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 아넨자삽빠야경

맛지마 니까야 MN 106

넓고 흔들림 없는 마음에서 시작해 가장 미세한 평온까지 붙잡지 않는 해방을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22구절

이 경을 6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감각적 쾌락의 영역을 벗어나다 5구절

감각적 쾌락의 속성을 꿰뚫고, 탐욕과 악의를 넘어 한량없이 넓은 마음을 닦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꾸루족의 땅, 깜마사담마라는 마을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수행자들을 부르셨다. “수행자들이여.” “세존이시여.” 수행자들이 대답하였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bhagavā kurūsu viharati kammāsadhammaṁ nāma kurūnaṁ nigamo.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bhikkhavo”ti.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Bhagavā etadavoca: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이 경은 꾸루족의 마을 깜마사담마에서 부처님이 수행자들을 직접 부르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질문자가 먼저 주제를 꺼낸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흔들림 없는 마음에 알맞은 길을 스스로 설하십니다. 가르침은 감각적 쾌락의 불안정함에서 출발해 무한한 마음과 매우 미세한 명상 경지를 지나, 그 모든 평온까지 붙잡지 않는 해방으로 나아갑니다. 시작 장면은 이 긴 흐름의 화자와 청중을 분명히 합니다.

묵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랄 때 보통 바깥 상황부터 바꾸려 하나요? 통제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도 탐욕과 악의에 휩쓸리지 않는 마음을 기르는 길과 비교하면, 지금 내 노력은 어느 쪽에 더 기울어 있나요?

“수행자들이여, 감각적 욕망은 무상하고 속이 비었으며 거짓되고 속이는 성질이 있느니라. 그것은 환술로 만들어진 것이며 어리석은 이들이 떠드는 것이니라. 이 삶과 다음 삶의 감각적 욕망과 그에 대한 인식은 모두 마라의 지배 아래 있고, 마라의 영역이며, 마라의 미끼이고 활동처이니라. 거기에서 탐욕과 악의와 공격 같은 해롭고 좋지 않은 마음이 생겨나며, 여기서 배우는 성스러운 제자를 가로막느니라.”

“Aniccā, bhikkhave, kāmā tucchā musā mosadhammā. Māyākatametaṁ, bhikkhave, bālalāpanaṁ. Ye ca diṭṭhadhammikā kāmā, ye ca samparāyikā kāmā; yā ca diṭṭhadhammikā kāmasaññā, yā ca samparāyikā kāmasaññā—ubhayametaṁ māradheyyaṁ, mārassesa visayo, mārassesa nivāpo, mārassesa gocaro. Etthete pāpakā akusalā mānasā abhijjhāpi byāpādāpi sārambhāpi saṁvattanti. Teva ariyasāvakassa idhamanusikkhato antarāyāya sambhavanti.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부처님은 감각적 쾌락을 무상하고 속이 비며 사람을 속이는 환술에 견주십니다. 즐거운 감각 자체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속되고 나를 만족시킬 실체라고 믿을 때 생기는 속임을 밝히는 말씀입니다. 현세나 다음 생의 쾌락과 그것을 그리는 인식은 탐욕과 악의, 경쟁적 공격성을 키우는 마라의 미끼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그 영역에 매이면 더 넓은 자유를 배우는 길이 가로막힙니다.

묵상

기대할 때는 커 보였지만 얻고 나자 빠르게 빛을 잃은 즐거움이 있었나요? 그 경험을 나쁘다고 몰아붙이지 않으면서, 오래 만족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가 실제와 어떻게 달랐는지 보고 다음 선택에서 무엇을 먼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되새기느니라. ‘이 삶과 다음 삶의 감각적 욕망과 그에 대한 인식은 모두 마라의 지배 아래 있고, 마라의 영역이며, 마라의 미끼이고 활동처이다. 거기에서 탐욕과 악의와 공격 같은 해롭고 좋지 않은 마음이 생겨나며, 여기서 배우는 성스러운 제자를 가로막는다.’”

Tatra, bhikkhave,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ye ca diṭṭhadhammikā kāmā, ye ca samparāyikā kāmā; yā ca diṭṭhadhammikā kāmasaññā, yā ca samparāyikā kāmasaññā—ubhayametaṁ māradheyyaṁ, mārassesa visayo, mārassesa nivāpo, mārassesa gocaro. Etthete pāpakā akusalā mānasā abhijjhāpi byāpādāpi sārambhāpi saṁvattanti, teva ariyasāvakassa idhamanusikkhato antarāyāya sambhavanti.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같은 내용이 이번에는 성스러운 제자의 내적 성찰로 반복됩니다. 부처님의 말을 외부의 교훈으로만 듣지 않고, 자신의 경험에 적용해 무엇이 마음을 좁히고 가로막는지 되새기는 단계입니다. 감각적 쾌락을 무조건 피하라는 명령보다, 그것에 대한 인식이 탐욕과 악의와 공격성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 인과를 관찰하게 합니다. 앞선 진단을 자기 마음의 언어로 반복할 때 다음의 넓은 마음을 선택할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묵상

누군가의 가르침을 들은 뒤 내 경험의 문장으로 다시 되새겨 본 적이 있나요? 즐거움을 얻으려는 마음이 넓어지는지 좁아지는지,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지 날카롭게 하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내가 넓고 드높은 마음으로 머물며 세상을 뛰어넘고 마음을 굳게 세우면 어떨까? 그렇게 머물면 탐욕과 악의와 공격 같은 해로운 마음이 더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을 버려 내 마음은 좁지 않고 한량없이 잘 닦일 것이다.’”

