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렇게 부지런하고 열의 있으며 굳세게 지내며 인간을 넘어선 고귀한 앎과 봄의 뛰어남, 편안한 머묾을 얻었습니까?” 그들이 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빛을 인식하고 형상들을 봅니다. 그러나 그 빛과 형상들은 오래지 않아 사라지고, 저희는 그 원인을 꿰뚫지 못했습니다.”
“Sādhu sādhu, anuruddhā. Atthi pana vo, anuruddhā, evaṁ appamattānaṁ ātāpīnaṁ pahitattānaṁ viharataṁ uttari 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o adhigato phāsuvihāro”ti? “Idha mayaṁ, bhante, appamattā ātāpino pahitattā viharantā obhāsañceva sañjānāma dassanañca rūpānaṁ. So kho pana no obhāso nacirasseva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tañca nimittaṁ nappaṭivijjhāmā”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배경
세존은 공동생활의 질서에서 더 높은 수행 경험으로 질문을 옮깁니다. uttari manussadhammā는 인간의 보통 상태를 넘어선 것,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는 고귀한 이에게 걸맞은 앎과 봄의 뛰어남입니다. 세 수행자는 obhāsa를 인식하고 rūpa들을 보지만 둘이 곧 사라진다고 답합니다. nimitta는 여기서 형상 자체를 뜻하지 않고 그 현상이 생기고 사라지는 원인이나 근거입니다. 경험의 특별함보다 왜 지속되지 않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는 한계를 정직하게 밝힙니다.
묵상
잠깐 선명했던 집중이나 이해가 곧 사라져 이유를 모르겠던 적이 있나요? 그 경험을 실패나 성취로 빨리 이름 붙이지 않고, 나타남과 사라짐 자체를 기억해 볼 수 있을까요? 명상 경험이 없다면 일상에서 잠시 또렷했던 순간을 떠올려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