 자유가 아니라 악한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appossukka는 여기서 다툼에 무심하라는 앞 수행자의 말과 달리, 해로운 관계와 일에 얽히지 않은 한가로움을 가리킵니다. 같은 낱말이 장면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 점도 경의 전환을 보여 줍니다.

묵상

홀로 있는 시간이 관계를 피하는 시간인지 마음을 맑히는 시간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혼자일 때도 하지 않으려는 한 가지 해로운 습관이 있는지 떠올려 볼까요? 지금 홀로 있음이 힘들다면 이 질문은 잠시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17 세존께서 바구 존자를 찾아가다 1구절

게송을 마친 세존께서 마을의 바구 존자를 찾아가고 바구가 자리와 발 씻을 물을 마련합니다.

세존께서는 서서 게송을 읊은 뒤 발라깔로나까라 마을로 가셨습니다. 그때 바구 존자가 그 마을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바구 존자는 멀리서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자리를 펴고 발 씻을 물을 마련했습니다. 세존께서는 그 자리에 앉아 발을 씻으셨고, 바구 존자도 절한 뒤 한쪽에 앉았습니다.

Atha kho bhagavā ṭhitakova imā gāthā bhāsitvā yena bālakaloṇakāragāmo tenupasaṅkami.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bhagu bālakaloṇakāragāme viharati. Addasā kho āyasmā bhagu bhagavantaṁ dūratova āgacchantaṁ. Disvāna āsanaṁ paññapesi udakañca pādānaṁ dhovanaṁ. Nisīdi bhagavā paññatte āsane. Nisajja pāde pakkhālesi. Āyasmāpi kho bhagu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다툼의 장소를 떠난 세존의 첫 방문은 바구 존자에게 이어집니다. 경은 멀리서 알아봄, 자리와 물을 준비함, 세존이 앉아 발을 씻음, 바구가 절하고 한쪽에 앉는 순서를 세밀하게 기록합니다. 말보다 먼저 환대의 행동이 놓인 장면입니다. 앞의 수행자들이 중재를 물리친 모습과 대비되지만, 바구의 마음을 추측해 이상화하지는 않습니다. 이 조용한 맞이는 곧 안부 문답과 가르침을 나눌 수 있는 관계의 자리를 엽니다.

묵상

누군가를 맞을 때 말보다 먼저 건넨 작은 행동이 있었나요? 자리, 물, 기다림처럼 평범한 준비가 대화의 분위기를 바꾼 순간을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특별한 경험이 없다면 환대받았을 때 몸이 조금 풀렸던 기억만 생각해도 괜찮아요.

18 바구의 안부를 묻고 가르침을 나누다 1구절

세존께서 바구의 생활과 탁발을 세 가지로 묻고 답을 들은 뒤 가르침으로 격려하고 떠나십니다.

세존께서 물으셨습니다. “수행자여, 잘 견딜 만한가? 지낼 만한가? 탁발 음식 때문에 힘들지는 않은가?” 바구가 답했습니다. “잘 견딜 만합니다, 세존이시여. 지낼 만합니다, 세존이시여. 탁발 음식 때문에 힘들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가르침으로 바구에게 보이고 권하고 북돋우고 기쁘게 한 뒤, 동쪽 대숲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Ekamantaṁ nisinnaṁ kho āyasmantaṁ bhaguṁ bhagavā etadavoca: “kacci, bhikkhu, khamanīyaṁ, kacci yāpanīyaṁ, kacci piṇḍakena na kilamasī”ti? “Khamanīyaṁ bhagavā, yāpanīyaṁ bhagavā, na cāhaṁ, bhante, piṇḍakena kilamāmī”ti.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ṁ bhaguṁ dhammiyā kathāya sandassetvā samādapetvā samuttejetvā sampahaṁsetvā uṭṭhāyāsanā yena pācīnavaṁsadāyo tenupasaṅkam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안부는 khamanīya·yāpanīya·탁발 음식의 어려움이라는 세 물음으로 이루어지고, 바구도 세 항목을 같은 순서로 답합니다. 각 답에는 “세존이시여”라는 호격이 붙습니다. 이어 세존은 가르침으로 보이고·권하고·북돋우고·기쁘게 하는 네 동사를 거쳐 자리를 떠납니다. 경은 그때 나눈 가르침의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습니다. 짧은 방문은 생활의 형편을 확인하고 격려한 뒤 다음 공동체로 향하는 연결입니다.

묵상

누군가의 안부를 물을 때 “괜찮아요?” 한마디보다 생활의 구체적인 부분을 나누어 물었던 적이 있나요? 몸의 견딤, 하루의 지속, 먹고사는 어려움 가운데 지금 답하기 쉬운 하나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볼까요? 답하지 않고 지나가도 괜찮아요.

19 동산지기가 세 수행자를 지키려 하다 1구절

아누룻다·난디야·끼밀라가 머무는 동산에서 문지기가 세존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오지 말라고 막습니다.

그때 아누룻다·난디야·끼밀라 존자가 동쪽 대숲 동산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동산지기는 멀리서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대수행자여, 이 동산에 들어오지 마십시오. 자신을 아끼는 세 명의 좋은 집안 출신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그들을 불편하게 하지 마십시오.”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ca anuruddho āyasmā ca nandiyo āyasmā ca kimilo pācīnavaṁsadāye viharanti. Addasā kho dāyapālo bhagavantaṁ dūratova āgacchantaṁ. Disvāna bhagavantaṁ etadavoca: “mā, mahāsamaṇa, etaṁ dāyaṁ pāvisi. Santettha tayo kulaputtā attakāmarūpā viharanti. Mā tesaṁ aphāsumakāsī”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경은 세 수행자의 이름을 먼저 모두 밝힌 뒤, 동산지기가 세존을 “대수행자”라고 부르며 출입을 막는 장면을 놓습니다. 그는 세 사람이 attakāmarūpa, 자신을 아끼며 수행에 전념하는 이들이라고 말하고 방해하지 말라고 요청합니다. 세존을 알아보았다는 설명은 없으며, 뒤에서 아누룻다가 “우리 스승”이라고 밝힐 때 오해가 풀립니다. 문지기의 제지는 무례함을 보여 주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고요한 수행을 보호하려 한 행동으로 경의 다음 응답을 불러옵니다.

묵상

좋은 뜻으로 누군가를 보호하려다가 상황을 다 알지 못했던 경험이 있나요? 의도와 판단이 어긋날 수 있음을 알게 될 때 마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떠올려 볼까요? 비슷한 장면이 없다면 문지기의 말에서 보호와 오해가 함께 느껴지는지만 보아도 괜찮아요.

20 아누룻다가 스승의 도착을 알리다 1구절

아누룻다가 동산지기를 만류하고 난디야와 끼밀라에게 두 번 나오라고 부르며 세존의 도착을 알립니다.

아누룻다 존자는 동산지기가 세존과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말했습니다. “동산지기 벗이여, 세존을 막지 마십시오. 우리의 스승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그는 난디야와 끼밀라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존자들이여, 나오십시오. 존자들이여, 나오십시오. 우리의 스승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Assosi kho āyasmā anuruddho dāyapālassa bhagavatā saddhiṁ mantayamānassa. Sutvāna dāyapālaṁ etadavoca: “mā, āvuso dāyapāla, bhagavantaṁ vāresi. Satthā no bhagavā anuppatto”ti. Atha kho āyasmā anuruddho yenāyasmā ca nandiyo yenāyasmā ca kimil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ñca nandiyaṁ āyasmantañca kimilaṁ etadavoca: “abhikkamathāyasmanto, abhikkamathāyasmanto, satthā no bhagavā anuppatto”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아누룻다는 먼저 문지기를 āvuso, “벗이여”라고 부르면서 제지를 멈추게 합니다. 이어 두 동료에게 abhikkamatha āyasmanto, “존자들이여, 나오십시오”를 두 번 반복합니다. 두 발화 모두 “우리의 스승 세존께서 오셨다”는 같은 이유로 닫힙니다. 문지기를 꾸짖거나 세존의 신분을 길게 설명하지 않고 필요한 정보만 전하며, 혼자 맞으러 나가지 않고 함께 환대하도록 동료들을 부르는 장면입니다.

묵상

오해를 바로잡아야 할 때 상대를 낮추지 않고 필요한 사실만 말했던 경험이 있나요? “막지 마십시오”와 “우리의 스승이 오셨습니다” 사이의 간결함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생각해 볼까요? 떠오르는 일이 없다면 두 번 부르는 다급함만 들어 보아도 괜찮아요.

21 세 수행자가 함께 세존을 맞이하다 1구절

세 수행자가 역할을 나누어 발우·자리·물을 준비하고 세존과 생활 형편을 묻고 답합니다.

아누룻다·난디야·끼밀라는 세존을 맞아 한 사람은 발우와 가사를 받고, 한 사람은 자리를 펴고, 한 사람은 발 씻을 물을 마련했습니다. 세존께서 앉아 발을 씻으시자 세 사람도 절하고 한쪽에 앉았습니다. 세존께서 물으셨습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잘 견딜 만합니까? 지낼 만합니까? 탁발 음식 때문에 힘들지는 않습니까?” “잘 견딜 만합니다, 세존이시여. 지낼 만합니다, 세존이시여. 탁발 음식 때문에 힘들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Atha kho āyasmā ca anuruddho āyasmā ca nandiyo āyasmā ca kimilo bhagavantaṁ paccuggantvā eko bhagavato pattacīvaraṁ paṭiggahesi, eko āsanaṁ paññapesi, eko pādodakaṁ upaṭṭhapesi. Nisīdi bhagavā paññatte āsane. Nisajja pāde pakkhālesi. Tepi kho āyasmanto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Ekamantaṁ nisinnaṁ kho āyasmantaṁ anuruddhaṁ bhagavā etadavoca: “kacci vo, anuruddhā, khamanīyaṁ, kacci yāpanīyaṁ, kacci piṇḍakena na kilamathā”ti? “Khamanīyaṁ bhagavā, yāpanīyaṁ bhagavā, na ca mayaṁ, bhante, piṇḍakena kilamāmā”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세 사람은 환대의 일을 발우와 가사·자리·발 씻을 물로 하나씩 나눕니다. 이어 세존의 kacci 질문도 견딤·지냄·탁발 음식이라는 세 항목입니다. anuruddhā는 아누룻다 한 사람의 이름을 통해 함께 있는 무리를 부르는 복수 호격이므로 세 동료가 모두 질문을 받습니다. 답에서도 복수 주어로 세 항목에 응합니다. 역할의 분담과 같은 목소리의 응답은 앞의 꼬삼비 수행자들이 서로 말로 찌르던 모습과 행동 수준에서 대비됩니다.