Yannūnāhaṁ vipulena mahaggatena cetasā vihareyyaṁ abhibhuyya lokaṁ adhiṭṭhāya manasā. Vipulena hi me mahaggatena cetasā viharato abhibhuyya lokaṁ adhiṭṭhāya manasā ye pāpakā akusalā mānasā abhijjhāpi byāpādāpi sārambhāpi te na bhavissanti. Tesaṁ pahānā aparittañca me cittaṁ bhavissati appamāṇaṁ subhāvitan’ti.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성스러운 제자는 감각적 쾌락의 좁은 영역을 억지로 누르기보다 넓고 드높은 마음을 닦는 쪽을 선택합니다. 세상을 뛰어넘는다는 말은 현실을 외면한다는 뜻이 아니라, 탐욕과 악의가 정한 좁은 범위에 마음을 가두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원하지 않는 생각과 싸우는 데 모든 힘을 쓰지 않고, 그 생각들이 더는 중심을 차지하지 못할 만큼 마음을 넓힙니다. 놓아 버림은 빈자리를 만드는 동시에 한량없는 마음을 기르는 적극적인 수행입니다.

묵상

원하지 않는 마음을 밀어내는 대신 그 마음이 작아질 만큼 더 넓은 관점을 길러 본 적이 있나요? 지금 탐욕이나 악의가 차지한 공간보다 마음을 넓힐 수 있는 생각은 무엇이며, 오늘 어느 갈등에서 그것을 실제로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실천하며 자주 머무는 이의 마음은 그 경지에서 맑아지느니라. 마음이 맑아지면 지금 흔들림 없음에 들거나 지혜로 해탈하느니라.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그에 알맞은 의식이 흔들림 없는 세계로 향할 수도 있느니라. 이것이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첫 번째 길이니라.”

Tassa evaṁpaṭipannassa tabbahulavihārino āyatane cittaṁ pasīdati. Sampasāde sati etarahi vā āneñjaṁ samāpajjati paññāya vā adhimucca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ṭhānametaṁ vijjati yaṁ taṁsaṁvattanikaṁ viññāṇaṁ assa āneñjūpagaṁ. Ayaṁ, bhikkhave, paṭhamā āneñjasappāyā paṭipadā akkhāyati.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넓은 마음에 한 번 감동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방식으로 실천하며 자주 머물 때 마음이 실제로 그 경지에서 맑아집니다. 그러면 지금 흔들림 없는 상태에 들어가거나 지혜로 해탈하며, 죽음 뒤에도 그 수행에 알맞은 세계로 향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명상 경지에 드는 길과 지혜로 자유로워지는 길을 나란히 열어 두고, 성찰과 반복되는 훈련이 현재와 긴 삶의 흐름에서 맺는 열매를 보여 주십니다.

묵상

좋은 통찰이 잠깐 떠오른 뒤 이전 습관으로 돌아간 경험이 있나요? 한 번의 이해를 자주 머무는 마음으로 바꾸려면 일상에서 어떤 반복이 필요하며, 하루 중 어느 순간에 흔들림 없는 방향을 다시 떠올리면 좋을까요?

2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3구절

모든 물질의 구성과 명상 중 형상의 무상을 구별해 살피며, 흔들림 없는 경지에 알맞은 세 가지 길을 완성합니다.

“또한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되새기느니라. ‘이 삶과 다음 삶의 감각적 욕망과 그에 대한 인식이 있고, 어떤 물질이든 모든 물질은 네 가지 큰 요소와 그 요소에서 생긴 물질이다.’ 그렇게 자주 머무는 이의 마음은 그 경지에서 맑아지느니라. 마음이 맑아지면 지금 흔들림 없음에 들거나 지혜로 해탈하느니라. 죽은 뒤에는 그에 알맞은 의식이 흔들림 없는 세계로 향할 수도 있느니라. 이것이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두 번째 길이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ye ca diṭṭhadhammikā kāmā, ye ca samparāyikā kāmā; yā ca diṭṭhadhammikā kāmasaññā, yā ca samparāyikā kāmasaññā; yaṁ kiñci rūpaṁ sabbaṁ rūpaṁ cattāri ca mahābhūtāni, catunnañca mahābhūtānaṁ upādāyarūpan’ti. Tassa evaṁpaṭipannassa tabbahulavihārino āyatane cittaṁ pasīdati. Sampasāde sati etarahi vā āneñjaṁ samāpajjati paññāya vā adhimucca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ṭhānametaṁ vijjati yaṁ taṁsaṁvattanikaṁ viññāṇaṁ assa āneñjūpagaṁ. Ayaṁ, bhikkhave, dutiyā āneñjasappāyā paṭipadā akkhāyati.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두 번째 길은 감각적 쾌락뿐 아니라 모든 물질의 구성을 봅니다. 아무리 매력적이거나 단단해 보이는 대상도 땅과 물, 불과 바람이라는 네 가지 큰 요소와 거기서 생긴 물질일 뿐입니다. 대상을 특별한 만족의 원천으로 꾸미던 인식이 그 구성을 있는 그대로 보면 집착할 근거가 약해집니다. 이 관찰을 자주 닦아 마음이 맑아지면 지금 흔들림 없는 경지에 들거나 지혜로 해탈하고, 죽은 뒤에는 그에 상응하는 세계로 향할 수 있습니다.

