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 장로니의 게송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혜를 낮춘 마라의 말에 통찰로 답합니다.

성자들이 이르러야 할 그 경지는 도달하기 매우 어렵다. 두 손가락만 한 지혜를 지닌 여자는 그곳에 이를 수 없다.

“Yaṁ taṁ isīhi pattabbaṁ, ṭhānaṁ durabhisambhavaṁ; Na taṁ dvaṅgulapaññāya, sakkā pappotumitth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3.8 소마 장로니의 게송 (Somātherīgāthā)

배경

소마의 첫 게송에서 마라는 성자의 경지가 어렵다는 사실을 여성은 두 손가락만 한 지혜라 도달할 수 없다는 성차별적 결론으로 비약합니다. 마라는 경지가 어렵다는 사실에서 여성이 이를 수 없다는 결론으로 건너뛰며, 여자의 지혜를 두 손가락만 하다고 낮춥니다. 이 말은 소마의 견해가 아니라 성별을 수행 능력의 한계로 만드는 마라의 도발이며, 다음 게송이 그 전제를 반박합니다.

묵상

“두 손가락만 한 지혜”라는 모욕을 읽을 때 분노, 상처, 거리감 가운데 무엇이 먼저 생기나요? 능력을 성별이나 몸의 특징으로 미리 제한한 말을 들었던 경험이 있다면 그 판단이 누구의 목소리였는지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기억이 아프다면 더 들여다보지 않고 멈춰도 괜찮아요.

마음이 잘 고요히 모이고 지혜가 분명히 작동하여 진리를 바르게 통찰하는데, 여자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겠는가?

“Itthibhāvo no kiṁ kayirā, cittamhi susamāhite; Ñāṇamhi vattamānamhi, sammā dhammaṁ vipassato.

쿳다까 니까야 Thig 3.8 소마 장로니의 게송 (Somātherīgāthā)

배경

소마의 대답은 고요히 모인 마음, 분명히 작동하는 지혜, 진리를 바르게 통찰하는 조건을 제시한 뒤 성별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되묻습니다. 뒤의 반복 결말은 셀라가 온전히 말한 마라의 패배와 같아 그 게송으로 이어집니다. 마음의 삼매·현재 작동하는 앎·바른 통찰을 조건으로 들고, 그때 성별이 무슨 장애가 되느냐고 반문합니다. 수행의 가능성을 몸의 성별이 아니라 실제로 닦인 마음과 지혜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단호한 응답입니다. 뒤의 한 게송은 이 문헌에서 앞서 온전히 실은 같은 게송을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여기서는 같은 문장을 거듭 적지 않았으므로, 앞의 온전한 게송과 이어 읽으십시오.

묵상

“여자라는 사실이 능력을 막지 못한다”는 반문은 능력을 판단할 기준을 어디로 옮기나요? 내 가능성을 가로막는다고 여겼던 정체성의 꼬리표 하나와 실제로 닦아 온 능력을 따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꼬리표를 다루기 힘든 날에는 내가 이미 해낸 구체적인 일 하나만 기억해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