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다까시 장로니의 게송

아름다움에 매겨졌던 값과 그 몸을 떠난 출가를 대조합니다.

내 몸값은 까시 나라 전체의 세금만큼이나 되었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그 값을 매긴 뒤 나를 그 절반 값이라고 정했습니다.

“Yāva kāsijanapado, suṅko me tatthako ahu; Taṁ katvā negamo agghaṁ, aḍḍhenagghaṁ ṭhapesi m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2.4 앗다까시 장로니의 게송 (Aḍḍhakāsitherīgāthā)

배경

앗다까시의 첫 게송은 까시 나라 전체의 세금과 맞먹던 자신의 몸값을 밝히며, 사람의 몸이 거래 가치로 환산되던 과거를 드러냅니다. 까시 나라의 세금이라는 큰 액수를 먼저 제시하고, 도시 사람들이 그 절반을 몸값으로 정했다는 수량 관계를 그대로 둡니다. 사람의 몸이 시장의 값으로 평가되던 과거를 숨기지 않으며, 다음의 몸에 대한 염오가 어떤 삶에서 나왔는지 토대를 놓습니다.

묵상

한 사람에게 “나라 세금만 한 값”을 매겼다는 고백을 들으면 어떤 감정이 먼저 올라오나요? 나나 다른 이를 외모·성과·돈으로 평가하는 시선이 작동한 순간을 하나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그 시선을 즉시 없애지 못해도 괜찮으며, 불편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출발점일 수 있어요.

그 뒤 나는 몸에 싫증이 나고 싫증으로 탐착이 사라졌습니다. 다시는 태어남의 윤회를 거듭 달려가지 않기를! 세 가지 앎을 실현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습니다.

Atha nibbindahaṁ rūpe, nibbindañca virajjahaṁ; Mā puna jātisaṁsāraṁ, sandhāveyyaṁ punappunaṁ; Tisso vijjā sacchikatā, kataṁ buddhassa sāsanan”ti.

쿳다까 니까야 Thig 2.4 앗다까시 장로니의 게송 (Aḍḍhakāsitherīgāthā)

배경

마지막 게송은 앞에서 매겨진 높은 값을 그대로 되받아, 사람들이 그 절반을 정하고 자신은 싫증을 내어 출가했다는 반전을 완성합니다. 몸에 대한 염오에서 탐착이 식고, 윤회를 멈추려는 뜻이 세 가지 앎의 실현과 가르침의 완수로 이어집니다. 타인의 평가에 반발하는 데 머물지 않고, 몸과 재생을 붙드는 갈애 자체를 꿰뚫어 자유에 이른 흐름입니다. 이때 흐름을 가르는 말은 “탐착이 사라졌습니다”입니다.

묵상

“그 값의 절반”이라는 말 뒤에 곧바로 출가가 놓인 까닭은 무엇처럼 들리나요? 다른 이가 붙인 가격표와 내가 원하는 삶이 서로 달랐던 경험을 떠올려, 어느 목소리에 더 오래 머물렀는지 살펴볼 수 있나요? 떠올릴 일이 없다면 지금 나를 설명하는 숫자 하나를 잠시 내려놓아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