묵상

강하게 끌리는 몸이나 물건을 이름과 이야기 없이 네 가지 큰 요소가 잠시 모인 물질로 바라본 적이 있나요? 매력이나 소유의 의미를 내려놓고 구성을 볼 때, 그 대상이 마음을 흔드는 힘과 내 반응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또한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되새기느니라. ‘이 삶과 다음 삶의 감각적 욕망과 그에 대한 인식, 이 삶과 다음 삶의 명상 중 형상과 그 형상에 대한 인식은 모두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기뻐하고 환영하며 붙들기에 알맞지 않다.’”

Puna caparaṁ, bhikkhave,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ye ca diṭṭhadhammikā kāmā, ye ca samparāyikā kāmā; yā ca diṭṭhadhammikā kāmasaññā, yā ca samparāyikā kāmasaññā; ye ca diṭṭhadhammikā rūpā, ye ca samparāyikā rūpā; yā ca diṭṭhadhammikā rūpasaññā, yā ca samparāyikā rūpasaññā—ubhayametaṁ aniccaṁ. Yadaniccaṁ taṁ nālaṁ abhinandituṁ, nālaṁ abhivadituṁ, nālaṁ ajjhositu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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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세 번째 길은 현세와 다음 삶의 감각적 쾌락뿐 아니라 명상 중 나타나는 형상과 그 형상에 대한 인식까지 한꺼번에 무상으로 봅니다. 여기서 형상은 앞 카드의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진 물질이 아니라 명상에서 보이는 모습입니다. 대상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아보는 인식도 변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무상한 것을 기뻐하며 내 것으로 환영하고 붙들기에 알맞지 않다고 하십니다. 미세한 명상 경험도 영원한 의지처는 아닙니다.

묵상

명상에서 나타난 빛이나 형상 같은 인상적인 경험을 오래 붙잡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그 형상과 그것을 알아보는 인식도 함께 변한다는 사실을 보면, 특별한 경험을 내 성취로 환영하고 소유하려는 마음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그렇게 실천하며 자주 머무는 이의 마음은 그 경지에서 맑아지느니라. 마음이 맑아지면 지금 흔들림 없음에 들거나 지혜로 해탈하느니라.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그에 알맞은 의식이 흔들림 없는 세계로 향할 수도 있느니라. 이것이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세 번째 길이니라.”

Tassa evaṁpaṭipannassa tabbahulavihārino āyatane cittaṁ pasīdati. Sampasāde sati etarahi vā āneñjaṁ samāpajjati paññāya vā adhimucca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ṭhānametaṁ vijjati yaṁ taṁsaṁvattanikaṁ viññāṇaṁ assa āneñjūpagaṁ. Ayaṁ, bhikkhave, tatiyā āneñjasappāyā paṭipadā akkhāyati.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무상을 한 번 이해하는 것과 그 관찰에 자주 머무는 것은 다릅니다. 부처님은 같은 성찰을 반복해 마음이 실제로 그 경지에서 맑아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익은 마음은 지금 흔들림 없는 상태에 들거나 지혜로 해탈하며, 죽음 뒤에도 그 수행에 알맞은 곳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길의 열매는 특정 경지를 지적으로 확신하는 데 있지 않고, 무상한 것을 붙들지 않는 지혜가 실제 자유로 이어지는 데 있습니다.

묵상

무상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같은 대상이나 특별한 명상 경험에 되풀이해 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머리의 이해가 붙잡지 않는 마음의 습관이 되려면, 오늘 어느 순간에 대상과 인식의 변화를 다시 관찰할 수 있을까요?

3 아무것도 없음으로 4구절

모든 인식을 넘어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에 알맞은 세 가지 관찰을 제시합니다.

