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이 오직 앎과 기억에 필요한 만큼 그에게 확립된다. 그는 의존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그 무엇도 취하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Atthi kāyo’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디가 니까야 DN 22 대념처경 (Mahāsatipaṭṭhānasutta)배경
안·밖·안팎과 생김·사라짐을 살핀 뒤 호흡 관찰의 후렴이 태도를 정리합니다.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은 몸을 나나 내 것이라고 선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ñāṇamattāya와 paṭissatimattāya, 곧 앎과 기억에 필요한 만큼만 세워집니다. 그 제한 뒤에 어떤 것에도 기대지 않음과 세상 무엇도 취하지 않음이라는 두 비집착 표현이 옵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모든 과정을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무는 방식이라고 결론짓습니다. 호흡 수행은 특별한 상태의 소유가 아니라 정확한 앎과 붙들지 않는 관찰로 닫힙니다.
묵상
“몸이 있다”는 말도 앎과 기억에 필요한 만큼만 두고, 의존과 취함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몸을 멀리하거나 무시할 필요는 없어요. 한 감각을 “있다”라고만 알아차릴 때 평소의 해석과 무엇이 달라지나요?