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상들에 지나치게 골몰한 일이 생겼고, 그 때문에 집중에서 물러났습니다. 집중에서 물러나면 빛과 형상들을 보는 일이 사라집니다. 나는 의심·주의를 놓침·혼침과 졸음·두려움·들뜬 기쁨·불편함·지나치게 힘쓴 정진·지나치게 느슨한 정진·갈망·여러 가지에 대한 인식·형상들에 지나치게 골몰함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atinijjhāyitattaṁ kho me rūpānaṁ udapādi, atinijjhāyitattādhikaraṇañca pana me rūpānaṁ samādhi cavi. Samādhimhi cute obhāso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ṁ. Sohaṁ tathā karissāmi yathā me puna na vicikicchā uppajjissati, na amanasikāro, na thinamiddhaṁ, na chambhitattaṁ, na uppilaṁ, na duṭṭhullaṁ, na accāraddhavīriyaṁ, na atilīnavīriyaṁ, na abhijappā, na nānattasaññā, na atinijjhāyitattaṁ rūpānan’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배경
atinijjhāyitattaṁ rūpānaṁ은 형상들을 너무 오래, 너무 깊게 응시하며 골몰한 상태입니다. 새 원인 때문에 삼매가 무너지고 빛과 형상 경험이 사라졌다는 인과가 이어집니다. 마지막 목록에는 앞의 열 가지와 이번 항목까지 열한 가지가 원래 순서대로 모두 놓입니다. 형상들이 사라져 문제가 아니라, 형상을 보는 경험에 과도한 주의를 쏟은 일이 집중의 조건을 무너뜨렸다고 분석합니다. 대상보다 관계 방식이 오염이 될 수 있다는 마지막 사례입니다.
묵상
대상 자체보다 그것을 계속 확인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오히려 집중이 흐려진 적이 있나요? 시선을 떼는 것이 포기가 아니라 균형을 회복하는 일로 느껴진 순간을 떠올려 볼까요? 지금 매달리는 일이 있다면 바로 놓으려 하지 않고 힘의 정도만 느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