“또한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되새기느니라. 이 삶과 다음 삶의 감각적 욕망과 그에 대한 인식, 이 삶과 다음 삶의 명상 중 형상과 그 형상에 대한 인식, 그리고 흔들림 없음에 대한 인식까지…”

Puna caparaṁ, bhikkhave,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ye ca diṭṭhadhammikā kāmā, ye ca samparāyikā kāmā; yā ca diṭṭhadhammikā kāmasaññā, yā ca samparāyikā kāmasaññā; ye ca diṭṭhadhammikā rūpā, ye ca samparāyikā rūpā; yā ca diṭṭhadhammikā rūpasaññā, yā ca samparāyikā rūpasaññā; yā ca āneñjasaññā—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이제 수행은 흔들림 없는 경지 자체를 넘어섭니다. 성스러운 제자는 현세와 다음 삶의 감각적 쾌락, 명상 중 나타나는 형상, 그리고 각각에 대한 인식을 차례로 되새깁니다. 여기의 형상은 물질 일반이 아니라 명상에서 보이는 모습입니다. 목록은 앞 단계에서 얻은 흔들림 없음에 대한 인식까지 이어집니다. 훌륭한 성취도 최종 실체로 세우지 않고 다음 대목에서 이 모두를 인식으로 관찰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묵상

감각적 즐거움과 명상 중 형상뿐 아니라 힘들게 얻은 흔들림 없음에 대한 인식도 같은 목록에 올려놓을 수 있나요? 특별한 성취를 나의 고정된 상태로 만들지 않고 다음 순간에도 변할 인식으로 바라보면 무엇을 덜 붙잡게 될까요?

“‘이 모두가 인식이다. 그 인식들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곳은 평화롭고 뛰어나다. 곧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이다.’ 그렇게 자주 머무는 이의 마음은 그 경지에서 맑아지느니라. 마음이 맑아지면 지금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에 들거나 지혜로 해탈하느니라. 죽은 뒤에는 그에 알맞은 의식이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으로 향할 수도 있느니라. 이것이 그 영역에 알맞은 첫 번째 길이니라.”

sabbā saññā. Yatthetā aparisesā nirujjhanti etaṁ santaṁ etaṁ paṇītaṁ—yadidaṁ ākiñcaññāyatanan’ti. Tassa evaṁpaṭipannassa tabbahulavihārino āyatane cittaṁ pasīdati. Sampasāde sati etarahi vā ākiñcaññāyatanaṁ samāpajjati paññāya vā adhimucca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ṭhānametaṁ vijjati yaṁ taṁsaṁvattanikaṁ viññāṇaṁ assa ākiñcaññāyatanūpagaṁ. Ayaṁ, bhikkhave, paṭhamā ākiñcaññāyatanasappāyā paṭipadā akkhāyati.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모든 인식이 남김없이 멎는 방향을 평화롭고 뛰어난 것으로 보고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을 향합니다. 이것은 일상적인 허무감이 아니라 대상이 있다는 인식을 놓아 매우 미세하게 고요해진 명상 경지입니다. 앞선 길과 마찬가지로 이 성찰을 자주 닦아 마음이 맑아지면 지금 그 영역에 들거나 지혜로 해탈하며, 그 수행에 알맞은 다음 삶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단계마다 명상 성취와 지혜의 해탈을 나란히 보여 주십니다.

묵상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공허한 절망으로 듣나요, 아니면 소유하고 지킬 대상이 사라진 고요로 느끼나요? 감각과 형상과 흔들림 없음에 대한 모든 인식이 멎는다고 되새길 때, 지금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는 압박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또한 성스러운 제자는 숲이나 나무 밑, 또는 빈 거처로 가서 이렇게 되새기느니라. ‘이것은 자아나 자아의 소유인 것에서 비어 있다.’ 그렇게 자주 머무는 이의 마음은 그 경지에서 맑아지느니라. 마음이 맑아지면 지금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에 들거나 지혜로 해탈하느니라. 죽은 뒤에는 그에 알맞은 의식이 그 영역으로 향할 수도 있느니라. 이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알맞은 두 번째 길이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ariyasāvako araññagato vā rukkhamūlagato vā suññāgāragato vā iti paṭisañcikkhati: ‘suññamidaṁ attena vā attaniyena vā’ti. Tassa evaṁpaṭipannassa tabbahulavihārino āyatane cittaṁ pasīdati. Sampasāde sati etarahi vā ākiñcaññāyatanaṁ samāpajjati paññāya vā adhimucca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ṭhānametaṁ vijjati yaṁ taṁsaṁvattanikaṁ viññāṇaṁ assa ākiñcaññāyatanūpagaṁ. Ayaṁ, bhikkhave, dutiyā ākiñcaññāyatanasappāyā paṭipadā akkhāyati.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두 번째 관찰은 고요한 숲이나 나무 밑, 빈 거처에서 이루어집니다. 수행자는 지금 경험하는 이 자리가 영원한 자아나 자아에게 속한 것으로 비어 있음을 되새깁니다. 빈 곳에 간다는 외적 조건과 자아 및 소유의 비어 있음을 보는 내적 관찰이 서로 맞물립니다. 이 성찰을 자주 익힐 때 마음은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에 맑게 기울어집니다. 공간을 비우는 일보다 그 공간을 내 것이라고 붙드는 마음을 비우는 일이 중심입니다.

