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루빠난다 장로니의 게송

몸의 덧없고 깨끗하지 않은 성질을 보아 집착을 놓으라고 이릅니다.

난다여, 이 몸뚱이를 보라. 병들고 더러우며 썩어 가는 것으로. 몸의 아름답지 않은 면을 닦아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잘 안정시키라.

“Āturaṁ asuciṁ pūtiṁ, passa nande samussayaṁ; Asubhāya cittaṁ bhāvehi, ekaggaṁ susamāhit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2.1 아비루빠난다 장로니의 게송 (Abhirūpanandātherīgāthā)

배경

아비루빠난다의 첫 게송은 몸을 병들고 더럽고 썩는 것으로 보라고 단호히 권하며, 다음의 덧없음 관찰을 위한 시선을 마련합니다. 몸을 병듦·더러움·썩음의 세 관점으로 보라는 말과, 아름답지 않은 면을 관찰해 마음을 하나로 모으라는 실천을 잇습니다. 몸을 혐오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아름다움만 골라 붙드는 지각을 바로잡아 탐욕의 힘을 약하게 하는 수행입니다. 이때 흐름을 가르는 말은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입니다.

묵상

“병들고 더러우며 썩어 가는 몸”을 읽을 때 불편함이나 거부감이 생기나요? 몸을 혐오하라는 요구로 바꾸지 말고, 아름다움만 보려는 습관과 변화만 보려는 시선 사이에서 지금 어느 쪽이 필요한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몸 이야기가 힘든 날이라면 아무 대답 없이 쉬어도 좋아요.

표상 없는 마음을 닦고 자만의 잠재 성향을 버리라. 그러면 자만을 꿰뚫어 알아 고요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Animittañca bhāvehi, mānānusayamujjaha; Tato mānābhisamayā, upasantā carissasī”ti.

쿳다까 니까야 Thig 2.1 아비루빠난다 장로니의 게송 (Abhirūpanandātherīgāthā)

배경

둘째 게송은 앞의 몸 관찰을 낮과 밤의 끊임없는 기억으로 이어 가고, 자만의 성향을 꿰뚫어 평화롭게 살라는 실천으로 닫습니다. 표상 없음의 계발과 자만의 잠재 성향을 버리는 일을 병렬로 놓고, 자만을 완전히 아는 것이 고요한 삶으로 이어집니다. 겉모습을 자기 가치의 표지로 붙드는 습관이 잦아들 때, 비교하여 높이고 낮추는 자만도 함께 놓을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낮과 밤에 계속 알아차린다는 말은 몸을 감시하라는 뜻일까요, 변화를 잊지 말라는 뜻일까요? 자랑하거나 비교하고 싶어지는 순간 하나를 떠올리고 그 밑의 불안이나 바람을 비난 없이 볼 수 있나요? 오늘 그런 순간이 없다면 비교하지 않아 편안했던 때를 찾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