묵상

여럿이 한 사람을 맞을 때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일이 자연스럽게 나뉜 경험이 있나요? 각자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한 마음처럼 느껴진 순간을 떠올려 볼까요? 그런 경험이 없다면 내가 편하게 맡을 수 있는 작은 환대 하나가 무엇인지 생각해도 괜찮아요.

22 물과 젖처럼 화합하는지를 묻다 1구절

세존께서 다투지 않고 물과 젖처럼 섞여 호의 어린 눈으로 보는지 묻고, 답을 들은 뒤 그 방법을 다시 묻습니다.

세존께서 물으셨습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화합하고 서로 기뻐하며 다투지 않고, 물과 젖이 섞이듯 서로를 호의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지냅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그렇게 지냅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어떻게 그렇게 지냅니까?”

“Kacci pana vo, anuruddhā, samaggā sammodamānā avivadamānā khīrodakībhūtā aññamaññaṁ piyacakkhūhi sampassantā viharathā”ti? “Taggha mayaṁ, bhante, samaggā sammodamānā avivadamānā khīrodakībhūtā aññamaññaṁ piyacakkhūhi sampassantā viharāmā”ti. “Yathā kathaṁ pana tumhe, anuruddhā, samaggā sammodamānā avivadamānā khīrodakībhūtā aññamaññaṁ piyacakkhūhi sampassantā viharathā”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생활의 안부 다음에는 관계의 상태를 묻는 문답이 이어집니다. samagga·sammodamāna·avivadamāna는 화합함·서로 기뻐함·다투지 않음이고, khīrodakībhūta는 물과 젖이 섞인 모습입니다. piyacakkhu는 상대를 반기는 호의 어린 눈을 가리킵니다. 세 수행자가 그렇다고 짧게 답하자 세존은 칭찬으로 끝내지 않고 “어떻게” 가능한지를 묻습니다. 이 질문이 이어지는 사랑의 몸·말·마음과 공동생활의 구체적 실천을 끌어냅니다.

묵상

서로를 호의 어린 눈으로 본다는 표현에서 떠오르는 관계가 있나요? 함께 있어도 경계가 풀리고 반가움이 생기는 때와 그렇지 않은 때의 차이를 느껴 볼까요? 그런 관계가 지금 없다면 이 이미지가 편안한지 낯선지만 답해도 괜찮아요.

23 함께 사는 행운과 세 가지 사랑의 행위 1구절

아누룻다가 동료들과 사는 일을 행운으로 여기며 몸·말·마음의 사랑을 드러난 때와 보이지 않는 때 모두 세운다고 답합니다.

아누룻다가 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은 청정한 삶의 벗들과 함께 사는 것은 참으로 내게 이익이고 큰 행운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는 이 존자들을 향한 자애의 몸의 행위가 드러난 때와 보이지 않는 때에 자리 잡고, 자애의 말의 행위와 자애의 마음의 행위도 드러난 때와 보이지 않는 때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lābhā vata me, suladdhaṁ vata me yohaṁ evarūpehi sabrahmacārīhi saddhiṁ viharāmī’ti. Tassa mayhaṁ, bhante, imesu āyasmantesu mettaṁ kāyakammaṁ paccupaṭṭhitaṁ āvi ceva raho ca, mettaṁ vacīkammaṁ paccupaṭṭhitaṁ āvi ceva raho ca, mettaṁ manokammaṁ paccupaṭṭhitaṁ āvi ceva raho ca.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화합의 방법에 대한 첫 답은 동료를 얻은 일을 lābha와 suladdha, 이익이며 큰 행운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시작합니다. 그 인식은 몸·말·마음의 세 행위로 이어지고, 각 행위마다 āvi ceva raho ca, 드러난 때와 보이지 않는 때가 반복됩니다. 다른 이가 볼 때만 친절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의 말과 마음까지 같은 방향에 두는 구조입니다. 화합을 성격의 일치로 설명하지 않고 동료를 귀하게 여기는 생각과 세 통로의 지속적인 행동으로 풉니다.

묵상

함께 있는 사람을 부담이 아니라 행운으로 느꼈던 순간이 있나요? 아무도 보지 않을 때의 몸짓, 말, 마음 가운데 그 관계를 지켜 준 한 가지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면 받고 싶었던 친절 한 가지를 생각해도 괜찮아요.

24 자기 뜻을 내려놓고 동료의 뜻을 따르다 1구절

아누룻다가 자기 마음을 내려놓고 동료들의 마음을 따르며 몸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라고 답합니다.

아누룻다는 이어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내 마음을 내려놓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라 행동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제 마음을 내려놓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라 행동합니다. 세존이시여, 우리의 몸은 서로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라고 여깁니다.”

Tass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yannūnāhaṁ sakaṁ cittaṁ nikkhipitvā imesaṁyeva āyasmantānaṁ cittassa vasena vatteyyan’ti. So kho ahaṁ, bhante, sakaṁ cittaṁ nikkhipitvā imesaṁyeva āyasmantānaṁ cittassa vasena vattāmi. Nānā hi kho no, bhante, kāyā, ekañca pana maññe cittan”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몸·말·마음의 사랑을 말한 뒤, 아누룻다는 자신의 뜻을 잠시 내려놓고 동료들의 뜻에 맞추는 선택을 설명합니다. nikkhipitvā는 버려 없앤다는 뜻보다 내려놓는 동작이고, cittassa vasena vattāmi는 상대의 마음이 향하는 바에 맞추어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경은 누가 언제 양보하는지 규칙을 덧붙이지 않으므로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넓히지 않습니다. “몸은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라는 결론은 차이를 없앤다는 선언보다 공동의 방향을 표현합니다.

묵상

내 뜻을 잠시 내려놓는 일이 배려로 느껴진 때와 억눌림으로 느껴진 때는 무엇이 달랐나요? 안전과 상호성이 있었는지 가볍게 떠올려 볼까요? 이 질문이 불편하다면 양보를 판단하지 않고 몸에 남는 느낌만 알아차려도 괜찮아요.

25 난디야와 끼밀라도 같은 사랑을 말하다 1구절

난디야의 같은 답은 공식 생략표로 줄고, 끼밀라가 행운과 세 가지 사랑의 행위를 같은 말로 답합니다.

난디야 존자도 … 끼밀라 존자도 세존께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도 ‘이와 같은 청정한 삶의 벗들과 함께 사는 것은 참으로 내게 이익이고 큰 행운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는 이 존자들을 향한 자애의 몸의 행위가 드러난 때와 보이지 않는 때에 자리 잡고, 자애의 말의 행위와 자애의 마음의 행위도 드러난 때와 보이지 않는 때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Āyasmāpi kho nandiyo …pe… āyasmāpi kho kimilo bhagavantaṁ etadavoca: “mayhampi kho, bhante, evaṁ hoti: ‘lābhā vata me, suladdhaṁ vata me yohaṁ evarūpehi sabrahmacārīhi saddhiṁ viharāmī’ti. Tassa mayhaṁ, bhante, imesu āyasmantesu mettaṁ kāyakammaṁ paccupaṭṭhitaṁ āvi ceva raho ca, mettaṁ vacīkammaṁ paccupaṭṭhitaṁ āvi ceva raho ca, mettaṁ manokammaṁ paccupaṭṭhitaṁ āvi ceva raho ca.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아누룻다의 답에 이어 난디야와 끼밀라도 같은 내용을 말합니다.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난디야가 앞의 답과 같이 말한 부분을 줄이고, 끼밀라의 답은 행운이라는 생각과 몸·말·마음의 세 사랑을 다시 온전히 보여 줍니다. 세 사람이 모두 같은 관계 원리를 자기 일인칭으로 확인한다는 점에서, 화합이 한 사람의 양보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공개된 자리와 보이지 않는 자리의 사랑이 세 사람 모두에게 공통된 토대입니다.

묵상

여럿이 같은 원칙을 말할 때 그것이 구호가 아니라 각자의 행동으로 확인된 경험이 있나요? 몸, 말, 마음 가운데 구성원들이 가장 쉽게 함께할 수 있었던 통로가 무엇인지 떠올려 볼까요? 비슷한 경험이 없다면 함께 지키고 싶은 한 가지 태도를 생각해도 괜찮아요.

26 세 사람이 한 마음의 화합을 확인하다 1구절

끼밀라도 자기 뜻을 내려놓는 실천을 말한 뒤 세 사람이 물과 젖처럼 화합해 지내는 방법을 요약합니다.

끼밀라 존자는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도 제 마음을 내려놓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라 행동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실제로 그렇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우리의 몸은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라고 여깁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저희는 화합하고 서로 기뻐하며 다투지 않고, 물과 젖이 섞이듯 서로를 호의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지냅니다.”

Tass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yannūnāhaṁ sakaṁ cittaṁ nikkhipitvā imesaṁyeva āyasmantānaṁ cittassa vasena vatteyyan’ti. So kho ahaṁ, bhante, sakaṁ cittaṁ nikkhipitvā imesaṁyeva āyasmantānaṁ cittassa vasena vattāmi. Nānā hi kho no, bhante, kāyā, ekañca pana maññe cittanti. Evaṁ kho mayaṁ, bhante, samaggā sammodamānā avivadamānā khīrodakībhūtā aññamaññaṁ piyacakkhūhi sampassantā viharāmā”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끼밀라의 답은 앞에서 아누룻다가 말한 내려놓음과 한 마음의 문장을 반복한 뒤, 세 사람의 공동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evaṁ, “이와 같이”는 화합이 막연한 친밀감이 아니라 동료를 행운으로 여김, 공개와 비공개의 사랑, 자기 뜻을 내려놓는 실천에서 생긴다는 앞 답을 가리킵니다. 마지막에는 처음 질문의 다섯 표현인 화합·기쁨·무다툼·물과 젖·호의 어린 눈이 모두 돌아옵니다. 질문과 실제 방법이 닫힌 구조를 이룹니다.