묵상

혼자 조용히 있을 때에도 장소와 몸과 생각을 내 것이라고 단단히 붙들고 있나요? 오늘 나무 밑이나 빈 방처럼 방해가 적은 곳에 잠시 머물며 자아와 소유라는 꼬리표를 떼어 본다면, 경험에서 무엇이 비어 있음을 볼 수 있을까요?

“또한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되새기느니라. ‘나는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속한 무엇이 아니다. 어디에서도 어떤 것도 나에게 속한 것이 없다.’ 그렇게 자주 머무는 이의 마음은 그 경지에서 맑아지느니라. 마음이 맑아지면 지금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에 들거나 지혜로 해탈하느니라. 죽은 뒤에는 그에 알맞은 의식이 그 영역으로 향할 수도 있느니라. 이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알맞은 세 번째 길이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nāhaṁ kvacani kassaci kiñcanatasmiṁ, na ca mama kvacani kismiñci kiñcanaṁ natthī’ti. Tassa evaṁpaṭipannassa tabbahulavihārino āyatane cittaṁ pasīdati. Sampasāde sati etarahi vā ākiñcaññāyatanaṁ samāpajjati paññāya vā adhimucca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ṭhānametaṁ vijjati yaṁ taṁsaṁvattanikaṁ viññāṇaṁ assa ākiñcaññāyatanūpagaṁ. Ayaṁ, bhikkhave, tatiyā ākiñcaññāyatanasappāyā paṭipadā akkhāyati.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세 번째 관찰은 소속과 소유를 양쪽에서 놓습니다. 나는 어디에서도 누군가가 소유할 무엇이 아니며, 어떤 것도 나에게 속한 영원한 소유가 아닙니다. 관계를 부정하거나 책임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과 사물을 자아의 소유물로 굳혀 붙잡는 관념을 내려놓는 말씀입니다. 이 성찰을 자주 닦을수록 마음은 아무것도 없음의 고요에 알맞게 맑아집니다. 소유하지도 소유되지도 않는다는 통찰이 마음의 경계를 느슨하게 합니다.

묵상

사랑과 소유를 같은 것으로 여기거나 누군가에게 속해야 안전하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나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누구도 나의 소유가 아니라는 성찰을 받아들이면서도 서로를 아끼고 책임진다면, 지금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4 인식의 가장 미세한 자리로 2구절

흔들림 없음과 아무것도 없음에 대한 인식까지 놓아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영역으로 나아갑니다.

“또한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되새기느니라. 이 삶과 다음 삶의 감각적 욕망과 그에 대한 인식, 이 삶과 다음 삶의 명상 중 형상과 그 형상에 대한 인식, 흔들림 없음에 대한 인식과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에 대한 인식까지…”

Puna caparaṁ, bhikkhave,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ye ca diṭṭhadhammikā kāmā, ye ca samparāyikā kāmā; yā ca diṭṭhadhammikā kāmasaññā, yā ca samparāyikā kāmasaññā; ye ca diṭṭhadhammikā rūpā, ye ca samparāyikā rūpā; yā ca diṭṭhadhammikā rūpasaññā, yā ca samparāyikā rūpasaññā; yā ca āneñjasaññā, yā ca ākiñcaññāyatanasaññā—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부처님은 지금까지 거쳐 온 대상을 다시 한데 모으십니다. 현세와 다음 삶의 감각적 쾌락, 명상 중 나타나는 형상과 각각에 대한 인식이 먼저 놓입니다. 여기에 흔들림 없음과 아무것도 없음이라는 깊은 경지에 대한 인식까지 목록에 더합니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미세한 상태를 최종 진리로 착각하기 쉬우므로 성취의 이름을 하나씩 내려놓게 하십니다. 이어지는 대목은 이 목록 전체가 인식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묵상

감각적 쾌락과 명상 중 형상은 놓으면서도 흔들림 없음이나 아무것도 없음 같은 높은 경험에는 더 강하게 매이지 않나요? 이 모든 항목이 아직 결론이 아니라 다음 관찰을 위한 인식의 목록임을 받아들이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이 모두가 인식이다. 그 인식들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곳은 평화롭고 뛰어나다. 곧 인식도 아니고 비인식도 아닌 영역이다.’ 그렇게 자주 머무는 이의 마음은 그 경지에서 맑아지느니라. 마음이 맑아지면 지금 그 영역에 들거나 지혜로 해탈하느니라. 죽은 뒤에는 그에 알맞은 의식이 그 영역으로 향할 수도 있느니라. 이것이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영역에 알맞은 길이니라.”

sabbā saññā. Yatthetā aparisesā nirujjhanti etaṁ santaṁ etaṁ paṇītaṁ—yadida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n’ti. Tassa evaṁpaṭipannassa tabbahulavihārino āyatane cittaṁ pasīdati. Sampasāde sati etarahi v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samāpajjati paññāya vā adhimuccati.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ṭhānametaṁ vijjati yaṁ taṁsaṁvattanikaṁ viññāṇaṁ ass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ūpagaṁ. Ayaṁ, bhikkhave,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ppāyā paṭipadā akkhāy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인식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단정하기 어려울 만큼 미세한 경지가 제시됩니다. 모든 인식이 남김없이 멎는 방향을 평화롭고 뛰어나다고 보며, 그 성찰을 반복해 마음을 맑게 합니다. 이 단계도 앞선 경지들과 마찬가지로 현재 그 명상 경지에 들거나 지혜로 해탈하고, 그에 알맞은 다음 삶으로 향할 가능성으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가장 미세한 평온조차 내 것으로 환영하고 붙들면 다시 집착이 된다는 문답이 이어집니다.

