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젖처럼 화합하는지를 묻다

세존께서 다투지 않고 물과 젖처럼 섞여 호의 어린 눈으로 보는지 묻고, 답을 들은 뒤 그 방법을 다시 묻습니다.

세존께서 물으셨습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화합하고 서로 기뻐하며 다투지 않고, 물과 젖이 섞이듯 서로를 호의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지냅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그렇게 지냅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어떻게 그렇게 지냅니까?”

“Kacci pana vo, anuruddhā, samaggā sammodamānā avivadamānā khīrodakībhūtā aññamaññaṁ piyacakkhūhi sampassantā viharathā”ti? “Taggha mayaṁ, bhante, samaggā sammodamānā avivadamānā khīrodakībhūtā aññamaññaṁ piyacakkhūhi sampassantā viharāmā”ti. “Yathā kathaṁ pana tumhe, anuruddhā, samaggā sammodamānā avivadamānā khīrodakībhūtā aññamaññaṁ piyacakkhūhi sampassantā viharathā”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

배경

생활의 안부 다음에는 관계의 상태를 묻는 문답이 이어집니다. samagga·sammodamāna·avivadamāna는 화합함·서로 기뻐함·다투지 않음이고, khīrodakībhūta는 물과 젖이 섞인 모습입니다. piyacakkhu는 상대를 반기는 호의 어린 눈을 가리킵니다. 세 수행자가 그렇다고 짧게 답하자 세존은 칭찬으로 끝내지 않고 “어떻게” 가능한지를 묻습니다. 이 질문이 이어지는 사랑의 몸·말·마음과 공동생활의 구체적 실천을 끌어냅니다.

묵상

서로를 호의 어린 눈으로 본다는 표현에서 떠오르는 관계가 있나요? 함께 있어도 경계가 풀리고 반가움이 생기는 때와 그렇지 않은 때의 차이를 느껴 볼까요? 그런 관계가 지금 없다면 이 이미지가 편안한지 낯선지만 답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