묵상

관계의 좋은 결과만 바라볼 때와 그 결과를 만드는 작은 행동을 볼 때 무엇이 달라지나요? 지금 속한 모임에서 화합을 지탱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행동 하나가 있는지 떠올려 볼까요? 없다면 그런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끼는지만 보아도 괜찮아요.

27 부지런하고 굳센 생활의 방법을 묻다 1구절

세존께서 화합을 두 번 칭찬하고 부지런하고 열의 있으며 굳센지 확인한 뒤 그 구체적 방법을 묻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부지런하고 열의 있으며 굳센 마음으로 지냅니까?” 그들이 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부지런하고 열의 있으며 굳센 마음으로 지냅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어떻게 그렇게 지냅니까?”

“Sādhu sādhu, anuruddhā. Kacci pana vo, anuruddhā, appamattā ātāpino pahitattā viharathā”ti? “Taggha mayaṁ, bhante, appamattā ātāpino pahitattā viharāmā”ti. “Yathā kathaṁ pana tumhe, anuruddhā, appamattā ātāpino pahitattā viharathā”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화합에 대한 답을 들은 세존은 sādhu를 두 번 반복해 칭찬한 뒤, 관계에서 수행의 태도로 질문을 옮깁니다. appamatta·ātāpī·pahitatta는 부지런함·열의·굳센 마음이라는 세 요소이며 질문과 답에서 같은 순서로 되풀이됩니다. 세 수행자가 그렇다고 답하자 다시 “어떻게”를 물어, 추상적인 자기평가만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다음 답은 공동생활의 물과 음식, 청소, 침묵 속 협력, 가르침의 대화로 이 세 태도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 줍니다.

묵상

내가 “부지런히 하고 있다”고 느낄 때 실제 하루에서는 어떤 행동으로 드러나나요? 큰 성취보다 반복해서 돌보는 작은 일 하나를 떠올려 볼까요? 지금 지친 상태라면 부지런함을 평가하지 않고 회복에 필요한 조건을 생각해도 괜찮아요.

28 먼저 돌아온 사람이 공동 자리를 준비하다 1구절

탁발에서 먼저 돌아온 사람이 자리와 두 종류의 물, 음식 찌꺼기 그릇을 준비한다고 설명합니다.

“세존이시여, 저희 가운데 마을에서 탁발을 마치고 가장 먼저 돌아온 사람은 자리를 펴고, 마실 물과 쓸 물을 마련하며, 음식 찌꺼기를 담을 그릇을 내놓습니다.”

“Idha, bhante, amhākaṁ yo paṭhamaṁ gāmato piṇḍāya paṭikkamati, so āsanāni paññapeti, pānīyaṁ paribhojanīyaṁ upaṭṭhāpeti, avakkārapātiṁ upaṭṭhāpe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부지런한 생활의 첫 사례는 돌아온 순서에 따라 일을 맡는 방식입니다. “가장 먼저 돌아온 사람”이라는 조건 뒤에 자리·마실 물·씻는 데 쓸 물·찌꺼기 그릇이라는 네 준비가 이어집니다. 특정한 사람에게 고정된 역할을 주거나 명령을 기다린다는 말은 없습니다. 먼저 도착했다는 눈앞의 조건이 곧 공동체를 위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수행의 열의를 명상 시간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다른 이들이 사용할 공간과 물을 미리 갖추는 돌봄으로 보여 줍니다.

묵상

공동의 공간에 먼저 도착했을 때 자연스럽게 준비했던 일이 있나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다음 사람을 편하게 한 작은 행동을 떠올려 볼까요? 그런 경험이 없다면 함께 쓰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필요가 무엇인지 생각해도 괜찮아요.

29 마지막에 돌아온 사람이 남은 음식과 자리를 정리하다 1구절

마지막에 돌아온 사람이 남은 음식을 먹거나 생명을 해치지 않게 버리고 공동 공간을 정돈합니다.

“마지막에 돌아온 사람은 남은 음식이 있으면, 원하면 먹습니다. 원하지 않으면 식물이 거의 없는 곳에 버리거나 생명체가 없는 물에 가라앉힙니다. 그런 다음 자리와 마실 물과 쓸 물을 치우고, 찌꺼기 그릇을 씻어 넣어 두며 식사 장소를 씁니다.”

Yo pacchā gāmato piṇḍāya paṭikkamati—sace hoti bhuttāvaseso, sace ākaṅkhati, bhuñjati; no ce ākaṅkhati, appaharite vā chaḍḍeti apāṇake vā udake opilāpeti—so āsanāni paṭisāmeti, pānīyaṁ paribhojanīyaṁ paṭisāmeti, avakkārapātiṁ dhovitvā paṭisāmeti, bhattaggaṁ sammajja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이번에는 “마지막에 돌아온 사람”이라는 조건과 남은 음식 처리의 두 갈래가 한 문장에 묶입니다. 먹을 수 있고 원하면 먹지만, 원하지 않을 때에는 식물이 거의 없는 곳 또는 생명체가 없는 물을 택합니다. 그 뒤 자리·두 물·그릇·식사 장소를 차례로 정돈합니다. 먹으라고 강요하지도 함부로 버리게 하지도 않는 두 선택이 함께 놓입니다. 공동생활의 부지런함이 낭비와 작은 생명을 함께 고려하는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묵상

남은 것을 처리할 때 편리함 외에 다른 생명과 환경을 함께 생각했던 순간이 있나요? 먹기, 나누기, 버리기 가운데 선택을 바꾼 작은 조건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특별한 경험이 없다면 “원하면”이라는 선택의 여지가 어떻게 느껴지는지만 보아도 괜찮아요.

30 말없이 서로 돕고 닷새마다 밤새 가르침을 나누다 1구절

빈 물항아리를 채우고 혼자 힘들면 손짓으로 함께 들며, 닷새마다 밤새 가르침을 이야기한다고 답합니다.

“누구든 마실 물·쓸 물·화장실 물 항아리가 빈 것을 보면 채웁니다. 혼자 할 수 없으면 손짓으로 다른 이를 불러 함께 들어 올립니다. 세존이시여, 그 일 때문에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또 닷새마다 저희는 밤새 함께 앉아 가르침을 이야기합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이와 같이 부지런하고 열의 있으며 굳센 마음으로 지냅니다.”

Yo passati pānīyaghaṭaṁ vā paribhojanīyaghaṭaṁ vā vaccaghaṭaṁ vā rittaṁ tucchaṁ so upaṭṭhāpeti. Sacassa hoti avisayhaṁ, hatthavikārena dutiyaṁ āmantetvā hatthavilaṅghakena upaṭṭhāpema, na tveva mayaṁ, bhante, tappaccayā vācaṁ bhindāma. Pañcāhikaṁ kho pana mayaṁ, bhante, sabbarattiṁ dhammiyā kathāya sannisīdāma. Evaṁ kho mayaṁ, bhante, appamattā ātāpino pahitattā viharāmā”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빈 항아리를 본 사람이 세 종류의 물을 채우고,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조건에서는 손짓으로 둘째 사람을 불러 함께 듭니다. 침묵은 서로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협력이 말 없이도 이루어진다는 설명과 붙어 있습니다. 이어 pañcāhikaṁ은 닷새마다, sabbarattiṁ은 밤새라는 정확한 시간이며, 그때는 오히려 가르침을 이야기합니다. 일상의 침묵과 정기적인 대화가 대립하지 않고 각기 알맞은 자리에서 공동체의 부지런함을 이룹니다.

묵상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필요를 알아채 함께 도왔던 경험이 있나요? 반대로 따로 시간을 정해 깊이 이야기하는 일이 관계를 지켜 준 적은 있었나요? 둘 가운데 지금 내 공동생활에 더 필요한 쪽이 무엇인지 가볍게 떠올려 볼까요?

31 빛과 형상들이 곧 사라지는 문제를 말하다 1구절

세존의 질문에 세 수행자가 빛을 인식하고 형상들을 보지만 곧 사라져 그 원인을 꿰뚫지 못했다고 답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렇게 부지런하고 열의 있으며 굳세게 지내며 인간을 넘어선 고귀한 앎과 봄의 뛰어남, 편안한 머묾을 얻었습니까?” 그들이 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빛을 인식하고 형상들을 봅니다. 그러나 그 빛과 형상들은 오래지 않아 사라지고, 저희는 그 원인을 꿰뚫지 못했습니다.”

“Sādhu sādhu, anuruddhā. Atthi pana vo, anuruddhā, evaṁ appamattānaṁ ātāpīnaṁ pahitattānaṁ viharataṁ uttari 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o adhigato phāsuvihāro”ti? “Idha mayaṁ, bhante, appamattā ātāpino pahitattā viharantā obhāsañceva sañjānāma dassanañca rūpānaṁ. So kho pana no obhāso nacirasseva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tañca nimittaṁ nappaṭivijjhāmā”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세존은 공동생활의 질서에서 더 높은 수행 경험으로 질문을 옮깁니다. uttari manussadhammā는 인간의 보통 상태를 넘어선 것,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는 고귀한 이에게 걸맞은 앎과 봄의 뛰어남입니다. 세 수행자는 obhāsa를 인식하고 rūpa들을 보지만 둘이 곧 사라진다고 답합니다. nimitta는 여기서 형상 자체를 뜻하지 않고 그 현상이 생기고 사라지는 원인이나 근거입니다. 경험의 특별함보다 왜 지속되지 않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는 한계를 정직하게 밝힙니다.

묵상

잠깐 선명했던 집중이나 이해가 곧 사라져 이유를 모르겠던 적이 있나요? 그 경험을 실패나 성취로 빨리 이름 붙이지 않고, 나타남과 사라짐 자체를 기억해 볼 수 있을까요? 명상 경험이 없다면 일상에서 잠시 또렷했던 순간을 떠올려도 괜찮아요.

32 깨닫기 전 세존도 같은 현상을 겪다 1구절

세존께서 원인을 꿰뚫어야 한다며 깨닫기 전 자신도 빛과 형상을 경험했다가 곧 사라졌다고 밝힙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 원인을 꿰뚫어야 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나도 깨닫기 전 아직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빛을 인식하고 형상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졌습니다.”