묵상

모든 인식이 멎는다는 성찰을 허무로 단정하거나,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미세한 상태를 특별한 내 경험으로 소유하려 하나요? 말로 분명히 규정하기 어려운 평온도 하나의 경지일 뿐임을 알 때, 그것에 머무는 태도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5 평온마저 붙잡지 않다 4구절

놓아 버림으로 얻은 평온을 환영하고 붙들 때와, 그 평온에도 기대지 않을 때의 차이를 밝힙니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수행자가 이렇게 실천합니다. ‘그것은 없을 수도 있고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없을 것이며 내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있는 것, 생겨난 것을 나는 버린다.’ 이렇게 그는 평정을 얻습니다. 그 수행자는 완전한 열반에 듭니까, 들지 못합니까?” “아난다여, 어떤 수행자는 들고 어떤 수행자는 들지 못하느니라.” “세존이시여, 그 까닭과 조건은 무엇입니까?”

Evaṁ vutte,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ṁ etadavoca: “idha, bhante, bhikkhu evaṁ paṭipanno hoti: ‘no cassa, no ca me siyā; na bhavissati, na me bhavissati; yadatthi yaṁ, bhūtaṁ—taṁ pajahāmī’ti. Evaṁ upekkhaṁ paṭilabhati. Parinibbāyeyya nu kho so, bhante, bhikkhu na vā parinibbāyeyyā”ti? “Apetthekacco, ānanda, bhikkhu parinibbāyeyya, apetthekacco bhikkhu na parinibbāyeyyā”ti. “Ko nu kho, bhante, hetu ko paccayo yenapetthekacco bhikkhu parinibbāyeyya, apetthekacco bhikkhu na parinibbāyeyyā”ti?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아난다는 존재와 소유를 놓는 성찰로 평온을 얻은 두 수행자가 왜 서로 다른 결과에 이르는지 묻습니다. 같은 문장을 되새기고 같은 평온을 얻어도 한 사람은 완전한 열반에 들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할 수 있습니다. 차이는 수행 방법의 겉모양이나 평온의 깊이에 있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답은 얻어진 평온을 다시 기뻐하고 환영하며 붙드는지, 아니면 그 평온에도 의식이 기대지 않게 하는지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무언가를 놓아 평온해진 뒤 그 평온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새로 붙잡은 적이 있나요? 같은 놓아 버림의 성찰을 해도 한 사람은 열반에 들고 다른 사람은 들지 못한다는 문답에 비추어, 내 마음의 다음 반응은 무엇인가요?

“아난다여, 어떤 수행자는 이렇게 실천하느니라. ‘그것은 없을 수도 있고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없을 것이며 내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있는 것, 생겨난 것을 나는 버린다.’ 이렇게 평정을 얻은 그는 그 평정을 기뻐하고 환영하며 붙들고 머무느니라. 그러면 그의 의식은 그 평정에 기대고 그것을 집착의 대상으로 삼느니라. 아난다여, 집착이 남은 수행자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못하느니라.”

“Idhānanda, bhikkhu evaṁ paṭipanno hoti: ‘no cassa, no ca me siyā; na bhavissati, na me bhavissati; yadatthi, yaṁ bhūtaṁ—taṁ pajahāmī’ti. Evaṁ upekkhaṁ paṭilabhati. So taṁ upekkhaṁ abhinandati, abhivadati, ajjhosāya tiṭṭhati. Tassa taṁ upekkhaṁ abhinandato abhivadato ajjhosāya tiṭṭhato tannissitaṁ hoti viññāṇaṁ tadupādānaṁ. Saupādāno, ānanda, bhikkhu na parinibbāy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놓아 버림으로 생긴 평온도 기뻐하고 환영하며 굳게 붙들면 새로운 집착의 대상이 됩니다. 의식은 그 상태를 지지대로 삼고, 다시 얻고 유지해야 할 것으로 연료를 공급합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보다 훨씬 미세하고 고상해 보이지만 구조는 같습니다. 부처님은 무엇을 붙잡는지가 아니라 붙잡는 행위 자체가 완전한 열반을 가로막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평온은 해방의 문이 될 수 있지만 소유물이 되는 순간 또 하나의 머무를 곳이 됩니다.

묵상

평온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이나 특별한 명상 경험을 잃을까 두려워한 적이 있나요? 평온을 기뻐하고 환영한 뒤 붙들어 의식의 거처로 만드는 순간을 알아차린다면, 그 상태가 다시 와야 한다는 요구를 어디에서 놓을 수 있을까요?

