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께서는 향실에서 광명을 보내 마주 앉아 말씀하시는 듯하셨습니다. “고따미여, 존재들은 등불처럼 일어나고 사라지며 열반에 이른 이들은 더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열반을 못 본 채 백 년을 사는 것보다 보는 이가 한순간 사는 것이 낫습니다.” 이어 이 게송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죽음 없는 자리를 보지 못한 채 백 년을 사는 것보다, 죽음 없는 자리를 보는 이의 하루 삶이 더 낫습니다.”
Satthā gandhakuṭiyaṃ nisinnova obhāsaṃ pharitvā tassā sammukhe nisīditvā kathento viya ‘‘evameva, gotami, ime sattā dīpajālā viya uppajjanti ceva nirujjhanti ca, nibbānappattā eva na paññāyanti, evaṃ nibbānaṃ apassantānaṃ vassasataṃ jīvanato nibbānaṃ passantassa khaṇamattampi jīvitaṃ seyyo’’ti vatvā anusandhiṃ ghaṭetvā dhammaṃ desento imaṃ gāthamāha – ‘‘Yo ca vassasataṃ jīve, apassaṃ amataṃ padaṃ; Ekāhaṃ jīvitaṃ seyyo, passato amataṃ pada’’nti.
법구경 주석 법구경 주석 - 끼사고따미 이야기 끼사고따미 이야기 (Kisāgotamī Vatthu)배경
후대 주석은 부처님이 향실에서 광명을 펼쳐 끼사고따미 앞에 나타난 듯 가르쳤다고 전합니다. 이는 정전 게송과 구별되는 기적적 장치입니다. 스승은 그가 본 불꽃의 생멸을 존재들의 생멸과 연결하고, 열반을 보는 한순간과 보지 못한 백 년을 대조합니다. 마지막 두 행은 정전 법구경 114게송입니다. 생명을 짧게 여기라는 말이 아니라 시간의 길이보다 무엇을 분명히 보는지가 수행에서 중요하다는 논리입니다.
묵상
오래 지속된 시간과 짧지만 분명했던 순간 가운데 삶의 방향을 더 바꾼 쪽이 있나요? 꼭 특별한 체험일 필요는 없습니다. 떠오르지 않는다면 등불 앞에 앉은 장면만 그려 보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