“Taṁ kho pana vo, anuruddhā, nimittaṁ paṭivijjhitabbaṁ. Ahampi sudaṁ, anuruddhā, pubbeva sambodhā anabhisambuddho bodhisattova samāno obhāsañceva sañjānāmi dassanañca rūpānaṁ. So kho pana me obhāso nacirasseva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세 수행자의 문제에 세존은 자신의 깨닫기 전 경험을 나란히 놓습니다. “아직 깨닫지 못한 보살”이라는 표현은 이 일이 완전한 깨달음 이전의 탐구였음을 분명히 합니다. 먼저 그 원인을 꿰뚫어야 한다고 말한 뒤 자신도 빛을 인식하고 형상들을 보았지만 오래지 않아 둘이 사라졌다고 밝힙니다. 특별한 경험을 권위로 내세우기보다 같은 불안정성을 겪었다는 사실에서 설명을 시작합니다. 다음 대목의 원인 질문과 의심에 대한 답이 한 덩어리로 이어집니다.

묵상

경험이 사라졌을 때 나만의 실패라고 느꼈지만, 숙련된 이도 비슷한 불안정을 겪었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달라지나요? 최근 흐트러진 집중 하나를 자책 없이 떠올려 볼까요? 지금은 살피고 싶지 않다면 지나가도 괜찮아요.

33 의심이 일어나 한곳에 모인 마음이 흩어지다 1구절

세존께서 의심이 일어나 삼매가 무너지고 빛과 형상이 사라졌음을 알아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때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지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심이 일어났고, 의심 때문에 집중에서 물러났습니다. 집중에서 물러나면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집니다. 나는 의심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ko nu kho hetu ko paccayo yena m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n’ti?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vicikicchā kho me udapādi, vicikicchādhikaraṇañca pana me samādhi cavi. Samādhimhi cut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Sohaṁ tathā karissāmi yathā me puna na vicikicchā uppajjiss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첫 번째로 확인한 원인은 vicikicchā, 의심입니다. 먼저 ko hetu ko paccayo라는 원인과 조건의 겹질문을 던지고, 다시 생각하여 답을 찾습니다. 문장은 과거의 사건, 현재형의 일반 인과, 미래의 결심을 차례로 놓습니다. 의심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삼매가 무너졌으며, 삼매가 무너지면 빛과 형상 경험이 사라진다는 구조입니다. 마지막에는 의심을 자기 본질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다시 생기지 않도록 방향을 세웁니다. 뒤의 열 가지 오염도 같은 조사 방식으로 하나씩 드러납니다.

묵상

집중 중 “이게 맞나”라는 의심이 생긴 뒤 경험 전체가 흔들린 적이 있나요? 의심의 내용과 의심이 집중에 미친 영향을 따로 볼 수 있을까요? 그런 경험이 없다면 결정을 내린 뒤에도 계속 확인하고 싶어지는 작은 순간을 떠올려 보아도 괜찮아요.

34 주의를 놓치자 한곳에 모인 마음이 흩어지다 1구절

세존께서 다시 빛과 형상을 경험하지만 주의를 놓친 탓에 삼매가 무너졌음을 알고 두 상태를 막겠다고 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나는 부지런하고 열의 있으며 굳세게 지내며 빛을 인식하고 형상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사라졌습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때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의를 놓친 일이 생겨 그 때문에 집중에서 물러났습니다. 집중에서 물러나면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집니다. 나는 의심도 주의를 놓침도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So kho ahaṁ, anuruddhā, appamatto ātāpī pahitatto viharanto obhāsañceva sañjānāmi dassanañca rūpānaṁ. So kho pana me obhāso nacirasseva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ko nu kho hetu ko paccayo yena m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n’ti?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amanasikāro kho me udapādi, amanasikārādhikaraṇañca pana me samādhi cavi. Samādhimhi cut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Sohaṁ tathā karissāmi yathā me puna na vicikicchā uppajjissati, na amanasikāro’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두 번째 탐구는 앞의 도입을 온전히 다시 말합니다. 부지런히 머묾, 빛과 형상의 나타남, 곧 사라짐, 원인과 조건을 묻는 순서 뒤에 amanasikāra가 드러납니다. 이는 잠이 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고 주의를 놓친 상태입니다. 마지막 결심에는 앞의 의심과 이번 주의 놓침이 둘 다 부정형으로 누적됩니다. 이 누적은 문제를 하나 해결하면 끝난다는 설명이 아니라, 서로 다른 미세한 조건을 기억하며 반복해 조정하는 과정입니다.

묵상

집중이 흐트러졌을 때 의심 때문인지 주의를 다른 곳에 둔 때문인지 구분해 본 적이 있나요? 둘을 같은 실패로 묶지 않으면 대응도 달라질 수 있을까요? 지금 집중하기 어렵다면 원인을 찾기보다 쉬어야 하는 상태인지 먼저 느껴도 괜찮아요.

35 기운이 처지고 졸음이 와서 모였던 마음이 흩어지다 1구절

온전한 도입은 공식 생략표로 줄고, 혼침과 졸음이 세 번째 원인으로 드러나 앞의 두 상태와 함께 누적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나는 …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침과 졸음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집중에서 물러났습니다. 집중에서 물러나면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집니다. 나는 의심·주의를 놓침·혼침과 졸음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So kho ahaṁ, anuruddhā …pe…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thinamiddhaṁ kho me udapādi, thinamiddhādhikaraṇañca pana me samādhi cavi. Samādhimhi cut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Sohaṁ tathā karissāmi yathā me puna na vicikicchā uppajjissati, na amanasikāro, na thinamiddhan’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공식 생략표 …pe… 한 곳은 바로 앞에서 온전히 나온 “부지런히 머물며 빛과 형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져 원인과 조건을 묻는” 도입을 줄입니다. 그 뒤 세 번째 원인인 thīnamiddha, 혼침과 졸음이 직접 제시되고, 삼매가 무너져 빛과 형상이 사라지는 인과는 다시 온전히 반복됩니다. 마지막 부정 목록은 의심·주의 놓침·혼침과 졸음의 세 항목입니다. 졸음을 도덕적 결함으로 만들기보다 집중을 약하게 한 조건으로 정확히 식별합니다.

묵상

졸음이나 흐릿함을 의지 부족으로만 판단해 더 긴장했던 적이 있나요? 몸이 쉬어야 하는 상태와 마음을 조금 밝힐 필요가 있는 상태를 어떻게 다르게 느끼는지 떠올려 볼까요? 피곤하다면 이 질문보다 쉬는 쪽을 택해도 괜찮아요.

36 두려움이 생기자 한곳에 모인 마음이 흩어지다 1구절

공식 생략 뒤 두려움이 일어나 삼매와 빛·형상의 경험이 사라졌음을 네 번째로 확인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나는 …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려움이 일어났고, 두려움 때문에 집중에서 물러났습니다. 집중에서 물러나면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집니다.’”

So kho ahaṁ, anuruddhā …pe…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chambhitattaṁ kho me udapādi, chambhitattādhikaraṇañca pana me samādhi cavi. Samādhimhi cut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공식 생략표는 앞에서 이미 밝혀진 수행·나타남·사라짐·원인 질문의 도입만 줄이며, 새로운 원인 chambhitatta는 직접 남깁니다. 이를 단순한 놀람보다 강한 “두려움”으로 옮긴 까닭은 곧이어 길 양쪽에서 메추라기들이 갑자기 날아오르는 비유가 붙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생김, 그 때문에 삼매에서 물러남, 그 결과 빛과 형상 경험이 사라짐이라는 세 단계가 반복됩니다. 다음 대목의 비유와 네 항목 누적 결심까지 함께 읽어야 이 원인이 완성됩니다.

묵상

집중이 깊어질수록 작은 소리나 움직임에도 놀란 적이 있나요? 그 반응을 부끄러워하기보다 몸이 위험을 감지한 순간으로 볼 수 있을까요? 강한 두려움이 떠오르면 세부를 되짚지 말고 이 대목을 잠시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37 양쪽에서 날아오른 메추라기의 비유 1구절

길 양쪽에서 메추라기들이 갑자기 날아오를 때 생기는 두려움에 비유하고 네 오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길을 가는 사람의 양쪽에서 메추라기들이 갑자기 날아오르면 그 때문에 두려움이 생길 것입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내게 두려움이 일어난 것도 그와 같고, 그 때문에 집중에서 물러났습니다. 집중에서 물러나면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집니다. 나는 의심·주의를 놓침·혼침과 졸음·두려움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Seyyathāpi, anuruddhā, puriso addhānamaggappaṭipanno, tassa ubhatopasse vaṭṭakā uppateyyuṁ, tassa tatonidānaṁ chambhitattaṁ uppajjeyya; evameva kho me, anuruddhā, chambhitattaṁ udapādi, chambhitattādhikaraṇañca pana me samādhi cavi. Samādhimhi cut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Sohaṁ tathā karissāmi yathā me puna na vicikicchā uppajjissati, na amanasikāro, na thinamiddhaṁ, na chambhitattan’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비유의 vaṭṭakā는 메추라기들을 가리킵니다. 길 양쪽에서 새들이 동시에 날아오르는 갑작스러운 자극이 두려움을 낳는 모습과 수행 중 반응을 나란히 둡니다. 비유 뒤에는 두려움 때문에 삼매가 무너지는 인과가 다시 말해지고, 마지막 부정 목록은 네 항목으로 늘어납니다. 두려움의 내용을 논박하기보다 무엇이 촉발했고 집중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보는 방식이며, 몸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먼저 반응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갑작스러운 자극에 놀랐을 때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그 반응 뒤에 “왜 이러지”라는 판단을 더하지 않으면 회복이 조금 달라질까요? 불편한 기억이 올라오면 지금 주변의 안전한 소리 하나로 주의를 돌려도 괜찮아요.

38 들뜬 기쁨에 한곳에 모인 마음이 흩어지다 1구절

공식 생략 뒤 들뜬 기쁨이 일어나 삼매와 빛·형상의 경험이 사라졌음을 다섯 번째로 확인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나는 …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뜬 기쁨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집중에서 물러났습니다. 집중에서 물러나면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집니다.’”

