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망갈라의 어머니 장로니의 게송

절구와 솥에서 벗어나 나무 아래에서 누리는 해방을 노래합니다.

나는 잘 풀려났네, 잘 풀려났네. 절굿공이에서 참으로 잘 풀려났네! 내 뻔뻔한 남편은 버섯 같았고, 내 작은 절구에서는 뱀 냄새가 났지.

“Sumuttikā sumuttikā, Sādhumuttikāmhi musalassa; Ahiriko me chattakaṁ vāpi, Ukkhalikā me deḍḍubhaṁ v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2.3 수망갈라의 어머니 장로니의 게송 (Sumaṅgalamātātherīgāthā)

배경

수망갈라의 어머니는 첫 게송에서 절구·절굿공이·곰팡내 나는 솥이라는 살림 도구를 열거하며, 그 굴레에서 벗어난 기쁨을 터뜨립니다. 해방의 기쁨을 세 번 되풀이한 뒤 절굿공이·남편·절구를 익살스러운 비유로 열거해 벗어난 삶의 무게를 드러냅니다. 고된 가사와 불편한 관계를 숨기지 않는 목소리가 출가 뒤의 자유를 구체적으로 말하며, 해방을 일상의 감각으로 전합니다.

묵상

절구와 절굿공이와 낡은 솥 가운데 어느 이미지가 반복되는 고된 일상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 주나요? 매일 해야 하지만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수고가 있다면 그 무게를 스스로 인정해 볼 수 있을까요? 해결책을 내지 않아도 되고, 이름 붙이기 싫다면 잠시 숨을 고르는 답도 괜찮아요.

나는 탐욕과 성냄을 치직치직 소리 나도록 눌러 없앱니다. 나무 아래로 가서 “아, 행복하여라!” 하며 행복하게 선정에 듭니다.

Rāgañca ahaṁ dosañca, Cicciṭi cicciṭīti vihanāmi; Sā rukkhamūlamupagamma, Aho sukhanti sukhato jhāyāmī”ti.

쿳다까 니까야 Thig 2.3 수망갈라의 어머니 장로니의 게송 (Sumaṅgalamātātherīgāthā)

배경

둘째 게송은 생활 도구에서 풀려난 외침을 나무뿌리 아래의 선정으로 옮기고, 탐욕과 증오가 사라진 행복으로 노래를 마칩니다. 탐욕과 성냄이 타는 소리를 의성어로 두 번 들려준 뒤, 둘을 없애고 나무 아래에서 누리는 선정의 행복과 대조합니다. 번뇌를 놓은 고요는 메마른 의무가 아니라 몸소 맛보는 기쁨이며, 소박한 장소도 충분한 수행처가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묵상

“나무뿌리 아래서 행복하게 선정에 든다”는 장면은 앞의 부엌과 어떤 대비를 이루나요? 내게도 역할과 요구에서 잠시 벗어나 숨을 돌릴 수 있는 자리 하나가 있는지 떠올려 볼까요? 실제 장소가 없다면 한 곡의 음악이나 조용한 몇 번의 호흡도 그 자리가 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