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밀라 존자는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도 제 마음을 내려놓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라 행동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실제로 그렇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우리의 몸은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라고 여깁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저희는 화합하고 서로 기뻐하며 다투지 않고, 물과 젖이 섞이듯 서로를 호의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지냅니다.”
Tass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yannūnāhaṁ sakaṁ cittaṁ nikkhipitvā imesaṁyeva āyasmantānaṁ cittassa vasena vatteyyan’ti. So kho ahaṁ, bhante, sakaṁ cittaṁ nikkhipitvā imesaṁyeva āyasmantānaṁ cittassa vasena vattāmi. Nānā hi kho no, bhante, kāyā, ekañca pana maññe cittanti. Evaṁ kho mayaṁ, bhante, samaggā sammodamānā avivadamānā khīrodakībhūtā aññamaññaṁ piyacakkhūhi sampassantā viharāmā”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배경
끼밀라의 답은 앞에서 아누룻다가 말한 내려놓음과 한 마음의 문장을 반복한 뒤, 세 사람의 공동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evaṁ, “이와 같이”는 화합이 막연한 친밀감이 아니라 동료를 행운으로 여김, 공개와 비공개의 사랑, 자기 뜻을 내려놓는 실천에서 생긴다는 앞 답을 가리킵니다. 마지막에는 처음 질문의 다섯 표현인 화합·기쁨·무다툼·물과 젖·호의 어린 눈이 모두 돌아옵니다. 질문과 실제 방법이 닫힌 구조를 이룹니다.
묵상
관계의 좋은 결과만 바라볼 때와 그 결과를 만드는 작은 행동을 볼 때 무엇이 달라지나요? 지금 속한 모임에서 화합을 지탱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행동 하나가 있는지 떠올려 볼까요? 없다면 그런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끼는지만 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