So kho ahaṁ, anuruddhā …pe…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uppilaṁ kho me udapādi, uppilādhikaraṇañca pana me samādhi cavi. Samādhimhi cut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공식 생략표 한 곳은 이미 반복된 도입을 줄이고, 이번에 새로 드러난 uppila를 직접 제시합니다. 이는 괴로운 상태가 아니라 좋은 경험을 만났을 때 솟는 들뜬 기쁨입니다. 기쁨 자체를 해롭다고 일반화하지 않고, 이 미세한 단계에서는 흥분이 커져 삼매를 흔든 조건이었다고 밝힙니다. 원인이 불쾌한 것에만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앞의 두려움과 대조됩니다. 다음 보물 비유와 다섯 항목 누적을 통해 이 들뜸의 성격이 더 구체화됩니다.

묵상

잘되고 있다는 생각에 들떠 오히려 흐름을 놓친 적이 있나요? 기쁨을 없애지 않으면서 흥분만 조금 가라앉힐 수 있었던 조건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그런 경험이 없다면 기대가 커질 때 호흡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만 생각해도 괜찮아요.

39 한꺼번에 다섯 보물 입구를 찾은 비유 1구절

하나를 찾다가 다섯 보물 입구를 한꺼번에 발견한 사람의 들뜸에 비유하고 다섯 오염을 누적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한 보물의 입구를 찾던 사람이 단번에 다섯 보물의 입구를 발견하면 그 때문에 들뜬 기쁨이 생길 것입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내게 들뜬 기쁨이 일어난 것도 그와 같고, 그 때문에 집중에서 물러났습니다. 집중에서 물러나면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집니다. 나는 의심·주의를 놓침·혼침과 졸음·두려움·들뜬 기쁨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Seyyathāpi, anuruddhā, puriso ekaṁ nidhimukhaṁ gavesanto sakideva pañcanidhimukhāni adhigaccheyya, tassa tatonidānaṁ uppilaṁ uppajjeyya; evameva kho me, anuruddhā, uppilaṁ udapādi, uppilādhikaraṇañca pana me samādhi cavi. Samādhimhi cut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Sohaṁ tathā karissāmi yathā me puna na vicikicchā uppajjissati, na amanasikāro, na thinamiddhaṁ, na chambhitattaṁ, na uppilan’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하나의 보물 입구를 찾던 사람이 갑자기 다섯 입구를 만나는 비유는 기대보다 큰 성과가 들뜸을 만드는 순간을 그립니다. 하나를 찾다가 다섯을 만난 수의 급격한 차이가 흥분의 확대를 드러냅니다. 비유 뒤에는 들뜸·삼매의 무너짐·빛과 형상의 사라짐이 다시 이어지고, 부정 목록은 다섯 항목으로 늘어납니다. 좋은 징후를 붙잡아 더 크게 만들려는 반응도 집중을 흐릴 수 있기에, 경험의 가치보다 마음의 균형을 살피게 합니다.

묵상

예상보다 좋은 결과를 한꺼번에 만났을 때 바로 다음 선택이 흐트러진 적이 있나요? 기쁜 소식을 충분히 느끼면서도 서두르지 않게 해 준 사람이나 습관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지금 기쁨이 없다면 과거의 작은 들뜸만 생각해도 괜찮아요.

40 불편함이 생기자 한곳에 모인 마음이 흩어지다 1구절

공식 생략 뒤 불편함이 일어나 삼매가 무너졌음을 알고 앞의 다섯 상태와 함께 막겠다고 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나는 …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편함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집중에서 물러났습니다. 집중에서 물러나면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집니다. 나는 의심·주의를 놓침·혼침과 졸음·두려움·들뜬 기쁨·불편함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So kho ahaṁ, anuruddhā …pe…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duṭṭhullaṁ kho me udapādi, duṭṭhullādhikaraṇañca pana me samādhi cavi. Samādhimhi cut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Sohaṁ tathā karissāmi yathā me puna na vicikicchā uppajjissati, na amanasikāro, na thinamiddhaṁ, na chambhitattaṁ, na uppilaṁ, na duṭṭhullan’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공식 생략표는 앞의 온전한 도입을 줄이고, duṭṭhulla라는 불편함을 여섯 번째 조건으로 밝힙니다. 경문은 그것이 몸의 통증인지 마음의 거칠음인지 더 좁혀 말하지 않으므로 “불편함”으로 열어 두었습니다. 그 상태 때문에 삼매에서 물러나고 빛과 형상 경험이 사라지는 인과는 온전히 반복됩니다. 마지막 부정 목록은 앞의 다섯 항목에 불편함을 더합니다. 집중의 장애를 모두 생각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몸과 마음의 불편도 조건으로 살피게 합니다.

묵상

집중하기 어려웠던 때에 생각보다 자세나 온도 같은 불편함이 큰 조건이었던 적이 있나요? 참아야 한다고 밀어붙이기 전에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지금 몸이 불편하다면 질문보다 편한 자세를 찾는 일이 먼저여도 괜찮아요.

41 힘을 지나치게 쏟아 한곳에 모인 마음이 흩어지다 1구절

공식 생략 뒤 지나치게 힘쓴 정진이 생겨 삼매와 빛·형상의 경험이 사라졌음을 확인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나는 …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치게 힘쓴 정진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집중에서 물러났습니다. 집중에서 물러나면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집니다.’”

So kho ahaṁ, anuruddhā …pe…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accāraddhavīriyaṁ kho me udapādi, accāraddhavīriyādhikaraṇañca pana me samādhi cavi. Samādhimhi cut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이번 공식 생략표도 익숙한 도입만 줄이며, 새 원인 accāraddhavīriya를 직접 남깁니다. āraddhavīriya는 일으킨 정진이고 접두어 ati는 지나침을 나타내므로, 이는 “지나치게 힘쓴 정진”입니다. 열의 자체를 오염이라고 하지 않고 알맞은 정도를 넘은 힘이 삼매를 흔든 경우입니다. 바로 다음의 메추라기를 너무 세게 쥔 비유가 과도함의 결과를 보여 주며, 이후에는 반대편인 지나치게 느슨한 정진도 따로 다룹니다.

묵상

잘하고 싶어서 힘을 너무 주었을 때 몸이나 마음이 굳은 적이 있나요? 힘을 완전히 빼는 것과 필요한 만큼만 쓰는 것 사이의 차이를 어디에서 느끼는지 떠올려 볼까요? 지금 애쓰는 일이 있다면 평가하지 않고 긴장된 한 곳만 알아차려도 괜찮아요.

42 메추라기를 너무 세게 쥔 비유 1구절

두 손으로 메추라기를 너무 세게 쥐어 떨어뜨리는 비유로 과도한 정진을 설명하고 일곱 오염을 누적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사람이 두 손으로 메추라기를 너무 세게 쥐면 그것은 그 자리에서 떨어질 것입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내게 지나치게 힘쓴 정진이 일어난 것도 그와 같고, 그 때문에 집중에서 물러났습니다. 집중에서 물러나면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집니다. 나는 의심·주의를 놓침·혼침과 졸음·두려움·들뜬 기쁨·불편함·지나치게 힘쓴 정진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Seyyathāpi, anuruddhā, puriso ubhohi hatthehi vaṭṭakaṁ gāḷhaṁ gaṇheyya, so tattheva patameyya; evameva kho me, anuruddhā, accāraddhavīriyaṁ udapādi, accāraddhavīriyādhikaraṇañca pana me samādhi cavi. Samādhimhi cut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Sohaṁ tathā karissāmi yathā me puna na vicikicchā uppajjissati, na amanasikāro, na thinamiddhaṁ, na chambhitattaṁ, na uppilaṁ, na duṭṭhullaṁ, na accāraddhavīriyan’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비유는 두 손과 “너무 세게”라는 정도를 분명히 합니다. patameyya는 메추라기가 그 자리에서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지나친 정진은 대상을 놓치지 않으려는 힘이 오히려 삼매를 무너뜨리는 경우와 연결됩니다. 마지막 목록은 일곱 항목으로 늘고, 곧이어 메추라기를 너무 느슨하게 쥐어 날려 보내는 반대 비유가 옵니다. 너무 센 힘은 떨어뜨리고 너무 약한 힘은 놓치게 하므로, 적절한 정진은 두 극단 사이에서 드러납니다.

묵상

무언가를 잃지 않으려 너무 꽉 붙잡다가 오히려 흐름을 놓친 경험이 있나요? 손을 쥐었다가 조금 푸는 감각처럼 마음의 힘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을까요? 이 비유가 불편하다면 실제 경험을 찾지 않고 “너무 세게”라는 말만 느껴도 괜찮아요.

43 힘쓰는 마음이 너무 느슨해져 모인 마음이 흩어지다 1구절

공식 생략 뒤 정진이 지나치게 느슨해져 삼매와 빛·형상의 경험이 사라졌음을 확인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나는 …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치게 느슨한 정진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집중에서 물러났습니다. 집중에서 물러나면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집니다.’”

So kho ahaṁ, anuruddhā …pe…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atilīnavīriyaṁ kho me udapādi, atilīnavīriyādhikaraṇañca pana me samādhi cavi. Samādhimhi cut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앞의 과도한 힘과 정확히 반대되는 atilīnavīriya가 여덟 번째로 나옵니다. līna는 가라앉고 느슨해진 상태이며, 이 역시 ati가 붙어 정도가 지나쳤음을 나타냅니다. 공식 생략표는 반복 도입만 줄이고 새 원인과 인과는 직접 남깁니다. 혼침과 졸음이 이미 별도 항목이므로, 지나치게 느슨한 정진을 단순한 졸음으로 합치지 않았습니다. 같은 집중의 무너짐이라도 힘이 너무 센 경우와 너무 약한 경우를 구별해 균형을 구체적으로 찾게 합니다.

묵상

힘을 빼는 것이 편안함을 넘어 흐름을 잃는 느슨함이 되었던 적이 있나요? 지나친 긴장과 지나친 이완 사이에서 나에게 알맞은 정도를 알려 주는 신호가 무엇인지 떠올려 볼까요? 잘 모르겠다면 두 상태의 몸 느낌만 비교해도 괜찮아요.

