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들이쉬리라”고 익히고,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며 내쉬리라”고 익힌다. 수행자들이여, 능숙한 선반공이나 선반공의 제자가 길게 당기며 “길게 당긴다”고 알고, 짧게 당기며 “짧게 당긴다”고 아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길게 들이쉬며 “길게 들이쉰다”고 알고, 길게 내쉬며 “길게 내쉰다”고 안다. 짧게 들이쉬며 “짧게 들이쉰다”고 알고, 짧게 내쉬며 “짧게 내쉰다”고 안다.
‘Passambhayaṁ kāyasaṅkhāraṁ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ṁ kāyasaṅkhāraṁ passasissāmī’ti sikkhati. Seyyathāpi, bhikkhave, dakkho bhamakāro vā bhamakārantevāsī vā dīghaṁ vā añchanto ‘dīghaṁ añchāmī’ti pajānāti, rassaṁ vā añchanto ‘rassaṁ añchāmī’ti pajānāti;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dīghaṁ vā assasanto ‘dīghaṁ assasāmī’ti pajānāti, dīghaṁ vā passasanto ‘dīghaṁ p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ṁ vā assasanto ‘rassaṁ 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ṁ vā passasanto ‘rassaṁ passasāmī’ti pajānāti.
디가 니까야 DN 22 대념처경 (Mahāsatipaṭṭhānasutta)배경
온몸을 경험하는 두 훈련에 이어 kāyasaṅkhāra, 곧 숨과 관련된 몸의 작용을 가라앉히는 들숨과 날숨을 익힙니다. 세존은 이를 능숙한 선반공 또는 그 제자가 도구를 길게 당길 때와 짧게 당길 때 각 길이를 아는 모습에 견줍니다. 비유의 핵심은 긴 동작을 짧게 만들라는 통제가 아니라 동작이 어떤 길이인지 분명히 아는 데 있습니다. 적용문은 다시 긴 들숨·날숨과 짧은 들숨·날숨의 네 경우를 되짚어, 기술자의 정확한 앎과 호흡 수행자의 앎을 연결합니다.
묵상
선반공은 당김의 길이를 바꾸라는 평가 없이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압니다. 몸의 작용을 억지로 고요하게 만들 필요는 없어요. 어떤 움직임을 조절하기 전에 그 상태를 정확히 아는 일은 내게 어떻게 느껴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