아난다 존자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 수행자는 무엇을 붙잡는 것입니까?” “아난다여, 인식도 아니고 비인식도 아닌 영역이니라.”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그는 붙잡을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을 붙잡는 셈입니다.” “그렇다, 아난다여. 붙잡을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인식도 아니고 비인식도 아닌 영역이니라.”

“Kahaṁ pana so, bhante, bhikkhu upādiyamāno upādiyatī”t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ānandā”ti. “Upādānaseṭṭhaṁ kira so, bhante, bhikkhu upādiyamāno upādiyatī”ti? “Upādānaseṭṭhañhi so, ānanda, bhikkhu upādiyamāno upādiyati. Upādānaseṭṭhañhetaṁ, ānanda, yadidaṁ—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아난다는 그 미세한 집착의 대상을 정확히 확인합니다. 그것은 인식도 아니고 비인식도 아닌 가장 높은 명상 영역입니다. 부처님도 이를 붙잡을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가장 뛰어난 집착도 집착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 문답은 낮고 거친 대상만 버리면 된다는 생각을 끊습니다. 수행의 정점에 가까운 평온도 의식이 기대는 대상으로 삼는 한 완전한 자유는 아닙니다.

묵상

붙잡을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뛰어난 명상 경지라면 집착해도 괜찮다고 여기나요?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평온조차 그것 없이는 안 된다는 의식의 거처가 될 수 있음을 보면, 높고 좋은 대상에 매인 마음을 어떻게 알아차릴까요?

“아난다여, 다른 수행자도 이렇게 실천하느니라. ‘그것은 없을 수도 있고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없을 것이며 내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있는 것, 생겨난 것을 나는 버린다.’ 이렇게 평정을 얻은 그는 그 평정을 기뻐하지도 환영하지도 않으며 붙들고 머물지도 않느니라. 그러면 그의 의식은 그 평정에 기대지 않고 그것을 집착의 대상으로 삼지 않느니라. 아난다여, 집착이 없는 수행자는 완전한 열반에 드느니라.”

Idhānanda, bhikkhu evaṁ paṭipanno hoti: ‘no cassa, no ca me siyā; na bhavissati, na me bhavissati; yadatthi, yaṁ bhūtaṁ—taṁ pajahāmī’ti. Evaṁ upekkhaṁ paṭilabhati. So taṁ upekkhaṁ nābhinandati, nābhivadati, na ajjhosāya tiṭṭhati. Tassa taṁ upekkhaṁ anabhinandato anabhivadato anajjhosāya tiṭṭhato na tannissitaṁ hoti viññāṇaṁ na tadupādānaṁ. Anupādāno, ānanda, bhikkhu parinibbāy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두 번째 수행자는 같은 성찰과 같은 평온을 얻지만 반응이 다릅니다. 평온을 싫어하거나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뻐하며 내 것으로 환영하고 붙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식이 그 상태에 기대지 않고 집착의 연료도 생기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집착이 없는 이가 완전한 열반에 든다고 결론 내리십니다. 자유를 가르는 것은 경험의 높이가 아니라 어떤 경험에도 의식의 거처와 소유권을 만들지 않는 태도입니다.

묵상

좋은 경험을 싫어하거나 밀어내지 않으면서도 내 것으로 환영하고 붙들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고 느끼나요? 평온에 의식의 거처를 만들지 않고 집착의 연료를 보태지 않는다면, 지금의 고요와 어떤 자유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6 붙잡지 않는 해방 4구절

여러 경지를 의지해 거센 흐름을 건넌 뒤, 어떤 경지에도 기대지 않는 성스러운 해방을 밝힙니다.

아난다 존자가 말씀드렸다.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께서는 이 의지처와 저 의지처를 통해 거센 흐름을 건너는 길을 저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세존이시여, 성스러운 해방은 무엇입니까?”

“Acchariyaṁ, bhante, abbhutaṁ, bhante. Nissāya nissāya kira no, bhante, bhagavatā oghassa nittharaṇā akkhātā. Katamo pana, bhante, ariyo vimokkho”ti?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아난다는 지금까지 제시된 명상 경지들을 거센 흐름을 건너기 위해 차례로 의지하는 발판으로 이해합니다. 감각적 쾌락에서 벗어나 흔들림 없음, 아무것도 없음,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영역으로 나아가는 동안 각 의지처는 실제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성스러운 해방은 어느 의지처에도 집착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아난다는 이런저런 의지처로 흐름을 건너온 뒤 무엇이 최종적인 해방인지 물어 경의 결론을 요청합니다.

묵상

어려운 시기를 건너게 해 준 명상법이나 정체성을 지금도 유일한 의지처로 붙들고 있나요? 한때 실제로 도움이 된 경지에 감사하면서도 성스러운 해방은 그 의지처에도 집착하지 않는 데 있음을 받아들인다면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요?