44 메추라기를 너무 느슨하게 쥔 비유 1구절

메추라기를 느슨하게 쥐어 손에서 날아가게 하는 비유로 약한 정진을 설명하고 여덟 오염을 누적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사람이 메추라기를 느슨하게 쥐면 그것은 손에서 날아가 버릴 것입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내게 지나치게 느슨한 정진이 일어난 것도 그와 같고, 그 때문에 집중에서 물러났습니다. 집중에서 물러나면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집니다. 나는 의심·주의를 놓침·혼침과 졸음·두려움·들뜬 기쁨·불편함·지나치게 힘쓴 정진·지나치게 느슨한 정진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Seyyathāpi, anuruddhā, puriso vaṭṭakaṁ sithilaṁ gaṇheyya, so tassa hatthato uppateyya; evameva kho me, anuruddhā, atilīnavīriyaṁ udapādi, atilīnavīriyādhikaraṇañca pana me samādhi cavi. Samādhimhi cut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Sohaṁ tathā karissāmi yathā me puna na vicikicchā uppajjissati, na amanasikāro, na thinamiddhaṁ, na chambhitattaṁ, na uppilaṁ, na duṭṭhullaṁ, na accāraddhavīriyaṁ, na atilīnavīriyan’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앞의 “너무 세게”와 이번 “느슨하게”는 같은 메추라기 비유의 두 극단입니다. 힘이 지나치면 떨어지고 너무 느슨하면 손에서 날아갑니다. 수행 대상과의 관계도 압박하거나 놓쳐 버리는 양쪽에서 삼매가 무너질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마지막 부정 목록은 과도한 정진과 느슨한 정진을 각각 별도 항목으로 세어 여덟 가지가 됩니다. “더 열심히”라는 한 방향의 처방 대신, 현재 힘의 정도를 식별하고 조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묵상

집중을 지키려는 힘을 손에 비유한다면 지금은 너무 꽉 쥔 쪽인가요, 너무 느슨한 쪽인가요? 둘 사이에서 아주 조금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느껴 볼까요?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면 모른다는 답도 충분해요.

45 갈망이 일어나 한곳에 모인 마음이 흩어지다 1구절

공식 생략 뒤 갈망이 일어나 삼매를 무너뜨린 아홉 번째 조건으로 확인되고 앞의 항목들과 누적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나는 …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갈망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집중에서 물러났습니다. 집중에서 물러나면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집니다. 나는 의심·주의를 놓침·혼침과 졸음·두려움·들뜬 기쁨·불편함·지나치게 힘쓴 정진·지나치게 느슨한 정진·갈망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So kho ahaṁ, anuruddhā …pe…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abhijappā kho me udapādi, abhijappādhikaraṇañca pana me samādhi cavi. Samādhimhi cut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Sohaṁ tathā karissāmi yathā me puna na vicikicchā uppajjissati, na amanasikāro, na thinamiddhaṁ, na chambhitattaṁ, na uppilaṁ, na duṭṭhullaṁ, na accāraddhavīriyaṁ, na atilīnavīriyaṁ, na abhijappā’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공식 생략표 뒤에 abhijappā, 갈망이 아홉 번째 원인으로 나옵니다. 무엇을 바랐는지는 이 구절 자체가 밝히지 않습니다. 갈망이 일어남, 그 때문에 삼매에서 물러남, 빛과 형상 경험이 사라짐이라는 인과는 그대로 반복됩니다. 앞의 들뜬 기쁨이 이미 얻은 좋은 경험에 대한 흥분이라면, 이번 갈망은 아직 얻으려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운 상태입니다. 둘을 따로 알아보는 섬세함이 필요하며, 좋은 목적을 향한 바람도 집착하는 방식에 따라 집중을 흔들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집중하고 있는 일보다 그 결과를 빨리 얻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 적이 있나요? 목표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지금 하는 한 단계로 돌아오게 해 준 것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결과가 막막하다면 오늘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범위만 생각해도 괜찮아요.

46 여러 가지에 대한 인식이 마음을 흩뜨리다 1구절

공식 생략 뒤 여러 가지에 대한 인식이 열 번째 조건으로 드러나고 앞의 아홉 상태와 함께 누적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나는 …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에 대한 인식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집중에서 물러났습니다. 집중에서 물러나면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집니다. 나는 의심·주의를 놓침·혼침과 졸음·두려움·들뜬 기쁨·불편함·지나치게 힘쓴 정진·지나치게 느슨한 정진·갈망·여러 가지에 대한 인식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So kho ahaṁ, anuruddhā …pe…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nānattasaññā kho me udapādi, nānattasaññādhikaraṇañca pana me samādhi cavi. Samādhimhi cut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Sohaṁ tathā karissāmi yathā me puna na vicikicchā uppajjissati, na amanasikāro, na thinamiddhaṁ, na chambhitattaṁ, na uppilaṁ, na duṭṭhullaṁ, na accāraddhavīriyaṁ, na atilīnavīriyaṁ, na abhijappā, na nānattasaññā’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nānattasaññā는 하나의 대상에 모이기보다 여러 가지 차이와 다양성으로 향하는 인식입니다. 공식 생략표는 반복 도입만 줄이고, 이 새 원인과 삼매가 무너지는 인과는 직접 남깁니다. 마지막 부정 목록은 열 항목으로 늘어납니다. 단순히 감각 대상이 많다는 말이 아니라, 마음이 여러 표상으로 갈라지는 것이 이 단계의 집중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말합니다. 앞의 갈망이 앞으로 향하는 힘이라면 이번 항목은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는 작용입니다.

묵상

한 일을 하면서 여러 이미지나 가능성이 동시에 떠올라 집중이 갈라진 적이 있나요? 그 다양함을 억지로 없애기보다 한 가지로 돌아오는 데 도움이 된 감각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떠오르는 생각이 많다면 지금은 그중 하나를 고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47 형상에 지나치게 골몰한 원인을 묻다 1구절

세존께서 다시 빛과 형상을 경험했다가 사라진 뒤 열한 번째 원인을 찾기 위해 원인과 조건을 묻습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나는 부지런하고 열의 있으며 굳세게 지내며 빛을 인식하고 형상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졌습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때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지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So kho ahaṁ, anuruddhā, appamatto ātāpī pahitatto viharanto obhāsañceva sañjānāmi dassanañca rūpānaṁ. So kho pana me obhāso nacirasseva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ko nu kho hetu ko paccayo yena m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n’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여덟 차례 공식 생략으로 줄였던 도입이 열한 번째 탐구에서는 다시 온전히 나옵니다. 부지런히 머묾, 빛과 형상의 나타남, 오래지 않아 사라짐, 원인과 조건을 묻는 순서가 모두 복원됩니다. 이 완전한 재진술은 누적 목록이 길어졌어도 조사 방식이 처음과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다음 대목에서 “형상들에 지나치게 골몰함”이라는 원인이 드러나므로, 빛과 형상을 보는 경험 자체와 그 경험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태도를 구별하게 합니다.

묵상

흥미로운 경험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보는 일과 거기에 빠져드는 일의 경계가 흐려진 적이 있나요? 호기심은 유지하면서 시선을 조금 넓히게 한 조건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특별한 경험이 없다면 좋아하는 대상에 몰입했던 일상 장면으로 생각해도 괜찮아요.

48 보이는 모습에 너무 매달려 모였던 마음이 흩어지다 1구절

형상에 지나치게 골몰한 탓에 삼매가 무너졌음을 알고 열한 가지 상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상들에 지나치게 골몰한 일이 생겼고, 그 때문에 집중에서 물러났습니다. 집중에서 물러나면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집니다. 나는 의심·주의를 놓침·혼침과 졸음·두려움·들뜬 기쁨·불편함·지나치게 힘쓴 정진·지나치게 느슨한 정진·갈망·여러 가지에 대한 인식·형상들에 지나치게 골몰함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atinijjhāyitattaṁ kho me rūpānaṁ udapādi, atinijjhāyitattādhikaraṇañca pana me rūpānaṁ samādhi cavi. Samādhimhi cut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Sohaṁ tathā karissāmi yathā me puna na vicikicchā uppajjissati, na amanasikāro, na thinamiddhaṁ, na chambhitattaṁ, na uppilaṁ, na duṭṭhullaṁ, na accāraddhavīriyaṁ, na atilīnavīriyaṁ, na abhijappā, na nānattasaññā, na atinijjhāyitattaṁ rūpānan’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atinijjhāyitattaṁ rūpānaṁ은 형상들을 너무 오래, 너무 깊게 응시하며 골몰한 상태입니다. 새 원인 때문에 삼매가 무너지고 빛과 형상 경험이 사라졌다는 인과가 이어집니다. 마지막 목록에는 앞의 열 가지와 이번 항목까지 열한 가지가 원래 순서대로 모두 놓입니다. 형상들이 사라져 문제가 아니라, 형상을 보는 경험에 과도한 주의를 쏟은 일이 집중의 조건을 무너뜨렸다고 분석합니다. 대상보다 관계 방식이 오염이 될 수 있다는 마지막 사례입니다.

묵상

대상 자체보다 그것을 계속 확인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오히려 집중이 흐려진 적이 있나요? 시선을 떼는 것이 포기가 아니라 균형을 회복하는 일로 느껴진 순간을 떠올려 볼까요? 지금 매달리는 일이 있다면 바로 놓으려 하지 않고 힘의 정도만 느껴도 괜찮아요.

49 앞의 여섯 상태를 마음의 오염으로 알아 버리다 1구절

의심부터 불편함까지 여섯 상태를 각각 마음의 오염으로 알고 하나씩 버렸다고 밝힙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나는 ‘의심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아 의심이라는 마음의 오염을 버렸습니다. ‘주의를 놓침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아 그것을 버렸고, ‘혼침과 졸음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아 그것을 버렸습니다. ‘두려움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아 그것을 버렸고, ‘들뜬 기쁨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아 그것을 버렸으며, ‘불편함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아 그것을 버렸습니다.”

So kho ahaṁ, anuruddhā, ‘vicikicch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vicikicch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iṁ, ‘amanasikāro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amanasikār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iṁ, ‘thinamiddha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thinamiddh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iṁ, ‘chambhitatta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chambhitatt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iṁ, ‘uppila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uppil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iṁ, ‘duṭṭhulla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duṭṭhull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iṁ,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열한 원인을 찾아낸 뒤, 세존은 그것들을 cittassa upakkilesa, 마음의 오염이라고 정확히 이름 붙이고 버린 과정을 말합니다. 각 항목마다 “오염이라고 앎”과 “그 오염을 버림”이라는 두 동작이 반복됩니다. 이번 범위는 의심·주의 놓침·혼침과 졸음·두려움·들뜬 기쁨·불편함의 앞 여섯 가지입니다. 서로 성격이 다른 상태를 하나의 막연한 산란으로 합치지 않고 각각 알아봅니다. 알아차림이 곧 제거라는 뜻이 아니라, 알아본 뒤 버리는 순서가 문장마다 보존됩니다.

