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가장 미세한 자리로

흔들림 없음과 아무것도 없음에 대한 인식까지 놓아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영역으로 나아갑니다.

“또한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되새기느니라. 이 삶과 다음 삶의 감각적 욕망과 그에 대한 인식, 이 삶과 다음 삶의 명상 중 형상과 그 형상에 대한 인식, 흔들림 없음에 대한 인식과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에 대한 인식까지…”

Puna caparaṁ, bhikkhave,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ye ca diṭṭhadhammikā kāmā, ye ca samparāyikā kāmā; yā ca diṭṭhadhammikā kāmasaññā, yā ca samparāyikā kāmasaññā; ye ca diṭṭhadhammikā rūpā, ye ca samparāyikā rūpā; yā ca diṭṭhadhammikā rūpasaññā, yā ca samparāyikā rūpasaññā; yā ca āneñjasaññā, yā ca ākiñcaññāyatanasaññā—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부처님은 지금까지 거쳐 온 대상을 다시 한데 모으십니다. 현세와 다음 삶의 감각적 쾌락, 명상 중 나타나는 형상과 각각에 대한 인식이 먼저 놓입니다. 여기에 흔들림 없음과 아무것도 없음이라는 깊은 경지에 대한 인식까지 목록에 더합니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미세한 상태를 최종 진리로 착각하기 쉬우므로 성취의 이름을 하나씩 내려놓게 하십니다. 이어지는 대목은 이 목록 전체가 인식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묵상

감각적 쾌락과 명상 중 형상은 놓으면서도 흔들림 없음이나 아무것도 없음 같은 높은 경험에는 더 강하게 매이지 않나요? 이 모든 항목이 아직 결론이 아니라 다음 관찰을 위한 인식의 목록임을 받아들이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이 모두가 인식이다. 그 인식들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곳은 평화롭고 뛰어나다. 곧 인식도 아니고 비인식도 아닌 영역이다.’ 그렇게 자주 머무는 이의 마음은 그 경지에서 맑아지느니라. 마음이 맑아지면 지금 그 영역에 들거나 지혜로 해탈하느니라. 죽은 뒤에는 그에 알맞은 의식이 그 영역으로 향할 수도 있느니라. 이것이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영역에 알맞은 길이니라.”

sabbā saññā. Yatthetā aparisesā nirujjhanti etaṁ santaṁ etaṁ paṇītaṁ—yadida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n’ti. Tassa evaṁpaṭipannassa tabbahulavihārino āyatane cittaṁ pasīdati. Sampasāde sati etarahi v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samāpajjati paññāya vā adhimucca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ṭhānametaṁ vijjati yaṁ taṁsaṁvattanikaṁ viññāṇaṁ ass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ūpagaṁ. Ayaṁ, bhikkhave,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ppāyā paṭipadā akkhāy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인식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단정하기 어려울 만큼 미세한 경지가 제시됩니다. 모든 인식이 남김없이 멎는 방향을 평화롭고 뛰어나다고 보며, 그 성찰을 반복해 마음을 맑게 합니다. 이 단계도 앞선 경지들과 마찬가지로 현재 그 명상 경지에 들거나 지혜로 해탈하고, 그에 알맞은 다음 삶으로 향할 가능성으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가장 미세한 평온조차 내 것으로 환영하고 붙들면 다시 집착이 된다는 문답이 이어집니다.

묵상

모든 인식이 멎는다는 성찰을 허무로 단정하거나,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미세한 상태를 특별한 내 경험으로 소유하려 하나요? 말로 분명히 규정하기 어려운 평온도 하나의 경지일 뿐임을 알 때, 그것에 머무는 태도는 어떻게 달라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