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누룻다와 벗들이여, 그때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누룻다와 벗들이여,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중이 제한되면 보는 힘도 제한되어 제한된 빛과 형상들을 경험합니다. 집중이 한량없으면 보는 힘도 한량없어 한량없는 빛과 형상들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온밤·온낮·온밤낮 동안 이어집니다.’”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ko nu kho hetu ko paccayo yvāhaṁ …’ti. Tassa mayhaṁ, anuruddhā, etadahosi: ‘yasmiṁ kho me samaye paritto samādhi hoti, parittaṁ me tasmiṁ samaye cakkhu hoti. Sohaṁ parittena cakkhunā parittañceva obhāsaṁ sañjānāmi, parittāni ca rūpāni passāmi. Yasmiṁ pana me samaye appamāṇo samādhi hoti, appamāṇaṁ me tasmiṁ samaye cakkhu hoti. Sohaṁ appamāṇena cakkhunā appamāṇañceva obhāsaṁ sañjānāmi, appamāṇāni ca rūpāni passāmi—kevalampi rattiṁ, kevalampi divaṁ, kevalampi rattindivan’ti.
맛지마 니까야 MN 128 우빳끌레사경 (Upakkilesasutta)배경
질문의 일반 생략표 … 한 곳은 바로 앞에서 온전히 나온 “제한된 빛과 형상, 한량없는 빛과 형상, 밤·낮·밤낮”을 되묻는 부분만 줄이며 새 정보는 없습니다. 답은 삼매·보는 힘·빛·형상의 네 요소를 같은 범위로 연결합니다. 삼매가 paritta일 때 나머지도 제한되고, samādhi가 appamāṇa일 때 나머지도 한량없습니다. cakkhu는 이 명상에서 형상을 보는 힘을 가리킵니다. 두 조건과 세 시간 범위가 함께 있어 원인과 결과가 한 발화 안에서 닫힙니다.
묵상
집중의 폭이 넓어질 때 보이는 정보의 범위도 달라지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시야가 좁아진 순간에 집중을 탓하기보다 그 범위를 먼저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지금은 좁은 집중이 필요한 때일 수도 있으니 넓혀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