묵상

마음이 흐린 이유를 막연히 “집중이 안 된다”고 할 때와 의심·졸음·두려움처럼 구체적으로 구분할 때 무엇이 달라지나요? 최근 상태에 가까운 이름 하나가 있는지 떠올려 볼까요? 어떤 이름도 맞지 않으면 억지로 분류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50 나머지 다섯 상태도 마음의 오염으로 버리다 1구절

지나친 정진부터 형상에 골몰함까지 다섯 상태도 각각 마음의 오염으로 알아 버립니다.

“나는 ‘지나치게 힘쓴 정진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아 그것을 버렸고, ‘지나치게 느슨한 정진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아 그것을 버렸습니다. ‘갈망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아 버렸고, ‘여러 가지에 대한 인식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아 버렸으며, ‘형상들에 지나치게 골몰함은 마음의 오염이다’라고 알아 그것을 버렸습니다.”

‘accāraddhavīriya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accāraddhavīriy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iṁ, ‘atilīnavīriya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atilīnavīriy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iṁ, ‘abhijapp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abhijapp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iṁ, ‘nānattasaññ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nānattasaññ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iṁ, ‘atinijjhāyitattaṁ rūpāna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atinijjhāyitattaṁ rūpānaṁ cittassa upakkilesaṁ pajahiṁ.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열한 항목의 뒤 다섯 가지도 앞과 같은 “알고 버림”의 문형을 각각 가집니다. 지나치게 센 정진과 지나치게 느슨한 정진이 한 쌍을 이루고, 이어 갈망·여러 가지에 대한 인식·형상에 지나치게 골몰함이 나옵니다. 노력의 양쪽 극단뿐 아니라 결과를 원하는 마음, 다양하게 흩어지는 인식, 흥미로운 대상을 과도하게 보는 일까지 모두 삼매를 흐린 조건으로 묶입니다. 버림은 이 상태들이 사람의 성격이라는 판단이 아니라 기능을 알아본 뒤 더는 따르지 않는 과정입니다.

묵상

열심히 함과 느슨함, 바람과 흩어짐, 골몰함 가운데 지금 집중에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처럼 느껴지나요? 하나를 고른다면 그것을 나 자신이 아니라 지나가는 조건으로 볼 수 있을까요? 고르기 어렵다면 목록을 읽고 그냥 지나가도 괜찮아요.

51 빛과 형상이 서로 따로 나타나다 1구절

빛만 인식하거나 형상만 보는 두 경우가 온밤·온낮·온밤낮 동안 이어졌다고 밝힙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나는 부지런하고 열의 있으며 굳세게 지내며 빛은 인식하지만 형상들을 보지 못했고, 형상들은 보지만 빛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온밤·온낮·온밤낮 동안 이어졌습니다.”

So kho ahaṁ, anuruddhā, appamatto ātāpī pahitatto viharanto obhāsañhi kho sañjānāmi, na ca rūpāni passāmi; rūpāni hi kho passāmi, na ca obhāsaṁ sañjānāmi: ‘kevalampi rattiṁ, kevalampi divaṁ, kevalampi rattindivaṁ’.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열한 오염을 버린 뒤에도 경험은 아직 한쪽씩 갈라져 나타납니다. 첫 경우는 빛을 인식하지만 형상들을 보지 못하고, 둘째는 형상들을 보지만 빛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두 부정의 방향이 서로 반대입니다. kevalampi가 붙은 밤·낮·밤낮이라는 세 시간 범위도 차례로 나옵니다. 세존은 오염 목록을 끝냈다는 이유로 곧바로 모든 요소가 함께 안정되었다고 여기지 않고, 남아 있는 불균형을 구체적인 두 경우로 먼저 확인합니다.

묵상

한쪽 능력에 집중할수록 다른 쪽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경험이 있나요? 밝게 보는 것과 구체적으로 보는 것처럼 서로 다른 두 기능을 함께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떠올려 볼까요? 명상과 연결되지 않아도 일상의 주의 경험으로 생각해도 괜찮아요.

52 주의를 둔 조건에 따라 빛과 형상이 달라지다 1구절

두 경우의 원인을 묻는 반복을 줄인 뒤 빛과 형상 가운데 어느 조건에 주의를 두었는지가 답이라고 밝힙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때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상의 조건에 주의를 두지 않고 빛의 조건에 마음을 기울이면 빛만 인식합니다. 반대로 빛의 조건에 주의를 두지 않고 형상의 조건에 마음을 기울이면 형상들만 봅니다. 이것은 온밤·온낮·온밤낮 동안 이어집니다.’”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ko nu kho hetu ko paccayo yvāhaṁ …’ti.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yasmiñhi kho ahaṁ samaye rūpanimittaṁ amanasikaritvā obhāsanimittaṁ manasi karomi, obhāsañhi kho tasmiṁ samaye sañjānāmi, na ca rūpāni passāmi. Yasmiṁ panāhaṁ samaye obhāsanimittaṁ amanasikaritvā rūpanimittaṁ manasi karomi, rūpāni hi kho tasmiṁ samaye passāmi na ca obhāsaṁ sañjānāmi—kevalampi rattiṁ, kevalampi divaṁ, kevalampi rattindivan’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질문의 일반 생략표 … 한 곳은 바로 앞에서 온전히 나온 “빛은 인식하지만 형상은 못 보는 경우와 그 반대, 그리고 밤·낮·밤낮”을 다시 묻는 부분만 줄입니다. 새 원인이나 조건은 그 범위에 없습니다. 답은 어느 nimitta에 manasikāra, 마음을 기울였는가에 있습니다. 형상의 조건을 주의하지 않고 빛의 조건을 향하면 빛만 인식하고, 반대로 하면 형상만 봅니다. 두 조건문은 대상과 부정의 자리를 맞바꾸며, 세 시간 범위도 다시 확인합니다.

묵상

주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에서도 보이는 것이 달라졌던 적이 있나요? 한 가지에 몰입할 때 놓치게 되는 다른 정보가 무엇인지 떠올려 볼까요? 모든 것을 동시에 보려 애쓰기보다 지금 무엇을 선택했는지만 알아도 괜찮아요.

53 제한된 빛과 한량없는 빛이 나타나다 1구절

제한된 빛과 형상, 한량없는 빛과 형상이 각각 온밤·온낮·온밤낮 동안 나타났다고 밝힙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나는 부지런하고 열의 있으며 굳세게 지내며 제한된 빛을 인식하고 제한된 형상들을 보기도 했고, 한량없는 빛을 인식하고 한량없는 형상들을 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온밤·온낮·온밤낮 동안 이어졌습니다.”

So kho ahaṁ, anuruddhā, appamatto ātāpī pahitatto viharanto parittañceva obhāsaṁ sañjānāmi, parittāni ca rūpāni passāmi; appamāṇañceva obhāsaṁ sañjānāmi, appamāṇāni ca rūpāni passāmi: ‘kevalampi rattiṁ, kevalampi divaṁ, kevalampi rattindivaṁ’.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빛과 형상이 따로 나타나는 문제를 밝힌 뒤, 이번에는 둘이 함께 나타날 때 그 범위가 제한되거나 한량없는 차이를 살핍니다. paritta는 제한됨, appamāṇa는 헤아릴 수 없이 넓음을 뜻하며 빛과 형상 각각에 반복됩니다. 밤·낮·밤낮이라는 세 시간 범위도 앞과 같은 순서입니다. 어느 경험이 더 높다는 평가는 아직 없고, 관찰된 두 범위를 먼저 병렬로 놓습니다. 다음 문답에서 그 차이의 원인을 삼매와 보는 힘의 범위로 직접 연결합니다.

묵상

같은 대상도 집중의 폭에 따라 좁게 또는 넓게 보였던 경험이 있나요? 세부에 모이는 때와 전체가 열리는 때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다른지 떠올려 볼까요?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정하지 않고 두 방식의 차이만 느껴도 괜찮아요.

54 마음이 모인 범위에 따라 빛과 모습도 다르게 보이다 1구절

두 범위의 원인을 묻는 반복을 줄인 뒤 삼매가 제한되거나 한량없음에 따라 보는 힘과 빛·형상도 같아진다고 밝힙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때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중이 제한되면 보는 힘도 제한되어 제한된 빛과 형상들을 경험합니다. 집중이 한량없으면 보는 힘도 한량없어 한량없는 빛과 형상들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온밤·온낮·온밤낮 동안 이어집니다.’”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ko nu kho hetu ko paccayo yvāhaṁ …’ti.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yasmiṁ kho me samaye paritto samādhi hoti, parittaṁ me tasmiṁ samaye cakkhu hoti. Sohaṁ parittena cakkhunā parittañceva obhāsaṁ sañjānāmi, parittāni ca rūpāni passāmi. Yasmiṁ pana me samaye appamāṇo samādhi hoti, appamāṇaṁ me tasmiṁ samaye cakkhu hoti. Sohaṁ appamāṇena cakkhunā appamāṇañceva obhāsaṁ sañjānāmi, appamāṇāni ca rūpāni passāmi—kevalampi rattiṁ, kevalampi divaṁ, kevalampi rattindivan’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질문의 일반 생략표 … 한 곳은 바로 앞에서 온전히 나온 “제한된 빛과 형상, 한량없는 빛과 형상, 밤·낮·밤낮”을 되묻는 부분만 줄이며 새 정보는 없습니다. 답은 삼매·보는 힘·빛·형상의 네 요소를 같은 범위로 연결합니다. 삼매가 paritta일 때 나머지도 제한되고, samādhi가 appamāṇa일 때 나머지도 한량없습니다. cakkhu는 이 명상에서 형상을 보는 힘을 가리킵니다. 두 조건과 세 시간 범위가 함께 있어 원인과 결과가 한 발화 안에서 닫힙니다.

