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 번이나 다섯 번이나 거처 밖으로 나갔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고 내 마음을 뜻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갈애가 뿌리째 사라진 뒤로 여드레째 밤입니다.
“Catukkhattuṁ pañcakkhattuṁ, vihārā upanikkhamiṁ; Aladdhā cetaso santiṁ, citte avasavattinī; Tassā me aṭṭhamī ratti, yato taṇhā samūhatā.
쿳다까 니까야 Thig 2.10 사마 장로니의 게송 (Sāmātherīgāthā)배경
사마의 현존하는 대목은 첫 게송과 뒤의 반복 결말을 함께 잇습니다. 첫 게송은 스물다섯 해의 방황 뒤 여덟째 날 갈애가 부서진 전환을 전하고, 이어지는 게송은 아바야의 결말과 같은 문장이라 앞선 온전한 노래로 이어 읽습니다. 네 번 또는 다섯 번의 실패를 숨기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때와 갈애가 사라진 뒤 정확히 여덟째 밤을 대조합니다. 여러 번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사실도 수행의 끝을 뜻하지 않으며, 되돌아와 머문 끝에 전환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뒤의 한 게송은 이 문헌에서 앞서 온전히 실은 같은 게송을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여기서는 같은 문장을 거듭 적지 않았으므로, 앞의 온전한 게송과 이어 읽으십시오.
묵상
스물다섯 해와 여덟째 날이라는 크게 다른 두 시간이 한 삶에 함께 놓인 까닭은 무엇일까요? 오래 헤맸다는 사실이 마지막 전환의 가능성을 없애지 않는다는 말을 내 기다림 곁에 둘 수 있나요? 시간을 비교하는 일이 고통스럽다면 “아직 끝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여지만 남겨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