“아난다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되새기느니라. ‘이 삶과 다음 삶의 감각적 욕망과 그에 대한 인식, 이 삶과 다음 삶의 명상 중 형상과 그 형상에 대한 인식까지…’”

“Idhānanda, bhikkhu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ye ca diṭṭhadhammikā kāmā, ye ca samparāyikā kāmā; yā ca diṭṭhadhammikā kāmasaññā, yā ca samparāyikā kāmasaññā; ye ca diṭṭhadhammikā rūpā, ye ca samparāyikā rūpā; yā ca diṭṭhadhammikā rūpasaññā, yā ca samparāyikā rūpasaññā;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성스러운 해방을 설명하는 마지막 성찰은 지금까지 다룬 경험의 범위를 처음부터 다시 훑습니다. 현세와 다음 삶의 감각적 쾌락과 그에 대한 인식이 먼저 놓이고, 명상 중 나타나는 형상과 그 형상에 대한 인식이 이어집니다. 여기의 형상은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진 물질 일반이 아니라 명상에서 보이는 모습입니다. 원문 문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음 카드의 흔들림 없음과 더 미세한 영역에 대한 인식까지 한 목록으로 계속됩니다.

묵상

감각적 즐거움이나 명상 중 나타난 형상을 특별한 나의 경험으로 붙들고 있나요? 그 형상과 그것에 대한 인식이 모두 더 미세한 경지의 인식으로 이어지는 한 목록임을 보면, 어느 지점에서 고정된 나를 세우고 있는지 찾을 수 있을까요?

“‘흔들림 없음에 대한 인식,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과 인식도 아니고 비인식도 아닌 영역에 대한 인식까지, 그 모두가 자아라는 실체의 전부이다. 그러나 이것은 죽음 없음이니, 집착하지 않음으로 이루는 마음의 해방이다.’ 아난다여, 나는 이와 같이 흔들림 없음과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 인식도 아니고 비인식도 아닌 영역에 알맞은 길을 가르쳤느니라. 여러 의지처로 거센 흐름을 건너는 길과 성스러운 해방을 가르쳤느니라.”

yā ca āneñjasaññā, yā ca ākiñcaññāyatanasaññā, yā c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ññā—esa sakkāyo yāvatā sakkāyo. Etaṁ amataṁ yadidaṁ anupādā cittassa vimokkho. Iti, kho, ānanda, desitā mayā āneñjasappāyā paṭipadā, desitā ākiñcaññāyatanasappāyā paṭipadā, desit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ppāyā paṭipadā, desitā nissāya nissāya oghassa nittharaṇā, desito ariyo vimokkho.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가장 미세한 세 명상 경지에 대한 인식까지 자아라는 실체가 나타날 수 있는 전 범위에 포함됩니다. 그 어느 상태도 영원한 나나 나의 소유가 아닙니다. 이 모든 범위와 대조되는 죽음 없는 길은 새로운 대상을 획득하는 일이 아니라 집착하지 않음으로 이루는 마음의 해방입니다. 부처님은 자신이 각 경지에 알맞은 길과 여러 의지처로 흐름을 건너는 법,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의지처를 놓는 성스러운 해방을 가르쳤다고 요약하십니다.

묵상

가장 맑고 깊은 의식은 참된 나라고 붙들고 있나요? 감각적 쾌락부터 가장 미세한 인식까지 자아가 세워지는 전 범위임을 보고, 어느 경지에도 의식의 거처를 만들지 않을 때 집착 없는 마음의 해방은 어떻게 이해되나요?

“제자들의 이익을 바라고 연민하는 스승이 연민으로 해야 할 일을 나는 그대들에게 다했느니라. 여기 나무 밑과 빈 거처가 있느니라. 아난다여, 깊이 명상하라. 게으름하지 말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가르침이니라.”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Yaṁ kho, ānanda, satthārā karaṇīyaṁ sāvakānaṁ hitesinā anukampakena anukampaṁ upādāya, kataṁ vo taṁ mayā. Etāni, ānanda, rukkhamūlāni, etāni suññāgārāni. Jhāyathānanda, mā pamādattha, mā pacchā vippaṭisārino ahuvattha. Ayaṁ vo amhākaṁ anusāsanī’”ti. Idamavoca bhagavā. Attamano āyasmā ānand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īti.

맛지마 니까야 MN 106 흔들림 없음에 알맞은 경 (Āneñjasappāyasutta)

배경

가르침을 모두 마친 부처님은 제자의 이익을 바라고 연민하는 스승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무 밑과 빈 거처를 가리키며 이제 직접 깊이 명상하고 방일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더 많은 설명을 기다리는 대신 이미 들은 길을 삶에서 확인할 차례입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는 말은 겁을 주기보다 지금 주어진 시간의 가치를 일깨웁니다. 경은 실천을 향한 간곡한 권고와 아난다의 기쁜 수용으로 닫힙니다.

묵상

충분히 듣고 이해했지만 아직 직접 명상으로 확인하지 않은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나중의 후회를 두려워하기보다 오늘 나무 밑이나 빈 방처럼 방해가 적은 자리에 앉아 방일하지 않으려면, 언제 얼마만큼의 시간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