묵상

집중의 폭이 넓어질 때 보이는 정보의 범위도 달라지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시야가 좁아진 순간에 집중을 탓하기보다 그 범위를 먼저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지금은 좁은 집중이 필요한 때일 수도 있으니 넓혀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55 앞의 여섯 마음 오염이 버려졌음을 확인하다 1구절

의심부터 불편함까지 여섯 상태를 마음의 오염으로 알아 이미 버려졌다고 하나씩 확인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의심이 마음의 오염임을 알아 의심이라는 오염이 버려졌고, 주의를 놓침이 마음의 오염임을 알아 그것이 버려졌습니다. 혼침과 졸음이 마음의 오염임을 알아 그것이 버려졌고, 두려움이 마음의 오염임을 알아 그것이 버려졌습니다. 들뜬 기쁨이 마음의 오염임을 알아 그것이 버려졌고, 불편함이 마음의 오염임을 알아 그것이 버려졌습니다.”

Yato kho me, anuruddhā, ‘vicikicch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vicikicchā cittassa upakkileso pahīno ahosi, ‘amanasikāro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amanasikāro cittassa upakkileso pahīno ahosi, ‘thinamiddha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thinamiddhaṁ cittassa upakkileso pahīno ahosi, ‘chambhitatta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chambhitattaṁ cittassa upakkileso pahīno ahosi, ‘uppila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uppilaṁ cittassa upakkileso pahīno ahosi, ‘duṭṭhulla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duṭṭhullaṁ cittassa upakkileso pahīno ahos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앞에서는 “내가 버렸다”는 행위가 강조되었고, 여기서는 pahīno ahosi라는 완료 상태, “버려져 있었다”가 각 항목에 반복됩니다. 이번 범위는 의심·주의 놓침·혼침과 졸음·두려움·들뜬 기쁨·불편함의 여섯 가지입니다. 모든 항목마다 마음의 오염이라고 앎과 버려짐이 짝을 이룹니다. 빛과 형상의 조건 및 범위를 분명히 한 뒤 이 목록이 다시 나오는 것은, 단지 잠깐 억눌린 것이 아니라 조사한 오염들이 더는 삼매를 흐리지 않는 상태임을 확인하는 단계입니다.

묵상

어떤 방해가 잠깐 사라진 것과 다시 끌려가지 않을 만큼 약해진 것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최근 반복되던 반응 하나가 조금 힘을 잃었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변화가 없다면 없다고 보아도 괜찮아요.

56 나머지 다섯 마음 오염도 버려졌음을 확인하다 1구절

지나친 정진부터 형상에 골몰함까지 다섯 상태도 마음의 오염으로 알아 버려졌다고 확인합니다.

“지나치게 힘쓴 정진이 마음의 오염임을 알아 그것이 버려졌고, 지나치게 느슨한 정진이 마음의 오염임을 알아 그것이 버려졌습니다. 갈망이 마음의 오염임을 알아 그것이 버려졌고, 여러 가지에 대한 인식이 마음의 오염임을 알아 그것이 버려졌으며, 형상들에 지나치게 골몰함이 마음의 오염임을 알아 그것이 버려졌습니다.”

‘accāraddhavīriya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accāraddhavīriyaṁ cittassa upakkileso pahīno ahosi, ‘atilīnavīriya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atilīnavīriyaṁ cittassa upakkileso pahīno ahosi, ‘abhijapp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abhijappā cittassa upakkileso pahīno ahosi, ‘nānattasaññ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nānattasaññā cittassa upakkileso pahīno ahosi, ‘atinijjhāyitattaṁ rūpānaṁ cittassa upakkileso’ti—iti viditvā atinijjhāyitattaṁ rūpānaṁ cittassa upakkileso pahīno ahos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완료된 목록의 뒤 다섯 항목은 지나치게 힘쓴 정진·지나치게 느슨한 정진·갈망·여러 가지에 대한 인식·형상들에 지나치게 골몰함입니다. 앞의 “알아 버림”과 같은 순서를 유지하지만 이번에는 각각 “버려졌다”는 상태를 확인합니다. 노력의 두 극단과 주의가 결과·다양성·형상에 치우친 세 경우가 함께 정리됩니다. 이로써 열한 오염의 첫 확인과 마지막 확인이 같은 항목 순서로 닫히고, 다음에는 오염을 버린 마음으로 삼매를 세밀하게 닦는 단계가 시작됩니다.

묵상

지나친 힘과 느슨함 사이에서 예전보다 조금 빨리 균형을 알아차린 적이 있나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어도 반응의 힘이 줄어든 작은 변화가 있는지 떠올려 볼까요?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면 지금 상태를 판단 없이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요.

57 생각과 느낌에 따라 달리 마음을 모으다 1구절

마음의 오염이 버려진 뒤 생각의 놓임과 이어짐에 따른 세 삼매, 희열·즐거움·평온에 따른 네 성질을 닦습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때 ‘내 마음의 오염들은 버려졌다. 이제 집중을 세 방식으로 닦아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나는 마음을 두고 이어 가는 집중, 마음을 두지 않고 이어 가기만 하는 집중, 마음을 두지도 이어 가지도 않는 집중을 닦았습니다. 또한 희열이 있는 집중과 희열이 없는 집중, 즐거움이 따르는 집중과 평정이 따르는 집중을 닦았습니다.”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ye kho me cittassa upakkilesā te me pahīnā. Handa dānāhaṁ tividhena samādhiṁ bhāvemī’ti. So kho ahaṁ, anuruddhā, savitakkampi savicāraṁ samādhiṁ bhāvesiṁ, avitakkampi vicāramattaṁ samādhiṁ bhāvesiṁ, avitakkampi avicāraṁ samādhiṁ bhāvesiṁ, sappītikampi samādhiṁ bhāvesiṁ, nippītikampi samādhiṁ bhāvesiṁ, sātasahagatampi samādhiṁ bhāvesiṁ, upekkhāsahagatampi samādhiṁ bhāvesiṁ.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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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vidhena라는 세 방식은 vitakka와 vicāra, 곧 마음을 대상에 두는 작용과 계속 이어 가는 작용의 조합으로 설명됩니다. 둘 다 있음, 처음 것은 없고 이어 감만 있음, 둘 다 없음의 세 단계입니다. 이어 희열이 있음·없음, 즐거움이 따름·평온이 따름이라는 네 성질이 덧붙습니다. 세 가지와 네 가지를 모두 “세 방식” 하나로 세지 않았습니다. 열한 오염을 버린 뒤에는 한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집중의 작용과 느낌의 성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세밀하게 닦습니다.

묵상

집중이 시작될 때 마음을 대상에 가져가는 힘과 그 위에 머무는 힘이 다르게 느껴진 적이 있나요? 희열, 잔잔한 즐거움, 평온 가운데 최근 집중과 가까운 성질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명상 경험이 없다면 몰입했던 일상의 경험으로 생각해도 괜찮아요.

58 마음을 모으는 일곱 방식을 모두 익히다 1구절

앞에서 열거한 마음의 놓임 세 형태와 희열·즐거움·평온의 네 성질이 모두 닦였다고 확인합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마음을 두고 이어 가는 집중이 닦였고, 마음을 두지 않고 이어 가기만 하는 집중도 닦였으며, 마음을 두지도 이어 가지도 않는 집중도 닦였습니다. 희열이 있는 집중과 희열이 없는 집중, 즐거움이 따르는 집중과 평정이 따르는 집중도 모두 닦였습니다.”

Yato kho me, anuruddhā, savitakkopi savicāro samādhi bhāvito ahosi, avitakkopi vicāramatto samādhi bhāvito ahosi, avitakkopi avicāro samādhi bhāvito ahosi, sappītikopi samādhi bhāvito ahosi, nippītikopi samādhi bhāvito ahosi, sātasahagatopi samādhi bhāvito ahosi, upekkhāsahagatopi samādhi bhāvito ahos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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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닦았다”고 말한 일곱 형태가 이번에는 bhāvito ahosi, 닦여 완성된 상태로 다시 열거됩니다. 마음을 둠과 이어 감의 조합 세 가지가 먼저이고, 희열 있음·없음과 즐거움·평온의 네 성질이 뒤따릅니다. 어느 하나도 생략하지 않고 같은 순서로 확인합니다. 이 반복은 목록을 단순히 소개한 것과 실제로 닦아 익힌 것을 구별합니다. 마음의 오염을 알아 버리는 소극적 정돈 뒤에 다양한 삼매를 길러 안정시키는 적극적 수행이 완성됩니다.

묵상

어떤 능력을 이해했다고 느끼는 때와 반복해 익혀 자연스러워진 때는 무엇이 다른가요? 최근 “알고 있음”에서 “익숙해짐”으로 조금 옮겨 간 일이 있는지 떠올려 볼까요? 아직 익히는 중이라면 그 과정의 한 지점을 인정해도 괜찮아요.

59 마음의 풀려남이 흔들리지 않음을 알다 1구절

앎과 봄이 일어나 마음의 해탈과 마지막 태어남을 확인하고, 아누룻다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며 받아들입니다.

“그때 내게 앎과 봄이 일어났습니다. ‘나의 마음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다시 존재함은 없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누룻다 존자는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Ñāṇañca pana me dassanaṁ udapādi, akuppā me cetovimutti. Ayamantimā jāti, natthi dāni punabbhavo”ti. Idamavoca bhagavā. Attamano āyasmā anuruddh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ī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삼매의 여러 형태가 닦였다는 확인 뒤에 ñāṇadassana, 앎과 봄이 일어납니다. 그 내용은 마음의 해탈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라는 것, 이제 다시 존재함이 없다는 세 선언입니다. natthi dāni punabbhavo는 미래 존재를 분명히 부정합니다. 이어 서술자가 세존의 말이 끝났음을 밝히고, 아누룻다가 만족하여 받아들였다고 경을 닫습니다. 꼬삼비의 말다툼에서 시작한 흐름이 원인을 분별하고 마음을 안정시켜 흔들리지 않는 해탈을 아는 데 이릅니다.

묵상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 지금의 삶에서는 어떤 안정으로 다가오나요? 큰 성취를 자신에게 요구하지 않고, 최근 쉽게 흔들리지 않았던 작은 가치나 관계 하나를 떠올려 볼까요? 그런 것이 없다면 이 마지막 선언을 평가하지 않고 잠시 듣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